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 〈스터디〉로 공포영화 선보인 김희천 작가

씨네플레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전시 포스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전시 포스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전시로 신작 <스터디>를 선보였습니다. 수상 이전부터 계획한 프로젝트인가요?

작년 초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미 앞둔 프로젝트들이 있었어요. 5월 국립현대미술관 단체전 《게임사회》와 연말 영국의 개인전을 위해 신작을 만들어야 해서 에르메스 재단 수상 전시는 거의 신경을 못 썼어요. 작년에 한 <커터3>와 <더블포져>가 유니티라는 게임 엔진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이었는데, 너무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게임 엔진은 실시간 고정시키고 조작하는 것이 목적이다보니 무빙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영상 작업은 보통 시간을 얼리는 것인데, 게임 엔진은 굉장히 불안정해요. 그 고통을 받고 올해는 게임 엔진을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촬영을 해보고 싶었어요. 2019년 이후에는 기존에 영상을 만들던 방식이 아닌 걸로 확장시키고 싶어서 음악가 이옥경 씨와 사운드 작업(<필드 기억>)을 하고, VR(<사랑과 영혼>)을 만든 적도 있고, 게임 엔진을 사용도 해봤으니, 올해는 진짜 연출하듯 작업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올해 초 에르메스 초대로 파리에 가서 로댕 미술관에 갔는데 로댕의 스터디 모델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당시에 거기서 열리고 있던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전시에서도 스터디 보드가 있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저도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니 작가가 무슨 고민을 했고 그게 어떤 선택이 됐는지,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혹은 이 생각은 대단하다 하며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게 작가로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스터디 모델을 보니 그게 가장 잘 되는 거예요. 조각이나 페인팅은 습작이라는 말로 그런 걸 많이 할 텐데, 영상 작업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스터디라는 걸 작업을 만드는 방법론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출을 한다는 건 기존에 제가 한 작업보다 예산이 훨씬 많이 드는 일인데, 그래도 미술 예산은 사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거든요. 그럼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어떤 동력을 가진 작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준비를 하게 됐죠.

그럼 <스터디>는 미완의 작품이라고 봐야 할까요?

당연히 완성된 작품이라고 생각은 해요. 기존에 해왔던 작업 중에 스스로 어려웠던 점들이 있었어요. 작업을 해 가는 과정에서 완성시키려고 하면 여기까지 닿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제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나 개념을 빼는 경우가 많거든요. 당장은 아직 모르겠지만 <스터디>는 일반적인 영화의 기준으로 봤을 땐 좀 덜 만든 부분도 있고, 테스트 촬영하듯이 찍은 부분도 있고, 화면이 없는 부분도 있으니까, 그 중에 어떤 요소들을 똑 떼어서 그걸 확장시키거나 합쳐서 새로운 작업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었어요.

학교와 레슬링을 소재로 상대선수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파리에서 스터디 모델을 보고 난 후에 잡힌 건가요?

네. 사실 제가 항상 작업 구상이 좀 오래 걸려요.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하고, 도리어 제작은 손이 좀 빠른 편이어서 후딱후딱 잘해요. 레슬링과 학생을 설정으로 한 건 아주아주 늦었어요. 스터디 작업처럼 해야겠다는 건 2월 말이었고, 레슬링을 소재로 정한 건 3~4월쯤이었어요. 6월에 전국생활체육 레슬링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이 많이 없긴 하지만 이건 스터디니까 이것저것 많이 찍어보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을 했죠. 실은 게임 엔진을 하기 싫었던 이유가 그거였어요. 게임 엔진은 맵을 만드는 데에만 몇 주가 걸리는데, 1분을 찍으면 1분짜리 영상이 나온다는 게 얼마나 효율적이야. (웃음) 그런 농담을 하면서 5월부터는 정말 준비를 빡빡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작업의 개념적인 콘텍스트가 필요할 것 같아서 레슬링 하는 분들을 인터뷰하기로 하고, 제가 다니는 체육관 관장님한테 대화를 나눠볼 분이 있나 여쭤봤는데 자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고등학교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중고등학교 레슬링 선수에 대한 리서치를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5월 20일 즈음에 한 코치 분을 소개받았는데 며칠 후에 소년체전이 있어서 바쁘다고 하셔서 그럼 그걸 찍어야겠다 했죠. 그리고 6mm 테이프가 들어가는 PD-150 카메라를 사고 스케이트보드 영상 찍을 때 쓰는 VX-2100를 빌려서, 그 두 개를 갖고 소년체전에 가서 촬영을 시작했어요. 뜻한 대로는 전혀 안 나왔는데 언젠간 쓰겠지 싶어서 찍어뒀다가 초반에 나오는 장면들이 거기서 찍은 게 많아요. 소년체전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1차 촬영하고, KBS배 레슬링 대회는 조명과 영상용 삼각대도 가져가서 2차 촬영을 했어요.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두 대회에서 찍은 이미지들은 <스터디>에서 어떻게 구성됐나요?

여기저기 섞여 있어요. 그게 기존의 작업 방식에 약간 남겨둔 부분인 것 같아요. 원래 저는 어떤 장면을 연출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관심 있던 걸 촬영하기 위해 현장에 가고, 촬영하다보면 재미있는 걸 위주로 더 찍으면서 길을 찾는 식이었어요. 찍을 수 없다면 3D로 만들었고. 이번엔 소년체전에 가서 촬영하고 촬영분을 많이많이 지켜보면서 장면들을 뽑아냈어요. KBS배 레슬링 대회 찍은 것과 별개로, 아이들이 나오는 연출 장면에서 나오는 친구 중 하나는 제가 소년체전에서 우연히 찍었던 친구여서 넣기도 했고요. 사실 소년체전에서 찍은 건 거의 못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명을 쳐서 촬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카메라만 가져갔는데 너무 홈비디오처럼 나온 거예요. 너무 쌩 화면이라 안 맞을 것 같았는데 또 어느 대목에선 가능하기도 해서 초반 여러 장면들에 붙일 정도로만 활용하고, KBS배 레슬링 대회는 계획을 세워서 찍고 마지막 장면들이나 학생들이 대회 나간 장면들로 썼어요. 소년체전과 KBS배 레슬링 대회 사이에 청량중/고등학교에선 레슬링 선수 훈련하는 장면을 기록하는 용도로 많이 찍어뒀고요.

학교 촬영은 여러 로케이션에서 찍었더군요. 서로 꽤 거리가 먼 곳에 위치했는데 굳이 나눠서 찍은 건 '이미지' 때문인가요?

협조를 받기가 아주 어려웠어요. 청량중/고등학교에서 원래 찍고 싶었고. 연습 촬영은 제가 그냥 디지털 캠코더 들고 찍는 거니까 별로 제재가 없었어요. 그런데 배우가 온다고 하고 조명을 쳐야 되는 게 있으니까 학교에서 거절했어요. 거기 학교 예뻐요. 그래서 영화 촬영에 쓰였는데 그때 약간 문제가 있었는지, 더 이상 촬영 안 하기로 했죠. 방법이 없죠. 다른 학교를 찾아갔는데 거기서는 처음엔 허락을 해준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어요. 저는 코치님이랑 얘기하고 허가를 받은 줄 알고 촬영 일주일 전에 답사를 갔는데, 일찍 가서 엇갈리는 바람에 허락은 해줬으나 아주 제한적으로밖에 못 찍게 했어요. 두세 시간 정도 학교의 레슬링장 같은 걸 찍었고요. 그리고 수원시에서 허가를 훨씬 편하게 해주셔서 나머지 촬영을 했어요.

처음 '연출'한 작품인 만큼 코치 역을 맡은 이찬종 배우의 존재가 중요했을 것 같아요. 공포영화를 생각하고 갔는데 코치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좀 당황스러웠어요. 호러라는 틀이 처음부터 흔들리는 것 같달까요.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말들도 개인적인 감정 같으면서도 작가님의 이미지에 대한 견해처럼 들리기도 해요.

이런 종류의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건 배우 때문이에요. 많은 경우에 미술 작가들이 극영화스러운 연출을 할 때 많이 미끄러지는 부분이 연기인 것 같거든요. 유명한 작가가 아주 예산이 많아서 유명한 배우를 기용할 때는 그 배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작업이 먹히는 경우가 많거나, 그렇다고 해서 독립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중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 독립영화의 ‘쪼’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이찬종 배우는 연기를 잘해서 평소 좋아하던 차에 소개를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드라마(<스물다섯 스물하나> <조선변호사> 등)에 나온 상업 배우인데 작년에 작업한 <더블포져>에서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어요. <스터디> 첫 촬영은 드라마 촬영 중간에 시간이 될 때 소년체전에 와서 코치인 척 연기를 해준 거였어요. 저는 2~3일 전에 가서 소년체전을 구경하면서 푸티지를 찍어놓고, 여기 코치들 다 흰색 잠바 입고 있으니 챙겨 와라 했죠. (웃음) 흰색 잠바 입고 운동화 신고 있으니 진짜 학생들이 인사하고 그랬어요. 우는 장면은 "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겁을 먹은 거예요. 겁먹은 연기, 큐!" 하고 지시했어요. 제가 디렉션을 많이 주는 것보다 이렇게 저렇게 시켜보고 설명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좀 있었어요. 감정의 빌드업 같은 것들이 영화라면 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게 없어도 애초에 이 캐릭터가 우울증이 있다는 걸 깔아놨으니까 슬프기도 하고, 겁에 질려 있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면서, 혹은 청순해 보이는 이미지면 좋겠다 싶어서 그런 식으로 진행했어요. 마스크가 너무 묘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예쁘장하게 생기기도 했거든요. 여성의 선 같은 걸 갖고 있기도 하면서, 남성의 잘 다듬어진 목소리이기도 하면서, 눈이 잘생긴 것 같다고 살짝 풀면 좀 나빠 보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면이 있어서 그 배우의 얼굴을 촬영하기 좋았어요.

상대선수가 사라지는 형상을 AI를 활용하셨죠. 촬영 단계에서도 그걸 의식하고 찍었나요?

아뇨. 소년체전 찍을 때 찬종 씨한테 “이유는 모르겠지만 겁을 먹은 거예요” 하면서 울면서 두려워하는 연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공포영화니까 학생과 레슬링이면 귀신이 학생들을 데려가는 것이라든가 여러 종류의 장면들이 있을 텐데, 어쨌든 감독으로서 경기를 봐야 하는 두려워서 못 보고 있는 모습을 좀 찍었어요. 그리고 청량중/고등학교 애들 훈련하는 거 한두 번 찍고 나서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보다가 AI로 지우는 게 재미있는 것 같으니 그걸 고려해서 더 찍긴 했죠.

좀 의외네요. 브로슈어 속 인터뷰에서 "상대가 사라진다"를 캐치프레이즈로 쓰고 싶다고 하셔서, 사라지는 형상을 구현하는 방식이 일찌감치 정해졌을 것 같았어요.

상대가 사라지는 걸로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사라질 수도 있고, 아이들이 어떤 것을 잡아먹힐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들이 있긴 했어요. 아이들이 사라지면 이 서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봤을 때 현재 상황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좀 있었어요. 예를 들면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그림자 같은 존재한테 잡아먹힌다면 어떨까 해서 그런 것도 해봤는데 역시 문제가 있었고. 그렇다면 아이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상대가 사라진다고 표현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아이들의 상대 또한 아이들이기도 하니까. 아이들의 상대가 사라진다고 표현했을 때 생길 수밖에 없는, 미술로서 내용을 맥락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배경이 되는 스포츠에서의 이야기가 있고 그걸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했을 때 AI 기술이 가능하고, AI가 단순히 편리한 것 말고도 지우는 방식이 사람이나 사물의 외곽선을 인식해서 계속 그걸 쫓아가서 지우는 것이니까 말이 된다고 설득된 거죠. 그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면 미술로서 작동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공포의 여러 클리셰들 중에서 기술적으로 현재 가능한 것들이랑 제가 하고 싶은 얘기랑 맞닿을 수 있는 걸 고려했을 때 상대가 사라져야 되는구나 한 거예요.

일단 제작이 얼마간 진행된 뒤에야 제대로 된 형태가 갖춰지는군요.

일부 미술 작가들은 계획한 것에서 중간에 많이 바꾸기도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모든 걸 계획해서 만드니, 방법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찍은 장면들을 보면 그때서야 뭘 찍고 싶었는지 아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과정이 필요해요. 2019년 아트선재에서 선보인 작업 <탱크>부터 같이 작업 만드는 PD가 있거든요. 그 친구는 알죠. 제가 '무슨 작업을 하고 싶은지 이제 알겠어' 라고 해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 분명히 바뀔 것이다, 지금 깨달을 리 없다 해요. 제가 세워놓은 계획이 있고, 시각화하거나 촬영했던 것에서 이게 이런 작업이구나 깨달았을 때 방향을 틀 수 있어야 미술이 되는 것 같아요.

 

전시장인 아뜰리에 에르메스 공간은 어떻게 활용했나요? 입장하는 통로부터 답답하고 길다는 느낌이 들던데.

여러 가지 장치들 중에서 제일 처음에 떠올린 건 암전 부분이었어요. 아주 어두운 가운데 소리만 나오는 부분이 있고, 그게 잠깐이 아니라 사람들이 좀 짜증이 날 정도로 길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럼 사람들이 어두운 부분에서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스크린의 위치가 처음엔 잘 보이지 않도록 바꾸는 게 제일 컸어요. 전시장 연출을 많이 안 하고, 공간 자체가 최대한 뚱하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들어오는 길은 빛을 차단하는 목적도 있었어요. 복도를 조금 더 넓게 할 수도 있었지만, 좁게 해서 들어가는 길 자체에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뜰리에 에르메스 위치가 기묘하죠. 하필 카페에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가야 하잖아요. 그런 공간에서 느닷없이 비명이 터지는 상황이 얄궂게 느껴지더군요.

민원을 많이 받았어요. <스터디>에서 사람들이 제일 불만스러워했었던 건 대사가 덜 선명하게 들린다는 거였거든요. 대사와 앰비언스의 소리 밸런스를 맞춘 상태에서 대사를 조금 더 높이면 선명하게 들리고 몰입감을 줄 수 있는데, 그럼 카페에서 안 좋아해서 조금 낮출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우길 수 없었던 게 어떤 부분들은 카페에서 너무 거슬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그러더라고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를 한 게 (단체전 둘 포함) 이번이 세 번째거든요. 공간이 좀 엉뚱하죠. 도리어 그전 작업(2020년 《다른 곳》의 <‘다섯명의 저택관리인’ 쓰기>)이 그랬던 것 같아요. 코로나 때라 밀실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에르메스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거기가 마치 사람들이 파티하다가 죽기 딱 좋은 멘션인 것처럼 음악도 놀리듯이 썼어요. 이번 작업은 이렇게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줄은 몰랐는데 많이들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데뷔 이래 처음 2채널 스크린을 시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2채널은 작업의 당위성을 크게 갖고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동안 싱글 채널만 해왔으니 이번엔 ‘스터디’니까 채널을 늘리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게 있으면 좋겠고 없어도 2채널을 만드는 연구를 한다는 마음으로 해보자 싶었어요. 실제론 2채널이라기보다 싱글 채널에 보조 채널이 하나 더 있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내러티브랑 관련이 없어도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보여줄 수 있도록 고민했고요. 여전히 싱글 채널을 거의 집착하듯이 좋아하기 때문에 싱글 채널이 더 재미있어요. 다만 <스터디>에서 암전 때문에 2채널이 말이 된다고는 생각했어요. 암전으로 한 채널이 오랫동안 안 나올 수도 있어 2채널이어도 싱글 채널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싱글 채널에서 살짝 눈을 돌리고 싶을 때 돌릴 곳이 있으면 좋겠었거든요. 재미는 있었어요. 근데 더 연구할 게 있다는 느낌을 아직 받지는 못했어요.

아무래도 <스터디>는 김희천 작가가 공포영화를 만들었다고 소개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 같아요. 무섭게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나요?

그게 저한텐 가장 뜻밖이었어요. 저는 더 무섭게 만들 수 있는데 안 무섭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놀래키는 거랑 무서운 건 다르잖아요. 놀래키는 건 그냥 클리셰로서 사람들이 웃고 넘어갈 거라고 봤어요. 선수가 사라지는 것도 그렇게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고. 무서운 영화들을 공부한 다음에 만든 작품이라는 정도로만 두자. 너무 공포스럽게 가면 장치의 문제가 돼버리잖아요. 공포를 줄 수 있는 장치의 발명이 되면 미술 작업처럼 보이기 어려울 수 있겠다, 더 집중해야 될 것들이 여전히 있는데. 아주 무섭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있지는 않았어요. 반응은 상반되는 것 같아요. 동료들한테서는 제 기존 작업들이 더 무섭거나 더 불길하고 이번 작업은 불길하지는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불길하려고 만든 의도가 아니지만 그렇게 전달되기도 하니까. 동시에 왜 이렇게 무섭게 만들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게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고민해 볼 필요도 있겠다 싶어요. 더 무섭게 갈 수도 있었고 더 끔찍하게 갈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면 소위 위악적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니까. 저는 종종 위악적인 공포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진짜 지독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은데, 사실 요즘 공포영화들은 보여줄 걸 안 보여주는 경우들이 되게 많잖아요. 화질 문제로 그걸 보여주면 탄로 날까 봐 못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끔찍하게 가야 될 때 멈추는 것이 싫었었거든요. 이건 뭐 공포영화가 아니니까 위악적으로 가는 순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보다는 그 부분이 너무 강조될 것 같아서 좀 밸런스를 맞췄어요. 놀래키는 부분은 대놓고 놀래키는 거니까 그 정도 놀라고, 잠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작품을 보면 즐거워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놀라면 아 뭐야 하면서도 즐겁기도 하잖아요.

제일 무서운 영화 장면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지나고 보면 안 무섭더라고요. 그중에서는… (잠시 생각)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2001)에서 귀신 나오는 건 무서운 것 같고요. <스터디>에서 오마주 한 거라고 볼 수 있는 <엑소시스트 3>(1990)의 간호사 장면은 제가 정말정말 좋아하고. 처음 봤을 때 진짜 무서웠거든요. 제일 무서웠던 건 어릴 때 본 <주온>(2002)에서 이불 속에 있는 거, 그거는 진짜 이불 덮고 자기 싫더라고요. 제가 <곡성>(2016)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또 그만한 작품이 없나 싶기도 한 게 요즘 보면 꽤 많은 감독들이 <곡성>의 영향을 받은 걸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곡성>은 진짜 위악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워낙 나홍진 감독님도 밀어붙이는 걸로 악명이 높으니까. 서양의 공포영화감독들이 <곡성>에 너무 영향받은 걸 보면 좀 재미있어요. 엉성한 부분이 있어도 잘 굴러가는 게 신기하고, 끝까지 볼 수 있는 이상한 영화 같아요. 최근에 본 두 영화가 되게 <곡성> 같았어요.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라는 아르헨티나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올해 제일 무서운 영화라고 하던데 저는 너무 별로였거든요. 저는 아르헨티나에서 좀 살았으니까 그 말들을 좀 알아듣잖아요. 연기가 최악이었어요. 저는 극 중의 위기에 아직 공감을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 오버를 하면서 연기를 해요. <롱레그스>는 좋았는데 그건 <곡성>과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1997) 등 아시아 공포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어요.

〈〉
〈회로〉
〈〉
〈엑소시스트 3〉

위악스러운 공포영화는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터스크>(2014)예요. 약간 블랙코미디에 가까운데, 팟캐스트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이상한 사람들을 막 찾아다녀서 팟캐스트로 인터뷰를 하는데, 누군가가 연락해서 바다코끼리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다코끼리에 너무너무 집착해서 팟캐스트 하는 주인공이 찾아오면 납치해서 바다코끼리로 만들어요. 여기저기 다 벗겨서 바다코끼리 모양을 만들고, 상아를 꼽고 그러거든요. 제 생각엔 <인간 지네>(2009)의 블랙코미디 버전인 것 같아요. 뭘 저렇게까지… 싶은 게 <터스크>는 좀 잘 됐어요. 결말을 보면 감독이 이걸 웃기려고 만들었구나 하게 돼요. <호스텔>(2005)은 무섭다기보다 징글징글 하니까 그런 것 같고.

〈〉
〈터스크〉

<스터디>에서 사람이 세 번째로 사라지는 대목은 혹시 “선풍기 켜놓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에서 비롯된 블랙유머인가 싶었어요.

말씀하시니까 제가 숨길 수는 없는데 (웃음) 잠자는 장면을 찍어 보고 싶어서 그냥 찍어봤는데 선풍기가 털털털 돌아가는 것이 주는 감기 걸릴 것 같은 마음이 있잖아요. (웃음) 그런 느낌이 그냥 좋아서 찍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선풍기 보자마자, 같이 만든 사람들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하고, 그냥 환상을 봤다고 하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누가 그거 떠올려주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굉장히 중요한 장면은 또 아닌데 화면 자체는 좀 재미있게 찍힌 것 같아서. 처음 찍어보는 거니까 찍어보고 싶은 것들 찍는 과정에서 그 친구 보고 그냥 누워 있어보라고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긴 거예요.

첫 번째 사라지는 시퀀스와 두 번째 사라지는 시퀀스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세 번째는 두 번째에 바로 이어지게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게 공포영화에 많이 쓰이는 클리셰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마치 꿈일 수도 있는 것처럼 대충 넘기는 장면이라서 그냥 잠자는 걸 넣었는데, 학생이 사라지는 장면을 실제로 본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구나 그냥 모호하게 두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럼 앞에 학생이 사라진 장면도 마치 그냥 꿈에서 꾼 것처럼 붙어 있으면 모호하게 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선풍기 앞에서 사라지는 장면은 누가 봐도 꿈꾼 것처럼 배치가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 앞에 바로 두면 그것 역시 꿈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들이 사라지는 형상은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요.

사라지는 것 외에도 AI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여러 가지 테스트해봤어요. 예를 들면 영상에 사람을 바꿔치는 것도 AI가 사람의 외곽선을 딴 다음에 그걸 다른 3D가 아닌 2D 이미지의 사람으로 바꿔보라고 한다거나. 래퍼 릴 야티(Lil Yachty)의 라이브 영상에 히틀러, 조커, 심지어 민희진 씨로 바꾼 것도 있었잖아요. 제가 미술 작업할 때 외곽선 문제에 대해 다룰 때 하고 싶었던 거랑 같으니까 테스트해보다가 지우는 걸 하게 된 거죠. 지우니까 도리어 외곽선이 강조되는 게 아니라 상대편 외곽선의 경계와 배경이 흐려지면서 사라지는 부분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희천 작가가 언급한 릴 야티의 라이브 영상 장면
김희천 작가가 언급한 릴 야티의 라이브 영상 장면

사라지는 형상이 꽤나 러프해요. 그래서 더더욱 괴상하게 보이고요. 더 정교하게 할 수도 있는 건가요?

정교하게 할 수는 있을 텐데 어렵기는 어려울 거예요. 저는 그 사라졌을 때의 텍스처 같은 것들이 아름답게 나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부러 덜 자연스럽게 지운 건 아니에요.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을 거예요. 상대편과 배경이 뭉개지는 이유가 사라졌을 때 그 뒤에 무엇이 그려져야 될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 섞이는 거거든요.

코치와 더불어 인상적인 캐릭터가 아들이 실종된 어머니예요. 사실상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인물인데, 특별한 연출 같은 게 있을까요?

어머니 역할은 배우가 아니고, 김유림 시인이에요. 우선 그분의 목소리가 좋아서 부탁했고요. 시인을 섭외한 이유는 제가 어떤 텍스트를 썼을 때 그걸 그 사람이 충분히 자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거든요. 어머니가 의뭉스러운 캐릭터라고 얘기했더니, 그런 연기를 준비해왔어요. 슬프지 않고 차분한데 약간 긴장감을 유발할 수도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왔어요.

학생들이 모여서 아들 찾는 미친 아줌마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얼마 뒤 그녀가 등장합니다.

<링>을 봤는데 마지막 장면 외에는 무서운 장면이 거의 없더라고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달하는 방식을 <링>에서 많이 가지고 왔어요. 학생 둘이서 소문 이야기를 해요. 누구 죽었대 하면 그리고 곧 누가 죽어요. 그렇게 하면 앞으로의 일들은 이미 예고가 되어 있으니까 그런 장면이 없어도 사람들이 뭔가 나올 것 같은 긴장을 하는 거죠. 김유림 시인이 연기를 굉장히 무섭게 하려는 의도가 없이 해도 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녹음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굉장히 루즈해지는 거예요. 너무 차분하면 코치가 뭔가 할 거리가 없으니 압박과 밀고당기기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부분이 꽤 긴데 아무래도 화면도 없으니까. 사운드를 만들려면 배우들이 하는 행동을 맞춰서 하면 훨씬 쉬워지고 리얼해지니까 촬영까지 했어요. 마음에 들게 찍혀서 김유림 시인은 제가 지우고 이찬종 배우 혼자 대사 없이 나오는 걸로 썼어요.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스터디〉 © 김희천, 에르메스 재단 제공

 

사운드 디자인의 최지영 씨, 음악을 만든 이하령 씨와의 작업은 어땠나요?

최지영 씨가 사운드 디자인을 해주셔서 이 작업이 가능했을 거예요. 자기가 작업한 것들을 다 들려주는데 모든 소리를 다 만들고 있더라고요. 다큐멘터리에서 지하철역 주변에 자전거 지나가는 장면이 있으면 지하철이랑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를 다 집어넣고 있어요. 촬영을 안 했어도 소리는 만들 수 있으니, 암전 부분은 그럼 화면을 안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하령 씨는 미술 하면서 음악도 하는 친구라서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니 같이 만들기에 너무 좋죠. 음악을 딱 들었을 때 공포영화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하면 공포영화들을 봐가면서 연구해서 만들어왔어요. 비트가 있어서 공포영화 음악 같지 않달지, 공포영화는 소리들의 층위가 있어서 볼륨 조절을 하면서 분위기를 만든다는 걸 깨닫는달지, 서로 이야기해가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사운드 디자이너와 음악감독이 같이 작업한 게 많았어요. 어떤 건 효과음 같은데 어떤 건 음악이기도 하고, 그게 이하령 씨가 해오던 것과 달라서 사운드 디자이너랑 협업하게 됐어요.

이번에 하나의 '스터디'를 끝내신 입장에서 발견한 가능성이 있다면.

영상 작가들은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아요. 프로덕션의 규모를 키울 것이냐 말 것이냐. 프로덕션을 키우면 소위 말하는 영상의 ‘깔’이 달라질 수 있고, 영상의 작업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규모를 어떻게 키워서 작업 방식을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겁을 먹기도 하거든요. 영화도 아니고, 영화 흉내 낸 것처럼 되는 게 많아서, 저의 과제 중의 하나였어요. ‘스터디’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사실 말 그대로 좀 덜 만들었어요. 예산이 많아지면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지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걸 가능한지 가늠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앞으로 프로덕션을 무한정 키울 생각은 없지만, 어느 정도는 수용해서 이걸 다른 출력을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지 이제 어느 정도 계산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아주아주 중요했어요. 작업을 확장할 수 있는 데에 기운을 얻었어요. 매를 먼저 맞은 느낌이랄까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미술 작업을 할 때에도 예산 범위를 넓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예산을 썼으면 이런 걸 할 수 있겠다는 테스트를 했다는 면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