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고픈 중년 아저씨가 식당에 들어선다. 늘 그랬듯 혼자다. 사전 조사한 메뉴판을 마치 고3 수험생이 공부하듯 뚫어져라 쳐다본다. 요리 가짓수는 많지만,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분량은 정해져 있다. 마침내 아저씨는 대학 입학원서를 내는 것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려 음식을 주문한다.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도 그의 머릿속에 독백은 떠나지 않는다. 어떤 맛일까, 정말 맛있을까. 그러면서 주방 문틈으로 언뜻 보이는 요리사의 손길을 놓치지도 않는다. 마침내 음식이 테이블에 차려지면, 거룩한 의식을 진행하듯 한입 한입 음식을 꼭꼭 씹으며 음미한다. 깨끗이 그릇을 비우고 마지막 독백을 남기며 일어선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2012년부터 TV도쿄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가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감독 마츠시게 유타카)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관객을 만났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이 시리즈는 2023년 10번째 시즌까지 방영됐고 12년동안 대체불가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 역을 쭉 맡아온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직접 각본, 주연, 연출을 맡아 마침내 극장판으로 제작됐다.

드라마와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드라마에서 고로는 식당에 들어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만 있으면 극적 사연이 없어도 그만이었다. 영화는 고로의 맛집 기행에 특별한 사연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옛 친구 딸의 연락을 받고 파리에 도착한 고로는 죽기 전에 어린 시절 먹었던 어떤 국물의 맛을 꼭 다시 맛보고 싶다는 노인의 부탁을 듣게 된다.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고로는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없는 그 국물의 정체를 찾아 일본을 헤매고 폭풍 속에 표류하다 한국까지 가게 된다. 이를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영화는 TV 시리즈와 달리 극적 구조를 장착하고 코미디 요소를 강화했다. TV 시리즈의 매력이 음식 자체라면 극장판의 매력은 공감을 자아내는 웃음이다”라고 설명한다.
한일 양국에서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첫 극장판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 주연은 물론 감독과 각본까지 맡은 마츠시게 유타카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직접 연출을 해보니 상상 이상으로 힘들지만 즐겁고 스릴이 있었다. (배우를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머리를 써야했지만, 그 이상의 기쁨이 있었다. 즐거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마츠시게 유타카 감독의 기자간담회 현장을 현장 중계한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부산에 와서 어떤 음식을 드셨나요?
마츠시게 어제 저녁으로는 해운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 가서 곱창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딘지 위치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요, 가게 안에 들어서니 네 분의 아줌마가 앉아계시더라고요. 마치 고향에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영화의전당 인근에서 삼겹살이나, 삼계탕, 부추전 중에서 하나를 먹으려고 합니다.(웃음)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는 연출, 각본에 감독까지 맡으셨어요. 작업하면서 즐거웠던 점과 힘들었던 점이 궁금합니다.
마츠시게 저는 처음에는 연극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도 사실 제가 영화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왔죠. 그때는 지금처럼 유튜브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8mm 영화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자금 모으기가 힘들다 보니 연극으로 빠졌던 겁니다. 여러 경로를 거쳐서 이번에 감독이 됐는데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지만 또 즐겁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까지 시리즈에서는 스태프들이 미리 정해둔 가게에 가서 이미 다 차려진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 됐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모든 것들을 제가 생각해서 시나리오로 짜야 했으니까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써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 이상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왜 이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배우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답변을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면 제가 61살입니다. 제 남은 인생이 별로 길지는 않은데, 이렇게 즐거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쁘고, 또 저는 즐기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늘 맛있게 음식을 먹는데, 그걸 화면에서 잘 표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마츠시게 드라마가 12년 전부터 시작했죠. 사실 드라마지만 절반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음식점을 방문하고 사람이 만들어주는 맛있는 요리가 나오니까요. 그래서 그 맛있는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한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항상 스태프들에게도 말을 하는데요. 이 드라마는 ‘한 번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먹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찍어야 한다’라고 말을 하죠. 그냥 낭비가 되도록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완식을 하고 다큐멘터리로서 성립을 잘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 주요 배경 중에 한국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요?
마츠시게 저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한국의 라디오 방송을 들었죠. ‘가까운 대국’이라고 의식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실제로 한국을 와봤더니 특히 부산은 이 물고기를 식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같고, 또 기후도 비슷하고, 채소들도 비슷한데요. 맛을 어떻게 내느냐가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맛있어요. ‘바다를 건너면 이렇게 다르구나’하고 충격을 받았죠. 일본인 중에서도 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같은 재료인데도 이렇게나 맛이 달라지는, 바로 이 점이 부족한 미식가의 고로 상이 먹고 싶은 요리와 직결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프랑스에서 시작해 한국으로 건너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음식점들은 어떻게 찾으셨어요?
마츠시게 일본과 한국의 음식을 모두 다루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부터 푸드코디네이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나리오 작성 때부터 요리 전문가와 함께 한국의 여러 가지 맛을 시험해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제게 큰 로망이었거든요. 바다의 여러 마을들을 돌아보다가, 영화 모티브로 명태해장국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영화에 사용하게 됐고요. 식당과 메뉴를 푸드코디네이터들과 함께 선정했습니다.

한국 배우 중 유재명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첫 만남은 어땠는지 등 캐스팅 비하인드도 소개해주세요.
마츠시게 한국을 중심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가능하다면 한국 배우님과 같이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재작년 연말연시부터 한국 영화를 많이 보면서 배우들을 찾았죠. 그런데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 2020)라는 작품을 발견하고 정말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다음 날 바로 관계자들에게 “유재명 씨다!”라고 말했고요. 또 제가 처음으로 생각한 유재명 배우님께서 이렇게 같이 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유재명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영화에서 웃음을 많이 자아내는 파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점이, 어쩌면 제가 이번 영화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인데, 이건 유재명 배우님과 둘이서 함께 할 수 있어서 나온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 시리즈에서도 그랬고, 이번 영화에서도 정말 음식을 맛있고, 깔끔하게 드십니다. 그런데 의문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잘 드시는데, 어떻게 모델 같은 몸매를 유지하시나요?
마츠시게 체형 유지에 대해서는요. 제가 사실 살이 이렇게 찌는 체질이 아니기도 하지만, 제 하루 일과 중에 워킹이 있습니다. 해운대 해변이 굉장히 기분이 좋거든요.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심박수를 좀 높이기 위해서 6km 정도 해운대길 워킹을 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특정 콘텐츠는 사랑을 받다가도 한일 관계 때문에 인기가 식기도 하는데, 이렇게 오래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츠시게 이 시리즈를 한국, 중국, 타이완 등 동아시아의 많은 분이 즐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느껴요. 이 점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설명 드리기가 어렵네요. 일본 드라마 시리즈로 처음 시작했을 때, ‘그냥 아저씨가 혼자 밥을 먹을 뿐인데 뭐가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억지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공복 상태의 아저씨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드라마라는 거죠.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연결되는 드라마도 아닌데, 왜 인기가 있나 정말 모르겠어요.
한일, 중일 관계를 저는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도 산업도 함께 손잡고 걸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드라마를 매개로 해서 한일의 인연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사이가 좋아질 거로 생각합니다. 이 영화로 어떤 상황이 올 수 있다면, 작품을 만들어서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 인생을 바칠 겁니다. 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는 이른바 ‘먹방’ 드라마의 원조로 불리죠. 먹는 장면을 표현하는 비법이 있는지, 다른 먹방 영화, 시리즈와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설명해주세요.
마츠시게 ‘먹는다’는 행위와 ‘드라마’인데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장면임에도 그 안에 식문화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식문화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음식을 더 맛있게 찍어서 보여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절반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주인이 만든 맛있는 요리가 차려져 있고, 저는 그걸 좀 더 충실하게 먹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게 먹방 드라마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츠시게 유타카 씨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마츠시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위라 생각합니다. 여러 국가에 가서 다양한 식문화, 식습관을 경험하면서 맛있게 먹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에 와서 단 한 순간도 일본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고독하지 않게 부산에서 무엇을 먹을지, 스태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죠.
12년간 한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마츠시게 유타카 배우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마츠시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처음 이 드라마를 만났을 때 ‘이 드라마를 보고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불안했어요. 이렇게 이 시리즈가 오래 이어질 거라 생각도 못했고요. 심지어 제가 이런 기자회견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요. 꿈도 못 꿀 일이었죠. 여러 드라마 있지만 먹는 행위에 특화한 것이 제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훈련한 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 연극을 해서 이런 자리에 온 건 제 인생에 없었지만, 맛있게 먹는 걸로 인기를 얻게 되고, 최종적으로 감독이 된 건 기적에 가깝죠.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나 식당을 추천해주신다면요?
마츠시게 정말 맛있는 가게는 비밀로 하고 싶네요.(웃음) 지금 도쿄에서 새 시리즈를 촬영 중인데요. 드라마가 방송으로 나가고 나면, 아무리 ‘고로 상’이라도 예약을 할 수 없어요. 아내와 방송 나가기 전에 갈 계획입니다. 나중에 방송 나간 후에도 정말 가고 싶으시면 살짝 물어봐주세요.(웃음)
아까 영화의 절반은 다큐멘터리라고 이야기를 하셨죠. 음식 먹는 장면에서 연기는 다큐가 아닐 거 같아요. 연기는 어떻게 하려고 하시는지, 이번 영화는 시리즈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마츠시게 이 영화는 지금까지 TV 드라마와 다르게 실제 현지 프랑스, 한국 마을에 가서 영화에 적합한 곳이 어딘지 보고 골라서 결정했습니다. 주인에게 부탁하고 허가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다큐적인 부분은 좀 덜어냈습니다. 제가 출연도 하고 감독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앵글도 고르다 보니 픽션이 좀 많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찍은 노하우가 있으니, 그점을 영화에도 접목시키자는 마음이 있었던 거죠. 어렵진 않았어요. 이야기의 골격을 잘 짜고, 다양한 음식에 녹아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녹였죠. 러닝 타임 안에서 잘 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고, 관객들에게 선보이는데, 평가를 받게 되겠죠. 이에 대해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밥은 같이 먹을 때 맛있다’는 인식이 있어요.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혼밥은 한국에서 어려운 미션이기도 했죠. 마츠시게 유타카 씨에게 혼밥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마츠시게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가 시작된 2012년 전에도 혼밥이 그렇게까지 쓸쓸한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혼밥이 터부시된다는 걸, 드라마 덕분에 나온 반응으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반찬 그릇에 담긴 김치 같은 걸 나눠 먹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요. 드라마 덕분에 이제는 혼밥이 부끄럽지 않게 됐다는 걸 듣고는, 그걸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감사했습니다. 고로 상은 다른 사람의 반찬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요리하는 사람의 동작을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해요. 그 식당을 처음 방문하기 위해, 또 음식 나오기 전까지 두근두근한 감정을 고로 상은 늘 독백으로 이야기하죠. 혼밥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번 먹어보고 좋았다면, 다음에 ‘같이 가자’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먹는 것에 대한 자유도는 혼밥이 허용되면 더 높아질 거라 봅니다. 한국에서 금기시됐던 혼밥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제게는 기쁜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