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90년대생 여성배우④: 아요 에데비리] 〈더 베어〉의 똘똘한 셰프 시드니와 아요 에데비리가 걸어온 길의 공통점

김지연기자

확실히 달라졌다. 영화, 드라마의 신작들을 슥 둘러만 봐도 이젠 젊은 배우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연예계의 첨병이나 다름없는 할리우드는 진작부터 90년대생 배우들에게 배턴이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그들 중엔 이미 주목받으며 하나의 브랜드처럼 자리 잡은 배우도, 이제 막 스크린 전면에 서면서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배우도 있다. 씨네플레이는 이 흐름을 다시금 들여다보고자 각자 주목하고 있는 90년대생 여성배우들을 선정해 소개하기로 했다. 이 흐름을 만들어낸 1990년생 4인방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니퍼 로렌스, 마고 로비, 엠마 왓슨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이 시리즈는 1996년생 3인방 젠데이아, 플로렌스 퓨, 안야 테일러 조이로 시작해 매주 월요일 연재될 예정이다. 이번 주인공은 아요 에데비리다.


〈더 베어〉 아요 에데비리
〈더 베어〉 아요 에데비리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재미있게 봤다면, <더 베어> 정주행은 필수 코스다. 국내에서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볼 수 있는 FX <더 베어>는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드라마다. <더 베어>는 세계 최고의 셰프가 얼떨결에 고향의 한 ‘동네 식당’을 운영하게 되며 그곳을 발전시켜 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더 베어>는 매일이 전쟁터와 같은 레스토랑의 주방을 다룬 드라마인 동시에, 캐릭터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작년 <성난 사람들>(Beef)과 함께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휩쓴 드라마 <더 베어>(The Bear)는 굵직한 스타 배우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아요 에데비리(Ayo Edebiri)는 <더 베어>로 가장 크게 도약한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아요 에데비리는 2023년 에미상 여우조연상, 2024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부문) 등을 수상했다. 아요 에데비리는 1995년생으로, 이제 막 만 29세가 된 배우다. 

 

사실 배우 아요 에데비리가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수상하기까지의 삶은 그가 연기한 <더 베어> 속 인물 ‘시드니’와 똑 닮았다. 우선 <더 베어> 속 시드니의 삶을 되짚어 보자. 시드니는 미국 최고의 요리 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하고도 시카고의 동네 식당, ‘더 비프’의 ‘수 셰프’(부주방장) 자리에 지원한다. 요리 학교의 학비를 모으려 UPS(택배 회사) 일을 할 정도로 요리에 ‘진심’이었던 시드니는 단지 ‘더 비프’가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식당”이라는 이유로 그곳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 다만 시드니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수 셰프’ 대접을 받은 건 아니다. 식당에서 원래 일하던 직원들은 가뜩이나 나이가 어린 시드니가 주방에 ‘시스템’과 ‘전문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마뜩잖다. 시드니는 직접 식당의 개선 방안을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 카미에게 전달하는 한편, 주방의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발전을 독려하며, 그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

 

<흑백요리사>에 비유하자면, 아요 에데비리는 ‘흑수저’(인종에 관한 말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둔다) 출신이다. <흑백요리사> 속 많은 ‘흑수저’ 셰프들이 그랬듯, 아요 에데비리 역시 처음부터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난’ 인물이 아니었다. 마치 시드니가 주방에서 자신의 역할을 직접 만들고 레스토랑의 가치를 새로 세워 나간 것처럼, 아요 에데비리 역시 자신의 길을 직접 만들어 왔다. (파인다이닝이 아닌 동네 식당에서 수 셰프로 일한 시드니 역시 말하자면 ‘흑수저’ 출신이겠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아요 에데비리. (사진=유튜브 코미디 센트럴 채널 캡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아요 에데비리. (사진=유튜브 코미디 센트럴 채널 캡처)

<더 베어> 속의 아요 에데비리만 본 시청자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아요 에데비리는 사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국의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연설을 하며 ‘라이브 공연’의 재미를 맛보며 자랐다. 교회에서 한 ‘공동의 경험’에 재미를 붙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즉흥극 클럽에 가입해 친구들과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곤 했다. 그러다 뉴욕대학교에 진학하고, 교육자와 같은 실용적인 직업의 길로 들어 설려는 무렵, 성공한 흑인 여성 코미디언을 만나고 나서야 코미디를 생업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전공을 교육에서 극작으로 바꾼 후, 친구들과 함께 창작 활동 공동체를 만들며 직접 코미디를 쓰고 연기하기에 이른다. 

아요 에데비리가 뉴요커지에 쓴 유머 글
아요 에데비리가 뉴요커지에 쓴 유머 글

 

이후 아요 에데비리는 그가 뉴요커지(The Newyorker)에 쓴 유머 글 ‘뉴욕 박물관과 데이트하고 싶다면’(So You Want to Date a New York Museum)을 본 채용 담당자의 제안으로, ‘코미디 센트럴’ 채널의 작가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요 에데비리가 뉴욕대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던 창작 활동은 2020년, 드디어 빛을 본다. 미국의 ‘코미디 센트럴’ 채널에서 <아요와 레이첼은 싱글이다>(Ayo and Rachel Are Single)를 방영하게 된 것. <아요와 레이첼은 싱글이다>는 에데비리의 뉴욕대학교 시절의 절친한 친구인 레이첼 세노트가 그와 함께 공동 각본과 주연을 맡은 코미디 시리즈다. 이후 레이첼 세노트와 아요 에데비리의 공동 작업은 영화 <바텀스> <시어터 캠프>로까지 이어졌다.

 

〈아요와 레이첼은 싱글이다〉(Ayo and Rachel Are Single)
〈아요와 레이첼은 싱글이다〉(Ayo and Rachel Are Single)

작가로서의 작업은 FX 시리즈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What We Do in the Shadows), 넷플릭스 코미디 애니메이션 <멀리건> 등으로 꾸준히 지속되었다. 또한, 넷플릭스 시리즈 <빅마우스>에서 ‘미시’ 역의 목소리 연기를 한 것을 계기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글로리 그랜트 역, <닌자터틀: 뮤턴트 대소동>의 에이프릴 오닐 역, <인사이드 아웃>의 부럽이 역 등의 목소리를 맡으며 성우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아요 에데비리가 연출한 〈더 베어〉 시즌 3의 6화 '냅킨스'
아요 에데비리가 연출한 〈더 베어〉 시즌 3의 6화 '냅킨스'

그리고 아요 에데비리는 애플tv+ 시리즈 <디킨슨>의 작가이자 배우로 일하며 마침내, <더 베어>의 감독이자 작가,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퍼 스토어를 만났다. 크리스토퍼 스토어는 <더 베어>의 시드니 역으로 단박에 아요 에데비리를 떠올렸으며, 아요 에데비리는 극작을 바탕으로 한 그의 뛰어난 캐릭터 이해력과 몰입도, 연기력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아요 에데비리는 <더 베어>의 시즌 3, 6화를 연출하며 감독 데뷔에 나서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스토어는 아요 에데비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너는 감독이야’ 라고 말했다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연출 제안을 했다고. 

 

사진=아요 에데비리 인스타그램
사진=아요 에데비리 인스타그램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 배우, 감독, 제작자, 성우 등으로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차세대 할리우드 멀티테이너 아요 에데비리. 그는 “예술가로서, 그저 사람들이 내가 표현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여 준다면 좋겠다”라며 향후의 활동 역시 제약을 두지 않을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식당의 개선 방안을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 간 <더 베어> 속 시드니처럼, 준비된 자는 직접 기회를 만들기 마련이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아요 에데비리의 능력은 그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물임을 시사한다. 이 독특하고도 새로운 할리우드 스타의 탄생이 더없이 반가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