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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이 싫어서〉고아성, ‘인물의 본질을 찾으라’라는 송강호의 말을 새기며 ‘계나’를 구체화하기까지

김지연기자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선택, 화두를 녹여낸 영화, <한국이 싫어서>. 배우 고아성이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 역을 맡았다는 사실은 짐짓 흥미롭다. 92년생, 30대 초반이지만 아역 배우로부터 시작해 경력은 소위 ‘부장급’인 배우. 얼핏 계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것만 같은 배우 고아성이, 시나리오를 읽고 ‘놓치면 영영 후회할 것만 같아’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갑작스레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한 계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고아성이 연기한 계나는 지금의 한국 사회 젊은 세대가 겪는 피로감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캐릭터의 본질을 찾으라’라는 송강호의 조언을 항상 되새기며 매 작품에서 캐릭터를 한 겹 한 겹 쌓아가는 배우 고아성은 이번에도 놀라운 인물 이해력, 그리고 디테일이 돋보이는 연기로 관객을 찾아왔다. 그가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를 연기하며,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24일 오후, 삼청동에서 배우 고아성을 만나 영화와 그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들어보았다.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영화 공감하면서 잘 봤습니다. 어제 언론배급시사회 이후에 VIP 시사회가 열린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를 보신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어제 제 또래 친구들을 많이 불렀어요. 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런데 다 너무 좋은 영화였다고 말해 줘서, 어제 너무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또래가 아닌, 다른 분들은 영화를 어떻게 보시던가요. 어제 정우성 배우도 시사회에 오셨는데.

정우성 선배님께서 너무 정성스럽게 리뷰를 해 주셔서 제가 짧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핸드폰의 문자를 읽으며) “좋은 영화야.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의 현실을 보듬어주고자 하는 영화 같아. 한마디 더 하자면, 영화가 현실을 보듬으려 하니, 왠지 보듬어주고 싶은 영화야.”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어제 기자간담회에서도 말씀하셨지만, 고아성 배우는 <한국이 싫어서>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걸 안 하면 영영 후회할 것 같다’고 해서 이 작품을 선택하셨다고 했어요.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요.

계나가 20대 후반에 겪는, 피로감이 온 상태를 그리고 싶었어요.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초년생의 열정이라던가, 그런 시기는 이미 다른 작품에서 많이 해봤어요. 또, 계나가 타지 생활을 해나가는 여정을 잘 담고 싶었어요. 처음에 저한테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의 제안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 제가 서점 근처에 있어서 원작 소설을 사서 읽었어요. 그때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정말 금방 읽히더라고요. 너무 재밌게 읽었고, 그 바로 다음 날 시나리오를 읽게 되었는데 연달아 이틀 연속 읽다 보니까 (원작 소설에서) 어떤 부분을 감독님이 영화하고 싶으셨는지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다른 데서도 말씀드렸었지만, 시나리오가 수정 35고였기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 과정을 거치셔서 이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고, 감독님을 존중하고 시나리오에 충실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이 싫어서>의 장건재 감독은 콘티를 현장에서 짜기도 하고, 연출 방식을 즉흥적으로 바꾸기도 하는 등 독특한 연출을 하는 감독인데요. 장건재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영화 촬영 현장의 경험은 어땠나요.

현장은 굉장히 자유분방했고요. 뭐랄까, 굉장히 인터내셔널한 현장이었는데, 그게 저희 영화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던 인원들이 한국 스태프 반, 뉴질랜드 현지 스태프분들 반이었어요. 또 콘티 없이 자유분방하게 촬영하는 이 현장이 우리 영화랑 되게 닮아 있다는 게 좋았어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계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직장인 여성으로서,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굉장히 공감하면서 봤는데요. 고아성 배우는 직장 생활이 아닌 배우 생활을 오래전부터 해오셨고, 계나와 굉장히 다른 삶을 살아오고 계세요. 그런 아성 배우는 계나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물론 계나를 연기하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읽었지만, 초반에 계나는 ‘나는 한국을 떠날 거다’, 지명이(김우겸)는 ‘떠나지 마라’라고 하는 입장이 둘 다 너무 이해가 갔어요. 그래서 복잡한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두고 계나에만 집중을 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그게 잘 안됐던 것 같아요. 초반에 그래서 감독님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제 내면의 고민처럼) 똑같이 팽팽했으면 좋겠다, 이 의견도 있고 저 의견도 있고. 둘 다 설득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근데 그 지점이 저한테는 새로웠던 게, 전작 <항거: 유관순 이야기>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같은 경우에는 주인공이 가진 목표를 관객들과 함께 끌어서 나가야만 했거든요. 근데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그런 의무가 없어지고, 계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이 싫어서>에서, ‘왜 그 회사를 선택했나요?’라는 물음에 ‘내가 회사를 선택한 게 아니라, 회사가 나를 선택했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인상 깊어요. 계나는 왕복 4시간을 통근하고, 직장 내의 부조리함에 조금이나마 대응하기도 하는 등 정말 요즘의 지친 직장인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인데요. 돌이켜보면, 고아성 배우는 유난히 오피스물, 그리고 직장인 역할을 자주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도 그렇고 영화 <오피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그렇고요.

제가 꼭 작품을 할 때마다 소품을 하나씩 챙기는데요. 예전에 <괴물>을 촬영했을 때, 영화팀에서 선물로 저에게 영정 사진을 주셨어요. (그때는 조금 의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의미가 더 깊어지는 것 같은 거예요. 그때는 제가 중학생이었고, 지금은 이렇게 컸으니까. 그래서 작품을 할 때마다 의미 있는 소품들을 하나씩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해서, 회사원 역할을 할 때마다 사원증을 꼭 하나씩 챙겨요. 근데 그 사원증 안에는 얼굴과 이름이 들어가 있잖아요. 이번에 <한국이 싫어서> 찍을 때도 사원증을 챙겼는데, (그간 했던 작품들의) 순서대로 사원증들을 쭉 나열해 놓으니까 정말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혹시 <설국열차> 때는 어떤 걸 챙기셨나요?

‘크로놀’(<설국열차> 속 환각제)을 챙겼는데요. 먹지는 못하는데, 설탕으로 만든 제품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솜사탕처럼 없어지는 재질이라서, 한국에 갖고 왔더니 녹아서 없어졌어요.

 

이번에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나, 주변인에게 자문을 구해서 계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셨나요?

이번에는 (직장 생활보다) 타지 생활에 조금 더 집중했어요. 주변에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외국에서 일하는 분들께 물어봤는데요. 타지로 유학을 간 사람들의 초기 생활, 그리고 의도치 않게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생긴 낯선 고향의 느낌 같은 것들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아득한 안정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너무 달라져 있고, (고향은 그대로고) 적응이 잘 안되는 것 등. 실제로, 영화에도 그런 시간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시간들을 잘 담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계나가 한국을 떠나고 뉴질랜드에서 생활한 지 3년 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형적인 변화인데요. 옷도 한국에서보다 자유롭게 입고, 타투도 하고, 피부 톤도 짙어져 있고요. 이런 것들도 주변 분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처음에 제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물론 시나리오는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여 있지만, 날씨가 다 느껴지는 느낌이었어요. 차갑고 건조한 한국에서의 계나의 모습, 그리고 뜨거운 햇살 아래서 타오르는 청춘 같은 계나의 모습을 보면서요. 그리고 영화가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교차 구성되니까, 감독님께서 (한국에서의 계나와 뉴질랜드에서의 계나의) 대비를 원하시는 거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송강호 선배님께서 하신 연기에 관한 말씀 중에, “노숙자를 연기하려면 걸음걸이, 허름한 행색, 외모, 이 모든 요소를 제외하고도 노숙자처럼 보이는 본질이 필요하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그 말씀을 늘 새기고 있어요. 이번에 <한국이 싫어서>를 촬영하면서 어떤 변화가 가장 눈에 띌까, 생각했을 때는 피부가 가장 시간을 축적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눈에 변화를 볼 수 있도록 태닝을 태어나서 처음 해봤습니다. 사실, 저는 배우로 살면서 ‘타면 안 된다’라는 강박이 늘 있었는데, 태닝을 하고 나니까 햇살 아래에서 되게 자유롭게 서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이것 또한 계나의 모습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건재 감독은 자신이 40대의 기혼 남성이라, 요즘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고아성 배우에게 힌트를 많이 얻었다고 했는데요. 장 감독은 <한국이 싫어서>가 마치 고아성 배우와 함께 만들어나간 작품 같다는 말을 했어요. 고아성 배우의 의견이 <한국에 싫어서>에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아이디어를 낸다기보다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시나리오를 수정 35고까지 거칠 정도로 감독님의 경험이 워낙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보니까 존중을 하려고 노력했고. 또 여기 계신 대표님도 그렇고, 또 다른 공동 제작 대표님 다 여자분이시고. 또, 촬영 현장에 20대 중후반의 여자 스태프분들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그런 분들께 의견을 많이 구하셨고요.

〈한국이 싫어서〉지명(김우겸)
〈한국이 싫어서〉지명(김우겸)

원작 소설과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지명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그리고 김우겸 배우가 연기한 지명 역할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저는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행복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이었어요.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그것인데요. 지명이는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 오는 성취감이 쌓여서 행복한 사람(자산성 행복), 계나는 그때그때의 쾌감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현금흐름성 행복)이에요. 사실, 지명 역의 김우겸 배우는 촬영을 하면서 자기는 계나를 너무 응원해 주고 싶다며, 지명 역할을 하는 게 곤란하다고 얘기한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기자간담회에서는 김우겸 배우가 생각이 바뀌었다며, 이제는 지명이의 행복을 응원해 주고 싶다고 했네요. 그러니까요. (웃음)

 

영화의 중반부에 계나가 엄마에게 하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나는 집값을 보태려고 돈을 모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요. 그게 가정 환경이 유복하지 않은, 계나 같은 청년들이 부모님과 많이 겪는 갈등이기도 한데요. 장성한 자녀가 집에다가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저는, 그 대목이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계나를 꼭 연기하고 싶었던 이유가 딱 하나의 대사인데요. “아빠, 그냥 18평에 사시면 안 돼요?”예요. 그 대사가 정말 많은 것을 말하는 거잖아요. 내가 그동안 모은 돈을 한국을 떠나는 데에 쓰겠다, 그동안 가족들이 말렸지만 나는 그래도 내 살 길 찾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장면이기 때문에, 그 씬 찍을 때 진짜 긴장을 많이 했고, 테이크도 되게 많이 갔어요. 이 얘기 하니까 생각이 난 건데, 그때가 카타르 월드컵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주택가에서 촬영을 할 때가 마침 한국 경기할 때였는데, 제가 걸어가는 장면을 찍고 있는데 한국이 골을 넣어서 주변 소리가 커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촬영을 하다가 그 소리에 반응을 해버려서 NG가 났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 정말 복잡했어요. 내가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를 찍고 있지만, 애국심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런 모순적인 마음이,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가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과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그냥 18평에 사시면 안 돼요?”라고 하면서도 집에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는 아버지에게 ‘저도 한 잔 주세요’라며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아버지가 일하는 경비실에도 찾아가고요. 아버지를 대하는 계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버지 역의 이상희 배우님과 정말 호흡이 잘 맞았어요. 매 씬마다 정말 많은 기운을 주셨고요.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그게 계나가 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감명 깊었던 건, 가족들이 계나를 공항에서 두 번 떠나보내잖아요. 첫 번째로 계나를 떠나보낼 때는, 엄마도 아빠도 가서 잘 챙겨 먹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이런 것 좀 하지 말고 등등 그런 잔소리를 했다면, 두 번째 보낼 때는 가족들이 계나를 되게 덤덤하게 보내요. 그래, 앞으로 잘 살아라라는 느낌으로. 처음 떠나보낼 때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하는데, 두 번째 떠날 때는 다시 오라는 말도 안 해요.

 

어떻게 보면, 계나도 한국을 떠난 후에도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네요. 그럼 어머니 역할의 오민애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계나와 어머니가 인천의 집 안에서 멸치의 똥을 따며 여러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최근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 그 장면이 계나가 속마음을 얘기하는 장면이지만, 계나가 사실 되게 그리워하는 장면으로 회상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 당시에는 (어머니와 그런 얘기를 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었던 건데, (뉴질랜드에서 돌이켜 보면) 엄마랑 멸치를 까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는 게 가장 그리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민애 배우님께서 늘 촬영하실 때 했던 말씀이, 나는 계나에게 잔소리를 하고 반대를 해야 하는 역할인데, 정작 자기는 계나를 응원해 주고 싶어서 힘들다고 하셨어요.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고아성 배우의 작품 중에,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를 되게 인상 깊게 봤는데요. 그때도 그 시절의 서울 말씨를 굉장히 잘 표현하셨잖아요. 그렇듯, 고아성 배우는 디테일에 강한 배우인데요. 이번에 <한국이 싫어서>에서도, 한국을 떠나자 움츠려 있던 계나의 어깨가 펴진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계나의 흐름이 너무나 중요한 영화여서, 씬을 뒷받침하는 그런 감정들이 늘 필요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첫 장면이 다짜고짜 떠나는 장면이잖아요. 그때 계나가 어떤 표정일까. 떠나겠다고 말은 많이 해놨지만 막상 공항 갈 때는 두렵지만 가족들한테 내비칠 수 없고. 자존심이 센 캐릭터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준비하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추우면 자연스럽게 몸이 움츠러들잖아요. 저는 <한국이 싫어서>의 예고편이 공개되고 나서, 추위에 고통스러워하는 계나가 많이 공감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감사했어요. 원작 소설에서 계나가 ‘농담이 아니라 매일 동상의 위기를 겪었다’라고 하는 부분이 저는 진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래서 계나도 추위에 얼마나 맞지 않는 사람인지, 조금 더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내가 태어난 나라지만 나는 안 맞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추위를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할 때, 주저앉아 우는 연기를 하는 고아성 배우를 보고, 한 현지 할머니께서 실제 상황인 줄 알고 와서 달래주셨다고요.

제가 드넓은 공원에서, 재인(주종혁)과 함께 이민 가방을 들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어야 했어요. 그런데 어떤 할머니께서 오셔가지고 서 있는 스태프분한테 “쟤 울고 있는 거 아니야? 내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는 게 다 들려서 너무나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원작 소설에서 살리고 싶었던 부분은, 계나가 처음 타지에 도착했을 때 신호를 잘 몰라서 길을 건너다가 어떤 차랑 부딪혔는데, 당연히 계나에게 신경질을 낼 줄 알았더니 운전자가 ‘너 괜찮냐’ ‘놀라지 않았냐’라고 묻는 장면이 있어요. 영화에 결국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외국에 처음 가서 모든 게 낯설 때 그런 친절한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잖아요. 그런데 촬영지에서의 그 실제 에피소드가, 그런 비슷한 감동이었어요.

〈이두나!〉에 특별출연한 고아성
〈이두나!〉에 특별출연한 고아성

고아성 배우도, 사실은 배우로서 완전히 안전하지만은 않은, 사소하지만 파격적인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두나!>에서 아이돌 그룹 ‘드림스윗’ 멤버로 특별출연해 배우 수지와 함께 무대에 선 것처럼 독특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요.

그건 제가 사심을 채우면서 사느라 그래요.(웃음) 감독님과 친분이 있어서 하게 된 거지만, 제가 아이돌에 대한 너무나 큰 동경이 있었고. 저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연기 경험이었어요. 제가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는데, 데뷔를 아레나에서 한 거예요. 그리고 제가 평생 해왔던 일, 실수를 하거나 NG를 내면 다시 보완해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게 저의 주된 작업이었다면, 무대는 정말 한순간에 가장 큰 에너지로, 최선의 결과를 모두와 함께 내는 거잖아요. 너무 상반된 일이라 큰 매력을 느꼈고, 또 어떻게 보면 팀으로 일해본 것도 처음인 것 같아요. 물론 같이 하는 배우들과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경험은 있었지만, (아이돌처럼) 한 팀이 되어 멤버들과 무대에 선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어요. 제가 (<이두나!> 속 아이돌 그룹 ‘드림스윗’의) 리더였는데요.(웃음) 리더 역할을 잘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무대 촬영이 끝나고 멤버들끼리만 모여서 뒤풀이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한국이 싫어서>를 촬영하다가 중간에 <이두나!>를 찍은 거였는데요. <한국이 싫어서>를 찍다가, 아이돌이 됐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웃음)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배우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아역 배우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나이에 비해 굉장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하셨는데요. 아이돌에도 도전하셨고, 유관순 열사 역할도 하셨고,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제가 한 번도 안 해본 장르가 멜로였어요. 그런데, 지금 영화 <파반느>를 찍고 있어요. 멜로는 저한테 너무 새로운 일이라, 전에 겪어보지 못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국이 싫어서>도 그렇고 <파반느>(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영화화)도 그렇고 소설 원작 작품을 두 번 연달아 하게 돼서, 제 팬분들이 제 팬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며 힘들다고 할 정도였어요.

 

<한국이 싫어서>와 <파반느>처럼, 소설이 원작이 된 작품을 촬영할 때는, 캐릭터의 전사를 책을 통해 연구하는 편이신가요?

저는 소설 원작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에 접근할 때, 시나리오를 제외한 기저의 받침을 계속 연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요.

 

영화 <파반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의 차기작인데요. 이종필 감독도 그렇고, <괴물>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도 그렇고, 고아성 배우는 유난히 감독들이 다시 찾는 배우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같은 감독님이랑 여러 번 작품을 한 게 벌써 다섯 번쯤 되는 거 같아요. 저도 한 감독님과 여러 작품을 했을 때, 감독님의 달라진 접근법을 볼 때 감격스러워요. 작품에 따라서 감독님의 연출법도 바뀌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우아한 거짓말>(이한 감독)은 사람 사이의 미세한 관계에 집중을 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클로즈업이나 너무 넓은 샷은 쓰지 않았는데, 같은 감독님의 <오빠생각>은 극적인 장면을 위해서 영화적 허용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감독님한테서 이런 다른 연출법이 나온다는 게 저는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또, 지금 찍고 있는 <파반느>의 이종필 감독님과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후> 4년, 5년 만에 다시 촬영을 하는 건데 너무 행복하고 재밌습니다.

 

그렇다면, 고아성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현실적으로 작품을 선택한다고 믿는데,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요. 최근에 제가 읽은 저에 대한 리뷰가 있는데요. 리뷰에서 ‘고아성이 찍은 영화는 믿고 본다. 그 이유는 고아성이 좋아서라기보다, 귀신같이 내 취향의 영화를 찍는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분이 이 인터뷰를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분의 취향을 어렴풋이 쫓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웃음)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항거: 유관순 이야기>도 그렇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도 그렇고, 고아성 씨가 맡는 역할은 모두 틀을 깨고 나오는, 투쟁하는 인물인 것 같기도 해요.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도 크게 보면 그렇고요.

제가 그런 걸 존경하는 것 같아요. 제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 솔직히 연기도, 저는 제가 지향하는 바를 자꾸 담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꼭 가까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어떤 사람의 특징을 저도 모르게 캐치하게 됐을 때 너무 매력적이다, 인상적이다라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제가 연기할 때 그것을 구현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뭔가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을 자꾸 만들어 가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 역시 본인이 닮고 싶은 인물인가요.

좀 농담 식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계나의 MBTI가 ENTP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INTP인데요. 계나는 제가 어떻게 보면 좀 닮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제가 계나처럼 그렇게 용기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나는 늘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게 대상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에 있던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친구들이 함께 있고.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고아성 배우가 만약 한국을 떠난다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으세요?

뉴질랜드요.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해외 로케이션 촬영 일정이 여유롭지는 않아서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는 못했는데, 촬영하면서 보니까 뉴질랜드는 정말 자연을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무도 쉽게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고, 나무에 인격을 부여하는 문화가 있는 거예요. 정말 인격체로 여겨요. 또, 제가 뉴질랜드에 갔을 당시에는 한국에 미세먼지가 너무 심했었거든요. 그래서 뉴질랜드에 가자마자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 현지 스태프에게 물어봤는데, ‘우리는 그런 거 측정 안 해. 할 필요가 없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0이 나오는 거죠.

 

지금의 한국을 살고 있는 많은 계나, 지명이, 재인이들이 있어요.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장건재 감독님은 계나에게 ‘꼭 살아남으라’라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거창하게는 아니고요 (웃음). 다양한 청춘의 유형이 있잖아요. 계나건, 재인이건, 형서건, 지명이건, 앨리건. 다양한 종류의 청춘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작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