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여자배우 대역을 남자가? 춤 대역에 얽힌 TMI

성찬얼기자

흔히 '입금 전' '입금 후'라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배우들은 작품에 투입되는 순간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배우 혼자서 만능이 될 순 없는 법. 특히 신체를 기술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분야에선 대역을 기용해 그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곤 한다. 이번 영화는 춤 대역을 활용해 영화의 맛을 더욱 살린 몇몇 케이스를 소개한다.



<데드풀과 울버린>
'댄스풀' 닉 폴리

만인이 호평한 〈데드풀과 울버린〉 '바이 바이 바이' 댄스
만인이 호평한 〈데드풀과 울버린〉 '바이 바이 바이' 댄스

 

얼마 전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해외에서 흥행 중이나 국내에선 다소 고전 중이다. 영화가 워낙 마니아층을 겨냥해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국내에서도 모두 호평하는 부분은 바로 오프닝이다. 데드풀이 TVA 추적대에 맞서는 장면인데, 이 장면의 과격한 액션과 엔싱크의 '바이 바이 바이'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 참으로 데드풀스럽기 때문.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리드미컬하게 춤추는 그 모습이 데드풀 특유의 '킹받는' 행동을 참 잘 보여준다.
 

데드풀 복장을 입은 닉 폴리
데드풀 복장을 입은 닉 폴리


사실 이 오프닝에서 춤춘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라이언 레이놀즈가 아니다. 댄서 대역을 고용해 만든 장면이다. 해당 장면에서 춤춘 건 댄서 닉 폴리(Nick Pauley)로 크레딧엔 '댄스풀'이라고 명명됐다. 그가 SNS 계정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또한 오디션을 거쳐 댄스풀로 출연한 것이라고. 그의 에이전시가 당장 '엔싱크의 바이 바이 바이' 춤을 녹화해서 보내 달라했고, 그는 얼른 춤을 배워 영상을 보냈다. 그 결과 <데드풀과 울버린>이라는 대작에서 춤 대역으로 발탁된 것. 그의 찰진 춤선은 엔싱크 공식 SNS 계정에도 박제가 됐다. 혹시라도 그의 다른 모습이 궁금하다면 케이티 페리의 'Chained to the Rhythm' 뮤직비디오, 도자캣의 'Get Into It (Yuh)' 뮤직비디오, 그리고 그의 SNS(@nickfpauley)를 참고하자.


 

<블랙 스완>
“내 이름은 어디에” 사라 레인


완벽한 백조/흑조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발레리나를 그린 영화 <블랙 스완>은 지금까지도 그 섬뜩한 풍경과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 등 훌륭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한때 홍역을 치뤄야만 했는데, 바로 대역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나탈리 포트만
〈블랙 스완〉나탈리 포트만


영화 상영이 거의 마무리되던 시기에 무용수 사라 레인(Sarah Lane)은 <블랙 스완>에 참여했으나 “가급적 인터뷰를 하지 말아달라”는 제작진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의 무용 대역을 했으나 '나탈리 포트만이 거의 다 직접 무용했다고 보이기 위해' 제작진에서 관련 언급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연기한 장면이 있음에도 VFX 관련 영상에서 디지털 얼굴 교체를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촬영장에서의 사라 레인
촬영장에서의 사라 레인


그러나 대런 아노로프스키 감독과 무용감독으로 참여한 뱅자맹 밀피에는 사라 레인의 주장에 반박했다. 밀피에는 사라 레인이 대역을 맡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영화의 85%는 나탈리 포트만 본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로노프스키 또한 “총 139 장면 중 111 장면이 나탈리 포트만이고 28 장면이 사라 레인”이라고 수치까지 밝혀 무용 장면의 80%를 나탈리 포트만이 직접 소화했다고 못박았다. 나탈리 포트만은 어릴 적부터 발레를 접해왔고 영화 촬영 1년 전부터 발레에 전념했다시피 연습했으며 촬영 중 여러 차례 부상까지 입을 만큼 열정적이었기에 적어도 '대놓고 속이려 들었다'는 의심을 받진 않았다. 제작진 측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대역 논란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플래시댄스>
마린 자한, 샤론 샤피로, 크레이지 레그


<블랙 스완>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전 춤 대역을 감췄던 영화가 있다. 1983년 영화 <플래시댄스>는 용접공이자 댄서로 일하는 알렉산드라(제니퍼 빌스)가 무용학교 입학 시험에 도전하는 내용을 그린다. 육감적인 이미지의 달인 애드리안 라인 감독에 춤이란 역동적인 에너지를 담는 소재가 더해져 영화는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국내에서도 그해의 흥행작으로 뽑힐 만큼 인기를 모았다.
 

〈플래시댄스〉
〈플래시댄스〉
〈플래시댄스〉에서 알렉산드라를 연기한 제니퍼 빌즈
〈플래시댄스〉에서 알렉산드라를 연기한 제니퍼 빌즈


그러나 이후 영화에서 댄스 장면 대부분이 알렉산드라를 연기한 제니퍼 빌즈가 아닌, 대역들이 소화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춤 장면은 대역을 썼고, 춤추는 과정에 들어가는 얼굴 장면 위주로 제니퍼 빌즈를 촬영했다 밝혔는데 문제는 대역 관련 크레딧이 등재되지 않았던 것. 차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춤 장면 대부분은 마린 자한(Marine Jahan)이, 아크로바틱한 점프 장면 등은 샤론 샤피로(Sharon Shapiro)가, 브레이크 댄스 장면은 '크레이지 레그'라는 댄서명으로 활동한 리차드 콜론(Richard Colon)이 대역을 맡았다. 라인은 이 세 사람, 특히 마린 자한이 춤 장면 대부분을 소화한 걸 감추길 원한 건 배급사의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마린 자한이 출연한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1984)
마린 자한이 출연한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1984)
〈플래시댄스〉에서 알렉산드라의 브레이크댄스는 크레이지 레그(오른쪽)가 연기했다. 보시다시피 남성댄서.
〈플래시댄스〉에서 알렉산드라의 브레이크댄스는 크레이지 레그(오른쪽)가 연기했다. 보시다시피 남성댄서.


마린 자한은 이 건에 관해 따로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 크레이지 레그는 훗날 인터뷰 중 “잠깐 일자리를 잃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플래시댄스> 출연료가 계속 들어와서 도움이 됐다”고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제니퍼 빌즈는 나중에 <댄싱 위드 더 스타> 섭외가 들어왔을 때 “전 댄서가 아니다”며 출연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또한 영화에서만큼 화려한 춤은 혼자서 소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그루트 = 제임스 건

 

 

CGI 캐릭터에 무슨 춤 대역이! 더 재밌는 건 퍼포먼스 캡처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춤을 추고, 그걸 캐릭터에 반영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대성공, 시리즈에 길이 남을 오프닝을 완성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얘기다. 애빌리스크와 동료들의 싸움을 배경 삼아(?)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미스터 블루 스카이'에 맞춰 춤을 추는 그루트는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건 본인이 대역을 했다. 영화 개봉 후 소소하게 화제가 됐는데, 직접 춤을 춘 덕에 장면의 유쾌함이 더욱 살아났다. 감독이 말하길, 퍼포먼스 캡처 수트를 입지 않은 만큼 다양한 각도에 카메라를 설치해 움직임을 담아냈다고 한다. 카메라 수십대를 사용했다고. 제임스 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서도 그루트의 춤을 췄다. 이쯤되면 감독님이 춤추고 싶어서 그루트 춤 장면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