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바보〉예고편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KB 뉴 커런츠 관객상을 받은 <부모 바보>가 상영 중이다.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영진(안은수)은 집에서 쫓겨나 다리에서 노숙을 하고, 이를 본 복지사 진현(윤혁진)은 영진을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한다. 한편 진현은 지원금에 대해 재차 불만을 토로하는 노인 순례(나호숙)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부모 바보>는 이종수 감독의 데뷔작으로, 감독이 직접 배급까지 도맡아 지난 1월 8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났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두 번째 영화 <인서트>까지 선보이며 기대주로 떠오른 이종수 감독을 만났다.
장편 데뷔작을 직접 배급까지 맡아서 개봉 첫 주에 23개 상영관에서 선보였습니다.
자체 배급 한 감독님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해보자”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같이 해보자고 한 곳이 있었는데, 문제는 제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불이 뜨겁다고 하면 만져봐야 아는. (웃음) 그리고 이 영화 같은 경우는 제 20대를 지나오면서 계속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서 파고든 거기 때문에 별다른 기획 의도가 없고 제 이야기를 배출하는 첫 번째 작품인 게 너무 소중해서, 배급사들은 또 이 영화를 마케팅 대상으로 다룰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경계해서 혼자 하게 됐어요.
직접 해보니 어떠세요?
힘들죠. 힘든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불친절한 사람들도 있는가하면 자체 개봉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영화 찍는 것보단 쉽던데요? (웃음) 촬영은 없는 걸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하기 싫어하는 배우들 억지로 끌고 오고, 스태프들이랑 싸우고 위로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스코어에 대한 큰 욕심이 없어서 부탁드리고 예의 바르게 하면 다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다음 작품인 <인서트>를 먼저 보고, 이번에 <부모 바보>를 봤어요. <인서트>가 전반적으로 친숙한 코미디인 가운데 종종 삐딱선을 탄다면, <부모 바보>는 삐딱선이 가득한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2010년에 한국 독립영화를 놓친 게 없을 정도로 챙겨봤어요. 그리고 2017~8년 즈음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고 독립영화를 보는데, 제가 알고 있던 그 느낌이 나오는 것이 개봉을 하지 않는 거예요. 옛날에는 다 개봉했거든요. 내가 알고 있던 그 독립영화가 아니었어요. 카메라 성능이 너무 좋고, 배우들도 현실감이랑 동떨어져 있고. <부모 바보>는 그럼 내가 생각한 독립영화는 이렇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아요.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이랑 사회복지사가 만난다는 틀은 독립영화에 흔히 볼 수 있는 포맷이잖아요. 나라면 그 안에서 이렇게 만들겠어 라고 마음껏 해본 게 <부모 바보>예요.
영화 하려고 여기저기서 배우면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어요. 영화는 꼭 이래야만 한다, 이런 공식이 있다는 식으로 가르치니까. 이건 영화가 아니고 이건 영화고 하는 경계를 제 나름대로 허물고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부모 바보>를 찍고 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영화스럽지 않다, 영화 모르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과 비전공자로서 영화 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 있다 보니까 생기는 반발심이 들었죠. <부모 바보> 이전엔 실험적인 단편들을 만들었는데 “정밀화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추상화도 그릴 줄 아는 거다”라고 해서 그래? 하고 <부모 바보>를 만든 거고, <부모 바보>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고 쭉 겪은 일들과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봐라 해서 못 만들 것 같아? 하면서 <인서트>를 만들었어요. 보통 그런 반발심 때문에 만들었던 것 같아요.
<부모 바보>는 배급은 전혀 생각을 안 하고 만들었는데, 영화제에 가고 배급사들을 만나보니까 글도 촬영도 배급까지 고려하고 해볼 수 있다는 걸 배워서 <인서트>는 배급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배급사에서 관심을 갖고 배급을 시도해볼 수 있는 선에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게 또 촬영하고 편집하다 보니까 늘어지고 길어지게 되는 거예요. 완전 코미디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체험적인 부분을 놓칠 수 없어서 실제로 지루하고 싫은 상황들을 질질 끌었거든요. 관객들에게 그 시간을 체험해주고 싶다는 의도로 <인서트>는 길게 만들어졌어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해야 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도 예술가로서 조금씩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 바보>와 <인서트> 모두 한 남자가 렌즈를 통해 먼 곳을 보는 걸로 시작합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사실 글을 쓸 때는 무아지경으로 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게 맞는 것 같아요. 자기 세계 같은 느낌. 렌즈를 딱 들여다보는 순간에 물리적인 육신은 의식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내 시야 안에 있는 게 세상이 되는 것 같거든요. 영화를 볼 때가 그것과 좀 비슷해요. <부모 바보>와 <인서트> 모두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 안에 딱 가둬놓고 시작하는 느낌이랄까요. 두 영화가 모두 그렇게 시작한다는 건 <인서트> 다 찍고 편집할 때 알았습니다. 앞으론 그만해야겠다 생각했고.

먼 곳에 있는 걸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 있는 채로 줌인 해서 바라보는 게 카메라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메모리라고 생각해요. 기억 안에서는 줌인 줌아웃이 가능해지잖아요. 그래서 캠코더를 쓴 것도 있고. 카메라로 찍어놓은 것 자체도 메모리고, 눈으로 담아놓는 것 자체도 메모리잖아요. 눈으로 담은 메모리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형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고, 카메라로 담은 것들도 그럴 수 있죠. 시네마캠이랑 캠코더랑은 또 다르긴 하지만. 영진이가 워낙 그런 존재이기도 하고.
<부모 바보> 첫 장면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게 하필 월드타워인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 속 주무대인 정릉이나 캠코더를 나눔 받는 서초동이랑도 연관이 없는 곳인데요.
전망대를 좋은 데로 섭외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게 전망대를 돌아다니고 영진이는 허름하게 입고 그 안에 있으면서 그들 사이에서 혼자만 멀리를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걸 해보고 싶었는데, 돈이 없으니 섭외가 당연히 안 됐죠. 그래서 구리타워로 갔는데 거기도 괜찮더라고요. 구리타워는 아침 일찍 가면 사람이 없다보니까 오히려 더 이 공간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수정해서 추가 촬영을 했습니다. 거기에 아파트가 굉장히 많고 그 너머 롯데타워가 있는 걸 봤어요. 롯데타워가 서울에 나타났다는 건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삶에 끼어든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거슬려서 찍었어요. ‘롯데타워가 보인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롭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롯데타워는 63빌딩 전망대를 가든 남산타워 전망대를 가든 다 걸려 있을 것 같아요. 되게 이질적이에요. 뭔가 다른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영진이도 평소랑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고 봤어요. 구리타워가 또 좋았던 건 말씀드린 대로 옆에 아파트가 많았어요. 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니 적합하겠다 싶었죠. 의미를 생성하고자 의도하고 영화에 어떤 장면들을 조립한다기보다는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기를 보면 좋아요. 제가 어지럽혀 놓은 거기에 들어와서 각자 확장하고 이야기해 주시면 너무 좋더라고요.

영화가 한창 진행되다가 대뜸 ‘백진현’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뜨고, 나중엔 ‘임영진’과 ‘박순례’도 떠요. 글자 크기도 다르고, 이름이 뜨는 전후 타이밍도 서로 조금씩 다르고요. 처음엔 갑자기 이름이 뜨길래 캐릭터 이름을 해당 배우의 이름에서 따온 건가 싶었어요. 이름 타이틀은 어떤 효과를 기대했나요?
삐딱선이죠. 한창 영화 배울 때였으니까, 넷플릭스 시리즈나 영화의 범주를 벗어난 것에서 많이 쓰는 효과들을 심술궂게 집어넣고 싶었어요. ‘백진현’은 그 풍경을 안 가리고 싶어서 작게 썼고, ‘임영진’과 ‘박순례’는 가려도 상관없기 때문에 크게 갔어요. 이름이 뜬다는 건 참 웃기지 않나요? 사람한테 바코드처럼 매겨져 있는 것처럼. 데스노트도 아니고. (웃음)
‘임영진’이라는 자막이 뜬 후의 시퀀스들을 제외하면 영진의 일상은 대개 진현의 일상과 맞물려 나옵니다. 유독 영진 혼자만의 신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영진이는 관찰의 대상이 아닌 관찰하고 있는 사람, 진현이는 그 세계에서 관찰 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유교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자식이자 동생으로, 밑에 있잖아요. 사실은 그 사람의 시선이 가장 진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진이를 관찰자의 위치에 놓았기 때문에 그를 관찰하는 단독 샷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인물이 이동할 때 화면은 그대로인데 다음 신의 사운드가 먼저 들어오거나, 공간이 바뀌어도 소리는 계속 이어지는 식의 편집도 재미있었어요.
<부모 바보> 영어 제목이 ‘Heritage’(유산)예요. 잔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장면들이 수평으로 나열돼 있었을 때 전체적으로 배어 있는 느낌을 계속 부드럽게 연결하고 싶었고, 잔존하는 에너지 같은 것에 집중하다보니까 그런 방식을 택했습니다.

영진의 의중은 좀처럼 읽히지 않아요. 이를테면 영진은 시도때도 없이 조는데, 진짜 조는 건지 졸고 있다고 보여주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건지도 아리송해요. 계속 보니 그건 안은수 배우의 ‘다듬어지지 않음’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실제로 의중이 읽히지 않는 이미지를 갖는 사람을 캐스팅하고 싶었어요. 안은수 배우를 캐스팅하기 전에는 왜소하고 과묵한 캐릭터로 하고 싶었고. 과묵하다는 콘셉트는 계속 있었거든요. 백진현 대리를 중심 캐릭터로 선택했던 것 자체가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딱 제 세대고. 그 세대로서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진현이 세대를 바라볼 때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 다 지나온 시기인데도. 그런 모습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어른들은 몰라요” 같은 거죠. (웃음) 영진이 캐릭터를 설정할 때 몇 가지 키워드가 있어요. ‘어른들은 몰라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 그런 것 때문에 영진이가 의중이 읽히지 않는 사람이지 않았나 싶어요.
확실히 어린 세대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 그런 냉소도 있는 것 같아요. “니들은 몰라” 같은. 그런데 자기들이 더 모르거든요.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거거든요. 사실 다 연결돼 있어요. 윗세대는 다 지나온 시간들이고 지금 얘 혼자 고립돼 있는 거잖아요. 마음적으로, 당해온 일들 때문에. 진현이 같은 경우는 초반에는 냉소하다가 집에 데려오면서 의중이 싹 풀리잖아요. 자기가 더 어른이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하려는 유교적인 부분도 들어가 있지 않나… 남자애를 자기 혼자 사는 집에 데려왔으니 어색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괜히 더 형처럼 그러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그래요. 과묵한 동생들 있으면 괜히 내 속 얘기하면 괜히 그래 보는 것 같아요.
비단 한 장면에서도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 보이거든요. 고분고분히 듣는 것 같으면서도 들어주는 것처럼 굴 때도 있고. 속내가 삐져나오는 걸까요?
삐져나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의도했던 게 그거였어요. 결국에는 둘도 형제 같은 가까움이 있고, 유교 사상 안에서.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사회복무요원들 경우엔 자기 범죄 사항이나 이런 게 사람들한테 드러나 있고 나를 계도시키려는 느낌이 있어서 만만하게 보이고 싶진 않은데, 그나마 복지관에서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주고 어떻게 됐어 저떻게 됐어 해주는 사람이 진현인데, 이 사람이랑 단둘이 공간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조금씩 삐져나온다고 생각해요.
분명 배우를 완벽히 다듬었다는 인상은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게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의도한 바로의 미스테릭함은 구현됐어요. 안은수 배우가 제 말을 듣고 미스테릭함을 구현한 것도 구현은 됐는데, 결국 이게 이렇게 살짝 어긋나서 제가 원했던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진 못했죠. 안은수 배우도 자기가 원했던 완벽한 걸 못했지만 결국에는 만나서 효과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영진이의 거북목에 구부정한 자세는 감독님이 지시한 건가요? 그럼에도 다부지다는 인상을 주기도 해요. 그래서 복도에서 막내 복지사를 마주치는 순간 텐션이 확 돌기도 하죠.
안은수 배우한테 캐릭터를 설명했을 때 본인이 연구해서 이렇게 만들어 왔어요. 손가락을 어떻게 한다든지 하는 디테일도. 원래도 거북목인데 더 숙여서 이렇게 하면 어떻냐고 제안했는데 너무 좋아서 합의가 된 거죠. 저는 위협적인 존재처럼 보이라고 주문했어요. 저도 사회복무요원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 센터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복무요원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는 게 디폴트로 깔려 있어요. 게다가 영진이는 범죄 기록도 있잖아요. 억울할 수 있는 부분들인데, 그걸 공개적으로 얘기를 해요. 예를 들어 겸직 허가 신청했다가 안됐을 때 진현이가 주절주절하면 사무실 사람들 다 앉아 있잖아요. 그럼 얘 입장에서는 어려운 상황인데 사람들 앞에서 그런 얘기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을 거거든요. 그런데 사회복무요원을 하나의 인간 객체로 보는 게 아니라, 계도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애초에 안은수 배우한테 넌 여기 위협적인 존재면서도 행동은 길고양이처럼 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본래 원했던 영진은 지금과 어떻게 다른가요?
안은수 배우는 위험해 보이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느낌이 있다면, 원래 처음 쓴 시나리오에서 상상했던 건 그런 척은 하는데 별로 위협적이진 않은 모습이었어요. 지금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의중을 알 수 없는 대형견 느낌이죠. 시나리오 쓸 때는 아무것도 아닌 소형견인데 으르렁대고 있는, 위협적이긴 하나 내 손에서 컨트롤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은 걸 상상했어요.
영진이가 사는 다리를 보자마자 <부모 바보>는 이곳이 가능할 수 있겠다고 직감했습니다.
맞습니다. 거기가 한강진 역 2번 출구 앞이거든요. 영화 찍을 때도 대통령 관저를 짓고 있을 때라 그쪽은 찍지 말라면서 제 신상도 다 알아갔어요. 그걸 본 게 처음 시작이었고, 거기에 올라갔을 때 실제로 누군가 지낸 것 같은 흔적이 있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미술도 간이침대 말고는 다 진짜 거기 있던 거예요. 그런 교각 아래서 살림을 차려서 사는 사람의 뉴스를 비슷한 시기에 본 적이 있어서 그럼 여기서 시작해야겠다 싶었죠. 다음에 복지관을 찾았는데 섭외한 정릉사회복지관도 하필 고가다리 바로 옆에 붙어 있어요. 사무실 신 보면 과장 뒤에 창문이 있는데 바로 뒤에 차가 계속 지나다녀요. 지낼 곳이 없냐고 물을 때나 둘이 같이 출근하는 주차장도 그 다리에 아래 있어서, 거기서 연장해 ‘교각 아래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죠.
다리는 로케이션 중에 발견한 곳인가요?
이태원 살 때 산책하던 코스였어요. 무조건 거길 돌아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게 루트였는데, 거기에 만날 물건들이 올려져 있고 불 피워놓은 흔적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한번 올라가봤더니 20대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가지, 슬리퍼, 거울 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써놨던 시나리오에 여기서 노숙을 하는 설정으로 구성했어요.

진현 옆자리는 계속 프레임에 걸리는데 정작 사람은 늘 부재중이에요. 반면 그 맞은편의 막내 복지사는 자리하고 있음에도 프레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종종 뿅 하고 튀어나오는데 그게 감독님 특유의 유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리얼리티를 반영한 부분이긴 해요. 비어 있는 자리가 실제로 한 선생님 자리였는데 그분은 사무보다는 아이들 돌봄 같은 걸 많이 하는 분이어서 항상 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원래 복지관 직원분들이 존재감이 별로 없어요. 막내 직원 자리가 가끔씩 비춰지는 것도 삐딱선이에요. 다른 분들이 했으면 그런 거슬리는 부분은 잘라내는 예쁜 프레임을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 건 하기 싫었고, 카메라가 여길 포착하고 있고 배우의 움직임이나 연기가 시선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삐딱선을 탔죠. 어떤 상황에도 유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관 사무실은 사실상 진현을 위한 공간이에요. 진현을 찍을 때의 구도를 잡는 데에도 많은 고민이 따랐을 것 같아요.
글을 쓸 때 어디에서 봐야겠다는 게 상상이 되는데 거기에 맡겼던 것 같아요. 영화적인 의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상상되는 그대로 찍은 게 많아요. 영화도 스포츠 같은 거여서 공식에 맞춰서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영화를 배우고 공부해서 체화시킨 게 현장을 만들 때 중요하게 나온다고 생각해요. 우연한 충돌들도 많이 벌어지고.
진현은 예전에 독립영화들을 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각 영화들의 특징을 말합니다. 진현이 봤다면 <부모 바보>를 두고 어떤 영화라고 말했을까요?
똥폼 잡는 영화. 진현이는 개봉작만 보는 독립영화 팬이에요. 굿즈를 모으고 분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근처에 독립영화관이 있어서 보는. 그런데 한편으로는 뭔가 동질감을 느낄 거 같긴 해요. 사람들한텐 “있어 그냥 똥폼 잡는 영화”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똥폼을 좀 잡으셨나요?
영화 전체적으로 톤에 똥폼을 잡았죠. 잡아야죠. 그 똥폼이 영화 분위기를 만들긴 하잖아요. 조명 예쁘게 때려서 컬러 그레이딩 잘 잡고 아나몰픽 렌즈로 찍은 것처럼 한 걸 시네마틱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걸 똥폼이라고 한다면 저는 똥폼을 덜 부린 거겠지만요. 촬영감독이나 DI 기사가 그렇게 한다면 말리겠죠. 그런 걸 보는 게 힘들어요. 요즘 DI 기술 되게 좋아졌는데, 영화인데 광고처럼 DI를 해요.
요즘 영화들 보면 기본적으로 카메라 화질은 좋아졌는데 오히려 그 특유의 룩이 거부감이 들 때가 있어요. <부모 바보>는 그런 질감을 부러 누른 것 같아요.
DI 과정은 특히 그랬어요. 촬영감독님은 감정이 이렇게 있는데 들어가야 하지 않냐 혹은 광각렌즈는 이런 위치에 쓰면 공간이 다 왜곡돼 보여서 안된다고 했는데, 제가 믿어달라고 했어요. 이건 이상하게 안 예쁘게 나와야 하는 영화라고요. 조명감독님도 광고를 20년 정도 하신 베테랑이신데 그분도 광고에서 하던 것처럼 조명을 예쁘게 치더라고요. 빼달라고 많이 했죠. 남자 사는 집이라 칙칙해 보여야 한다, 이상했음 좋겠다… 촬영감독님이나 조명감독님이 영화 처음 나왔을 때 안 좋은 얘기들을 들었대요. (아마추어처럼 찍었다고요?) 네, 그래서 미안하긴 해요.
<부모 바보>를 만들고서 “해소”됐다고 말씀하셨죠.
전세대들한테 니들이 망쳤다는 원망이 있었어요. 사실 지금도 있긴 하지만, 그때는 분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신들이 이 세상을 계획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한 행동들 때문에 밀어붙인 결과로 우리가 이렇게 됐어. 이혼 가정 수두룩하고. 물론 엄마아빠가 이혼할 수는 있죠. 그런데 좋게 이혼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거기에 남겨진 애들이 아이를 안 낳고 있잖아요. 아이를 안 낳는지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왜 아이를 안 낳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아예 인식을 못하고 있는 거거든요. 모르는 척하는 거죠. 그런 분노가 <부모 바보>를 만들면서 해소가 된 거죠. 더 이상 이것 때문에 화는 나진 않아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묵은 똥 같은 거 싸는 느낌인가.
어느 단계에서 해소됐다고 느꼈나요?
편집 다 끝나고 완성된 걸 볼 때 거기서 1차적으로 해소가 돼요. 그리고 사람들이 공감해주기 시작하면 저는 이 문제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운 좋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가 돼서 해소가 된 거죠.
풀리지 않는 걸 남한테 털어놓으면 좀 나아지는 편인가요?
아뇨. 말하면 더 복잡해지고 더 쌓여요. 그 순간에 잠깐 풀리는 것 같아도 말을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쌓이고 레이어가 생기잖아요. 그 레이어들이 생각보다 값진 거라고 생각해서 이걸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하면 기획해서 작위적으로 만든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워지고 내용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소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부모 때문에 찡찡대는 일은 없어요. 영화에 대한 불만도 많았어요. <부모 바보>를 찍고 영화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진 않았어요. 그런데 <인서트>를 찍고 해소됐어요. 이제는 영화 하는 사람들이랑 안 싸웁니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