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보름 동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베테랑2>가 6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베테랑2>를 보면서 현실의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에서 3D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2014)에서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단편 <유령>도 떠올랐지만,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도 떠올랐다. 한국 독립영화 역사의 어떤 ‘신화’처럼 존재하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1997년 부산단편영화제에 류승완 감독의 단편 <패싸움>이 공개된 이래 1999년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단편 <현대인>, 그리고 거기에 <악몽>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까지 3년에 걸쳐 작업한 4편의 단편을 모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제목으로 정식 극장 개봉에 이르렀다. 새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떠오른 이유는 그의 ‘초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후 그가 만든 모든 장편들이 결국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실린 4개 단편으로부터의 확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흥미로운 것은 <베테랑2>의 고등학생 아들 서우진(변홍준)과 경찰 아버지 서도철(황정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를, 당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배우 겸 감독 류승완이 모두 각각 ‘연기’한 바 있다는 점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지난 2019년에 개봉 2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한 적 있으니 꼭 한 번 재감상 혹은 첫 감상을 권한다. 한편, 최근 개봉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장건재 감독이 마지막 단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배우로 출연한 바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당구장으로 한정된 공간을 정교한 액션의 합으로 가득 메운 1부 <패싸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두운 기억을 통해 호러 장르를 끌어들인 2부 <악몽>, 형사 석환(류승완)과 건달(배중식)의 대결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낸 3부 <현대인>, 헛된 꿈을 안고 범죄조직에 들어간 고등학생 상환(류승범)이 그저 ‘칼받이’가 되어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4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그렇게 네 개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1981)처럼 16밀리로 작업하여 극장에서 상영한 경우이며, 단편 <신세계>로 시작하여 릴레이처럼 3개의 단편을 이어붙인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1984)처럼 단편들을 묶어 장편으로 완성한 경우이기도 하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가 된 단편 <패싸움>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은 물론이고 그해 출품한 모든 영화제에서 다 떨어지고, 1년이 지나서야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알려졌다. 아예 영화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지만, 1999년 당시 ‘영화마을’의 지원 감독으로 뽑혀 만든 단편 <현대인>이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큰 힘을 얻게 된다. 게다가 <패싸움>은 4백만 원의 자비를 들여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가 남긴 16밀리 자투리 필름과 빌려온 카메라로 완성했으며, <현대인>은 아내인 강혜정 대표의 적금을 깨서 만들었다. 이처럼 3년에 걸쳐 작업한 4편의 단편을 모아 정식 극장 개봉에 이른 것은 ‘개인의 의지’와 ‘시대의 변화’가 멋진 조화를 이룬, 2000년대 한국영화를 열어젖힌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피땀눈물로 완성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당시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젊은 기운으로 충만한 영화로 기억된다. 각기 다른 접근법으로 완성된 4개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영화를 즐길 줄 아는 감독의 승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환경의 열악함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각기 다른 시도를 새겨 넣게 했다. 물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신화로 자리매김한 더 큰 이유는, 그 속을 꽉꽉 채운 류승완 감독의 장르적 개성 때문일 것이다. 세계영화사를 가득 메운 거장들의 리스트보다 1970년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활력, 보다 더 가까이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액션영화의 쾌감에 경도된 그는 연출은 물론 직접 주연배우로 출연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까지 선보였다. 바로 거기에는 장르적 희열과는 거리가 멀었던 당대 한국영화의 박제화된 감각을 일거에 깨우는 생동감이 숨 쉬고 있었다

당시 류승완 감독은 (마치 타란티노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농담처럼 ‘표절의 왕’이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딱딱한 논리로 영화를 구성하지 않는 영화광의 깊은 애정이 묻어나는 고백과 다름없었다. 실제로 그는 액션 연출에 관한 한 성룡의 영화를 교본으로 삼아, 그 액션 장면을 모아 재편집하고 모두 그리기까지 하며 연구했다. 당시까지 그저 관객으로만 존재하던 장르영화광이 산업의 전면에 등장하는 최초의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에게 성룡의 영화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현대인> 후반부에서 대결을 부감 쇼트로 담아낸 것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의 영향이고, 마지막 이야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전투 상황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담아낸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 받은 영감이 표출된 것이다. 또한 이후 저작권 문제로 최종적으로 편집되긴 했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는 오우삼의 <영웅본색>(1986)의 한 장면이 삽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단순한 ‘영화광의 영화’를 넘어 깊은 설득력을 제공하는 지점은, 바로 감독 그 자신의 밑바닥 정서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목소리다. 실제로 그는 4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당시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동생 류승범에게 연예계를 갱스터 세계에 비유해, 그것이 결코 만만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서 만들었다. 그 지옥과도 같은 죽음의 순간에는 예기치 못한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의 막막한 두려움, 자기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세계의 참혹한 정경이 엄습한다. 별다른 대사나 부가 설명이 없어도 그 상황 자체가 그냥 이야기 그 자체가 된다. 한편으로 그 순간은 새로운 한국영화가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령 <악몽>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흥행감독이자, 당대 젊은 영화감독들에게 든든한 형 혹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이장호 감독이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로 우정출연한다.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영화의 풍경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나 할까. 영화 속에서 모두가 죽고서야 마무리된 1990년대의 끝자락, 2000년대 한국영화의 신인류가 바로 그렇게 새로운 장르적 감각으로 등장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세대를 불러낸 간절한 주문과도 같았다.

봉준호 학생이 스틸 사진 찍은 류승완의 최초 영화 <변질헤드>
류승완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합쳐진 4개의 단편 이전에 만든 작품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3인조>(1997) 연출부로 참여하기도 전에 만들었던 최초의 단편 <변질헤드>(1996)다. 그 스스로 ‘폭력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힌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석환’으로, 이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류승완 감독이 직접 연기한 형사 이름과도 같다. 평화로운 아침의 약수터에서 석환 앞에 난데없는 극우 보수주의자와 기독교 광신도가 나타나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도무지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석환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는 것이 <변질헤드>의 알려진 시놉시스인데 필자 역시 이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 한편, 자신의 첫 작품에 애정이 없는 것이야 아니겠지만 그는 종종 <변질헤드>에 대해 ‘창피한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변질헤드>를 보고서 “류승완에게서 일찌감치 감독의 싹을 봤다. 나는 <변질헤드>가 너무 좋은데 그(류승완)는 별로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했고, 역시 그 시기의 류승완을 알고 지냈던 봉준호 감독은 “류승완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변질헤드> 촬영 현장에 내가 있었다. 묘한 박력이 있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꽤 잘 찍었다. 숲속 촬영 현장을 찾아가 찍은 스틸 사진은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승완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진짜 열정적으로 디렉팅을 한다”고 했다. 어쨌거나 기록상으로 <변질헤드>는 장준환 감독이 촬영을 맡았고 이무영 감독은 배우로 출연했다. 또 기획자로 이름을 올린 강혜정은 바로 현재 자신의 영화사 ‘외유내강’을 함께 이끌고 있는 아내 강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