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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정민 감독이 말하는 영화 〈장손〉은 '추석맞이 오락영화(?)'

이진주기자
〈장손〉오정민 감독(사진=(주)인디스토리)
〈장손〉오정민 감독(사진=(주)인디스토리)


민족 대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명절'하면 하하호호 웃음을 나누는 가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가족이 모이면 웃음만 나눌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어떤 가정이든 남모를 고충이 있다.


영화 <장손>의 오정민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가족이라는 운명에 어떻게 응하는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이자 올해 시드니영화제, 멜버른국제영화제, 벤쿠버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 초청되며 주목받은 영화 <장손>이 11일 개봉한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오정민 감독은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같았다.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던지는 오정민 감독의 모습은 <장손>의 공기와 닮았다.

 

〈장손〉오정민 감독(사진=(주)인디스토리)
〈장손〉오정민 감독(사진=(주)인디스토리)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첫 선을 보였는데 어떠신가요?(인터뷰 당일 영화 <장손>은 언론/배급 시사회가 진행되었다.)

결혼식 치르는 것처럼 정신없이 지나가는 중입니다.

결혼식을 해보셨나요?

아니요, 안 치러봤습니다. 그냥 비유였습니다. (웃음) 저는 맨날 집에서 혼자 글 쓰는 사람이잖아요.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꾸 물어보시니까 긴장이 되는 것도 같아요. 저도 사실 잘 모르는데…
 

어쩌면 그게 감독의 운명인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항상 “저는 바보입니다”라고 말해요.
 

명절을 앞두고 개봉합니다. 노린 건가요?

글쎄요. 저는 <장손>이 온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을 추석맞이 오락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꼭 넣어주세요. ‘오락 영화’. (웃음)
 

〈장손〉
〈장손〉


첫 장편으로 <장손>을 고집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이 작품이 꼭 저의 첫 장편이 되기를 바랐어요. 2016년부터 시나리오는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다음 해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갔고 계속해서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냈죠. 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째 붙었어요. 사실 제가 모든 작품을 영진위의 지원을 받아 찍었거든요. 어용 영화인이에요. (웃음)
 

많은 신인 감독님들의 꿈을 실현하셨네요.

네, 감사하게도요. 그런데 여섯 번을 내면 한 번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손〉
〈장손〉


<장손>은 제사를 지내고자 모인 3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전작들 역시 가족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가족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대가족 아래에서 자랐어요.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방계로 육촌까지 따지면 100명이 넘더라고요. 일가친척들끼리 자주 왕래를 하면서 가족들과 가깝게 자랐어요. 많은 사랑도 받았지만 많이 치이기도 했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가족을 많이 다루지 않나 싶어요.
 

<장손>을 기획한 건 개인적으로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들이 소원해졌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서였어요. 가족 내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갈등들이 삐져나오는 걸 봤어요. 알아보니 이게 많은 가정에서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런 갈등의 원인을 알고 싶었어요.
 

 *이하 <장손>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손〉오정민 감독(사진=(주)인디스토리)
〈장손〉오정민 감독(사진=(주)인디스토리)


맞아요. 흔한 일이죠. <장손>에서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가족들 사이 갈등이 커지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아마 돌아가신 분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집안의 중심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가족을 영속시켜온 건 할머니의 사랑 아니었을까요? 그런 사랑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남은 건 돈과 계약 등 비정한 것들인 거죠.

예전에는 어른들을 미워했거든요. ‘어른들은 다 괴물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이해력도 넓어지고 나 자신 역시 ‘부족한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요. 그러다 보니 윗세대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장손>은 장손인 성진이 극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안내자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성진의 시선에서 윗세대를 바라보는 것을 담아낸 듯합니다.

저는 집안의 기대를 많이 받는 장손이었는데요. 장손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집안사람들의 솔직한 모습이 있거든요. 이 점에서 성진이 주인공이면 가족 구성원들을 더욱 솔직하게 알 수 있는 시선을 획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들이 장손에게는 솔직한가요?

장손은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소환되잖아요. 일을 처리하면서 가족 구성원을 각각 만날 기회가 많아요. <장손>에서는 다들 성진에게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만 하죠. 이 과정에서 각 인물이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면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진이 이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봤어요.

 

오정민 감독의 〈성인식〉
오정민 감독의 〈성인식〉

 

<장손>은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운명에 대해 각자 다른 반응을 하는데 결국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흐르는 듯해요. 이 같은 인물의 태도는 <장손> 뿐 아니라 전작 <성인식>, <백일> 등도 마찬가지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운명에 저항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마련인데 그 반대의 사람들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운명이 극복 가능한가?' 싶어요. 일반적인 극작법이라면 주인공이 어떤 장애물을 맞닥뜨리고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릴 텐데 제가 실제로 살아본 인생은, 특히 그 운명이 가족이라면,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한 개인이 거대한 세계 앞에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인간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을 맞이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미세한 진동 혹은 태도의 변화와 같은 것을 포착해 내는 것이에요.

영화에서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으신 거죠?

네, 저는 솔직하고 싶어요. 영화로 사람을 위로하고 싶다거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장손〉
〈장손〉


<장손>은 생생한 계절감이 특징인 작품이에요. 이를 위해서 여름, 가을, 겨울 세 번의 프로덕션을 나누어서 촬영을 했습니다. 이때 약 10명의 배우들과 많은 스태프들이 거의 합숙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촬영 기간이 긴 데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현장이라 신인 감독으로서 꽤나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많이들 신인 감독이 하기 어려운 프로덕션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신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덕션이기도 했어요. 만약 베테랑 감독이었다면 이 기라성 같은 배우와 스태프를 모시고 이 극도의 비효율적인 프로덕션을 진행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신인이었고 곁에 헌신해 주는 배우들과 용기 있는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장손〉
〈장손〉


세 계절을 다 촬영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장손>이 계절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가족들의 풍경을 담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선제 조건이었죠. 감사하게도 PD님들이 동의해 주셨어요.
 

촬영을 들어가기 전에는 ‘내가 그 많은 프로 배우들을 어떻게 컨트롤하지?’라는 걱정을 했는데요. 큰 선배님들이 계시니 분위기도 굉장히 안정적이고 진짜 가족처럼 지냈어요. 제가 많이 의지하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이번 기회에 ‘역시 배우는 내가 컨트롤하는 존재가 아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배우를 자극해서 연기를 뽑아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걸 배우에게 잘 설명하면 그만이고 그 이후는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정확한 감정, 정확한 기능 등을 잘 설명해야 하는 것이 감독의 몫인 거죠.

 

그렇다면 캐스팅이 중요하겠네요.

맞습니다. 캐스팅이 반 이상인 것 같아요. 캐스팅과 로케이션이면 영화가 끝나는 것 같아요. (웃음)
 

되게 빨리 끝나네요. (웃음)

네. 그다음에 돈만 있으면…(웃음)

 

〈장손〉 언론/배급 시사회 현장 중 배우 강승호(사진=㈜인디스토리)​
〈장손〉 언론/배급 시사회 현장 중 배우 강승호(사진=㈜인디스토리)​


주인공 김성진 역을 맡은 강승호 배우는 이미 공연계에서는 잘 알려진 배우이지만 아직 대중에게는 생소한 배우이기는 해요. 함께 작업을 해보니 어떠셨나요?

승호와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속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할 때 보니까 굉장히 솔직하고 도전적인 배우더라고요. 느끼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굉장히 잘 지내는 살가운 면도 있더라고요. 차갑게 생긴 외모와는 달라서 ‘의외다’라고 느꼈어요. 무엇보다 배우로서 불필요한 욕심이 없어서 참 멋있는 것 같아요. ‘내가 돋보여야 된다’라는 욕심보다는 ‘내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주니 연출자로서도 너무 감사했어요.

 

감독님의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까요?

<장손> 이전에 작업이 완료된 시나리오가 있어요. <장손>과는 결이 많이 다른 판타지물이고요. 그 작품을 수정해야 하는데 <장손>이 개봉해서 손을 못 대고 있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