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태식이가 돌아온다! 11월 23일 김래원 주연의 누아르 영화 <해바라기>가 리마스터링 재개봉을 확정했다. 더 선명한 화질로 돌아온 리마스터링 버전의 <해바라기>에서는 기존 버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까지 추가되었다. 2006년에 개봉한 <해바라기>는 130만 명의 누적관객 수를 기록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뒤늦게 김래원 배우의 격앙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회자되며 대표적인 인터넷 밈이 되었다. 당시 김래원 배우는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고 외치며 다소 과장된 감정 표현과 액션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예상외로 싸이월드의 ‘눈물 셀카’와 같은 표정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해 웃음을 유발했다.
인터넷 밈이 되어 다시 사랑받은 한국 영화는 <해바라기>뿐만이 아니다. 멀게는 <살인의 추억>(2003), <달콤한 인생>(2005), <타짜>(2006)부터 가깝게는 지난해 천만영화인 <서울의 봄>(2023)과 올해 천만을 기록한 <파묘>(2024)까지 다양하다. 밈화되어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온 한국 영화들을 돌아보았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달콤한 인생>(2005)

김영철은 배우 중 가장 많은 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의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밈과 드라마 <야인시대> “사딸라” 밈의 주역이기도 한 김영철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도 밈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신의 내연녀에게 연정을 품은 부하 김선우(이병헌)에게 그는 회심의 한 마디를 날린다.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여자를 빼앗긴 것에서 오는 인물의 패배감은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말로 드러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 대사는 김영철 배우 특유의 톤과 억양, 리듬감으로 전달된다. 그 리듬감은 김영철 배우의 대사가 밈화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달콤한 인생>의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밈은 “넌 나에게 목욕가운을 줬어” 등 몬데그린 현상을 재치 있게 사용한 밈으로 바뀌어 웃음을 유발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묻고 더블로 가”
<타짜>(2006)

<타짜>는 영화 전체가 밈화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혜수 배우의 앙칼진 목소리로 발화하는 명대사 “나 이대 나온 여자야”부터 조승우 배우의 내레이션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까지 머릿속에 바로 영화 속 장면이 그려지는 명대사들로 가득하다. <타짜>는 인터넷 밈이 된 영화들에 대해 말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앞서 언급한 장면들은 수많은 패러디와 밈으로 재생산된다. 연예인 유병재는 유튜브에서 ‘타짜 덕력 시험평가’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가장 뒤늦게 <타짜> 밈의 수혜를 입은 배우는 바로 김응수다. 2006년 개봉 당시 명대사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그의 대사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묻고 더블로 가”는 영화 개봉 이후 거의 13년 만에 ‘곽철용 밈’을 수없이 양산했다. 곽철용 캐릭터의 건달이지만 나름 신사다움을 내세우는 품위 갖춘 허세와 그의 중독성 있는 어조가 대중에게 친근감을 줬다. 당시 김응수 배우는 밈의 인기에 힘입어 버거킹 CF에서 “묻고 더불로 가”를 외쳤다.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광고 문의만 60여 편이 들어오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마침내”
<헤어질 결심>(2022)

<헤어질 결심>은 제목 자체가 밈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쓰이기 쉬워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퇴사할 결심”으로 바뀌어 자조적으로 쓰이는가 하면, MZ세대의 자기 계발 열풍과 맞물려 “운동할 결심”, “완독할 결심”으로 쓰이기도 했다. 또 일명 ‘헤결사’로 나선 팬들의 N차 관람의 열기로 19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는 ‘헤어질 결심 중독’이라는 밈을 낳기도 했다. 이 밈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인용해 영화에 대한 애정을 전하고 있다.
<헤어질 결심>의 독특한 문어체 대사 속에서 “나는 붕괴됐어요”와 함께 사랑받은 대사는 탕웨이의 “마침내”다. 탕웨이의 “마침내” 밈은 사람들이 다소 잊고 있었던 단어인 ‘마침내’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 “‘마침내’는 ‘그간’, ‘드디어’ 등에 비해서 잘 쓰이지 않던 부사다. 탕웨이가 “마침내”라고 말하는 순간 ‘마침내’라는 부사가 평소보다 두 배 많이 쓰이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필로소픽, 2024 재인용).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서울의 봄>(2023)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밈의 세계에서 가수로 거듭난(유튜브 크리에이터 ‘제프프’에 의해) 황정민 배우의 명대사다. 거사를 앞두고 우물쭈물하는 장교들을 혼내기라도 하듯 황정민 배우는 우렁차게 고함을 친다. 이 장면은 전두광(황정민)의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 그리고 뻔뻔함을 한 번에 보여주고 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밈은 ‘반역’과 ‘혁명’의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해서 주로 쓰인다. 한 대학교의 에브리타임에서는 “기왕이면 부정행위라는 말 대신 오픈북이란 멋진 단어 좀 씁시다”라는 영화 속 대사를 변형한 말과 함께 “실패하면 빵점, 성공하면 에이쁠 아닙니까!”로 바꿔 쓰여 반란(?)을 꾀하는 학생의 패기를 보여준다.
파 & 고양이 밈
<파묘>(2024)

영화 <파묘>는 <검은 사제들>에 이어서 한국 영화계에서 오컬트 장르는 흥행하기 힘들다는 공식을 다시 한번 깼다. 1,191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파묘> 역시 많은 패러디와 밈으로 재탄생됐다. 먼저 <SNL 코리아>의 버전으로 패러디되었고, 영화의 제목인 ‘파묘’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 파와 함께 있는 고양이를 보여주는 귀여운 밈도 유행했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극중 인물 봉길(이도현)의 얼굴에 새겨진 ‘태을보신경’ 문신을 좋아하는 아이돌의 얼굴에 합성한 사진을 올리며 놀이처럼 즐기기도 했다. <파묘>는 인터넷 밈과 더불어 팬들의 2차 창작 열기가 거셌다. 팬들의 포스터를 가공하고 공유하는 등의 2차 창작은 영화의 롱런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