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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없던 게임이 일궈낸 걸출한 성과, 〈아케인〉

씨네플레이

며칠 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의 두 번째 시즌 예고편이 드디어 공개됐다. 2021년에 시즌 2 제작을 확정 짓고 무려 3년만에 선보이게 된 시즌 2다. 정식 방영은 11월로 예정되어 있어 아직 5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지만, 시즌 1이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기 때문인지 <아케인>의 두 번째 시즌도 화제가 되는 중이다.

 

​월간 이용자가 무려 1억 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소재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초반부터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이슈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점유율이 높은 게임이기 때문.

그런데 재밌는 건 이 게임, 원래는 이렇다 할 만하게 심도 있는 스토리 모드도 없고 설정과 세계관도 좀 왔다갔다하곤 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4년 전부터 3분 내외의 애니메이션을 공개하는 등 설정 및 세계관에 대한 작업을 하긴 했으나 본격적인 콘텐츠로 나온 건 <아케인>이 처음이었다. 말하자면 원작 게임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다기보다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설명된 적이 없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논리적 재구성을 거쳐 재가공했다는 쪽에 가깝다. 게임 IP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치고는 제법 특이한 출발점이다. 특정 스토리를 가지고 영상화하면서 원작과 같다/다르다 등으로 반응이 엇갈리는 여타 작품에 비하면 그 가능성도 풍부한 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화면: 캐릭터도 별로 크지 않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화면: 캐릭터도 별로 크지 않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5:5 멀티 플레이 대전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다. 유저는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해 맵에 진입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레벨과 스킬을 올리면서 캐릭터를 성장시켜 최종적으로 상대편 기지를 파괴하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다. (이런 장르는 AOS, 또는 MOBA라고 한다. 올드게이머라면 「워크래프트 3」의 '카오스'가 가장 익숙할지도.)

플레이 중 스토리의 특성이나 캐릭터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지점은, 조작할 때 나오는 음성이나 특정 캐릭터와의 상호작용 정도다. <아케인>의 주인공인 바이와 징크스 역시 게임에서 만나면 티격태격하는 대사("나랑 싸워보시겠다? 주먹만 커다래가지구!")를 날리며 보통 사이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솔직히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이렇게나 악연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그나마 설정과 대사를 파는 유저들이 떡밥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대략적인 그림만 그려졌지, 게임만 해서는 사실 알기 어려웠다.

〈아케인〉
〈아케인〉

소규모 개발사였던 라이엇 게임즈는 장기적으로 IP화하는 작업을 게임 출시 초반부터 고려하지 못했고, 탄탄한 세계관을 마련하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구성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게임 특성상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추가했고, 그때마다 캐릭터에 설정을 덧입혔으나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정 오류는 갈수록 커졌다.

그럴 때마다 세계관을 재정립하고, 설정 오류가 있는 캐릭터를 수정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해 왔지만 기존 캐릭터의 지나친 수정 때문에 부정 동향도 컸다. 결국 2014년 라이엇은 '리그 오브 레전드 유니버스'를 설립하고 마블 코믹스의 도움을 받아, 세계관 전체를 정석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유니버스의 일환인 게임 ‘누누의 노래’
리그 오브 레전드 유니버스의 일환인 게임 ‘누누의 노래’

리그 오브 레전드 유니버스는 다소 무분별하게 난립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했고, 이 새로운 세계관을 기반으로 라이엇게임즈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단편 소설부터 코믹스, 시네마틱 영상이나 단편 애니메이션 등을 선보이며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초반에는 짤막한 콘텐츠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점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고, 그 결과물이 아마도 <아케인>이었다.

대부분의 게임 원작 콘텐츠들이 기존의 스토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더 고민하는 반면, 아마도 <아케인>은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가 더 관건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원작은 이랬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것들이 없었고, 그래서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아케인〉
〈아케인〉

 

<아케인>은 솔직히 말해,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는 편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유저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캐릭터들의 과거를 다루고 있으므로, 이 순진무구했던 소녀가 왜 이런 싸이코가 되었는가보다는 소녀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서서히 미쳐가는 비극을 바라보는 편이 더 아스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징크스라는 캐릭터가 처음 게임에 추가되었을 때부터, 유독 바이에게 집착하는 듯한 대사를 보면서 이들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은 꽤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가 이토록 깊고 진중하며 상처로 얼룩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바이와 징크스의 이야기는 애잔하면서도 강렬한 비극으로서 어떤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여기에 이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과 저의에 따라 움직이며, 그 과정이 이리저리 맞물려 사건을 만들어내는 플롯 구조는 어지간한 영화나 소설에서도 보기 어려운 잘 쓰여진 군상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각자의 목표는 맞닿아 부딪히기도 하고, 합쳐지고 다시 갈라지기도 하면서 사건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꽤나 세련되게 묘사한다. '게임 원작 영상'이란 특징에 따라붙는 그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케인>은 2021년 11월에 공개한 후 평단의 극찬과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아케인〉
〈아케인〉

 

​따지고 보면 대단히 독특한 이야기도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유려한 비주얼(3D 모델링에 2D 아트를 덧붙이는 방식의)과 센스 있는 연출이라는 기반 위에서 자유롭게 날뛰는 「리그 오브 레전드」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뭐, 관객들이 원하는 건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걸 다시금 증명한 작품이 아닐까. 어쨌거나 3년만에 귀환을 알린 <아케인>의 복귀를 축하하며, 시즌 1만큼 시즌 2도 아찔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는 작품이 되기를. 제작 착수부터 공개까지 6년이나 걸렸던 시즌 1의 시간이 있었기에 시즌 2는 비교적 빨리 돌아온다(3년도 긴 시간이지만). 서사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아케인> 시즌 2는 11월 공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