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밀양>의 신애,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곁에 머무르지 않는 사랑으로 외로운 여자 <무뢰한>의 김혜경, 저열한 사람의 행동으로 밑바닥으로 내몰려 늘 공허감을 마주해야 하는 <인간실격>의 이부정까지. 전도연이 연기한 인물들은 저마다 홀로 서서 온몸으로 삶을 마주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부닥친 삶의 시련 속에서 꺾이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슬픔을 삭혀왔다.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는 연기는 전도연을 대표하는 인장과도 같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40편이 넘는 작품 활동을 한 전도연은 아직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이면 진통을 겪는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과 그 삶을 부단히 살아갈 인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전작 <무뢰한>에 이어 오승욱 감독과 재회한 영화 <리볼버>에서 그녀는 대중에게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리볼버>에서 그녀가 맡은 인물 하수영은 죽은 전 연인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자신을 되찾는다. 전도연 배우를 만나 이번 작품 <리볼버>와 인물 하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승욱 감독님이 영화를 찍고 나서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말하셨는데, 전도연 배우도 이 말에 동의하는지, 이번 작품은 연기하시면서 어떤 부분에서 다르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무뢰한>과 비슷한 무드가 있어서 좀 다르게 표현을 해보자, 감정적인 것들을 많이 걷어내면 어떨까 이런 이야기를 감독님하고 많이 나눴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자기의 이번 목표는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찾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저에게는 되게 감사한 일이잖아요. 감독님이 저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는 거니까요. 감독님이 촬영 다 끝나고 편집하시면서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낸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하다고 했죠. 그거는 오승욱 감독님이 저한테서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려고 무던히 애쓰시고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영화 <길복순>에서 액션씬이 많았던 것에 비해 <리볼버>는 액션씬이 많은 영화는 아닌데요. 두 작품 하시면서 어떤 점에서 달랐나요?
<길복순> 때는 진짜 힘들었고요. 액션이 너무 많았고 이거를 다 소화할 수 있을까란 걱정과 우려, 의심을 많이 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사실 제목이 <리볼버>라고 해서 사람들이 액션 영화를 기대하지만 액션이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액션 연습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허명행 무술 감독님께 물어봤었는데, <길복순>에서 그 정도 하셨으면 현장 오셔서 바로 하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오승욱 감독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액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리볼버> 현장에서는 몇 가지 합만 맞춰 보고 했어요. 아무래도 <길복순>에서 오랫동안 액션 연습을 해서 그런지 몸에 배기는 하더라고요. 이번 작품의 액션은 좀 편하게 했죠.

말씀하신 대로 <리볼버>는 액션씬이 많은 영화는 아닌데요. 오히려 수영의 액션은 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무표정에 과묵한 인물이어서 관객들에게 인물에 대해 알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걱정되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무뢰한>의 김혜경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감정을 많이 걷어내자고 했었는데 촬영하면서는 조금 걱정했었어요. 이 영화의 서사가 굉장히 단순하잖아요. 약속한 돈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인데, 저는 계속해서 같은 연기와 같은 대사를 하니까 좀 지루하더라고요. 감독님한테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요?” 라고 물으면서 걱정을 계속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다른 배우한테 에너지나 연기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연기한 게 저의 새로운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수영의 감정선이 보이는 것은 그들의 감정이 수영의 얼굴에 묻어났기 때문이에요. 그들을 통해서 하수영이 느끼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떤 장면에서 그런 부분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하수영이 감정을 가장 많이 표현했을 때는 앤디를 만났을 때인 것 같아요. 그리고 큰 동요가 일어난 건 아니지만, 정윤선과 레지던스 방 안에서 대화했을 때도 그런 게 보여요. 윤선의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이 내 편인지 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들이 보여요.
감정을 뺀 건조한 인물에 대해서 더 얘기하고 싶은데요. 이 인물에 접근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서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무조건 전작 <무뢰한>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에서 출발했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을 많이 배제하면 어떨까. <무뢰한>의 김혜경은 화려하고 감정적으로도 사랑도 하고, 자기 욕망도 있는 그런 여자였어요. <리볼버>는 모든 걸 다 잃은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는 그런 인물이에요. 그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많이 동요할 것 같지 않았어요.

수영은 자주 과거를 회상하면서 임석용을 떠올립니다. 죽은 임석용의 존재감 아래 짓눌리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요. 하수영은 죽은 임석용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잘못된 사랑이기는 하지만 임석용을 도운 거잖아요.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그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전도연 배우님이 유튜브 ‘요정재형’에 출연해서 “제가 이때까지 해왔던 작품의 공통점은 사랑”이라고 말하셨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전도연 배우가 맡아왔던 역은 이성이든 자식이든 누군가에게 향하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사랑을 표현하실 때는 죽은 임석용을 향한다고 보면 될까요?
어떻게 보면 수영의 시작도 임석용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늘 사랑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닌 영화에서조차 늘 그 맥락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도 수영의 인생이 굴곡지게 된 건 임석용이라는 인물 때문이에요.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죽은 임석용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임석용이 죽으면서까지 그녀한테 알려주고 남겨주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수영이 임석용을 죽이기도 한 그들을 찾아가는 행동도 복수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비슷한 감정일 것 같아요. 임석용을 만나서 그녀가 그런 일에 휩싸이게 됐고, 또 임석용의 죽음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찾아낸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하수영은 비리를 저지른 경찰로 선한 인물은 아닌데요. 자기 돈을 찾기 위해 일련의 행동을 하면서도 더 큰 죄는 지으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보였습니다. 리볼버를 갖고 있어서 사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끝내 사용하지 않잖아요. 하수영이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이런 결심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은 민기현(정재영)이 총을 줬을 때 하수영이 살인을 저지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줬을 거예요. 지금이 바닥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그런 의미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수영이 비리 경찰이지만 죄에 대한 대가를 치렀잖아요. 하수영이 돌려받으려고 했던 것은 돈과 아파트이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거기도 해요. 그래서 감독님이 결국은 하수영의 승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길 대로 가지도 않으니까요. 자기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자기 몫을 받아냈잖아요. 하수영이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지 않았나 생각해요.

2000년대 초반까지 전도연 배우는 예민하고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을 연기하며 사랑에 대한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줬는데요. 그때도 장르를 바탕에 두더라도 다양한 변수로 전도연식의 멜로를 구현했습니다. 최근에는 장르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주로 하셨고 한층 밝아진 이미지도 있는데요. 근데 이런 행보가 지금의 관객들이 전도연 배우에게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 전도연 배우의 10대, 20대 팬덤이 생겨났잖아요. 이런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제서야 통했나. (웃음) 내 갈 길을 간 것뿐인데 이제서야 뭔가 통했나. 근데 장르적이라 하더라도 <길복순>은 사실 멜로였어요. 딸아이와의 사랑 이야기, 차민규(설경구)와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젊은 연령대의 시청자들까지 접근한 작품이 <길복순>과 <일타 스캔들>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고마운 것은 되게 어린 친구들한테 팬레터를 받기 시작한 거예요. 다 10대, 20대 초반이어서 조금 놀라기는 했어요. 그 친구들이 이제서야 전도연 배우를 알게 되고, 예전에 제가 찍었던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저의 팬층을 넓히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한 거는 아니잖아요. 그냥 꾸준히 내 일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알아주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생긴 거고, 또 제 작품들이 회자되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죠. 이런 모든 것들이 굉장히 뿌듯하고 감사했어요.
많은 사람이 <리볼버>로 다시 칸영화제에 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응원도 했는데요.
진짜 아쉬웠어요. 감독님도 그렇고 배우들도 다들 간절히 바랐는데 안 됐을 때 속상하기는 했죠. 근데 저는 칸에 가도 개인의 영광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실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작품적으로 좋은 평가받는다는 건 너무 기쁜 일이죠. 이외에는 뭐… 레드카펫도 밟아 볼 만큼 밟아봤고. (웃음)
제가 생각할 때는 오승욱 감독님이 평가 절하된 감독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오승욱 감독님이 작품을 또 빨리하셨으면 좋겠어요. 글을 워낙 오래 쓰시니까. 오래 쉬시지 말고 빨리 좀 많은 작품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죠.

<멋진 하루>에서 함께 한 하정우 배우는 인터뷰할 때마다 다시 연기해 보고 싶은 배우를 물어보면 늘 전도연 배우라고 대답했는데요. 하정우 배우의 이 말에 대해 답을 주신다면요.
저 안 해본 배우들과 해보면 안 될까요? (웃음) 이번에 지창욱 씨와 임지연 씨도 작품 인연이 없던 배우들하고 연기를 했는데 좀 새로웠어요. 그런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요. 물론 하정우 씨도 오래전에 함께한 거라 지금 만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함께 작업하지 않은 새로운 배우와 작품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창욱 씨에 대해서도 제가 너무 몰랐더라고요. 지창욱 씨는 사석이나 어디 지나가다가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배우였어요. 임지연 씨도 그렇고요. 그래서 어떨까 되게 궁금했었는데 함께 연기해 보니 되게 놀라웠어요. 그렇게 제가 생각지도 못한 그런 배우들을 계속 만나보고 싶어요.
하정우 배우뿐만 아니라 황정민, 김남길 배우도 모두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전도연 배우와 함께 작품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또 임지연 배우도 똑같은 얘기를 했거든요. 혹시 배우들을 끌어들이는 본인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진심이래요? (웃음) 제 매력이라기보다 제가 선택한 작품들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전도연이 선택한 작품들에 대한 존중이 있고 믿음이 있으니까 전도연이 출연한다고 하면 좀 좋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얘기는 그렇게 해도 그들한테도 가장 중요한 건 시나리오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 전도연이 있었을 뿐이고.
말씀하신 대로 이번 작품에서는 이제껏 작업해 보지 않은 배우들과 함께했는데요. 지창욱, 임지연, 김준한 배우와의 연기 호흡이 어땠는지도 말해주세요.
김준한 배우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로 같이 작업을 하긴 했었는데 저랑 마주친 적은 없었어요. 그 친구는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잘하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 의심을 많이 하는 배우고요. 지창욱 씨는 어떤 사람인지 좀 알기 힘들었어요. 되게 궁금했어요. 제가 “창욱 씨는 원래 이렇게 말이 없어요?”라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하셔서 되게 과묵하고 부끄럼이 많은 친구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앤디를 연기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지연 씨도 사실 작품을 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는데, 오히려 작품을 끝내고 나서 점점 알아가는 게 창욱 씨나 지연 씨인 것 같아요. 지연 씨는 귀엽고 재밌는 친구고, 창욱 씨도 되게 엉뚱한 면이 있고 그렇더라고요.

전혜진 배우와의 투샷에서 카리스마 여제 2명을 한 프레임 안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전혜진 씨와 함께 작업하면서는 어떠셨나요?
좋았고 재밌었어요. 새로운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혜진 씨와는 사적인 자리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연기를 보는 건 신기했어요. 이 영화에서 생략된 장면이 있는데 그게 혜진 씨와 저의 장면이에요. 사실 그레이스(전혜진)가 7억을 왜 못 주냐는 의문점이 있잖아요. 원래는 영화의 중간에 그레이스가 하수영을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하수영이 돈 준다고 해서 갔는데, 호락호락하게 굴지 않죠. 그래서 그레이스가 변덕을 부리고 못 주겠다고 해요. 그 이후로 화종사 시퀀스에서 보이는 그 나락으로 이어지는 거거든요. 저도 그 장면이 빠진 게 아쉽다고 생각해요. 그 장면이 있었으면 7억에 대한 관객들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전도연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드라마<인간실격>의 이부정과 <일타 스캔들>의 남행선은 너무 다른 인물이잖아요. 어떤 역이든 화면에서 다 보이지 않는 인물의 삶이나 깊은 감정까지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드라마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는데요. 전도연 배우가 인물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궁금하네요.
사실 촬영하면서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아요. 그 인물에 대해 다 알기 힘들고,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조바심을 냈어요. 인물에 대해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란 조바심이 있었다면, 지금은 촬영하고 어떤 경험을 하면서 계속 제가 어떤 상황에 빠지는 거잖아요. 어떤 이야기에 빠지고. 그러면서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이 끝났을 때 비로소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올해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는데요. 오랜만에 사이먼 스톤이 연출한 연극 <벚꽃동산>에서 무대 연기를 펼치신 소감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연극을 할 때는 되게 즐겁게 했어요. 힐링도 됐었고. 정말 힐링까지는 생각지도 못했고 내가 무대 공포를 견뎌내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무대에서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다른 배우들의 시선도 보게 되고, 그 배우의 어떤 감정도 받게 되면서 연기의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져서 매일매일 새로운 공연을 한 것 같아요.
사이먼 스톤이 처음에 매일매일 공연이 새로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수해라. 상대 배우를 연기하기 힘들게 만들어라. 당황스럽게 만들어라. 어렵게 만들어라는 말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저게 뭔 소리지 싶었어요. 늘 그렇게 새로운 에너지로 연기를 하길 바랐던 거죠. 그 말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었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직접 부딪히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런 경험이 신기했고,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웠어요. 그래서 끝난 게 많이 아쉽고 벚꽃동산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감독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배우들은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테이크를 많이 갈수록 연기가 좋아지는 분들이 있고, 많이 갈수록 안 좋아지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편에 가까우세요?
저는 초반에 좋은 감정이 나와요. 그래서 한 번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연기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여러 요인 때문에 테이크를 많이 가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약간 감정이 소진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그런 거죠. 한 번 울음을 쏟아내고 나면 눈물이 안 나는 것처럼 그런 소진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진짜 감정을 만들어서 연기를 해야 해요. 수십 명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항상 첫 테이크나 두 번째 테이크에서 오케이를 해줄 수 없는 건데 나는 왜 이 감정을 머금지 못할까라고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이 감정을 머금을 수 있을까. 그건 누군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잖아요.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도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1990년에 CF로 데뷔하신 후로 34년째 활동하셨고, 그동안 4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셨습니다. 사실 작품마다 매번 새로운 숙제잖아요. 오랫동안 연기를 해오신 전도연 배우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숙제인지, 오랜 경험과 내공으로 좀 수월해지셨는지 궁금해요. 여전히 늘 새로운 것처럼 치열하게 작업하시는 느낌이 들어서요.
매번 새로운 것 같아요. 매번 어렵고. 연기를 잘한다고 해서 똑같은 작품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도 다르고, 감독님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죠. 저도 가끔은 그런 노하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노하우가 있어서 이때는 감정을 편하게 잡자 이런 생각을 저도 한 적이 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게 똑같은 슬픔이어도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슬픔이잖아요. 그래서 매번 고군분투하고 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지치지는 않으세요?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야 하나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지치는 거랑은 좀 달라요. 그런데 징징대는 시간은 늘 있는 것 같아요. 인물을 받아들일 때까지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끊임없는 의심을 하죠. 그러면 저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알죠. 이제 시작됐구나 잘할 거면서. 근데 저는 진짜 엄살이 아니고 진심이거든요. 이 인물을 다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연기하지, 이 작품을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해요. 주변 사람들은 이 시간을 전도연한테 필요한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더라고요. 인물에 대해 다가가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인 것 같아요.
대중이 전도연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길 바라세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어렵네요. 그냥 믿고 보는. 관객들과 시청자분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