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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파격, 2024년 제77회 칸영화제의 이모저모

이진주기자
칸영화제(사진=IMDb)
칸영화제(사진=IMDb)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5월은 전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칸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달이다. 벌써 77회를 맞은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 14일 개막했다. <바비>(2023), <작은 아씨들>(2019) 등의 연출로 주목받은 감독 그레타 거윅이 심사위원장을 맡고 캉탱 뒤피외 감독의 <더 세컨드 액트>가 개막작으로,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파격적인 사상 첫 '트랜스젠더 배우의 여우주연상 수상' 소식부터 문제적인 소녀시대 출신 배우 윤아의 '인종차별 논란'까지… 2024년을 장식한 칸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자.

 

MTF 트랜스젠더 배우, 첫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의 칸국제영화제가 올해 이례적인 시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제77회 칸국제영화제는 한 작품에 출연한 4명의 주연배우 모두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고 그중에는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 배우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광을 누린 작품은 <에밀리아 페레스>로 주연배우 아드리안나 파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 조 샐다나 등 4명이 공동 수상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는 1958년 <생명에 가까이>, 2006년 <귀향> 이후 출연한 모든 주요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었다. 심사위원장인 그레타 거윅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하나의 유닛처럼 느껴졌다. 만약 이들이 떨어져 있다면 함께 만들어낸 마법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상의 이유를 밝혔다.

배우 카를라 소피아(사진=IMDb)
배우 카를라 소피아(사진=IMDb)

이번 여우주연상 결과 중 눈길을 끄는 점은 첫 트랜스젠더 수상자의 탄생이다. <에밀리아 페레스>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인 카를라 소피아는 스페인의 MTF 트랜스젠더 배우이다. 그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눈물을 훔치며 “세상에는 성전환 여성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상을 모든 성전환 여성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뿐 아니라 심사위원상과 사운드트랙상 등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관심을 모은 <에밀리아 페레스>는 탈옥을 위해 성전환을 감행한 멕시코 갱단 보스와 그를 돕는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이다. ‘트랜스젠더’, ‘여성 서사’, ‘뮤지컬 영화’ 등 낯설고 파격적인 소재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번 칸영화제를 사로잡아 영화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기저귀를 찬 푸틴과 아내 성폭행하는 트럼프, 정치계 겨냥한 영화들

영화 〈푸틴〉(사진=감독 파트릭 베가 유튜브 캡쳐)
영화 〈푸틴〉(사진=감독 파트릭 베가 유튜브 캡쳐)

거침없는 칸영화제의 행보는 정치권을 겨냥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과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가 그 타겟이다. 칸국제영화제의 필름 마켓에 등장한 영화 <푸틴>은 실제 푸틴의 모습과 똑같은 얼굴의 배우가 등장한다. 푸틴이기도, 푸틴이 아니기도 한 그의 정체는 딥페이크 기술로 구현한 배우. 딥페이크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로 영화에서는 타 배우에 푸틴의 얼굴을 합성해 구현해 냈다.

영화 <푸틴>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재임기까지 약 60여 년의 일대기를 담았다. 영화에서는 기저귀를 차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푸틴의 모습과 러시아의 리듬체조 선수 출신 정치인이자 푸틴과 내연관계인 알리나 카바예바와의 불륜 등 괜스레 관객들의 등골이 서늘해질 장면을 스스럼없이 담았다.

영화 〈어프렌티스〉(사진=배우 마리아 바칼로바 SNS)
영화 〈어프렌티스〉(사진=배우 마리아 바칼로바 SNS)

지난 20일(현지시각)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어프렌티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은 작품이다. 집권 전 부동산계의 거물이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1970~1980년대 뉴욕의 거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그런데 현재 이 작품에 트럼프가 소송을 예고하며 <어프렌티스>는 순식간에 미국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영화에 담긴 트럼프의 충격적인 모습 때문이다.

영화 <어프렌티스>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마약을 복용하거나 지방 흡입 시술을 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외모 비하를 당했다는 이유로 전 아내인 이바나를 성폭행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충격을 준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선거 캠프는 이에 대해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영화 <어프렌티스>에 투자한 친트럼프 사업가 댄 스나이더(미 워싱턴 풋볼팀 전 구단주)가 <어프렌티스>가 트럼프의 긍정적인 면을 담은 전기영화라 착각해 지원했지만 가편집본을 보고는 개봉을 막기 위한 정지 명령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직 미국 배급사를 찾지 못한 <어프렌티스> 팀은 11월 미국 대선 전 개봉이 목표라고 말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이란의 태형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 특별 각본상 수상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사진=IMDb)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사진=IMDb)

이란의 거장 모함마드 라술로프. 2017년 <집념의 남자>로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고 2020년 영화 <사탄은 없다>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 '황금곰상'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자국의 탄압과 이에 대한 예술적 저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회파 감독’이라는 별명으로 알 수 있듯 무함마드 라술로프는 그간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를 렌즈에 담으며 이란 정부의 끈질긴 억압 속에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2010년 당국의 허가 없이 영화 촬영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고 2022년에는 아바단 쇼핑몰 붕괴 사고에 대한 당국의 대응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감생활을 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집념의 남자>로 2017년 칸영화제에, <데어 이즈 노 이블>로 2020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받았지만 당국의 조치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지난 5월 13일(현지시각) 자신의 SNS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그는 “길고 복잡한 여정 끝에 며칠 전 유럽에 도착했다. 감옥에 갇힐 것이냐, 이란을 떠날 것이냐를 놓고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난 망명을 택했고 비밀리에 이란을 떠났다”라며 성명을 올렸다. 신작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으로 실형 선고를 받은지 5일 만이다. 이란 법원은 지난 8일(현지 시각) 여배우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촬영했다는 점, 영화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이 국가 안보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로 제작된다는 점을 들어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에게 징역 8년과 태형, 재산 몰수형을 선고한 바 있다.

세계적인 감독이지만 정작 자국에서는 사랑받지 못한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은 이번 칸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특별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교도소 공무원 이만이 사건 기록을 보지 않고 사형 선고에 서명해야 한다는 것에 갈등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색인종 배우에게만 포즈 제재? 경호원 ‘인종차별’ 논란

배우 켈리 롤랜드와 논란의 경호원(사진=NBC NEWS 유튜브 캡쳐)​
배우 켈리 롤랜드와 논란의 경호원(사진=NBC NEWS 유튜브 캡쳐)​

제77회 칸국제영화제가 갑작스러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레드카펫 행사 중 한 경호원이 유색인종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과도한 제재를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스타들은 입장 후 취재진들을 향해 포즈를 취한다. 이후 뤼미에르 대극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 퇴장하기 전 또 한 번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해당 경호원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던 유색인종 참석자들에게 빨리 안으로 들어갈 것을 재촉했다. 경호원의 이 과도한 행동의 피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 배우 켈리 롤랜드와 도미니카 출신 배우 마시엘 타베라스 그리고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 배우 윤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소녀시대 출신 배우 윤아 인종차별 논란(사진=엑스)
소녀시대 출신 배우 윤아 인종차별 논란(사진=엑스)

특히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사와 폰티이스카는 문제의 경호원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경호원이 사와 폰티이스카의 포즈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허리를 감싸 안아 극장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이에 사와 폰티이스카는 반발했고 끌려가지 않으려 주저앉기도 했다.

이후 사와 폰티이스카는 이 같은 경호원의 행동이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칸영화제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10만 유로 (약 1억 5000만원)의 피해 보상 소송을 걸었다. 그는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경호원으로부터 ‘폭력적인 도전’을 받았다. 이 물리적인 힘의 사용은 급성 통증과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했다”며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조직위원회와 접촉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