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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속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음악들

씨네플레이

독일 감독 빔 벤더스가 배우 야쿠쇼 코지와 일본에서 만든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개봉 5주 만에 9만 관객을 훌쩍 넘기며 순항 중이다. 도쿄 곳곳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자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이야기와 더불어 중요한 순간들에 사용돼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 속 10개 노래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

The Animals

1964

 

<퍼펙트 데이즈>에서 처음 등장하는 노래. 새벽녘 바깥에서 빗자루질 소리가 들리면 깨어나는 히라야마는 여느 때처럼 일정한 루틴과 함께 일과를 준비하고, 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길 우뚝 솟은 스카이트리 타워가 보이면 카세트테이프를 꽂는다. 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가 흐른다. 'Rising Sun Blue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미국 민요를 영국 밴드 애니멀스가 리메이크 한 노래다.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도 전 '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와 라이브 투어를 진행한 애니멀스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으로 공연 피날레를 장식했고, 얼마 후 하루 만에 녹음한 밴드의 데뷔 싱글로 영국은 물론 미국의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은 처음엔 구슬프게 시작해, 에릭 버든의 터져라 내지르는 보컬과 (편곡을 맡은) 앨런 프라이스의 작렬하는 키보드 연주와 맞물리면서 밴드 이름에 걸맞은 야성을 발산한다.

 


"Pale Blue Eyes"

The Velvet Underground

1969

 

루 리드의 'Perfect Day'가 영화 예고편에 사용된 만큼, 과연 <퍼펙트 데이즈>에서 어느 타이밍에 'Perfect Day'가 나오게 될지 기대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처음 들리는 루 리드의 목소리는 'Pale Blue Eyes'를 통해서다. 문을 잠그기 전엔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화장실에 낯설어 하는 흑인 여성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난 후 퇴근할 때 흐른다. 'Pale Blue Eyes'는 'Perfect Day'가 발표되기 3년 전인 1969년, 루 리드가 몸담았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세 번째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에 수록된 곡으로, (또 다른 중심 멤버 존 케일과 함께 만든) 밴드의 첫 두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와 <White Light/White Heat>에 비해 비교적 듣기 편한 사랑 노래들로 채워진 앨범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곡이다. 한국 대중에겐 영화 <접속>(1997)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2009~10)에 사용돼 친숙할 터. 하몬드 오르간과 일렉트릭 기타가 양쪽에서 귀를 간질이고 탬버린이 무심하게 울리는 가운데 노래를 만든 루 리드가 나른하게 사랑을 말하는 노래가 퇴근길에 히라야마가 본 도쿄 풍경들 위에 놓인다.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Otis Redding

1968

 

히라야마가 록만 듣는 건 아니다. 두 번째 날의 아침, 어제처럼 자판기 캔커피를 마신 그는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의 명곡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를 들으며 출근한다. 1967년 여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의 퍼포먼스로 주가를 올리던 오티스 레딩은 바 케이스와의 투어 중 팬들을 피해 공연 기획자 소유의 캘리포니아 소살리토 수상가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제목처럼 부둣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고 틈틈이 냅킨과 호텔 메모지에 가사를 썼다. 그리고 12월 7일 녹음을 마쳤다. 하지만 그는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3일 뒤 클리브랜드에서 매디슨으로 이동하는 비행기가 추락해 오티스 레딩은 2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Redondo Beach"

Patti Smith

1975

둘째 날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히라야마와 함께 일하는 후배 타카시(에모토 토키오)가 좋아하는 아야(야마다 아오이)다. 타카시의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히라야마의 차에 세 사람이 타게 되고, 차 안의 카세트를 뒤적거리던 아야는 패티 스미스의 데뷔 앨범 <Horses>를 꺼내들고, 2번 트랙 'Redondo Beach'가 흘러나온다. 패티 스미스가 <Horses>를 내기 3년 전에 발표한 시집 『코닥』에 'Radando Beach'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시를 바탕으로 한 곡이다. 화자와 다툰 젊은 여자가 바다에서 자살하는 내용을 담은 'Redondo Beach'는 흔히 레즈비언에 관한 노래로 해석돼 왔고, 패티 스미스 역시 라이브 중에 "레돈도 비치는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을 사랑하는 해변"이라는 코멘트를 얹기도 했다. 패티 스미스와 함께 밴드에서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한 레니 카이와 리처드 솔이 함께 쓴 멜로디는 레게 리듬이 물씬한 편곡으로 완성됐다. 영화에서도 그나마 유머러스한 대목에 쓰여 곧잘 어울린다.

 


"(Walkin' Thru the) Sleepy City"

The Rolling Stones

1965

 

타카시는 히라야마가 가진 카세트테이프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자고 졸라 시모키타자와의 레코드샵에 간다. 루 리드의 앨범은 1만 2천 엔이 넘는다는 말을 듣고는 타카시는 이걸 팔아서 자기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조르지만, 히라야마는 결국 카세트는 팔지 않고 돈만 빌려준다. 롤링 스톤즈의 '(Walkin' Thru the) Sleepy City'는 한바탕 소동 같은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는 길에 듣는 대목에 쓰였다. 어둑어둑한 길을 달리고 있어도 믹 재거의 보컬 덕분에 빠르게 지나는 도로가 그리 쓸쓸하게만 보이진 않는다. 기름이 떨어지는 바람에 노래는 멈출 수밖에 없지만. '(Walkin' Thru the) Sleepy City'는 본래 마이티 어벤저스(The Mighty Avengers)라는 영국 밴드가 처음 발표한 곡이다. 롤링 스톤즈의 멤버였던 이가 제작에 관여해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 콤비의 곡을 몇 개 받았는데, 이 곡도 그중 하나였다. 1964년부터 1970년까지 롤링 스톤즈의 미공개 트랙을 모은 컴필레이션 <Metamorphosis>가 1975년 발표되면서 롤링 스톤즈의 버전으로 들을 수 있게 됐다.

 


"青い魚"

金延幸子

1972

셋째 날은 출퇴근길이 생략됐고 음악도 없는 대신, 넷째 날의 출근길 음악은 일본 노래다. 일본 최초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라는 수식이 붙는 카네노부 사치코(金延幸子)의 '青い魚'(푸른 물고기)다. 이전에 나온 출근길 음악이 일정 이상 에너지가 있는 트랙이어서 그런지, 느릿느릿 침잠하는 듯한 '青い魚'와 함께 하는 출근길이 유독 처져 보인다. 1972년 가을에 나온 카네노부 사치코의 데뷔 앨범 <み空>(하늘)는 일본어 록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밴드 핫피엔도의 베이시스트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와 함께 만들었다. 카네노부 사치코가 앨범 내 모든 트랙을 작곡하고 대부분 편곡까지 맡은 가운데, 베이스는 물론 기타에 건반까지 연주한 호소노 하루오미가 편곡을 맡은 세 곡. 그중 하나가 '青い魚'다. 구슬피 들리는 보컬 주변을 떠다니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핫피엔도의 기타리스트 스즈키 시게루가 맡았다. 작년 말 일본에서는 <퍼펙트 데이즈> 개봉을 기념해 '青い魚'의 7인치 싱글이 발매되기도 했다.

 


"Perfect Day"

Lou Reed

1972

<퍼펙트 데이즈>에 쓰인 노래 대다수가 히라야마의 출퇴근길을 꾸며줬다면, (아마도 영화 제목에 영향을 미친 게 분명해 보이는) 'Perfect Day'는 예외다. 넷째 날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히라야마는 방 안에서 이 노래를 틀어 놓고 석양을 맞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영화에서 비중 있게 덧붙는 코모레비 쇼트로 이어진다. 'Perfect Day'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해산한 루 리드가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앨범 <Transformer>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이 앨범은 평소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향한 경외심이 컸던 데이비드 보위와 그의 밴드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에서 기타를 연주한 믹 론슨이 함께 프로듀싱을 맡았다. 루 리드가 당시 약혼녀였고 훗날 아내가 되는 베티 크론스타드와 센트럴 파크에서 하루를 보낸 후 만든 'Perfect Day'는 믹 론슨이 담당한 현악 편곡과 피아노 연주에 힘입어 현재까지도 가장 잘 알려진 루 리드의 노래로 두루두루 손꼽히고 있다. 영화 <트레인스포팅>(1996)에 쓰이면서 이후 세대들에게도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Sunny Afternoon"

The Kinks

1966

영화는 히라야마의 나날을 텀 없이 따라간다. 쉬는 날엔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빗자루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새벽의 기운이 완전히 가신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난 그는 자전거를 끌고 나가 참배를 올리고, 코인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주중에 카메라로 찍었던 필름의 현상을 맡기면서 찾아온다. 그리고 방을 청소하고, 카세트를 돌려놓고, 현상한 사진들을 선별하는 걸 보여주면서 킹크스의 'Sunny Afternoon'이 삽입된다. 빔 벤더스는 첫 장편 <도시의 여름>(1970)을 킹크스에게 헌정했고, <미국인 친구>(1977)에선 킹크스의 'Too Much on My Mind'와 'Nothin' in the World Can Stop Me Worryin' 'Bout That Girl'을 사용한 바 있다. 히라야마가 '맑은 오후'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달리, 레이 데이비스는 먼지투성이의 귀족을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황폐한 심정을 담아 'Sunny Afternoon'을 만들었다고 한다.

 


"朝日樓(朝日のあたる家)"

浅川マキ

1972

히라야마의 또 다른 주말 루트는 문고판 책을 사서 평소 가는 곳과 다른 식당에 들르는 것이다. 히라야마에게 유독 사근사근한 주인은 대뜸 노래를 불러 달라는 다른 손님이 기타를 연주하자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익숙한 멜로디를 읊조린다. 영화 초반에 히라야마가 처음 들었던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다. 일본에선 엔카 가수로 더 잘 알려진 이시카와 사유리가 연기하는 마마는 구성진 목소리로 그 미국 민요를 일본어로 번안한 '朝日樓'를 부른다. 마마가 부른 노랫말은 일본의 재즈/블루스 싱어 아사카와 마키가 번안한 것이다. 아사카와 마키는 1971년 가을에 나온 두 번째 앨범에 'The House of the Rising Sun'를 커버한 '朝日のあたる家'를 실었고, 1971년 마지막 날 신주쿠 키노쿠니야 홀에서 진행한 공연에서도 이 노래를 선보여 이듬해 음반으로도 발매됐다. 흔히 아사카와 마키의 일본어 번안은 애니멀스의 박력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쓸쓸하디 쓸쓸한 라이브 버전이 더 잘 알려져 있고, <퍼펙트 데이즈> 엔딩 크레딧에도 출처를 1972년으로 표기하고 있다.

 


"Brown Eyed Girl"

Van Morrison

1967

그리고 어느 날 밤 불쑥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가 불쑥 히라야마를 찾아온다. 조카에게 집의 공간을 내어주고 다소 불편하게 밤을 보내고 난 아침, 히라야마는 니코와 함께 일터로 간다. 캔커피를 사들고 차 안에 들어오자 니코는 이미 밴 모리슨의 베스트앨범을 만지작대고 있다. 오디오에 카세트를 넣는 것조차 몰라 히라야마가 가르쳐주고, 차 안엔 'Brown Eyed Girl'가 울려 퍼진다. 블루스록 밴드 뎀(Them)의 프론트맨이자 송라이터였던 밴 모리슨은 1966년 팀을 탈퇴하고 이듬해 첫 싱글 'Brown Eyed Girl'을 발표하며 솔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 곡은 현재까지도 모리슨의 대표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칼립소 스타일의 이국적인 리듬에 밴 모리슨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와 어우러진 트랙이 오랜만에 만난 조카와 함께 하는 출근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Feeling Good"

Nina Simone

1965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악은 록이 아닌 재즈,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다. 시몬의 최고 앨범으로 손꼽히는 앨범 <I Put a Spell on You>의 한가운데에 배치된 'Feeling Good'은 영국 뮤지컬 『그리스페인트의 외침: 군중의 냄새』(1964)를 위해 만들어진 곡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초연되고 이듬해인 1965년 니나 시몬이 다시 불러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노래는 존 콜트레인, 조지 마이클, 뮤즈, 로린 힐, 아비치, 마이클 부블레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아티스트들로부터 커버 돼 왔고, 2021년엔 존 레전드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과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의 취임식에서 이 노래를 부른 바 있다. 심장을 때리는 니나 시몬의 목소리와 <I Put a Spell on You> 프로듀서 할 무니가 담당한 두툼하고 기운찬 스트링/브라스 사운드의 조합은 얼마 간의 시간을 보내며 쌓인 히라야마의 복잡한 감정을 한껏 고양시킨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