'도전'은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다. 특히 한 우물만 오래 판 사람에게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새로운 도전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매 작품이 도전이겠지만, 영화와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한 장르에서 주로 커리어를 쌓아왔던 배우라면 타 장르에 대한 도전은 꽤나 부담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 인생 제2막을 열기 위해 20~30년 만에 영화가 아닌 연극 또는 드라마에 출연을 결심한 배우들을 소개한다.

35년 만에 첫 드라마 출연
송강호 <삼식이 삼촌>
OTT 후발주자로 들어온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위해 둔 차별화 전략 중 하나는 영화계를 무대로 오래 활동해온 배우들의 시리즈 드라마 출연이었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는 주연 배우로 최민식 배우를 캐스팅, 최민식은 1997년 MBC 드라마 <사랑과 이별> 이후 26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며 화제성을 견인했다. <카지노>는 작품성과 연기력에 있어 호평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년 대비 디즈니플러스 앱 설치자 50% 이상 증가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등 첫 효자 콘텐츠로 등극했다.

디즈니플러스의 다음 선택은 충무로의 얼굴, 배우 송강호였다. 송강호는 1996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충무로에 데뷔, 꾸준히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며 유일무이한 족적을 남겨 온 한국 영화계 대표 배우다. 그의 드라마 출연은 연기 인생 35년 만의 이례적인 일인 셈이었다. 드라마로 35년 차 신인배우라 불리게 된 송강호는 제작발표회 당시 “신인상을 주시면 감사히 받겠다”라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삼식이 삼촌>은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1950~6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자 정치물로 전쟁 중에도 하루 세 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삼식이 삼촌(송강호)과 엘리트 공무원 김산(변요한)이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위해 손을 잡는 이야기를 그렸다.

신인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송강호의 회당 개런티는 비공식적으로 7억에 달하며, 16부작으로 총 100억이 넘는 것으로 업계에 전해진다. 총 제작비 400억이 든 기대작이었으나 아쉽게도 전편이 공개된 지금, 반응은 씁쓸하기만 하다. 화제성에 있어 좋은 성과를 냈던 <카지노>에 비해 이렇다 할 것이 없기 때문. 다소 루즈한 전개와 시청자 타깃층을 겨냥하지 못한 근현대 정치물이라는 점이 원인으로 뽑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와 변요한, 이규형 등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과연 송강호가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27년 만의 연극
전도연 <벚꽃동산>
‘칸의 여왕’ 전도연이 스크린이 아닌 무대에서 관객들과 직접 만난다. 연극 <벚꽃동산>은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쓴 동명의 유작을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재해석한 작품이다. 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각색, 10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재벌 3세 송도영이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 돌아오며 벌어지는 소동들을 다룬다. 전도연은 원작의 몰락한 여성인 ‘류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송도영 역을 맡아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집안의 사업이 몰락하여 도산 위기에 처하고, 저택마저 잃게 된 상황에서 매혹적이지만 충동적인 면모로 파멸에 다가가는 인물을 연기했다.

전도연이 연극 무대에 서는 건 1997년 연극 <리타 길들이기> 이후 두 번째다. 무려 시기의 간극이 27년이나 된다. 아무리 칸의 여왕이지만 부담도 됐을 터. 전도연은 인터뷰들을 통해 “무대에 들어가기 전 ‘죽고 싶다’고 느꼈다”라며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감당이 안 됐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랐을 때는 익숙하기보다 정신없이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연출가 사이먼 스톤은 전도연을 캐스팅한 이유로 “한국의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필요했다”라고 고백했다. 전도연의 연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연극 <벚꽃동산>은 오는 7월 7일까지 LG 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


30년 만의 드라마
설경구 <돌풍>
영화 <박하사탕>, <공공의 적>, <실미도>부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등 20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충무로를 책임지고 있는 연기파 배우 설경구가 30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이다. 그가 드라마에 공식적으로 출연하는 건 1994년 MBC 드라마 <큰 언니> 이후 30년 만이다. <돌풍>은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펀치>로 일명 ‘권력 3부작’을 선보였던 박경수 작가의 7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돌풍> 역시 정치계를 배경으로 권력의 암투를 그려낼 예정이다.

<돌풍>은 부패한 재벌과 결탁한 대통령과 권력을 청산하고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악이 되길 자처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와 그에 맞서 권력을 쥐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의 이야기를 다룬다. 설경구가 맡은 박동호 역은 대통령 서거 이후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4주 안에 대한민국의 권력을 잡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며 묵직한 카리스마로 정치계에 돌풍을 불러오는 인물이다. 설경구는 “(박동호는) 신념을 행동에 옮기는 저돌적인 모습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전략가의 모습까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언급하였다. 그가 드라마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함께 호흡을 맞춘 김희애 덕분이라고.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드라마 현장이 익숙하지 않아서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김희애를 믿고 하겠다고 말했다”, “박경수 작가와 김용환 감독도 만났는데 이때 확신이 섰다”라며 동료 배우인 김희애와 작가 및 감독에 대한 신뢰를 내비쳤다. 설경구의 30년 만의 도전인 <돌풍>은 오는 6월 28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20년 만에 드라마 출연
강동원 <북극성>
다가올 25년 기대작들 속에 드라마 팬들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은 작품이 있다. 바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시리즈 <북극성>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강동원과 전지현이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기 때문. 특히 강동원은 2004년 방영한 SBS 드라마 <매직> 이후 20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또한 그는 프로듀서로도 제작에 참여하며 연기뿐만이 아닌 새로운 영역에 발돋움을 할 예정이다.

<북극성>은 외교관이자 전 주미대사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 온 문주(전지현)가 국적 불명의 특수요원 산호(강동원)를 만나 암살 사건의 배후에 남북을 둘러싼 정치적 공작이 있음을 알게 되고, 숨겨진 진실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다. 강동원은 국제 용병 중 최고의 에이스 출신으로 국적과 과거 모두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한 인물 산호 역을 맡았다. 극본은 영화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박찬욱의 각본 파트너이자 드라마 <작은 아씨들>로 섬세한 각본을 선보인 정서경 작가가 맡았다. 여기에 드라마 <작은 아씨들>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최근 <눈물의 여왕>을 연출하며 tvN의 시청률을 경신한 김희원 PD가 메가폰을 잡는다. 뿐만 아니라 무술감독에서 감독으로 데뷔해 <범죄도시4>로 주목받고 있는 허명행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아 <북극성>만의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을 완성시킬 전망이다.


18년 만에 드라마 복귀
김윤석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타짜> 시리즈, <추격자>, <도둑들>, <1987> 등 굵직굵직한 흥행작에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충무로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윤석이 스크린이 아닌 드라마로 복귀한다. 2006년 MBC 드라마 <있을 때 잘해> 이후 무려 18년 만이다. 복귀작은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어느 여름, 펜션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여자 유성아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펜션 주인 전영하가 자신의 소중한 삶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윤석은 펜션 주인 전영하로 분할 예정이다.

펜션에 집착하며 고요하던 영하의 삶을 뒤흔드는 유성아 역엔 넷플릭스의 딸 고민시가,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들며 해결하는 강력반 에이스 출신의 파출소장 윤보민 역엔 이정은이 출연한다. 윤계상은 2000년대 초 가족의 소중한 터전이었던 모텔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을 일게 된 모텔 주인 구상준 역을 맡았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미스티>로 인간관계의 뒤틀림과 균열,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탁월하게 선보인 모완일 감독이 연출한다. 작년 촬영을 마치고 오는 3분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