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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싫증을 잘 내는 내가 45년간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 〈퍼펙트 데이즈〉야쿠쇼 코지

이진주기자
〈퍼펙트 데이즈〉중 야쿠쇼 코지(사진=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중 야쿠쇼 코지(사진= ㈜티캐스트)

‘장인(匠人)’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일본 영화계의 얼굴 야쿠쇼 코지는 매 작품, 서로 다른 인간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빚어낸다. 춤에 빠진 중년의 샐러리맨(<쉘 위 댄스>), 집착적으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형사(<큐어>)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수감된 살인 용의자(<세 번째 살인>) 등 약 45년간 꾸준히 친숙하고도 낯선 존재로 관객들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2023년 야쿠쇼 코지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제76회 칸영화제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퍼펙트 데이즈>는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을 담는다. 영화는 매일 같은 방식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충실히 일을 하는 히라야마를 통해 새삼스러운 삶의 행복에 대해 조명한다.

지난해 칸을 사로잡은 이 영화가 3일 한국 극장가를 찾아온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야쿠쇼 코지는 ‘한국 관객들이 <퍼펙트 데이즈>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부터 45년 차 배우의 솔직한 심경까지 야쿠쇼 코지와 나눈 이야기를 공유한다.

〈퍼펙트 데이즈〉중 야쿠쇼 코지(사진=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중 야쿠쇼 코지(사진= ㈜티캐스트)

지난해 <퍼펙트 데이즈>를 통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수상에 대한 소감과 이 영화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느낌은 어떤가요?

감사합니다. 상을 받고 지난 일 년 동안 <퍼펙트 데이즈>를 선보이려 많은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영화 팬들이 이 영화를 보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배우 인생을 이어 나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봉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한국 관객분들의 반응이 매우 궁금합니다. 한국은 아시아의 영화 강국이니까요. 두근두근합니다.

 

칸영화제 수상 이후 일 년이 지났습니다. 혹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딱히 없습니다. 해외 러브콜이 그리 많지도 않고요. 한국 영화에 불러주세요.

빔 벤더스 감독은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말에 냉큼 당신을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세계적인 거장 빔 벤더스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빔 벤더스 감독은 인간적으로도 품이 큰 분이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퍼펙트 데이즈>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각본을 보고는 ‘수수께끼가 많은 각본이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처음 각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아름다운 말이 자아내는 정경이 담겨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야쿠쇼 코지가 주연과 총괄 프로듀서를 겸했고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 감독 빔 벤더스가 연출을, 그와 함께 타카사키 타쿠마가 각본을 맡았다.(주)티캐스트에 의하면 빔 벤더스와 타카사키 타쿠마가 쓴 각본 <퍼펙트 데이즈>는 ‘보는 이에겐 똑같아 보이는 매일이지만 히라야마에겐 그렇지 않다. 히라야마에겐 하루하루, 어떤 행동도 마치 처음 또는 마지막인 듯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내는 능력이 있다.’로 시작한다. 매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각본가 타카사키 타쿠마의 말처럼 시부야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금욕 수행을 하는 승려’와 같아 보인다.

 

감독 빔 벤더스는 (주)티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야쿠쇼 코지에 대해 ‘배우라는 정의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다른 배우들도 히라야마를 연기할 수는 있지만 야쿠쇼 코지는 진정으로 히라야마가 되었다"라며 극찬했다. 그리고 빔 벤더스 역시 히라야마를 실존하는 인물처럼 다루었다. 제작자 야나이 코지는 빔 벤더스는 촬영을 할 때마다 “히라야마 씨를 만나러 가봅시다”라고 말하며 영화를 마치 실제 이야기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탄생한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라는 인물을 우리의 앞에서 살아있도록 한다.

〈퍼펙트 데이즈〉(사진=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사진=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출근길에도, 일하는 중에도 혼자 웃고,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직장동료의 타박에도 꼼꼼하게 청소를 합니다. 히라야마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 히라야마는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뿐만 아니라 햇살이나 코모레비(木漏れ日/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에게도.

 

히라야마는 참 과묵합니다. 동료 다카시가 말을 해도, 관광객이 질문을 해도 말로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타인과의 교류를 막연히 거부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히라야마는 왜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 걸까요?

히라야마는 독서가로 많은 말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다카시의 실없는 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겠지만,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 섣불리 말을 해서 대화가 발전되는 것을 성가셔 하는지도 모릅니다. 다카시의 잡담을 마치 라디오처럼 그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히라야마는 한결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빗자루를 쓰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일을 가기 전 집 앞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십니다. 매우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루틴인데요. 당신에게도 그런 루틴이 있나요?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이시여, 잘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또 제가 맡은 캐릭터에게 “우리 좀 더 친해집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연기를 한 지 45년이나 되었어요. 하나의 일을 40년 이상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벌써 45년이나 되었나요? 싫증을 잘 내는 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배우’라는 일은 매번 실패와 후회 등을 반복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문득 ‘그래. 다음은 잘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죠. 그래서 45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날이 ‘퍼펙트 데이’인지 궁금합니다.

배우로 살아가는 한 완벽한 하루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습니다. 배우를 은퇴하고 ‘자, 오늘은 무얼 하지?’라고 그날 할 수 있는 일을 정하는 때가 오면 그날에 만족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바둥바둥 몸부림치는 삶을 살아갈 거라 생각합니다.

 

다작을 하는 배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촬영을 마친 영화와 앞으로 촬영에 들어갈 작품은 몇 개 있습니다. 때가 되면 소개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