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2>를 보면서 떠오른 류승완 감독의 이전 영화는 전편 <베테랑>(2015)이 아니라, 그가 10년 전 만든 첫 번째 3D 단편영화 <유령>이었다. 한지승 감독의 <너를 봤어>, 김태용 감독의 <피크닉>과 함께 당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3D 옴니버스 영화 프로젝트이자 1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신촌좀비만화>(2014) 속 작품이었다. 2012년에 실제로 온라인 ‘사령카페’ 채팅방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른바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을 영화화한 것으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박씨의 사주를 받은 고등학생 이군(16세)과 대학생 윤씨(18세)가 대학생 김씨(20세)를 흉기로 무려 40여 차례 찔러 살해하며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사건이었다. 박씨는 사령카페에서 자신이 ‘악령계에서 인증을 받은 진짜 마녀’이며 치유마법, 영혼 소환 의식 등을 포함한 영적인 능력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고, 박씨는 이군을 사령카페에 끌어들였다. 김씨는 여자친구 박씨가 사령카페에서 활동하는 것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고등학생 승호(이다윗)가 오로지 인터넷 사령카페에 빠져,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짝사랑하는 ‘여우비’(손수현)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스마트폰 단체톡 멤버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비는 단체톡에 폭언을 남기고 사라져 다른 멤버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데, 그런 그녀에게서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승호는 또 다른 멤버인 ‘비젠’(박정민)과 함께 그녀를 돕기로 결심한다.

류승완 감독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그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망하기 위해 3D라는 방법론을 택했다. <신촌좀비만화>는 당시로서는 <나탈리>(2010)와 <7광구>(2011), 그리고 <미스터 고>(2013)에 이은 네 번째 국산 극장개봉 3D 영화였고, 끊임없이 작가적 변화를 모색하던 류승완 감독의 의지가 담긴 프로젝트였다. <모가디슈>(2021)나 <밀수>(2023)와 달리, 지극히 현재의 사건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도 <베테랑2>의 ‘해치’는 <유령>을 떠올리게 했다. <베테랑2>의 수수께끼 살인범 해치, 즉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하는 비질란테형 캐릭터 해치라는 존재에 어딘가 ‘유령’이 겹쳐진 것. ‘해태’라고도 불리는 해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동아시아의 상상의 동물이다. 바로 그 연쇄살인범 해치이기도 한 경찰 박선우(정해인)는 전편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이 조태오(유아인)를 징벌하고 체포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경찰이 된 인물로 등장한다. 그렇게 서도철을 영웅처럼 동경하며 합류한 신참 경찰이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해치를 따라 하는 모방범들이 생겨난다.

물론 <유령>의 인물들은 결코 자경단이 아니지만,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얘기도 듣지 않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부분이 겹쳐 보인다. 대부분 현실에서 온전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유령>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영화는 ‘진짜 현실이란 뭘까’ 질문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아이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상식적인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이들의 사건을 3D로 담아내면서 <유령>은 그들의 황폐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이에 대해 당시 류승완 감독은 “태도는 존재하지만 시선은 개입하지 않는, 냉혹하게 현실을 구현하는 방식으로서의 3D를 고민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사회가 낳은 괴물들이라는 점에서, 해치와 유령은 작가의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소재와 큰 걸음으로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근심과 탐구, <베테랑2>도 바로 거기서 출발했다. 그래서 지난 <베테랑>과 달리 선과 악 사이에서 첨예하게 해석이 갈릴 수 있는 해치라는 존재를 내세웠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범죄도시4>(2024)에서 국내 프로파일러 1호이자 범죄학 박사이기도 한 방송인 권일용이 경찰청장으로 특별출연해, 흥행을 위해서라면 웃음과 비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맞바꾸는 형사 마석도(마동석)를 보며 “형사에게 저런 맛이 있어야지!”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지난 <베테랑>의 흥행을 손쉽게 승계할 수 있는(심지어 주연배우 황정민이 그대로 출연함에도!) 여러 방식을 비켜 가며 자기만의 작가적 관심사를 올곧게 추구하겠다는 자부심이 읽혔다고나 할까.

<베테랑2>의 오프닝이 지난 1편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류승완 감독의 간절함과 처절함을 보여준다고 본다. <베테랑2>가 시작하면 류승완 감독의 전작 <밀수>(2023)의 해녀(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주부도박단 테이블에 앉아 있고, 블론디의 노래 ‘Heart of Glass’가 흐르는 가운데 서도철과 봉형사(장윤주)가 위장 커플로 등장했던 1편처럼, 봉형사가 스페인의 여성 듀오 바카라의 노래 ‘Yes Sir, I Can Boogie’와 함께 요란한 코트를 걸친 채로 도박단에 위장 잠입한다. 드디어 경찰들이 들이닥쳐 검거가 시작되고, 도박장의 보스(현봉식)를 쫓다가 철제 계단에 매달린 서도철(황정민)을 향해 사람들 모두, 마치 9년 만에 돌아온 서도철을 환영하듯 응원의 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1편의 오프닝 시퀀스 구도를 그대로 가져오고, 심지어 <밀수>의 배우들까지 카메오로 끌어들여 1편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주부도박단 검거까지 이뤄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후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이른바 ‘견적’이 나온다. 어쩌면 자기복제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리즈 바깥의 영화 <밀수>까지 끌어왔으니 ‘추석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도 입가에 맴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놀랍게도 류승완 감독은 ‘속편에서 기대하신 건 딱 여기까지만 보여드릴게요’라고 말하는 듯, 그 견적 발주를 거부하고 새로운 경로로 진입한다.

‘빌런의 교체와 강화’가 어느덧 범죄물 프랜차이즈의 지상과제가 된 것 같은 시대에, <베테랑2>는 뚝심 있게 제 갈 길을 간다.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책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은데, <베테랑2>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 그리고 폭력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베테랑>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어 ‘학폭’ 문제에 시달린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리하여 2편에서도 다짜고짜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올려 훈계하던 아버지이자 경찰인 서도철이, 이제 그 정의와 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1편에서 오팀장(오달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람 패는 게 좋아서 경찰이 된” 서도철이 진지하게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적 제재를 중요하게 다루는 2편에서, 아들 캐릭터를 통해 ‘학폭’ 문제까지 건드린 것이 결코 테마의 초점을 분산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과 12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현실의 조두순을 떠올리게 하는 전석우(정만식) 만큼이나, 우리 현실에서 사적 제재의 공감 요소가 가장 큰 학폭 문제를 어렵사리 자신의 혈연과 연결시킨다. 여기서 1편에도 등장한 전석우는 서도철이 그때 자신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그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며 트라우마까지 안겨준 인물이며, 어느 순간부터 연쇄살인범은 심지어 자신의 강력 추천으로 직장동료가 된다. 뭐랄까, 연출자가 관객에게 친숙한 전편의 주인공을 왜 이리 힘들게 만들까, 싶었다. ‘내 깡패 같은 경찰’을 넘어 ‘성숙한 어른’이 되고자 하는 2편의 서도철을 통해, 여태껏 이 장르에 헌신해 온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류승완 감독의 액션에 대한 서명도 확실하다. ‘아트박스 사장님’ 마동석 배우를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배출했던, 1편의 클라이맥스 액션신이 펼쳐진 명동 거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남산타워에서 펼쳐진 액션신이 일단 가장 놀라웠다. 거의 모든 액션신을 CG로 매만지는 시대에, 수십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쉴 새 없이 현장을 통제해야 촬영이 가능한 그곳에서 심지어 추격전을 벌인다. 이미 인파로 가득한 그 신의 첫 쇼트부터 제작팀의 탄식이 환청으로 들릴 정도였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어딘가 다른 경로로 진입했으되 ‘역시 류승완은 류승완이다!’라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야 하나. 더 놀라운 건 등장인물의 복장부터 스타일링 자체가, 안전장치 없이 주위 지형이나 건물과 사물을 이용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곡예 액션 ‘파쿠르’ 스타일이 펼쳐지리라 예상했건만, 극장에 편히 앉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정강이 통증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끊임없이 계단을 굴러 내렸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액션스타 성룡을 두고 ‘중력의 지배를 받으며 하강하는 영웅’이라 말해온 류승완 감독 특유의 리얼한 중력의 액션 법칙은 <베테랑2>에도 적용된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결국 정반합의 ‘류승완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은 바로 라스트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워커홀릭들의 세계다. 그건 류승완 감독 자신이 워커홀릭이라서 그럴 것이다. 이전작 <부당거래>(2010)의 세 남자 최철기(황정민), 주양(류승범), 장석구(유해진)는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지, 누가 더 악당인지 경쟁하는 영화였다. <베를린>(2013)의 표종성(하정우)과 정진수(한석규)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생활 하는 가장들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감독의 얘기는 <베테랑>으로도 이어졌다. 출근하여 홍삼즙을 들이키며 통화하는 오팀장의 피곤한 얼굴은 물론, 지하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라 이중삼중 평행주차를 해놓은 서도철의 아파트까지 굳이 보여준다. 늘 불규칙하게 출퇴근하는 광역수사대 형사라 일상적인 주차 문제까지 만만치 않으리라. 그렇게 집에 왔더니 맞벌이하는 아내(진경)는 힘든 일과를 끝내고 마스크팩을 붙인 채 캔맥주를 마시고 있다. 특히 서도철과 오팀장은 물론 광수대 총경(천호진)까지 가세하여 서로 자기가 힘들게 형사 생활했다며 왕년의 부상 부위를 경쟁하듯 드러내며 다투는 광경은 압권이었다. <베테랑2>의 ‘본색’도 결국 마찬가지다. 도입부 작전에 투입되기 직전, 좁은 승합차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강력범죄수사대 경찰들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삼단봉이나 수갑이 아니라 컵라면이다. 국물에 입도 대기 전에 뛰쳐나가야 할 거라는 건 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와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 바로, 모든 사건이 종료된 다음 서도철이 난간에 푹 꺼지듯 걸터앉아 내뱉는 진한 한숨이다. 앞서 구구절절 얘기한 것처럼 속편이 1편으로부터 경로를 이탈했고, 빌런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었으며, 정당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적 제재의 윤리가 어떻고 정리는 거 다 떠나서 ‘이제 좀 앉아야겠다’라는 순간이다. 그처럼 이번 영화에 대한 감상도 솔직히 간단하다. 그저 베테랑이 베테랑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