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12월 12일 권력 찬탈의 시도. 대한민국을 흔든 그 야만의 밤 이후 진짜 ‘봄’은 오지 않았고, 독재로 인한 혹한기는 무고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대한민국 민주화의 혹한기를 <남산의 부장들>(2020)은 그 서막의 뒷이야기로 풀어냈고, <서울의 봄>(2023)은 그 밤에 맞서는 전면전으로 밀고 나갔다.
<행복의 나라>는 10.26과 12.12라는 굵직한 현대사의 사건, 그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던 ‘행복’의 시기를 관통하는 ‘불행의 나라’를 기술하는 영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진정한 시대의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던 추창민 감독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로 걸어 들어와, 그 시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정신들을 파헤쳐 본다. 영화는 10월 26일,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6일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실존인물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상관의 지시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군인 박태주(이선균)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분투를 따라간다.
추창민 감독은 지난 시대를 향한 감정적인 울분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과 차별화된 추창민 감독의 드라마를 완성해 낸다. 관객을 대신해 마치 그 시대로 걸어 들어 간 듯, 폭력의 시대에 희생된 이들을 대신해 욕해주고 웃고 울어주는 소시민 영웅 정인후의 울분과 일갈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비록 대책 없이 순수한 상상이지만 <행복의 나라>는 이 판타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밀고 나감으로써 “제 욕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게 가능했던 야만의 시대, 그 대척점에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했던 이들이 존재했다는 걸 일깨워 준다. 추창민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7년의 밤>(2018) 이후 오랜만의 연출작인데요. 연출 제안을 받은 작품인데, 어떤 점에서 끌렸나요.
벌써 오래 전인데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를 끝내고 같이 한 배급사 NEW에서 제안했어요. 그런데 그땐 이게 맞나 싶었어요. 사람이 어떤 날은 짜장면이 먹고 싶고 어떤 날은 한식이 먹고 싶잖아요. 그땐 그 음식이 당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7년의 밤> 끝나고 다음 작품 고민을 하는데 이 작품이 생각나더라고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먹고 싶었던 것 같아요. 충무로에서 시나리오가 좋아 유명한 작품이었는데, 그 사이에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었더라고요. 왜 그럴까. 내가 한번 고쳐 보겠다. 해볼 만하다 생각한 거죠. 유효기간이 지난 프로젝트라 주변에서는 말렸는데 그러니까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한국 현대사의 한 지점을 통과하는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감독이기 이전, 그 시기를 청년으로 맞닥뜨렸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나누고 싶은 관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우리 부모님은 일제강점기를 겪고 전쟁을 겪은 분이라,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는 저에게 옛날이야기죠. 이 영화에서 다루는 시대가 지금의 젊은 청년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는 85학번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죠. 독재와 최루탄, 누군가의 죽음이 저한테는 익숙한 시대죠. 제가 살았던 시대이기 때문에 그 시대를 한 번쯤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건이 아니라 그 시대를 표현하고 싶어서, 이 작품에 끌리고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시대정신을 깨쳐 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결이 맞닿는 지점들이 많은데요. 각색의 방향성을 잡으면서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이미 10.26이나, 12.12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많잖아요. 그 거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면 사건 중심으로 가지만, 이 작품은 그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이 지점을 파고들면 그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각색을 하면서 그 시대성을 어떻게 부여할까 고민했어요. ‘전두환’으로 치환되는 전상두(유재명)는 야만의 시대에 자기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세상을 집어삼켰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캐릭터 자체를 권력과 욕망으로 상정했죠. 그리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라는 민변의 전신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집단을 고민하는 시민들의 모습, 즉 시대정신으로, 그리고 대령 박태주(이선균)는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봤어요. 각 캐릭터들을 그렇게 시대로 보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요.
사건의 중심에 선 ‘김재규’라는 인물 대신,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박흥주 대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는데요. 영화에서 박태주 캐릭터의 실존인물이죠. 그 인물의 중요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제가 합류하기 전까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버전의 방향성이 있었어요. 그중에는 박흥주 대령의 개인사로 풀어냈던 버전도 있었는데 거기엔 지금은 들어가지 않은 아내에 대한 사랑, 손편지 이런 것도 있었어요. 그분이 굉장히 모진 풍파를 겪었어요. 집안이 가난해 육사(육군사관학교)를 갔는데, 육사를 톱클래스로 졸업한 인재였죠. 권력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가진 재산이 400만 원밖에 되지 않았던 청렴한 군인이었어요. 드러나지 않았던 그분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이 시대에도 욕심만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정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를 가진 작품들 중 <행복의 나라>만이 가진 차별화 지점은 역사적 사건의 흐름 안에서, 인물들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장면들인데요. 박태주의 구명을 위해 정인후가 전상두를 찾아가서 사정하는 골프장 장면이 주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대표적입니다. 정인후가 전상두를 향해 ‘사람은 죽이지 말라’는 말을 소리 내 외치는데요.
저는 그 장면이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한 번쯤 세상을 향해서, 영화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는 게 영화이지 않을까. 그 장면에서의 정인후는 개인을 대변하는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막강한 권력자를 향해서 수많은 시민 정신들이 세상을 향해서 외쳤던 소리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그 욕망에 저항했을 것이다. 훨씬 더 낮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 권력을 향해서 부당하다고 소리쳤겠다는 생각으로 그 장면을 만들었죠.
한겨울의 골프장이 비현실적인 지점을 강화하고 극적 장치를 더해 주는데요.
골프장으로 그 무대를 만든 건 자료를 찾다 보니 실제로 골프를 좋아한 전두환이 미군 골프장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12. 12 이후에도 골프장에 갔다는 기록이 있고요. 그 장소는 일반인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종의 성역이죠. 독재자가 그런 성역에 가서 혼자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겉으로는 점잖고 머리도 좋아 보이지만, 뒤에서는 비수를 드러내고 있겠다 싶었어요. 그걸 드러내는 건 대중 앞이 아니라, 굉장히 사적인 공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골프장이었어요.

전상두의 톤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영화의 톤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요. 최근 <서울의 봄>의 전두광(황정민)을 비롯해 <남산의 부장들>의 전두혁(서현우) 등 많은 영화가 실존 인물 ‘전두환’을 영화적으로 묘사해 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어떤 차별점을 보여주려 했나요.
그 지점을 (유)재명씨와 많이 논의했어요. <서울의 봄>에서는 전두광을 보며 같이 분노하고 패고 싶어지는데, 그런 장면은 욕심이 나죠. 그렇지만 그걸 원했다면 <서울의 봄>을 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가 ‘전두광’과 ‘전상두’라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두광은 굉장히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만, 전상두는 점잖은 얼굴로 그걸 가리고 누군가의 등에 숨어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죠. 이 캐릭터를 만들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의 악은 악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평범함 속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죠.
정인후는 전상두와 박태주를 만나면서 세상에 반응하고 변해가는 인물인데요. 조정석이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의 결을 훌륭하게 완수해서 관객을 끌고 나가는데요.
실제 변호사들은 명망 있고 존경받는 분들이셨는데요. 처음부터 그렇게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으로 그리면 영화적 재미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정석이 아주 정의로운 인물을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잖아요. (웃음) 그 점에 주목했어요. 적당히 속물적인 근성을 가진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보자. 투옥 중인 아버지를 구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가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하는 거죠. 박흥주가 “넌 좋은 변호사야”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정인후의 성장을 표현하는 게 저한테는 중요했던 거죠.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장르가 법정드라마인데요. 상당수의 감정 교환이나 캐릭터 묘사가 법정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법정 장면의 구성에 대한 고민도 컸을 텐데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찍고 광해가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인식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실 여부를 떠나 영화가 그만큼 파급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감독으로 어떤 면을 보여주려면 그래서 최대한 진실되게 보여줘야겠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궁을 통해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법정에서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0년, 20년이 지나도 그 시대의 군사법정은 이랬다는 걸 알려주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 그걸 사실적으로 구현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법정이 그래서 중요했어요. 보통 법정 드라마는 선악의 구분을 명확히 해서 무죄를 주장한다든지 아니면 그 결론을 끌어내려 달려가는데 그렇다 보면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가 쉽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되면 진실성이 훼손될 수 있으니, 그 반대쪽에 있는 검찰관들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했죠. 실제 자료를 보면 그들이 반말과 욕설을 섞고 헐뜯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지점을 부각해서 영화에서 표현하면, 일방적으로 그들을 매도한 것 같은 인상을 주겠다. 그래서 그 부분을 걷어내고 동등한 싸움으로 보일 수 있게 하자. 그렇게 서로가 논리를 가지고 싸워야 그 재판이 훨씬 더 관객에게 진실성 있게 전달될 수 있겠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던 나라, 시대의 상황에 ‘행복의 나라’라는 제목을 가져왔는데요. 아이러니함으로 비극성을 강화해 주는 제목입니다. 동명의 노래에서 출발했나요. 제목이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제목이었어요. 비슷한 제목의 영화도 있어서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저는 이 영화는 영화를 시작하신 분들의 뜻이 정말 중요한 영화라고 봤어요. 우리 영화에 중요하게 사용된 노래 ‘행복의 나라’를 쓰려는 것도 있었고, 그 의도에 저도 동의했어요. 포스터 글씨를 보면 글자가 깨져있고, 글자들이 반대로 표기되어 있어요. 역설적으로 행복하지 않지만, 앞으로 행복해져야 하는 이 시대를 보여주려고 한 거죠.

영화의 마지막 박태주의 대사와 분위기가 공교롭게도 고 이선균 배우 개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혹시 편집에 영향이 있었나요. 이선균 배우의 유작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의미가 큽니다.
편집이 완성되고 개봉을 고민할 시점에 이선균 씨 사건이 있었어요. 모든 게 스톱되었고요. 당분간 개봉은 어렵겠다 할 즈음, 안타깝게도 선균 씨의 부고가 들려왔죠. 이후 후반작업을 하는데 이미 작업해 둔 후반의 대사와 상황이 선균 씨가 가고 나서 너무 와닿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선균 씨의 상황을 의도한 게 아니라 영화의 색깔에 맞게 만든 거니 더 이상 편집에 손을 대지 말자고 결정했어요. 선균 씨가 이번 작품에서 해낸 역할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선균 씨가 이 작품을 하게 된 건 조정석 배우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가 ‘배우고 싶어서’ 였어요. 저 사람은 이미 톱스타인데 상대 배우에 대한 호기심이 있구나, 배우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놀라웠어요. 분명 앞으로 지금 이상을 할 수 있는 배우였죠.
비슷한 시기와 인물들을 소재로 한 <서울의 봄>이 먼저 개봉을 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긴장이 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서울의 봄>을 연출하신 김성수 감독님과 되게 친한데요. 그래서 시나리오도 공유했었고,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괜찮을지 함께 고민도 했어요. (웃음) 둘 다 각자의 색깔로 만들자 결론을 내리게 됐고요. 정말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님 답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고, <행복의 나라>는 제 색깔로 나온 것 같아요. 처음엔 <서울의 봄>이 워낙 규모가 크고 화려한 작품이라 우리 작품이 먼저 개봉하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개봉이 늦춰졌고 후반 작업도 중단되었다가 다시 개봉을 준비하게 되었죠. <서울의 봄>이 흥행하는 걸 보면서는, 잘 만들면 관객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운 신호로 보고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