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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 〈스터디〉로 공포영화 선보인 김희천 작가 ②

씨네플레이

※ 해당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에서 인터뷰 1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일 무서운 영화 장면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지나고 보면 안 무섭더라고요. 그중에서는… (잠시 생각)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2001)에서 귀신 나오는 건 무서운 것 같고요. <스터디>에서 오마주 한 거라고 볼 수 있는 <엑소시스트 3>(1990)의 간호사 장면은 제가 정말정말 좋아하고. 처음 봤을 때 진짜 무서웠거든요. 제일 무서웠던 건 어릴 때 본 <주온>(2002)에서 이불 속에 있는 거, 그거는 진짜 이불 덮고 자기 싫더라고요. 제가 <곡성>(2016)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또 그만한 작품이 없나 싶기도 한 게 요즘 보면 꽤 많은 감독들이 <곡성>의 영향을 받은 걸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곡성>은 진짜 위악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워낙 나홍진 감독님도 밀어붙이는 걸로 악명이 높으니까. 서양의 공포영화감독들이 <곡성>에 너무 영향받은 걸 보면 좀 재미있어요. 엉성한 부분이 있어도 잘 굴러가는 게 신기하고, 끝까지 볼 수 있는 이상한 영화 같아요. 최근에 본 두 영화가 되게 <곡성> 같았어요.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라는 아르헨티나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올해 제일 무서운 영화라고 하던데 저는 너무 별로였거든요. 저는 아르헨티나에서 좀 살았으니까 그 말들을 좀 알아듣잖아요. 연기가 최악이었어요. 저는 극 중의 위기에 아직 공감을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 오버를 하면서 연기를 해요. <롱레그스>는 좋았는데 그건 <곡성>과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1997) 등 아시아 공포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어요.

 

〈희로〉
〈희로〉
〈엑소시스트 3〉
〈엑소시스트 3〉

 

위악스러운 공포영화는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터스크>(2014)예요. 약간 블랙코미디에 가까운데, 팟캐스트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이상한 사람들을 막 찾아다녀서 팟캐스트로 인터뷰를 하는데, 누군가가 연락해서 바다코끼리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다코끼리에 너무너무 집착해서 팟캐스트 하는 주인공이 찾아오면 납치해서 바다코끼리로 만들어요. 여기저기 다 벗겨서 바다코끼리 모양을 만들고, 상아를 꼽고 그러거든요. 제 생각엔 <인간 지네>(2009)의 블랙코미디 버전인 것 같아요. 뭘 저렇게까지… 싶은 게 <터스크>는 좀 잘 됐어요. 결말을 보면 감독이 이걸 웃기려고 만들었구나 하게 돼요. <호스텔>(2005)은 무섭다기보다 징글징글 하니까 그런 것 같고.
 

〈터스크〉
〈터스크〉


<스터디>에서 사람이 세 번째로 사라지는 대목은 혹시 “선풍기 켜놓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에서 비롯된 블랙유머인가 싶었어요.


말씀하시니까 제가 숨길 수는 없는데 (웃음) 잠자는 장면을 찍어 보고 싶어서 그냥 찍어봤는데 선풍기가 털털털 돌아가는 것이 주는 감기 걸릴 것 같은 마음이 있잖아요. (웃음) 그런 느낌이 그냥 좋아서 찍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선풍기 보자마자, 같이 만든 사람들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하고, 그냥 환상을 봤다고 하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누가 그거 떠올려주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굉장히 중요한 장면은 또 아닌데 화면 자체는 좀 재미있게 찍힌 것 같아서. 처음 찍어보는 거니까 찍어보고 싶은 것들 찍는 과정에서 그 친구 보고 그냥 누워 있어보라고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긴 거예요.

첫 번째 사라지는 시퀀스와 두 번째 사라지는 시퀀스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세 번째는 두 번째에 바로 이어지게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게 공포영화에 많이 쓰이는 클리셰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마치 꿈일 수도 있는 것처럼 대충 넘기는 장면이라서 그냥 잠자는 걸 넣었는데, 학생이 사라지는 장면을 실제로 본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구나 그냥 모호하게 두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럼 앞에 학생이 사라진 장면도 마치 그냥 꿈에서 꾼 것처럼 붙어 있으면 모호하게 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선풍기 앞에서 사라지는 장면은 누가 봐도 꿈꾼 것처럼 배치가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 앞에 바로 두면 그것 역시 꿈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들이 사라지는 형상은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요.

사라지는 것 외에도 AI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여러 가지 테스트해봤어요. 예를 들면 영상에 사람을 바꿔치는 것도 AI가 사람의 외곽선을 딴 다음에 그걸 다른 3D가 아닌 2D 이미지의 사람으로 바꿔보라고 한다거나. 래퍼 릴 야티(Lil Yachty)의 라이브 영상에 히틀러, 조커, 심지어 민희진 씨로 바꾼 것도 있었잖아요. 제가 미술 작업할 때 외곽선 문제에 대해 다룰 때 하고 싶었던 거랑 같으니까 테스트해보다가 지우는 걸 하게 된 거죠. 지우니까 도리어 외곽선이 강조되는 게 아니라 상대편 외곽선의 경계와 배경이 흐려지면서 사라지는 부분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희천 작가가 언급한 릴 야티의 라이브 영상 장면
김희천 작가가 언급한 릴 야티의 라이브 영상 장면

 

사라지는 형상이 꽤나 러프해요. 그래서 더더욱 괴상하게 보이고요. 더 정교하게 할 수도 있는 건가요?

정교하게 할 수는 있을 텐데 어렵기는 어려울 거예요. 저는 그 사라졌을 때의 텍스처 같은 것들이 아름답게 나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부러 덜 자연스럽게 지운 건 아니에요.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을 거예요. 상대편과 배경이 뭉개지는 이유가 사라졌을 때 그 뒤에 무엇이 그려져야 될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 섞이는 거거든요.

코치와 더불어 인상적인 캐릭터가 아들이 실종된 어머니예요. 사실상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인물인데, 특별한 연출 같은 게 있을까요?

어머니 역할은 배우가 아니고, 김유림 시인이에요. 우선 그분의 목소리가 좋아서 부탁했고요. 시인을 섭외한 이유는 제가 어떤 텍스트를 썼을 때 그걸 그 사람이 충분히 자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거든요. 어머니가 의뭉스러운 캐릭터라고 얘기했더니, 그런 연기를 준비해왔어요. 슬프지 않고 차분한데 약간 긴장감을 유발할 수도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왔어요.

학생들이 모여서 아들 찾는 미친 아줌마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얼마 뒤 그녀가 등장합니다.

<링>을 봤는데 마지막 장면 외에는 무서운 장면이 거의 없더라고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달하는 방식을 <링>에서 많이 가지고 왔어요. 학생 둘이서 소문 이야기를 해요. 누구 죽었대 하면 그리고 곧 누가 죽어요. 그렇게 하면 앞으로의 일들은 이미 예고가 되어 있으니까 그런 장면이 없어도 사람들이 뭔가 나올 것 같은 긴장을 하는 거죠. 김유림 시인이 연기를 굉장히 무섭게 하려는 의도가 없이 해도 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녹음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굉장히 루즈해지는 거예요. 너무 차분하면 코치가 뭔가 할 거리가 없으니 압박과 밀고당기기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부분이 꽤 긴데 아무래도 화면도 없으니까. 사운드를 만들려면 배우들이 하는 행동을 맞춰서 하면 훨씬 쉬워지고 리얼해지니까 촬영까지 했어요. 마음에 들게 찍혀서 김유림 시인은 제가 지우고 이찬종 배우 혼자 대사 없이 나오는 걸로 썼어요.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사운드 디자인의 최지영 씨, 음악을 만든 이하령 씨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최지영 씨가 사운드 디자인을 해주셔서 이 작업이 가능했을 거예요. 자기가 작업한 것들을 다 들려주는데 모든 소리를 다 만들고 있더라고요. 다큐멘터리에서 지하철역 주변에 자전거 지나가는 장면이 있으면 지하철이랑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를 다 집어넣고 있어요. 촬영을 안 했어도 소리는 만들 수 있으니, 암전 부분은 그럼 화면을 안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하령 씨는 미술 하면서 음악도 하는 친구라서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니 같이 만들기에 너무 좋죠. 음악을 딱 들었을 때 공포영화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하면 공포영화들을 봐가면서 연구해서 만들어왔어요. 비트가 있어서 공포영화 음악 같지 않달지, 공포영화는 소리들의 층위가 있어서 볼륨 조절을 하면서 분위기를 만든다는 걸 깨닫는달지, 서로 이야기해가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사운드 디자이너와 음악감독이 같이 작업한 게 많았어요. 어떤 건 효과음 같은데 어떤 건 음악이기도 하고, 그게 이하령 씨가 해오던 것과 달라서 사운드 디자이너랑 협업하게 됐어요.

이번에 하나의 '스터디'를 끝내신 입장에서 발견한 가능성이 있다면.

영상 작가들은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아요. 프로덕션의 규모를 키울 것이냐 말 것이냐. 프로덕션을 키우면 소위 말하는 영상의 ‘깔’이 달라질 수 있고, 영상의 작업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규모를 어떻게 키워서 작업 방식을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겁을 먹기도 하거든요. 영화도 아니고, 영화 흉내 낸 것처럼 되는 게 많아서, 저의 과제 중의 하나였어요. ‘스터디’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사실 말 그대로 좀 덜 만들었어요. 예산이 많아지면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지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걸 가능한지 가늠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앞으로 프로덕션을 무한정 키울 생각은 없지만, 어느 정도는 수용해서 이걸 다른 출력을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지 이제 어느 정도 계산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아주아주 중요했어요. 작업을 확장할 수 있는 데에 기운을 얻었어요. 매를 먼저 맞은 느낌이랄까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미술 작업을 할 때에도 예산 범위를 넓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예산을 썼으면 이런 걸 할 수 있겠다는 테스트를 했다는 면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