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 볼 게 없다? <핸섬가이즈>에 걸어보는 기대
당면한 한국 영화의 위기를 진단할 때면 으레 치솟은 영화 티켓값과 OTT 영향력의 확대가 원흉으로 지목된다. 스크린 독과점, 정부의 문화예술분야 지원 축소는 또 다른 불쏘시개들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불씨는 무엇이었나. 필자는 '새로움의 부재'라 생각한다. 몇몇 한국 영화들이 '그동안 이런 영화는 없었다!'라 자찬하며 스타 배우와 익숙한 소재를 동원한 흥행 법칙을 게으르게 반복하는 동안, 관객은 탄탄한 애니메이션과 스펙터클한 효과가 극대화되는 퀄러티 높은 외화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핸섬가이즈> 포스터에서 '그동안 이런 코미디는 없었다!'라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 국내 텐트폴 영화의 (좋지 않은) 추억이 떠올라 입이 썼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먹을 꼭 쥔 채 영화관에 입장했고 의심은 첫 장면에서 거둬졌다. "이 영화, 손익분기점 넘기겠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옆에 앉은 친구에게 속삭였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는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한 소위 '중박' 작품이 사라진 올해 한국 영화 시장에 의외의 장타를 날릴 <핸섬가이즈>가 상영 중이다. 벌써 입소문을 타고 85만여 명의(24년 7월 6일 기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오늘은 여전히 관람을 망설이는 당신을 위해 영화의 관전 포인트들을 짚어봤다.
코미디, 오컬트, 고어, 혹은 뮤지컬?

<핸섬가이즈>는 엘리 크레이그 감독의 <터커 & 데일 vs 이블>을 원작으로 오컬트, 슬랩스틱 등 다양한 오락적 요소를 가미하고 국내에 맞게 수위를 조절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장르를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나. 코미디, 오컬트, 고어, 그것도 아니면 뮤지컬? 편견과 오해를 발판 삼아 전개되는 이야기에 필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도 언뜻 보았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르와 소재가 꽤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데에는 자연스레 넘어가는 컷 연출과 그 흐름을 빼곡히 따라가는 서사가 극을 단단히 지탱한 덕택이다.
이야기는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로부터 시작된다. 험악한 인상과 달리 순수 결정체인 이 둘의 꿈은 소박하다. 둘만의 집에서 한적한 전원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험상궂은 얼굴과 우락부락한 표정에 이사 온 첫날부터 동네 경찰 최 소장(박지환)의 특별 감시 대상으로 떠오르고, 물에 빠질 뻔한 미나(공승연)를 구해주려다 강렬한 인상 때문에 납치범으로 오해받게 되며 유럽풍 드림하우스에서의 새 출발이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새롭게 꾸민 집 지하실에 봉인되어 있던 악령이 깨어나 둘을 찾아오는 이들이 우연의 우연을 거듭한 어이없는 죽음을 맞으며 이들을 향한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자존심 상하는데 웃게 된다" 배우들의 열연!

황당무계한 상황들에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에 자존심이 상하다가도, 나를 웃게 한 배우들의 뻔뻔한 연기에 이내 경탄하게 된다. 영화의 중심에는 배우 이성민과 이희준의 완벽한 열연과 앙상블이 있다. 연극 무대 시절부터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 <마약왕>(2018) 등에 함께 참여한 두 사람이 영화 <핸섬가이즈>로 재회하며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보지 못했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냈다. 이성민은 구릿빛 피부 사이 뽀얀 뱃살을 내놓고,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며 사랑스러운 츤데레 재필 역을 소화했다. 성난 근육과 달리 등에는 진한 부항 자국을 달고 환희의 댄스를 추는 순수청년 상구 역의 이희준은 한 인터뷰에서 "제 외모가 잘 망가지지 않아 어려웠다"라며 "분장, 의상, 스태프의 도움으로 외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미나 역의 공승연의 새로운 모습도 시선을 붙든다. 재필과 상구의 비주얼에 기겁하며 걸쭉한 욕을 쏟아내던 미나는 전에 본 적 없는 배우 공승연의 얼굴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미나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그녀야말로 진정한 주연일지 모른다. 남동협 감독은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여자가 마지막에 영웅이 되는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미나도 상구와 재필처럼 사회적 편견을 딛고 있는 인물이다. 그 편견을 미나가 정면으로 응시하고 시원하게 한방 먹이는 중의적인 결말을 두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연기 구멍 없는 조연까지 갓벽!


주연을 맡은 이성민, 이희준, 공승연뿐만 아니다. 잠깐 등장하는 배우들까지, 연기 구멍 하나 없는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한다. 경찰의 꿈을 이룬 '범죄도시' 장이수(?), 최 소장(박지환)의 열연은 단연 돋보인다. <총알탄 사나이>(1988)를 오마주하여 원테이크로 찍은 최 소장의 재필과 상구의 드림하우스 급습 장면과, 악귀가 씌어 제멋대로 움직이는 좀비 댄스 무브가 잊히지 않아 필자는 영화관을 한 번 더 찾았다.
요한 신부 역의 우현도 빼놓을 수 없다. 악마에게 나가떨어진 요한 신부가 '아임 파인 땡큐 앤 유'를 간절히 외치는 모습과 '아임 어 보이, 유알 어 걸'을 반복하던 처절함에 많은 관객들은 꺽꺽 울어버렸다. 이뿐만 아니다. 소동 중 불타버린 자신의 바지를 대신해 최 소장의 바지를 주섬주섬 입던 남 순경(이규형)의 행동이 종국에 좀비 댄스 무브의 정수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떡밥 회수란 이런 것이지!',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악마를 가둔 베이커 신부(제이미 호란)와 악마에 빙의된 순옥(박경혜)의 맞대결, 그리고 한 발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원희(임원희)의 최후까지. 연기의 만신전에 오른 배우들이 티키타카의 향연을 펼치는 가운데 영화는 마지막 한 방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속, 멀쩡한 건 '봉구' 뿐?

이상한 인간들 사이, 멀쩡한 건 '봉구' 뿐이다. <핸섬가이즈> 속 웃기면서 귀여운 모든 순간에는 강아지 봉구가 등장하는데, 극중 봉구는 강아지 배우 '복순'이 연기했다. 섬세한 감성으로 반려견을 애지중지 키우는 상구와 봉구의 남다른 합은 상구 옷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봉구가 핥아 주는 장면에서, 둘이 함께 춤을 추다가 엉덩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에서 배가된다. 봉구와 호흡을 맞춘 이희준은 "동물과 촬영하는 게 쉽지 않은데 봉구는 영리하고 감독님 멘트도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라고 전했다. '봉구'.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영화의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