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박도신 직무대행, 이하 부국제)가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의 개막작은 <전,란>(감독 김상만)이다. 평민에서 일순간 노비가 된 천영(강동원)과 그가 몸종으로 보필하는 무신가 외아들 종려(박정민)는 유년 시절을 함께하며 누구보다 가까운 동무가 된다. 하지만, 집안의 노비들이 란을 일으켜 종려의 모든 식솔이 죽임을 당하고, 종려는 이 모든 것이 늘 노비에서 면천되기를 꿈꿨던 천영의 짓이라고 오해한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종려는 선조의 호위무사로, 천영은 의병으로 각자의 싸움을 하고 마침내 만나 서로에게 칼끝을 겨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면서 일찌감치 화제가 된 <전,란>은 호화 출연진으로 관객의 눈을 홀리기 충분하다. 출신이 노비일 뿐 기품과 기백이 넘쳐흐르는 검객 천영은 강동원 배우가, 우정과 분노로 휘청거리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무사 역은 박정민 배우가, 고집스러우면서도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선조 역에는 차승원 배우가, 의리 있고 담력 있는 여의병 범동 역에는 김신록 배우가, 양반 출신으로 평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애롭고 실력 있는 의병장 김자령 장군에는 진선규 배우가, 교활하면서도 유능한 일본 무사 겐신 역에는 정성일 배우가 분했다. 여기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감독 이은, 1998)의 미술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해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2000)로 대종상 미술상을 수상한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화려한 캐스팅, 전통 사극이 주는 스케일, 안갯속에서 펼쳐지는 3인의 검투 등 영화에 몰입하게 할 요소는 차고 넘치지만, 기자회견장에서는 ‘부국제가 개막작으로 OTT 플랫폼 작품을 선정한 이유’를 묻는 질문이 계속됐다. 지난해 내홍을 딛고 영화제를 출범시킨 부국제가 개막작으로 OTT 플랫폼 넷플릭스 영화인 <전,란>을 선정하면서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통상 부국제 개막작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고민하는 지점들을 담은 독립영화를 선정해왔다. 여기에 배우들의 미세한 감정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는 스크린이라는 물성이라는, ‘영화 개념’에 대한 논쟁까지 이어질 수 있다. 스타의 환한 웃음과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던 제29회 부국제 개막작 <전,란> 기자회견 현장을 중계한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습니다. 감독님부터 배우님들 모두 부산에 오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상만 감독 한 십 년 만에 다시 영화를 찍게 됐는데, 기대감이나 설렘 같은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도 있습니다. 그래도 훌륭한 배우들과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나네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동원 배우 개막작에 선정돼서 오랜만에 영화제를 찾게 돼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박정민 배우 부산국제영화제에 몇 번 와봤는데, 개막식은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어요. 배우들과 같이 만든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돼 오게 돼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웃음)
차승원 배우 <전,란>에서 백성은 생각 안 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선조 역할을 맡은 차승원입니다.(웃음)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네요. 박정민 배우 이야기대로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김신록 배우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수 있어서 너무 영광입니다. 저도 역시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웃음)
진선규 배우 일단 좋은 날씨에 부산에 내려오게 돼서 너무 좋습니다. 개막적으로 선정된 것도 영광스럽고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정성일 배우 좋은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을 잘 보내고 가겠습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자막이 나오는데요. 어느 정도 실화에 기반해 출발한 영화인가요?
김상만 감독 임진왜란이라는 시대 배경 자체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임진왜란, 선조 시대라는 것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이야기죠. 그러니까 실화 기반이라기보다는 배경 정도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들은 좀 실으려고 했어요.

두 주인공인 강동원 배우와 박정민 배우는 워낙 검술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많은데요. 인물 캐릭터를 검술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액션 연기를 했는지 궁금해요.
강동원 천영은 자유분방한 검을 쓰는 인물이죠. 게다가 자신이 상대했던 인물들의 검술을 바로 흉내 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천재검사에요. 영화에서 천영은 여러 인물들과 싸우는데요. 그때그때 상대방에 대한 분노나, 혹은 수련할 때의 즐거운 마음 등 다양한 감정이 있었어요. 무술감독님과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담아서 연기하려 했습니다.
박정민 종려는 천영과 헤어지기 전에는 비슷한 검술을 쓰죠. 7년 정도 왕의 호위무사를 하면서 군대 안에서 실력을 갈고닦습니다. 천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검술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감독님, 액션팀과 상의를 많이 했는데요. 그 결과 종려는 천영보다 좀 더 굵고 큰 검을 쓰게 됐어요. 검을 머리 위에서 아래로 그러니까 세로 공식으로 보통 썼는데, 이후에는 가로로 가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부국제 개막작으로 넷플릭스 영화가 선정됐다고 알려졌을 때 논란이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국제 개막작으로 부산을 찾은 감독님과 배우들의 소감이 궁금해요. 또 한국 영화가 힘들다고 하는데, 부국제 개막작 선정 이후 어떻게 더 나아지길 바라는지도 이야기해주세요.
김상만 네, 뭐 최근 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시대마다 그런 고비가 한 번씩은 있었죠. 시대가 변하면서 생기는 그런 통과의례가 아닐까 생각해요. 영화 자체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감히 오만한 말이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그 생명을 유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동원 성심성의껏(!) 답하겠다고 하신 김신록 배우님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웃음)
김신록 (…)저요?(객석 웃음) <전,란>이 전 세계 190개 국가에서 공개될 거라고 들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사랑해주시면 넷플릭스뿐 아니라 한국영화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전,란>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박정민 아, 음.(웃음) 현장에서 항상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치열하게 영화 만드니까요. 저희는 그 노력을 계속해나갈 거 같고, 그 노력을 놓치지 않는 한 영화제에 영화를 들고 오는 좋은 영화를 만들 거고요, 그렇게 한국 영화가 많은 분들께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엔딩씬에서는 세 명이 검을 겨룹니다. 통상 두 명인데, 세 명이라 감독님에게는 큰 도전인 장면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검사를 연기한 강동원, 박정민, 정성일 배우는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했는지도 함께 설명해주세요.
김상만 엔딩씬에서 3인이 싸우는 건 시나리오에서부터 있었어요. 다만 ‘3인이 싸운다’라고만 적혀 있었죠.(웃음) 그걸 어떻게 설명하기가 힘들긴 했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 2008)을 레퍼런스로 보긴 했어요. 그런데 총격 액션이라 이걸 검술로 구현해내긴 어려웠어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가 안개입니다. 안갯속에서 세 명이 싸울 때, 때로는 서로의 상대가 계속 바뀌면서 오리무중의 느낌도 표현하고 싶었고, 또 어떤 순간에는 싸움에서 격리돼 어디서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고독감을 안개 속이라면 표현할 수도 있을 거 같았어요. 마지막에 7년의 애증을 풀어내는 부분에서 그 안개가 걷히면서 최후의 결말을 향해 가는 극적 효과를 같이 거둘 수 있을 거란 판단에 해무 액션을 선택했습니다.
캐릭터를 말씀드리자면, <전,란>은 그 시대가 가진 사회 시스템, 계급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는 걸 다들 느끼셨을 거예요. 그 시대의 각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걸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받고 보니 배우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했는지도 듣고 싶네요.(웃음)
정성일 겐신은 무를 중요시하는 사무라이 역이긴 한데요. 전쟁이란 걸 통해서 실력을 쌓고 누구와 대결을 하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무사도 정신이 아닌, 약간 살인과 살육으로 변화하는 인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자만하고 오만해서 무너져내리는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했죠.
진선규 김자령 장군은 의병장이지만 양반 출신이죠. 의병을 모아서 전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가장 이상을 꿈꾸는 사람 같았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기 안위만을 생각하는 선조와 왕권에 충성심을 가진 양반이기도 했습니다. 그 두 개를 다 가져가려고 했던 인물이지만, 마지막 대사에서 보면 좀 더 왕권과 정치적인 부분에 기대려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게 잘못됐다는)걸 의병을 통해 깨우치긴 합니다. 감독님과 여러 논의를 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김신록 범동은 의병이면서 김자령 장군을 무척 좋아하고 따르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김자령은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라면, 범동이 믿는 건 생각, 관념 사상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산천초목, 이웃을 위해 싸우는 인물이죠. 원래 대본에서 범동은 남자였대요. 김상만 감독님이 캐스팅을 제안할 때 “그 시절 여자로 의병에 합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가족, 이웃, 산천초목을 살육하는 모습, 전쟁을 겪으며 정말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선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체제를 위해 싸우진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체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차승원 선조는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캐릭터라 경우의 수가 사실 별로 없었습니다.(웃음) 두 개만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아주 고약한 맛 그리고 왕으로서 위엄 있는 맛이요. 뱀이 똬리를 틀듯 왕 속에 자리 잡아서 한 씬 안에서 그게 양쪽으로 파생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캐릭터로 구현했으면 좋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하면서 대본을 봤습니다. 감독님과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자칫 잘못 기울기가 조금만 기울어지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테니, 그 경계를 잘 타야 했던 캐릭터였습니다. 다행히 감독님이 여지를 많이 열어주셔서 풍성하게 캐릭터의 살을 입히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화제가 됐는데요. 박 감독의 연출 제안을 오케이한 결정적 이유가 있나요? 또 <전,란>은 정확히 계급과 신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나요?
김상만 시대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개 있을 수 있죠. 계급에 대한 건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각 캐릭터들이 그 시대에 대한 관점을 다 다르게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걸 잘 녹인 부분을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걸 잘 담아내고 싶어서 오케이한 거죠. 하나 더 말씀드리면, 개인적으로 사극 연출은 거의 안 해요. 한다고 해도 고증이 선명한 조선시대는 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런데 임진왜란이라는 메인이벤트 7년을 빼고, 오히려 그전과 후만 다루는 부분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셨나요?
김상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미술감독을 할 때 처음 뵀죠. 당시 입봉을 앞두고 있었는데, 결국 엎어진 영화가 있었고요. 여튼 감독으로서 스승 같은 분으로 생각합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조언을 해주셨고요. 각색을 거치며 디벨롭해나가는 과정에서도 그 바쁘신 분이 새벽에 일어나 이야기를 주셨어요. 그 에너지가 참 존경스러웠죠. 현장에는 많이 못 오셨는데, 한 번 오셔서 아주 큰 도움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건 강동원 배우가 말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강동원 제가 “장원급제!”라고 대사를 치고 모니터를 보러 갔는데요. 박찬욱 감독님이 갑자기 “장(:)원급제야, 단음이 아니라 장음”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김상만 그날 이후 강동원 배우가 자신의 모든 대사에 장음, 단음을 다 체크해왔어요.(웃음) 최종 편집본에서도 박찬욱 감독님이 도움을 주셨죠. 제가 좀 관성적으로 편집한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하나하나 뜯어보시고는 “이렇게 열심히 잘 찍었는데 왜 편집을 이렇게 했어?”라시며 하나하나 다 살리라고 하셨죠.
차승원 제가 지금 박찬욱 감독님과 작업 중입니다. 내레이션을 하는데 “00가 중요합니다”라는 대사가 있길래 그냥 했어요. 그런데 박 감독님이 그 앞에 도저히 포인트를 둘 수 없는 대사에다가 포인트를 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 거에 아주 심하게 꽂히신.(객석 웃음)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했는데, 지금 강동원 배우 에피소드를 들으니 그런 면이 제게도 있었'다아아아(:)' 라고 말씀드리려 마이크를 들었습니다.(웃음)

<전,란>을 이끌고 나가는 감정은 ‘분노’ 같습니다. 그 외에 어떤 감정들을 녹이고 싶었나요?
김상만 반란 측면에서 분노 이외의 감정 있느냐는 질문인데, 그 역시 시대상에서 온다고 봐요. 천영은 본인이 평민이었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건 기존에 가진 사회 시스템에서 당연히 가지고 있던, 왕, 귀족, 평민, 노비 시스템을 인정하는 거죠. 그런데 그 베이스를 인정하고 가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충격을 받은 듯 깨집니다. 더 이상 이 시스템을 바라만 볼 수 없다는 천영의 대사는 단순한 분노만은 아닌 거 같아요.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관점을 드러내는 대사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범동 역의 김신록 배우는 홍일점이기도 하지만 의병으로 일당백 역할을 해냅니다. 후반부에는 리더가 된다는 암시도 나오고요. 실력 있는 여자 캐릭터로 나온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신록 김자령 장군의 오른팔이 천영이라면 왼팔은 범동이죠. 무예가 뛰어난데,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익힌 자기만의 싸움을 구사할 줄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액션 스쿨을 다니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도리깨로 곡식을 터는 인물인데요. 깨를 털던 평범한 여성이 이걸 무기로 들고 나와 어떻게든 싸우려는 모습에서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미술팀이 저의 신체 사이즈, 움직임 반경, 도리깨의 탄성 등등 많은 부분을 고려해 여러 차례 도리깨를 만들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또 책으로 익힌 게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헤같은 것들이 눈빛에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마지막에 ‘세상이 두루 하나’라는 ‘범동계’라는 대사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역할을 하게 돼 뿌듯합니다.

강동원 배우는 예전 <군도: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 2014)에서는 양반 역할로 도포를 입고 액션을 했죠. <전,란>에서는 몸종 역할로 허름한 옷을 입고 액션을 했어요. 차이가 어땠나요?
강동원 제가 몸종, 노비 역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되게 좋았어요. 정말 해보고 싶었고요. 양반 역할은 좀 제약이 있습니다. 덜 자유롭고, 말도 조심해서 해야 하고요. 감정 표현도 절제하면서 양반으로서 기품, 품위를 유지해야 하죠. 정민씨 몸종을 하면서 매우 편하고 자유롭게 연기해서 좋았고요.(웃음) 그래서 연기할 때도 기존에 하던 것보다 더 자유롭게, 액션도 더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겐신의 통역사가 의도치 않은 웃음 포인트가 됐습니다. 배우들은 현장에서 어떠셨나요?
박정민 사실 별로 신경을 안 썼던 거 같아요. 기억이 잘 안날 정도로요. 영화적으로 재밌는 장치가 될 수 있긴 하지만, 당시는 당연했던 일이었을 테니까요. 이건 오히려 정성일 형님께 여쭤봐야 할 거 같은데요.(웃음)
정성일 저도 마찬가집니다. 일본인이다 보니 당연히 통역이 있었고요. 고한민 배우가 그 재미있는 부분을 웃음 포인트로 잘 살린 거 같아요. 저는 연기할 때 그냥 자연스럽게 통역사가 통역해주는 말로 들었습니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부국제 개막작이 넷플릭스 작품으로 선정됐다는 건데요. 심지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기도 합니다. 왜 지금 부국제에서 동시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 <전,란>을 처음 후보작으로 봤을 때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재밌게 봤어요. 대중적으로 다가가기에도 좋은 영화라 생각했고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도 사실 모험이긴 한데요. 그조차도 시도해볼 만한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부국제가 그동안 개막작으로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를 선정해왔다는 그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대중성을 고려할 경우 OTT에도 문호는 개방돼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가 재밌고, 대중성을 고려해서 개막작으로 선정했다고 하셨는데요, 지금까지 개막작은 동시대의 생각할 거리 던져주는 거였는데, 재미와 다른 어떤 의미가 <전,란>에 담았길래 선정된 걸까요?
박도신 20년 가까이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면서 어떤 작품을 봤을 때, 꼭 개막작이 되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은 영화가 바로 <전,란>입니다. 그러면 저는 OTT든 영화든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거죠. 굳이 의미를 찾으려면 다른 상업영화도 많죠. 하지만 <전,란>의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 감독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영화와 OTT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촬영한 화면이 커다란 스크린에서 어떻게 비춰질까죠. 사소하긴 해도요. <전,란>은 기존 영화 제작 방식과 다른 차이점을 두고 촬영했나요?
김상만 OTT 작품들이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면 논란이 늘 있어왔죠. 저는 이제 그 논란 자체에 질문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이즈가 문제일까요? 제가 어렸을 때 100인치 스크린이 있는 극장에서 봤던 영화도 정말 좋았거든요. 이제는 집 TV 사이즈가 100인치에 육박합니다. 영화라는 것이 상영 조건과 반드시 일치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할 시기인 거 같아요. 또 여전히 관객들이 극장을 가고 영화제를 찾잖아요? 그들이 기대하는 건 한 공간에서 온전히 그 작품에 집중하는, 공동의 경험이겠죠. 그러면 저 같은 연출자나 제작자들이 어떻게 영화를 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