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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 〈행복의 나라〉 최초 시사 리뷰 및 기자간담회 중계

주성철편집장
〈행복의 나라〉 

“법정은 옳은 놈과 그른 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곳”이라고 믿는 한 세속적 변호사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참군인’의 인품에 매료된다. 8월 14일 개봉을 앞둔 <행복의 나라>는 10.26과 12.12 사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을 다룬다. 바로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이 벌어지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법정 개싸움의 일인자라 불리는 정인후(조정석)는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다. 정인후는 군인 신분으로 인해 단 한 번의 선고로 형이 확정되는 박태주가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지만,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재판 과정에 “이럴 거면 재판은 왜 하는 겁니까!”라며 분노를 터뜨린다.

시간을 거슬러 사건 발발 30분 전, 박태주는 정보부장으로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경호원들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의 행동이 ‘내란의 사전 공모인지, 위압에 의한 명령 복종인지’가 법정의 쟁점으로 떠오른다. 정인후는 박태주가 빠져나갈 수 있는 증언을 제안하지만, 박태주는 “나 하나 살기 위해 부장님을 팔아넘길 수 없다”며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자세로 일관한다. 한편, 10.26을 계기로 위험한 야욕을 품은 합수부장 전상두(유재명)는 자신만만한 정인후를 조롱하듯 재판을 감청하며, 재판부에 실시간으로 쪽지를 건네 사실상 재판을 좌지우지한다. 정인후는 그런 그를 지목하고 법정에서 소동을 피우며 문제 삼아보지만, 이미 재판부는 권력의 손아귀에 넘어간 상태다.

 


<행복의 나라>는 1,232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정유정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7년의 밤>(2018) 등을 만든 추창민 감독의 신작이다. 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라는 것 외에도 유재명 배우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기한 것도 화제가 됐다. 아무래도 같은 시기를 다룬 영화이자, 같은 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2023)과의 비교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언론시사회장에서는 <서울의 봄>에 등장한 실존 인물을 <행복의 나라>에서 다른 배우가 연기하거나, 두 영화 모두 출연한 배우가 각각 두 영화에서 서로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 호기심 어린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가령 <행복의 나라>에서 이원종 배우는 <서울의 봄>에서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참모총장을 연기했고, <서울의 봄>에서 수경사를 도청하는 문일평 대령을 연기한 박훈 배우는 <행복의 나라>에서는 진영(?)을 바꿔 참모총장을 보좌하는 역할로 출연했다. 여기에 변호인단을 구성한 우현, 전배수, 송영규, 이현균 배우, 박태주의 아내를 연기한 강말금 배우도 눈길을 끈다.

 

주인공의 모델이 된 실제 박흥주 대령(왼쪽)과 자료 사진

<행복의 나라>의 박태주 캐릭터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은 1979년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으로 재직 중,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을 암살한 10.26 사건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육사 18기 졸업 후 뛰어난 실력으로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령 진급자로 선발됐고, 대령 진급 후에는 김재규의 부름을 받고 중앙정보부장 비서실 수행비서관이 됐다. 그처럼 당대 최고 엘리트 장교였던 그는 막대한 부와 권력을 탐할 수 있음에도, 동료 군인들보다 청렴했고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산동네의 허름한 반지하 판잣집에서 살았던 ‘참군인’이었다. 그러다 1979년 10. 26 사건 때 김재규의 지시로 안가 경호원 사살에 가담했고, 박정희와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한 김재규가 보안사에 체포되면서 함께 구속됐다. 김재규는 박흥주 등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선처를 바랐고,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초등학생이었던 두 딸이 기자들 앞에서 “박흥주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펼치고 울부짖었지만, 공범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앞서 다른 영화들을 보자면, <그때 그 사람들>(2005)에서는 김응수 배우가 ‘김부장(백윤식)의 수행비서’라는 역할로 그를 연기했고,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는 박성근 배우가 연기한 인물 강창수가 박흥주를 모델로 한 배역이다.

 

<행복의 나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간적 배경 안으로, 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다. 역사적 소재를 다룬 영화이기도 하면서 장르적으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법정영화로서의 성격도 띤다. 추창민 감독은 그와 관련해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이나 <뉘른베르크의 재판>(1961) 같은 작품들을 레퍼런스로 삼았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불어 <행복의 나라>를 유작으로 남긴 고 이선균 배우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영화는 “우리는 이선균과 함께 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8월 6일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는 추창민 감독과 배우 조정석, 유재명이 참석해 실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고 이선균 배우에 대한 추억을 들려줬다. 현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기자간담회 현장

<서울의 봄>과 <남산의 부장들> 사이

 

추창민

<서울의 봄>이 개봉했을 때 이미 <행복의 나라> 편집이 끝난 상태였다. <서울의 봄>도 그렇겠지만 시대상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필름을 쓸 수는 없지만 ‘필름룩’을 내고자 애썼다. 그리고 <서울의 봄>와 <행복의 나라>를 비교하자면, <행복의 나라>는 조금 더 작은 이야기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끌렸던 것도 그런 이유다. 큰 사건보다는 그 안의 작은 이야기와 인물에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선택했고, 실존 인물인 고 박흥주 대령의 유족과도 교감하고 싶었지만, 최종적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조정석

실화를 다룬 <행복의 나라>에서 내가 연기한 변호인 정인후는 가공의 인물이다. 당시 재판 기록에 남겨진 여러 인물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중점을 둔 건 그런 정인후라는 인물을 통해서 박태주를 바라보고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수 있게끔 하는 거였다. 관객이 바로 나의 자리에 서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배우도 사람인지라 연기하다 보면 감정에 북받치는 경우가 있다. (웃음) 그걸 조절하는 게 중요했다.

 

유재명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전상두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의 봄>이나 <남산의 부장들> 등 지금껏 이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도 많고, 무엇보다 <행복의 나라>에서 중요했던 것은 박태주와 정인후가 끌고 가는 서사가 중심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거였다. (전상두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지배하고 믿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렇게 둘의 이야기를 해치지 않고 전상두를 절제되게 표현할 수 있게끔 추창민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 그를 더 강력하고 억압적인 인물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그런데 배우로서의 욕심을 줄이고 이 영화 속의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의 광기, 가만히 머금는 조소, 고개는 끄덕이지만 부정하는 뉘앙스 등 섬세한 디테일을 찾으려고 애썼다. 어쩌면 배우로서 가장 큰 딜레마일 수도 있는데, 배우 유재명과 실존인물 전상두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을 했고,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무척 궁금하다.

 

이선균 배우에 대한 기억

 

추창민

10.26과 12.12 사이,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 눈에 딱 들어온 인물이 바로 박흥주 대령이었다. 자료가 많지 않기에 영화적 각색이 많이 들어갔지만, 사람들을 만나 조사하면 할수록 좌우를 떠나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진정한 ‘참군인’이었다.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장에서 그는 내내 그 인물로 살았다. 영화를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된 존재였다.

 

조정석

<행복의 나라>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선균 형과 함께 한다는 거였다. 내게는 언제나 그 누구보다 따뜻했던 사람이라는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형 덕분에 연기하는 캐릭터가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늘 행복했다. 주변에서 촬영 현장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촬영 현장 자체가 바로 ‘행복의 나라’야, 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다 선균 형 덕분이었다.

 

유재명

오늘 영화 보는 내내 영화 그 자체로 오롯이 볼 수 없는 드문 경험을 했다. 보는 내내 그와 겹치고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박태주가 정인후를 보면서 “자네한테 진 빚이 많아”, “당신은 참 좋은 변호사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가 이선균이라는 배우에게 정말 진 빚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선균아 넌 참 좋은 배우였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