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베테랑2>가 개봉 엿새 만에 누적관객 수 400만을 넘겼다. 지난해의 <서울의 봄>과 올해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 <파묘>보다도 빠른 추세이다. 성공적인 오프닝 스코어로 <베테랑2>의 감독 류승완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추석 명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매력적인 캐릭터와 맛깔나는 명대사로 여전히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베테랑>의 속편은 전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제목의 숫자를 떼고 보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전편의 덕을 보겠다면 하지 않을 선택이다. <베테랑2>의 류승완 감독은 여러 차례 "재탕하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그는 전편의 성공에 확신이 아닌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는 2024년의 새로운 <베테랑>의 세계관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9년의 시간 동안 그는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일까.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내 관객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주변 반응을 느꼈나. (지난 9일, 당시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 정해인 배우 등은 CGV용산아이파크몰 IMAX관 언론시사회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해당 인터뷰는 개봉 전 진행됐다.)
<베테랑2>의 아이맥스 첫 상영이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지 보느라 솔직히 반응을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조마조마하면서 봤다. (웃음)
속편이 나오기까지 9년이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사연이 길다. <베테랑>은 풍족한 영화가 아니었다. 예산이 많지 않아서 재벌가를 묘사하는 데에 애를 먹기도 했다. (웃음) 게다가 배급사의 1번 타자 영화가 아니다 보니 개봉이 밀리고 밀려서 정신 차리고 보니 여름에 가 있었다. 그래서 400만 명만 들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개봉하니 그 3배가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최종 관객수 1341만 명). 차기작을 만드는 데에 큰 부담감이 생겼다. 그럼에도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베테랑>에 대한 애정도가 높아서 자연스럽게 서도철의 뒷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형성되었다. 현장에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의상을 보관했다.
<베테랑2>는 전편과 결이 매우 다르다. 9년의 세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
<베테랑>은 나를 분노하게 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영화 속에 녹여 해소한 작품이었다. 분노를 힘으로 달려서 만든 작품에 많은 관객분들이 열광해 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세대들이 <베테랑>을 보고 우리 사회 현상에 <베테랑>을 소환하는 경우가 생기더라. 일종의 ‘밈’으로 베테랑의 장면들을 사용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굉장히 불편해졌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분노를 순간적으로 해소하고 넘어가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섬뜩했던 몇 개의 경험들이 있다. 내가 어떠한 사안에 대해 확 분노를 일으켰다가 시간이 지나고 비난했던 가해자가 사실은 가해자가 아닌 경우들이 있었다. 그때 감정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비난했던 자신을 변호하고 있더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라는 식이다.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그 사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내 분노의 기준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잘못된 신념은 굉장히 위험하지 않은가.

이번 작품에는 형사 서도철의 가정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도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요하게 풀어내 이유가 있나.
전편에서는 서도철이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때려서 깽값 무는 건 참아도 쥐어 터져서 병원비 내는 건 못 참는다"라는 말을 한다.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관객들이 많이 웃기도 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지점을 서도철에게 반영하고 싶었다.
서도철은 세계 평화가 아닌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이것이 난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도철이 돌아가야 할 곳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가정에서의 희로애락은 서민 영웅으로 서도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대사는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는 말이다.
서도철을 통해 ‘사과하고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귀한가’,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어른은 얼마나 멋있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시리즈물이기에 전편과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베테랑> 시리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이다. <베테랑>의 핵심은 주인공 서도철과 다른 인물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것들이 쌓이는 것이다. 때문에 서도철과 그 팀원들이 변동 없이 등장하고 여타 캐릭터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전편에서 명성 일보 기자 박승환 역을 맡은 배우 신승환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맞게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정의부장으로 등장하고 극동 화물 소장 전석우 역의 배우 정만식 역시 여전히 얄미운 인물로 등장한다.

<베테랑2>의 화려한 액션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액션신을 연출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베테랑2>는 전편과는 달리 시원한 느낌표를 찍기보다는 물음표를 던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액션씬에서 영화적 체험을 전달하는 것은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편에서 서도철이 소화전에 찍힐 때 그 반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서도철이 아플수록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보고는 이번 편 역시 제대로 된 액션을 보여드리고 싶었다.서도철의 관절 건강은 좀 안 좋아질 수 있지만...(웃음)
오프닝 시퀀스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헌사이다. 더해 전편을 보셨던 관객분들이 진입하기 수월하도록 만들어놓은 애피타이저와도 같다. 남산 액션씬은 파쿠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추격신을 만들고 싶었다. 수중 격투신은 마치 히어로 영화처럼 거대한 악과 싸우는 서도철의 팀원들의 동선으로 구성했다.

<베테랑2>는 가장 큰 빌런인 ‘해치’에 대해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분명 해치라는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성을 해놓았을 텐데 그것을 극에서 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해치’라는 인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단서가 있는 시나리오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을 활용하지 않은 건 해치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이 사라진다. 가장 중요한 형태의 공포는 실체가 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베테랑2>를 만들면서 이 근원을 알 수 없는 악으로부터 발생하는 현상을 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해치 역의 배우 정해인에게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배우 스스로도 어떤 혼란의 상태에 있기를 바랐다.
전편의 빌런 조태오(유아인)와 이번 편의 빌런 박선우(정해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1편의 빌런 조태오는 스스로 악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 중 폭행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의 얼굴을 잡고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조태오의 입장에서 배려이다. ‘어른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니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정글이다’를 알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조태오는 딜레마가 없다.
그런데 박선우는 그 안에 딜레마가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신념을 정의로 삼아 움직이지만 사실 박선우는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중들이 공분하는 대상을 처형한 후 그 무고함을 알려서 그들의 혼란을 즐기는 것이다.
배우 정해인을 박선우 역으로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시동> 촬영장에서 정해인 배우와 처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정말 바른 사람이더라. “어떻게 인간이 이 정도로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역시 다산 정약용의 자손은 다르다. (웃음)
그런데 나는 이런 흠집 하나 없는 깨끗한 사람을 보면 무서울 때가 있다. 요즘 표현으로 ‘맑은 눈의 광인’같달까. 정해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이 생겼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떠봤다.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해소한다고 하더라. 정말 최악의 방법이다. (웃음) 이러한 정해인의 모습이 박선우와 맞닿는다고 느꼈다. 깨끗하고 맑은 모습 안에 위태로운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 있다고 느껴졌다. (그때 정해인 배우가 인터뷰 현장에 나타났다.) 저 맑은 눈을 봐라. 난 저런 모습이 정말 싫다. 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웃음) 촬영 감독님이 정해인 배우의 클로즈업을 매우 좋아했다.
사실 정해인 배우가 <베테랑2>에 합류하는 데에 너무 부담을 가졌다. 그래서 황정민 배우랑 함께 MT를 갔다. 그때 정해인 배우의 부담감을 많이 덜어주는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조인성 배우다. “류승완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라더라. 고마웠다. (웃음)

<베테랑3>에 대한 계획이 있나.
<베테랑2>가 손익분기점이라도 넘어야 뭘 얘기할 수가 있다. 말만 해놓고 잘 안되면 너무 속상하지 않나. 하지만 3편에 대한 중요한 스크립트를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