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거물로 떠오른 트럼프의 청년 시절을 다룬 문제작 <어프렌티스>가 10월 11일 북미 개봉에 이어 10월 23일 국내 개봉한다. <어프렌티스>는 영화 <경계선>, <성스러운 거미>의 알리 아바시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뉴욕 부동산 업자의 아들로 허드렛일을 한 시절부터 최고의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트럼프와 그를 패배를 모르는 인간으로 키워 낸 변호사 로이 콘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프렌티스>는 2024년 5월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단숨에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곧 다가올 미국 대선에 영향을 줄 것을 걱정한 트럼프 선거캠프 측은 영화를 두고 “오랫동안 폭로되어 왔던 거짓말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순수한 허구”라고 지칭하며, “쓰레기통에 버려야 마땅”하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 개봉 시에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영화의 제작 과정은 공개 전에도 순탄치 않았다. 청년 트럼프의 성공기로 오해하고 투자를 결정했던 한 투자자가 진의를 알고 난 후 투자를 철회해 버렸다. 여러 외부의 압박에도 끝내 <어프렌티스>는 북미 개봉을 이뤄냈다. 알리 아바시의 눈으로 바라본 당대의 미국, 그 속에서 점차 변해간 인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뉴욕 부동산 업자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세바스찬 스탠). 그는 트럼프 빌리지 구역의 아파트를 돌며 세입자들에게 밀린 집세를 받으러 다닌다. 아버지가 맡긴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던 그는 호화 사교 클럽을 수시로 드나들며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그렇게 클럽에서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던 그는 일명 악마의 변호사로 불리는 로이 콘(제레미 스트롱)의 눈에 띄게 된다. 마침 재판을 진행 중이던 트럼프는 정·재계 고위 인사 및 마피아를 변호하며 업계의 거물이 된 그를 변호사로 고용하고 싶어 한다. 로이 콘은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열망에 가득 찬 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조력자로 나선다. 트럼프는 로이 콘에게 불법과 선동, 법의 허점과 시스템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점점 괴물 같은 거물로 성장해 나간다.
수습생 시절의 트럼프?!

영화의 제목 ‘어프렌티스’는 트럼프가 진행자이자 공동 제작자로 나선 TV 프로그램의 이름을 빌려온다. TV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 무명의 사업가의 비즈니스 능력을 평가하고 조언을 건넸던 트럼프는 영화 속에서 로이 콘의 어리숙한 수습생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를 연출한 알리 아바시 감독과 각본을 맡은 정치 기자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셔먼은 영화의 제목에 트럼프의 완성되지 못한 시절의 은유와 함께 풍자 어린 시선을 담아냈다.
<어프렌티스>는 로이 콘과 도널드 트럼프의 흥미로운 관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리숙하고, 최소한의 옳고 그름을 가렸던 청년 트럼프는 로이 콘을 만나면서 악한으로 거듭난다. 로이 콘은 트럼프를 백전불패의 인물로 만들기 위해 ‘승리를 위해 정한 법칙 3계명’을 닳도록 가르친다. 그 첫 번째는 공격, 공격, 또 공격하라, 두 번째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부인하라, 세 번째 절대로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 그의 법칙을 체화하며 트럼프는 날로 후안무치의 인간이 되어간다. 로이 콘의 법칙 3계명은 훗날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선의 작금의 사태로 인해 생겨난 포스트 트루스 현상(Post-truth, 객관적 사실보다 신념이나 감정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사회상)의 시작점을 보는 것 같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트럼프의 청년 시절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가 청년이었던 시절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덜 완전한 사람이었고, 덜 공격적이었으며, 보다 야심이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 인터뷰를 보면 말투는 부드럽고 약간의 망설임도 보여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과 상반된 모습으로, 영화화로 이끈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뼛속까지 트럼프와 로이 콘으로 거듭난 두 배우의 명연

영화는 트럼프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양한 프리즘으로 비추어 그려낸다.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진 아들이자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한 남자와 같은 인간적인 면모부터 성공한 사업가이자 선동가, 사기꾼까지 여러 모습을 겹친다. 트럼프 역을 맡은 배우 세바스찬 스탠은 깊은 연구를 통해 영화 전반에 걸쳐 변화하는 입체적 인물의 다양한 결을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스탠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트럼프의 인터뷰를 모조리 읽었다. 그는 트럼프의 외형과 닮아 보이기 위해 2달 만에 7kg를 증량하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세바스찬 스탠은 “차에 있을 때도, 걸을 때도, 쇼핑할 때,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끊임없이 트럼프에 대해 영상을 찾아보며 연구했다. 뼛속까지 캐릭터의 일부가 되려면 순간마다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트럼프와 로이 콘이 ‘르 클럽’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은 두 인물의 권력관계를 드러낸다. 클럽의 구석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트럼프와 달리 로이 콘의 곁에는 그의 사람으로 가득하다. 원형 탁자를 둘러싸고 빼곡히 들어앉은 사람들의 중앙에서 로이 콘은 마치 그곳의 주인인 양 여유롭게 트럼프를 주시한다. 반대로 자신을 거대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해줄 파트너를 찾기 위해 안달하는 트럼프의 모습은 로이 콘의 거대한 성 안에서 길 잃은 외지인과 같다.

실존 인물 로이 콘은 매카시즘 광풍에 힘입어 명성을 쌓은 대표적인 반공주의 인물이다. 그는 냉전 시대 소련에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는 간첩 혐의를 받고 있던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에 깊이 관여해 사형을 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 몰락한 이후에도 그는 정·재계 고위 인사와 마피아의 법률 자문을 맡으며 두려운 존재가 된다. 영화에서는 그의 비열한 면모와 함께 트럼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클로짓 게이로 한평생 살았던 그의 모습도 담아낸다. 로이 콘 역을 연기한 제레미 스트롱은 그를 “악랄하고 무자비하고 잔인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괴물”로 해석했다. 동시에 그는 로이 콘을 자신의 정체성을 결함으로 여긴 인물이자 트럼프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 안의 결점을 채우려 했던 복잡한 인물로 그려낸다. 또 그는 로이 콘의 독특한 목소리를 표현해 내기 위해 실제로 로이 콘을 프로파일링했던 작가를 만나 조언을 얻었다.

이바나 트럼프 역은 배우 마리아 바카로바가 맡았다. 알리 아바시가 이바나 역으로 마리아 바카로바를 캐스팅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영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의 속편에서 그녀는 미국에 온 카자흐스탄 방송국의 리포터의 딸로 등장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없애는 영화에서 바카로바는 도널드 트럼프의 측근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속여내 가짜 인터뷰에 응하게 한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진행된 가짜 인터뷰 자리에서 줄리아니는 영화 촬영 도중인 줄 모르고 바지에 손을 넣는다. 이후 영화는 줄리아니의 장면으로 인해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되었다. 마리아 바카로바는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유력 후보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거대한 착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시작하여 1980년대 레이건 시대로 이어지는 <어프렌티스>는 미국의 거대한 착오를 그리면서 트럼프 정치의 기원을 암시한다. 책을 집필하려는 극 중 트럼프는 대필 작가와 함께 책 내용에 대해 의논한다. 그는 작가에게 로이 콘에게 들은 승리의 법칙 3계명을 전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세 가지의 법칙은 더 지독하고 악랄하게 변한다. 작가는 트럼프의 승리 법칙을 들으며 “25년간 해왔던 미국의 외교 대책처럼 들린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는 헤게모니를 쥔 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겨냥한 알리 아바시의 날 선 비판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