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변산 비치 시네마와 보낸 2박3일, 제2회 부안무빙 페스티벌을 다녀오다

주성철편집장
제2회 부안무빙 개막식​
제2회 부안무빙 개막식​

 

“여러분들이 덥다고 하셔서 비를 조금 뿌렸습니다.” 런던아시아영화제 전혜정 집행위원장이 예술총감독을 맡으며 주목받은 제2회 ‘팝업시네마: 부안무빙’(Pop-Up Cinema: Buan Moving, 이하 부안무빙)이 지난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 일대에서 성공적으로 열렸다. 15일 부안무빙의 문을 연 전혜정 예술총감독은 개막식 직전까지 오던 비가 그치자, 그처럼 들뜬 마음으로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부안무빙은 국내 최초로 팝업스토어 개념을 영화제에 도입한 새로운 콘셉트의 문화 축제로, 매해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와 전시를 선정하여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영화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개막식 풍경
개막식 풍경

올해의 테마는 ‘사랑’으로, 개막작 <가려진 시간>(2016)을 시작으로 <그해 여름>(2006), <파이란>(2001)이 관객과 만났다. 영화 상영 전 탱고밴드 ‘라벤타나’의 정태호와 재즈보컬 유사랑의 라이브 콘서트가 관객을 맞았고, 전혜정 예술총감독과 전북특별자치도 권익현 부안군수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전혜정 예술총감독은 “해가 떨어지는 낙조 앞에서 영화를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보면서 나눌 수 있다는 것, 영화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정말 꿈같은 장면”이라며 “올해는 작년보다 업그레이드된 부안무빙을 준비했다”고 했고, 권익현 부안군수 역시 “변산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이다. 3일 동안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영화도 즐기고 변산해수욕장도 즐기다 돌아가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권익현 부안군수를 비롯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인 정지영 감독과 신철 위원장,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 개막작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과 신은수 배우, <그해 여름>의 조근식 감독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라벤타나’의 정태호와 재즈보컬 유사랑의 개막 콘서트​
‘라벤타나’의 정태호와 재즈보컬 유사랑의 개막 콘서트​
행사장 풍경
행사장 풍경

 

부안무빙 2024 개막작으로 선정된 <가려진 시간>(2016)은 지난해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로 청룡영화상 감독상(엄태화), 남우주연상(이병헌),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이병헌), 촬영상(조형래)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엄태화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2012년 단편영화 <숲>으로 제11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으로 <잉투기>(2013)를 연출한 그가 본격적으로 도전한 첫 번째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근 JTBC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로 전성기를 맞은, 엄태화 감독의 동생이자 형의 모든 영화에 출연한 엄태구 배우를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개막작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한 엄태화 감독
개막작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한 엄태화 감독
개막작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한 신은수 배우(왼쪽)
개막작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한 신은수 배우(왼쪽)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은 커다란 파도 앞에 선 두 사람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영화다. 중요한 배경으로 바다가 등장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변산해수욕장에서 영화를 보게 돼서 더욱 뜻깊다”고 했고, 당시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역할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 등 이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은수 배우는 “영화 촬영 당시에는 중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대학생이다. 당시 JYP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었는데 <가려진 시간>에 출연하면서 연기로 진로를 정하게 되어 이후에도 배우로 활동하게 됐고, 현재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 중”이라며 마치 데뷔작이 정해준 것 같은 운명에 대해 얘기했다. 한편으로 <가려진 시간>은 세월호의 비극에서 출발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안에서 시간이 멈춰졌을 때,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색 숫자가 ‘14’로 맞춰져 있고 쇼핑몰의 시계는 ‘4시 16분’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기 위해 영화 속에 기호로 남긴 것이다. 이에 대해 엄태화 감독은 “내 고향이 안산이기도 하고,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피해자가 있어서 시나리오를 쓸 때 큰 영향을 받았다. 지금 다시 영화를 보니 더 세게, 슬프게 다가온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차기작을 궁금해하는 관객에게, “현재 호러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인데, 내년 4월에 촬영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드린다”고 이날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해 여름〉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조근식 감독과 이화정 저널리스트
〈그해 여름〉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조근식 감독과 이화정 저널리스트
행사장 풍경
행사장 풍경

​부안무빙 둘째 날인 16일, 조근식 감독이 해변에 마련된 야외 상영장을 찾아 <그해 여름>(2006) 상영에 이어 지난 추억을 관객과 나눴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조근식 감독은 “2006년 이맘때, 오늘처럼 한창 더울 때 <그해 여름>을 찍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때의 여름 공기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며 “어렸을 때 무협지와 통속소설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것들이 누추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해방구였다. 그런 의미에서 데뷔작인 <품행제로>(2002)와 <그해 여름>은 나에게 출발점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청춘 학원물인 <품행제로>와 정통 멜로영화인 <그해 여름>이 사뭇 달라보여도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였다. 더불어 영화에서 20대 초반과 60대 후반을 동시에 소화하며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 이병헌, 이제는 시리즈 <시그널>과 <킹덤> 등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김은희 작가의 시나리오 데뷔작이라는 점도, 변산해수욕장을 찾은 관객에게 <그해 여름>을 다시 즐거이 감상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가 됐다.


변산 워케이션센터에서 열린 ‘명장면으로 보는 한국 영화 걸작선’ 필름 토크
변산 워케이션센터에서 열린 ‘명장면으로 보는 한국 영화 걸작선’ 필름 토크
변산 워케이션센터에서 열린 ‘명장면으로 보는 한국 영화 걸작선’ 필름 토크
변산 워케이션센터에서 열린 ‘명장면으로 보는 한국 영화 걸작선’ 필름 토크

 

부안무빙 셋째 날인 17일은, ‘박정민 데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박정민 배우이자 감독의 작품과 토크로 꽉 찬 날이었다. 지난해 1회 부안무빙 개막작이 그가 주연을 맡은 이준익 감독 <변산>(2018)이었을 정도로 그는 부안무빙과 인연이 깊다. 먼저 오후 3시에는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과 함께 변산 워케이션센터에서, ‘명장면으로 보는 한국 영화 걸작선’ 필름 토크를 진행했다. 김홍준 원장이 선정한 한국영화의 빛나는 순간을 함께 돌아보며, 박정민 배우의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날 관객을 만난 한국 고전영화는 총 3편으로, 신상옥 감독의 1961년 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6분), ‘김기영 전작전’ 오마주 영상(10분 15초), ‘안성기전’ 오마주 영상(12분 11초)으로 각각의 영상이 상영된 후, 관련 영화에 대한 패널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갔다. 김홍준 원장은 “한국 고전영화는 낡고,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 시간을 통해 젊은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했고, 박정민은 “내가 처음으로 본 한국 고전영화가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였다. 김홍준 원장님의 말씀처럼 박찬욱 감독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아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반장선거〉 상영현장의 박정민 감독
​〈반장선거〉 상영현장의 박정민 감독
〈반장선거〉 관객과의 대화
〈반장선거〉 관객과의 대화

 

이어 변산해수욕장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겨, 배우가 아닌 박정민 감독으로 직접 연출한 단편영화 <반장선거>(2021)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반장선거>는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네 배우가 감독으로서 ‘하드컷 X 왓챠 오리지널 숏필름 프로젝트’로 만든 단편 옴니버스 <언프레임드> 속 작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반장선거를 어른들의 선거보다 치열하게, 마치 누아르 영화처럼 담아내 권력의 허상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호평받은 바 있다. “영화 <변산>을 촬영할 때 한 달 반가량, 변산에서 생활했기에 내게 뜻깊은 곳”이라고 말문을 연 박정민은, <언프레임드>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제훈 형의 전화 때문이다. 제훈이 형이 뭘 부탁하면 거절 못 하는 병이 있어서 무턱대고 한다고 했다가 낭패를 본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의 모습에 내 모습이 깊이 담겨 있다. 내가 그 선거에 출마한 후보처럼 이야기를 만들고 연출했다. 어른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된다”며 “마치 힙합을 하는 것처럼 속도감 있고 리드미컬하게 연출하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을 밝혔다.

〈파이란〉의 명장면으로 구성한 ‘부안네컷’
〈파이란〉의 명장면으로 구성한 ‘부안네컷’
〈파이란〉 관객과의 대화 시간
〈파이란〉 관객과의 대화 시간

셋째 날인 17일, 폐막작 <파이란>(2001) 상영과 함께 송해성 감독이 무대에 올랐다. <파이란>의 강재(최민식)는 원래 바닷가 출신 인물로 인천의 범죄조직에 몸담고 있는데 “배 한 척 살 돈 모으면 고향에 돌아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 송해성 감독은 “원래 강재를 부안 출신으로 하려고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영화에서 살짝 드러나는 강재의 주민등록상 본적은 ‘군산’이긴 하나, 부안에서 군산으로 다시 인천으로 흘러 들어간 인물이라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개봉 당시 서울 기준 22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이후 <파이란>을 아끼는 팬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팬덤이 형성될 정도였다. 최근 <파묘>(2024)의 천만 돌파를 위시해 새로이 ‘파사모’가 형성될 정도로, 최민식을 중심으로 <파이란>과 <파묘> 사이에 생겨난 연결고리는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다.

폐막작 〈파이란〉 상영 현장
폐막작 〈파이란〉 상영 현장
(왼쪽부터) 권익현 부안군수, 송해성 감독, 전혜정 예술총감독
(왼쪽부터) 권익현 부안군수, 송해성 감독, 전혜정 예술총감독

 

송해성 감독도 “<파이란>은 당시 한국영화들과 비교하면 롱테이크가 굉장히 많은 영화다. 아마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특히 용식(손병호)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술에 취해 토해내듯 말하는 장면, 방파제에서 파이란(장백지)이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뒤늦게 읽으며 우는 장면은 최민식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영화를 살려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추켜세웠다. 당시 홍콩 스타 장백지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는 “주성치의 <희극지왕>(2000)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바로 캐스팅했다”며 “당시 20년 만에 한파가 찾아온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했는데, 홍콩에서 온 배우라 엄청나게 추울 텐데도 손과 발을 걷고 빨래하는 장면까지 훌륭하게 해냈다. 진정한 프로 연기자였다”고 말했다.


부안청자박물관
부안청자박물관
채석강
채석강

 

​폐막작 상영을 끝으로 2박 3일간 변산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노을과 함께 한 부안무빙의 막이 내렸다. 부안무빙의 시그니처 이벤트인 ‘오렌지 카펫’은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오렌지색 팔레트로 특별 제작된 게스트 로드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었다. 또한 포스코스틸리온, 제로웨이스트 팩토리, 배지훈 작가의 업사이클링 미술 작품들이 변산 바닷가에 전시되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한편, 2011년 개관하여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고려청자(상감청자)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고 있는 부안청자박물관, 중국 당나라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이름지어진, 변산반도 맨 서쪽의 해식절벽과 바닷가인 채석강(彩石江)도 관객에게 영화와 함께 추천할만한 여행지다. 올해의 ‘변산 비치 시네마’는 전북 부안군이 주최하고 주관하며 후원과 협력으로는 한국관광공사, 한국영상자료원, 포스코스틸리온, 네이버 영화 콘텐츠 공식 파트너사 ‘씨네플레이’,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Snow Peak), ‘왓챠’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