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 복수가 될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즌을 들고 왔다. 2023년 공개한 <코미디 로얄>의 후속 시즌 <코미디 리벤지>다. <코미디 로얄>의 방영 이후 11개월 만에 새로운 코미디 서바이벌이라니. 꽤 야심 차게 막을 올린 전작이 다소 시시한 결과를 빚었는데 '리벤지'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기다리는 시청자가 필자뿐은 아니길 바라며, <코미디 로얄>과 <코미디 리벤지>의 핵심 포인트를 짚어본다.
2023년 11월 28일, 넷플릭스가 6부작으로 공개한 <코미디 로얄>은 오랜만에 돌아온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코미디로 서로의 유머 센스를 가르는 프로그램은 과거 2006년경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웃음충전소>의 '타짱' 코너를 제외하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을 정도로 굉장히 드문 포맷이다. 물론 <코미디빅리그>가 방청객 투표로 코너 간 순위를 가리고, 실제로 코미디언들의 시장을 활성화시키긴 했지만 실제 서바이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장기 프로그램에 알맞게 서바이벌 형식을 차용한 정도였다. 사실 사람마다 웃음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웃음으로 서열을 가린다는 것부터가 굉장히 난제이니 코미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점점 쇠퇴하는 방향에서 나오기 힘든 포맷이었다.

그렇기에 <코미디 로얄>은 코미디 서바이벌이란 포맷부터 화제를 모았다. 거기에 힘을 실은 건 출연진이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롱런하며 명실상부 한국 코미디의 대부로 자리한 이경규를 시작으로 여전한 입담을 보여주는 탁재훈, 문세윤, 이용진 등이 마스터로 참여하고 황제성, 이은지, 이상준 등 공개 코미디에서도 활개쳤던 코미디언들이 출연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정영준 대표를 중심으로 곽범, 이창호, 엄지윤, 이재율, 이선민, 조훈 등 '대유튜브 시대'의 코미디를 꽉 잡고 있는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의 합류였다. 요컨대 공개 코미디 시절부터 유튜브 스케치코미디까지의 코미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출연진을 구성한 셈이다.
그러나 <코미디 로얄> 방영 후, 그 화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꽤 알차게 구성한 출연진은 프로그램의 포맷과 그렇게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공개 코미디 방식, 스탠드업 코미디 방식, 자유 무대로 구성한 3막은 몇몇 명장면을 남기긴 했지만, 각 출연진이 각자의 무대에서 보여주던 코미디보다 훌륭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마스터를 중심으로 팀을 짜서 제작진의 미션을 수행하는 구성은 출연진의 창의성을 독려하긴커녕, 그들이 평소 하던 코미디의 열화판을 내도록 만들었다. 프로그램이 공개된 후 가장 화제가 된 건 이경규의 '극대노'와 정영준 대표의 "내가 전국노래자랑에 힙합을 들고 왔나"라는 이상한 변명이었으니 말 다 한 것이다.

<코미디 로얄>이 웃기지 않았던 걸 단순히 '능력 부족'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흔히 말하는 '신인 발굴'도 아니고 롱런한 공채 코미디언부터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인플루언서형 코미디언까지 있으니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꽤 재밌게 본 시청자이지만, 전반적으로 프로그램의 형식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먼저 프로그램의 가장 큰 틀이지만 가장 '왜?'라는 의문을 가진 건 마스터와 팀이란 구조다. 마스터라고는 하나 그가 팀원을 직접 선정하는 방식도 아니었고, 전체적인 개그의 방향성도 정하는 것도 아녔다. 그러다보니 한 팀이라고 해도 각자 구사하는 코미디가 불일치하는 경우나 코미디의 전반적인 수준이 급격하게 차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개인플레이도, 팀플레이도 아닌 어정쩡한 지점들이 이어지며 시청자들에게까지도 이들 간의 '어색함'이 간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또 코미디의 영역을 다르게 잡아 코미디언들이 주특기 분야에서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세팅한 구조도 다소 아쉬웠다. 1부에 해당하는 무대 코미디, 2부에 해당하는 로스팅/스탠드업 코미디, 3부에 해당하는 슬랩스틱 겸 자유 무대는 원활하게 진행됐다면 매번 다른 재미를 시청자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부는 촉박한 준비 시간에 출연진들의 자기복제 정도에 그쳤고, 2부는 로스팅(상대를 디스하는 방식의 코미디)이란 단어의 자극적인 부분만 부각됐다. 그나마 '웃음 참기'를 기반으로 한 3부는 매 순간 웃음을 유발하지만, 반대로 '웃음이 터지기 전까지' 끝나지 않아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함이 길어졌다.


위의 상기한 내용만 보면 필자가 왜 <코미디 리벤지>에 (또) 속으려 하지 싶을 것이다. <코미디 로얄>에서 그나마 건질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나 할까. 특히 이번 시즌에서 가장 기대 중인 건 전편에서도 하드캐리 수준의 코미디를 보여준 엄지윤이다. 엄지윤은 2부 로스팅 무대에서 '문세윤 스타일리스트'를 연기하며 문세윤을 저격하는 상황극을 펼쳤는데, 능청스러운 연기와 탄탄한 구성으로 홀로 무대를 이끌었다. 억지로 팀워크를 끌어올리느라 코미디를 놓친 여타 팀 무대보다 빛났다. 탁재훈팀의 4경규, 문세윤의 뻥준호(봉준호), 이재율의 이경규 로스팅도 적정 선에서 웃음을 이끌어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웃겨야만 한다'는 목표 하나로 모든 수단을 동원한 3부 초반. 나선욱의 빵빵이, 신규진의 자르반 34세, 최지용의 (초필살기) '모르모트' 권해봄 PD 등 이어지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이경규의 쐐기를 박는 패러디까지. 마지막 한풀이하듯 쏟아지는 '분장쇼'가 일품이다. 다만 6부작이란 긴 흐름 속에서 딱 이 정도만 기억난다는 것부터 가 실패지만.
결국 이번 <코미디 리벤지>는 적당히 즐길 만했던 <코미디 로얄>을 토대로 어떻게 한층 업그레이드했는지가 관건이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론칭할 권리를 받은 우승팀이 이번 <코미디 리벤지>를 추진했으니 분명 <코미디 로얄>보다 코미디언들이 날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앞서 말한 문제점 중 '마스터' 제도가 사라졌고, 팀마다 각자 특색을 살릴 수 있는 팀원을 구성했으니 코미디의 웃음 강도도, 그 맛도 한층 나아졌으리라 믿어본다. 특히 전작에서 엄청난 굴욕을 당한 곽범-이선민-이재율이 이번 무대에서 (본가 유튜브에서만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지, 새로 합류한 멤버 중 유튜브 인플루언서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경욱·김해준·임우일·송하빈이 얼마나 활약할지. <코미디 리벤지>는 오는 10월 15일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