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1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8부작 티빙 시리즈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성소수자 고영(남윤수)을 중심으로 그가 관계 맺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성소수자가 가족과 겪는 여러 갈등의 지점 역시 중요한 지점이다.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다른 회차와 달리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3~4회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성소수자 아들을 둔 엄마 은숙(오현경)이 겪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세심하게 짚어내는 드라마다. 은숙은 결혼정보회사를 다니는 말 그대로, 결혼에 있어서는 전문가이지만, 실상 자신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운 상처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고영은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라는 건 없다는 걸, 은숙의 결혼으로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은숙은 ‘정상 가족’의 형태를 자신의 아들이 이성애자와의 결혼으로 이뤄주길 바란다.
한때 신앙과 치료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들의 성 정체성을, 퀴어에 대한 이해가 없던 평범한 엄마 은숙이 자신의 암투병을 겪는 동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대도시의 사랑법>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다가가는 에피소드기도 하다. 때로 심각하지만, 이들이 부딪히는 현실의 하루하루는 평범한 가운데 경쾌하고 코믹함이 가득하다. 마치 진짜 가족들의 징글징글한 모습을 담은 것처럼. 배우 오현경이 암에 걸린 걸 알고도 긍정적이고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는 은숙 역으로 분해, 일반적으로 묘사된 ‘엄마’의 전형성을 깨는 역할을 선보인다. 에피소드별로 다른 4명의 감독의 만장일치로 캐스팅된 배우는 남윤수다. <인간수업> <연모> <오늘의 웹툰> 등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왔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은 남윤수가 가진 배우로서의 강점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기회이자 도전이기도 하다. 두 배우를 한자리에서 만나 보았다.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먼저 들을게요. 남윤수 배우님은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인공 고영 역할이에요. 엄청난 기회이자 도전인데요. (웃음)
남윤수 감독님들과 미팅 때 감사하게도 저를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캐릭터, 내가 만들 수 있는 캐릭터를 찍자,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자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살았는데 감독님들 덕분에 정말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거죠.
퀴어 장르, 성소수자 연기에 대한 부담도 있었나요.
남윤수 래 부담감을 갖는 성격이 아니라 쿨하게, 내가 하면 되겠다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부담스러워하면 연기도 안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보는 시청자분들도 부담을 갖고 볼 수도 있어요. 이 사람이 불편해하는구나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데 이런 마음을 가지실까봐 처음부터 그런 게 없었어요. 내가 살았던 삶의 배경도 있고 영의 삶의 배경도 있으니까 제가 해석한 나름대로의 삶으로 보여주자 그런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유일하게 4명의 감독과 작업한, 스타일을 비교할 수 있는 배우기도 하고요. (웃음)
남윤수 저밖에 모를 거예요. (웃음) 감독님들은 서로 어떻게 찍었는지 몰랐어요. 저는 이 감독님이 이렇게 찍으셨고 다른 감독님이 이렇게 찍으셨으니까 그 가운데서 중심을 지키면서 찍어야 되는 과제가 있었죠.
오현경 그건 좀 부럽다. 나도 다른 회차라도 좀 잠깐이라도 나오게 해주시지, 저는 2부에만 나오잖아요. (웃음)
오현경 배우님은 이번 작업이 허진호 감독과 첫 작업인데요.
오현경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데, 그중에 엄마 역할을 한다. 그런데 허진호 감독 작품이다 라는 거예요. 누구요? 당연히 해야죠. 무슨 역할이든지. 배우들은 아마 다 그런 마음일걸요. 허진호 감독이 가진 모방할 수 없는 색깔이 있잖아요. 그런 작품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냥 무조건이었던 것 같아요.

고영의 엄마 은숙 역인데요. 암 투병 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투병 중에도 밝고 쾌활한 이미지를 가진 역할인데요. 오현경 배우의 느낌과 해석이 더해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현경 대본에선 좀 달랐는데 리딩을 하면서 감독님께서 제가 하는 느낌의 엄마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지금 연습하신 느낌으로 가시죠 하면서 대사를 다 바꿔주신 거죠. “이놈의 자식아.” “이 새끼야” 하는 옛날식 엄마들 느낌에서 벗어나보자 했죠. 저한테 이 책이나 주제가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나라고 별반 다른 부모겠어요. 아들이 그런 상황이면 있을 법한 엄마의 모습이었죠. 은숙이 암투병이라는 장치가 더해진 건데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지도 않아요. 투병 중이라고 매 순간 우울한 건 아니잖아요. 그게 더 현실적인 모습일 수 있죠. 감독님이 약간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을 좋아하셔서 그 부분을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물론 이렇게 아들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풍파를 겪어 온 엄마이기도 하고요.
오현경 정신병원에도 데려가 보고 해볼 건 다 해본거죠. 그리고 알게 된 거죠. 내 아들이 잘못했고 잘했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인가를. 자신의 병도 있고, 점점 종교에 의지하고, 그게 죄라면 제가 안고 갈게요 한 거죠. 결론은 은숙은 결국 부모인 거예요. 내가 가고 나면 세상에 홀로 남은 내 아들 편이 돼 줘야겠다.


외형적으로는 암투병 환자의 변해 가는 모습을 표현하셨는데요.
오현경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화려한 걸 원해요. 수더분한 역을 해도 별로 기억을 못 하고 워낙 화려한 모습만 기억하시더라고요. 병이 심해지는 장면에서는 분장을 하지 않으니, 제 나이대로 다 보이잖아요. 저는 그런 게 좋아요. 그게 보여야 되는 게 맞는 거거든요. 그게 오히려 진짜고, 그 모습이 보였으면 했어요.
20대 중반의 고영은 엄마와의 관계 한편으로, 철학 강좌에서 만난 띠동갑 영수(나현우)에게 끌리고 연애를 하는데요. 작가로 성장해 가는 고영이 “그를 만나고 절로 글이 써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에너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뜨거운 연애 상대인데요.
남윤수 고영은 어릴 때부터 연애를 해오고 20대 중반이잖아요. 한창 무쇠처럼 뜨거웠다가 식었다가 이 격차가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는 확 마음에 들었다가 줄어드는 것처럼. 진짜 상대를 만나기 전에는 빨리 달아올랐다가 사그라지었다가 이런 일련의 과정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영의 버라이어티한 연애사를 중심으로 하다보니 수위가 높은 키스신이나 베드신도 특히 이 회차에서 표현해야 했는데요.
남윤수 전 그런 스킨십이 있는 장면에 부담이 없었어요. 저는 워낙 많이 찍어서 편하기도 해서 잠깐 한 신 나오는 상대 배우가 오히려 불편해할까 걱정했죠. 상대 배우한테 제가 먼저 하니까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시라고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제가 불편해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할지 모를 수 있으니까요.
오현경 너무 예쁘지 않아요? 윤수 배우 모습이. 저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선뜻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요. 그냥 ‘배우다’ 하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굉장히 자연스러운 무드가 있어요. 세대는 다르지만 툭툭 이야기하는, 누가 와도 편하게 해주는 미소가 있어요. 그런데 또 목소리에는 무게감이 있잖아요. 그런 게 참 조화로운 사람 같아. 스타 탄생이에요.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걸 보고 저도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나도 저렇게 연기를 해야 되는 건가, 저를 고민하게 만드는 배우였어요. (웃음)
남윤수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좀 듣는데요. (웃음)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다보니 그런 느낌이 있나봐요. 저는 선배님이랑 하면서 엄마 역할과 상대역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감정 교류를 해야 되지 이런 고민은 좀 있었어요. 그런데 찍으면서 감정이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뒤로 가면서 감정이 딥해지는데, 눈빛만 봐도 감정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감정을 저는 처음 느껴봤거든요. 저희 엄마랑은 그런 게 없는데 오히려 역할의 엄마와 실제 같은 상황을 경험한 거죠.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실 분들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현경 퀴어라는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드러내기 두려워했다면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내민 게 아닐까. 내가 어느 편을 들까가 아니라 여러 모습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어느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저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으로 보자면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고 우리가 정의를 함부로 내릴 수는 없구나. 은숙이 지는 노을을 보고 아름답구나 했듯이 그렇게 아름다움에 대해서 정의할 수 있는 폭이 이 작품을 통해서 조금 넓어지면 좋겠어요.
남윤수 여러 가지 사랑이 있잖아요. 부모님과의 사랑도 같이 잘 했으면 좋겠고, 친구에 대한 사랑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고, 주변 사람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편한 사랑이 됐으면, 불편하지 않은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