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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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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젊은 거장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만든 작품들

씨네플레이

당대 가장 주목받는 이탈리아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10년 전에 발표한 <더 원더스>가 한국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지난 6월엔 로르바케르의 두 번째 그림책 <헛간 올빼미 지아니>의 한국어판이 발간되기도 했다. 로르바케르가 올해까지 지나온 창작의 궤적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장편 영화

<성스러운 육체>

Corpo celeste

2011

〈성스러운 육체〉
〈성스러운 육체〉

 

이탈리아의 신인 감독 10명이 자국의 정치에 관해 논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체코사만카>(2006)에 참여하면서 처음 영화계에 등장한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장편 데뷔작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 <천상의 육체>였다. 스위스에서 나고 자라 어머니, 언니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로 온 13살 소녀 마르타는 낯선 도시에서 가톨릭교회의 견진성사를 받고 가톨릭 공동체의 부패를 맞닥뜨린다. 이후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하는 프랑스 촬영감독 엘렌 루바르와 함께 16mm 필름을 통해 사실적인 공기를 포착하는 영화적 정체성이 첫 장편부터 물꼬를 텄다. <더 원더스>와 <키메라>를 수입/배급한 '엠엔엠 인터네셔널'이 운영하는 예술영화 플랫폼 '콜렉티오'에서 서비스 중.


장편 영화

<더 원더스>

Le meraviglie

2014

〈더 원더스〉
〈더 원더스〉

 

두 번째 장편 <더 원더스> 주인공 역시 성장기의 소녀다. 토스카나의 시골, 양봉업을 하는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맏언니로 자란 젤소미나(로르바케르가 존경하는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 <길>의 주인공에서 이름을 빌려온 게 분명하다)는 미련하게 고집스러운 아버지를 무릅쓰고 마을을 찾아온 TV 쇼에 출연해 삶이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어디 하나 제대로 마음 둘 곳 없이 희망과 절망을 마주하며 피어나는 젤소미나의 감정 하나하나 선명하게 담았다. 실제로 로르바케르는 어릴 적 양봉업을 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데뷔작 <성스러운 육체>로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돼 처음 칸 영화제와 연을 맺은 로르바케르는 바로 다음 작품 <더 원더스>로 경쟁부문 후보에 올라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단편 다큐멘터리

<노래>

Una canzone

2014

〈노래〉
〈노래〉

 

<더 원더스>를 선보인 2014년 알리체 로르바케르, 피에트로 마르첼로 등이 참여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9x10 노반타>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이탈리아의 영화 기관 '이스티투토 루체 치네치타' 설립 90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시기를 기록한 아카이브 영상을 9명의 젊은 감독들이 각자 주제에 맞게 10분 분량으로 구성한 단편들을 모았고, 로르바케르는 군중을 하나 되게 하는 문화적 형식으로서의 노래에 초점을 맞췄다.


단편 영화

<데 드제스>

De Djess

2015

〈더 드레스〉
〈더 드레스〉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는 2011년부터 여성감독과 함께 하는 단편영화 프로젝트 'Women's Tales'를 진행해오고 있다. 미우미우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조건 외엔 감독의 창작 권한을 모두 존중한다는 방향으로 루크레치아 마르텔, 에바 두버네이, 미란다 줄라이 등에 이어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9번째 감독으로 지목돼 <데 드제스>라는 단편이 탄생했다. 해변으로 밀려든 드레스들이 수녀에게 발견되고, 이름 없는 호텔에 체류한 유명 배우가 착용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더 원더스>부터 함께 작업하기 시작한 감독의 친언니인 배우 알바 로르바케르, <샌드 달러스>(2014)로 주목 받은 도미니카 배우 야네트 모히카 등이 출연했다.


장편 영화

<행복한 라짜로>

Lazzaro felice

2018

〈행복한 라짜로〉
〈행복한 라짜로〉

 

'행복한 라짜로'는 얄궂은 제목이다. 주인공 라짜로는 수십 년간 고립된 마을에서 담배 농장 지주에게 착취 당하는 농부들에게도 은연중에 착취 당하는 존재다. 지주의 아들의 꼬임에 넘어가 소동에 연루되었다가 죽게 되지만 (성경 속 라자로처럼)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태어난다. 부활이라는 판타지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라짜로> 역시 여느 알리체 로르바케르 영화처럼 리얼리즘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생애 처음 연기를 시도한 배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맑디맑은 얼굴이 주는 선한 기운은 협잡으로 뒤엉킨 우화에 기묘한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종국엔 거대한 비관이 남는다. <행복한 라짜로> 역시 <더 원더스>에 이어 칸 경쟁부문에 초청돼 각본상을 차지했다. 재작년 봉준호 감독이 올타임 베스트 영화 10편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들>

L'amica geniale

2020

〈나의 눈부신 친구들〉
〈나의 눈부신 친구들〉

 

'HBO'와 'RAI'의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는 최근 『뉴욕 타임스』가 2000년대 최고의 소설 1위로 선정한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들>을 비롯한 '나폴리' 4부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2018년 11월 첫 번째 시즌을 선보였고, 시리즈의 피날레를 장식할 시즌 4가 올해 9월 공개될 예정이다. 크리에이터인 사베리오 코스탄조의 연인인 알바 로르바케르가 시리즈 내레이터와 시즌 4에서 성인이 된 주인공 레누 역을 맡았기 때문일까,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두 번째 시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의 에피소드 4 '입맞춤'과 에피소드 5 '배신'의 연출을 맡았다.


영화제 예고편

<사과에게>

Ad una mela

2020

〈사과에게〉
〈사과에게〉

 

2분 남짓한 소품 <사과에게>는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2020년 비엔나 국제영화제 예고편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볼세나에서 16mm 필름으로 촬영된 작품은, 소녀의 그림자와 따스한 햇빛을 받고 있는 사과를 교차하다 소녀가 사과를 먹고 머리에 올려놓고 노는 모습과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1장이 포개진다. 그리고 새하얀 화면 위로 파블로 네루다의 시 '사과에게 바치는 송가'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행복한 라짜로>와 <어린 소녀들>에 출연한 아니타 크루치티가 카메라 앞에 섰다.


단편 영화

<어린 소녀들>

Le pupille

2022

〈어린 소녀들〉
〈어린 소녀들〉

 

<그래비티>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이 프로듀서를 맡아 '디즈니+'와 함께 기획한 크리스마스 단편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엘사 모란테가 1971년 크리스마스에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초 수녀들이 운영하는 가톨릭 여자 학교에서 갈 곳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둘러싸고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모였다.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안식처보다는 억압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무구한 아이들을 통해 구현되는 해방이 쾌감을 선사한다.


장편 영화

<키메라>

La chimera

2023

〈키메라〉
〈키메라〉


<행복한 라짜로>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새 장편영화 <키메라>는 2023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후보로서 처음 공개됐다. 땅속에 묻힌 유물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국인 도굴꾼 아르투는 출소 후에도 톰바롤로(유적 도굴꾼 집단)와 어울리면서, 옛 연인 베냐미나를 그리워한다. <더 원더스>, <행복한 라짜로>에 이어 '과거'라는 테마는 <키메라>에서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과거의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아르투는 제 초능력으로 오랜 옛날부터 땅속에 고이 모셔져 있던 유물들을 끄집어내고, 그것들은 곧 무가치해지고, 아르투와 주변 도굴꾼들의 처지 역시 나아지지 않는다. 영화가 1980년대를 배경 삼았고 현재는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는 점을 떠올리면, 판타지 설정이 유독 강한 <키메라>야말로 이탈리아 사회를 향한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탄식이 짙게 느껴진다.


그림책

「헛간 올빼미 지아니」

Gianni barba

2024

「헛간 올빼미 지아니」 원서
「헛간 올빼미 지아니」 원서
「헛간 올빼미 지아니」 국내 발간본
「헛간 올빼미 지아니」 국내 발간본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2022년 첫 그림책 「좋은 길」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4월 이탈리에서 두 번째 그림책 「헛간 올빼미 지아니」가 발표되고, 6월엔 한글 번역본도 출간됐다. 유년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더 원더스>처럼, 「헛간 올빼미 지아니」 역시 로르바케르가 어릴 적 언니 알바와 함께 헛간에서 올빼미를 키웠던 경험을 기반으로 썼다. 단순히 올빼미가 자라는 걸 관찰할 뿐만 아니라, 한 생명이 살기 위해선 또 다른 생명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자연의 질서를 깨닫고 밤에만 활동하는 올빼미와 교감하면서 밤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는 성장담이 담겼다.


단편 영화

<도시 우화>

Allégorie citadine

2024

〈도시우화〉
〈도시우화〉

 

2020년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아녜스 바르다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공동연출한) 아티스트 JR과 함께 이탈리아 소작농을 향한 존경을 담은 9분 짜리 다큐멘터리 <오멜리아 콘타디나>를 만든 바 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인 <도시 우화>는 로르바케르와 JR이 공동연출한 픽션이다. 프랑스 영화사 '애드 비탐'(Ad Vitam)이 제작하고,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 얼굴을 알린 알제리계 프랑스 배우 리나 쿠드리와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 등이 배우로 참여한다는 것 정도가 알려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