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애’ ‘게이’ ‘퀴어’라는 퀴어장르가 공감에 앞서, 항의 버튼을 눌렀다. 방영 전부터 작품을 보지도 않은 채 벌써 일부 단체에서 ‘동성애 미화 방영중지 성명문’이 발표됐다. 시리즈 <대도시의 사랑법> 이야기다. 얼마 전 개봉한 김고은, 노상현 주연 동명 영화가 아니라 10월 21일부터 OTT 플랫폼 티빙을 통해 방송되는 시리즈다. 원작의 첫 번째 에피소드 「재희」를 차용했던 영화와 달리, 이번엔 원작 전체를 옮겨왔다. 원작자 박상영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해, 작정이나 한 듯 원작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대도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젊은이이자 게이인 주인공 고영(남윤수)을 중심으로 그의 친구, 가족, 연애의 역사를 각 회차 별로 이어지는, 리얼하고 디테일한 퀴어물이었던 원작과 똑 닮은 본격적인 퀴어 장르물이 만들어졌다.
모두가 궁금해할 표현의 수위, 물론 높다. 본편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자, 주인공 고영을 중심으로 게이 커플들의 사랑을 증명해 줄 키스신, 베드신도 빠지지 않고 포함된다. 그간 BL장르물의 인기로 OTT 플랫폼의 시리즈로, 또 영화로 제작되며 인기를 얻어 왔지만 마이너한 팬들에게 어필했다면, 보다 대중적인 접목과 시도, 확장성을 염두에 둔 기획물인 <대도시의 사랑법>이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이 도전적인 기획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비하인드, 제작의 과정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본격 퀴어 장르를 표방한 <대도시의 사랑법>은 지난 40년간 한국의 대표 영화감독을 배출해 온 한국영화아카데미가 40주년 기념작으로 직접 선택하고, 기획 제작한 작품이다. 할리우드 방식의 회차 별 감독을 차용하는 시스템으로 1-2화 <미애>는 손태겸 감독, 3-4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허진호 감독, 5-6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홍지영 감독, 7-8화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김세인 감독이 연출했다. 네 명의 감독 모두 아카데미 10년 단위 기수에서 선정됐기에, 규모를 떠나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한국 콘텐츠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이 가지는 도전과 의도를 듣고 싶었다. 작품의 의도를 충분히 전해 줄 연출가, 각본가, 배우를 모두 만났다. 먼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과 <대도시의 사랑법>을 연출한 홍지영 감독에게 작품 기획 단계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릴레이 인터뷰는 이어서 2회 손태겸·김세인 감독·박상영 작가. 3회 남윤수·오현경 배우, 그리고 4회 남윤수·권혁·나현우·진호은·김원중 배우 인터뷰로 이어질 예정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작품입니다. 먼저 어떻게 기획된 작품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허진호 아카데미 40주년 기념작이라는 취지를 살려서 10주년 단위에서 감독들을 한 명씩 선정해서 함께 드라마 한 작품을 만든다, 이렇게 된 거죠. 처음엔 단편영화로 시작을 했다가, 원작 소스를 가지고 가는 걸로 진행이 바뀐 거죠. 그러면서 기존 영화를 드라마로 가기로 한 거고요. 저도 그 단계에서 책을 받아서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참여하기로 했어요.
홍지영 저 같은 경우 원작자인 박상영 작가와 만남이 이어진 것 같아요. 프로젝트가 초창기 진행되고 있을 때, 마침 JTBC <방구석 1열>에 출연했는데 그때 원작자인 박상영 작가와 함께 게스트였어요. 근데 그 투샷을 박준우 PD님이 보신 거죠. 그때 이 둘 사이에서 뭔가 나오겠다 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처음 기획을 듣고 굉장히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TV나 영화의 경계가 없어졌는데 영화감독들이 모여 드라마라는 장르 안에서 특히 한 주인공의 일대기를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는 기획이더라고요.

각 회차 별 감독을 따로 두는 할리우드의 미드의 방식으로 연출했는데요. 각 회차 별 감독은 어떻게 정했나요. 연출하고 싶은 회차가 겹쳐서 서로 각축전이 있지는 않으셨어요?(웃음)
홍지영 배분을 잘 맞췄어요. 기수 단위로 들어갈 것, 상업, 독립영화 비중을 맞출 것, 성별의 비율을 고려할 것 같은 기준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원작에 동의하고 이 이야기를 연출로 풀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우선으로 한 거죠.
허진호 저는 원래 <미애>를 하고 싶었어요. (웃음) 그런데 주변에서 다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더 맞을 것 같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 (웃음)
홍지영 전 사실 다 좋아하는데 만약 이게 아니면 <늦은 우기의 바캉스>였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규호(진호은) 캐릭터 때문인데, 그가 들어와 있는 것이 현재 시점이건, 아니면 회상하는 시점이건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요. 제가 연출한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을 읽었을 때부터 재밌기도 했지만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내가 쭉 해왔던 레이어를 살려 정통멜로적으로 하는 게 나의 행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퀴어장르를 대중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기도 한데요. 장르를 향한 도전과 부담감을 어느 정도 체감하셨나요.
홍지영 이제 때가 되었구나!(웃음) 전 이런 소재를 기다렸어요. 한 번은 제가 해야 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딱히 저한테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부담은 있었어요. 그건 혹시 내가 잘 모르는 데 하는 걸까, 그 부분에 겁을 좀 먹었어요. 그래서 공간을 연구하거나, 인터뷰를 찾아보고, 심지어 논문까지 읽었어요.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나 잘못된 정보가 생길까 봐 그 지점에 주의했어요.
허진호 저도 비슷해요. 다른 작품을 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사회적인 시선에 있어서 서로의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저는 그냥 ‘다르지 않다’로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더 한다보다는 이들도 사랑을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다름보다는 같음에 주목하고 만들어 갔어요.

원작을 쓴 박상영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어요. 원작이 가진 방향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참여라는 점에서 시너지가 큰 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홍지영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좋아하는 이야기가 소설로 이미 있으니 좋은 기회였죠. 원작에 충실하게, 그것의 변주로 저의 해석을 더했어요. 다른 에피소드랑 비교를 하더라도 제가 맡은 회차는 그랬어요. 실제로 이게 제가 이 작품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해요. 제가 온전히 원작의 분위기를 건져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허진호 같이 회의를 많이 했었고 약간의 난관에 부딪힐 때 항상 원작으로 돌아가자, 원작에서 찾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이 작품의 시작이 원작 소설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어떤 명분보다 이렇게 재밌는 소설이 있고, 그걸 영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였고, 박상영 작가의 참여로 그 부분에 충실하게 시나리오가 나왔어요. 그리고 손태겸, 김세인 감독이 각색에 참여해 전편이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전례 없는 특이한 캐스팅도 눈길을 끄는데요. 네 감독이 한 명의 주인공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캐릭터 ‘고영’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데요. 감독님들의 합의를 이끌어 낸 남윤수 배우의 매력은 어떤 것이었나요. 캐스팅 과정에서 퀴어 장르에 대한 배우들의 도전 체감도 느끼셨을 텐데요.
홍지영 저희가 오디션을 아주 오랫동안 진행을 했었는데 그 안에서는 고영을 못 찾았어요. 그러던 중에 남윤수 배우가 관심을 표명하면서 감독님들과 같이 만나게 됐죠. 2시간여 대화를 하는데,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상처가 된 경험들을 터놓더라고요.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감정 표현이 정말 솔직한 친구였어요. 특히 작업을 하면서 본 이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되게 유연해요. 4명의 감독님이 원하는 코어들을 정확히 흡수를 하면서도 자신이 고영인 걸 잊지 않는 거죠. 아주 똑똑한 배우에요.
허진호 젊은 배우들에 있어서 그런 편견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남윤수 배우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혀줬어요. 일단 그 적극성에 놀랐는데 그 점만이 강점은 아니죠. 현장에서 아직 어리지만 진짜 배우 같은 진중한 자세를 봤어요. 홍 감독이 말한 대로 정서, 감성이 정말 좋아서 고영이 상대 배우인 영수(나현우)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진짜 같았어요.

표현의 수위가 높은 장면도 많은데요. 특히 고영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베드신 연출도 많았고요.
허진호 현장에서 동성 간의 애정표현을 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이 친구는 거리낌이 없었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한번은 현장에서 만들어 낸 씬에서 팬티를 입고 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요구를 선뜻하기 힘들어 어렵게 얘기를 꺼냈더니, 바로 ‘어떤 색으로 입을까요?’ 그러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준비를 하더라고요. 스태프들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지 않는 배우다운 자세를 매번 보여준 열려 있는 배우였어요. 더 좋은 배우로 크게 성장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각 회차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허진호 감독님이 연출한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성정체성으로 엄마와 갈등을 빚었던 시기를 지나 온 고영과, 암투병 중인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고영에게 가장 큰 에너지를 준 남자 영수와의 연애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기도 합니다. <봄날이 간다>의 ‘라면 먹을래요?’에 버금가는 플러팅이 한 축,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이 간다>로 이어지는 현실 멜로 안에서 가족 간의 관계까지 이어지는, 허진호 감독의 초창기 작품이 연상되어, 감독님다운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진호 박상영 작가의 원작에도 그런 유머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제가 좋아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도 그래서, 뭐가 재밌는 게 없을까 계속 고민하다 그런 부분들이 이제 발견이 된 것 같고요.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마냥 진지하고 어둡기보다는 사람 사는 것 같아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제가 만든 이전 영화들과 어떤 유사한 상황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같아서 좀 그런가요. 더 새로웠어야 했는데. (웃음)
홍지영 감독님은 작품의 표제이기도 한 3부를 연출하셨는데요. 고영과 규호의 서울에서의 리얼한 연애와 커플의 방콕여행이 주는 판타지성을 접목시켰는데요. 주인공들 외에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캐릭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주제적인 면에서 주목하게 되는 회차이기도 했습니다.
홍지영 맞아요. 미술, 촬영 감독님한테 그 얘기를 했었거든요. 저희 회차에서 주인공은 고영과 규호인데 제3의 주인공이 서울이라고. 그 지점이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 겉으로 대놓고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은연중에 그들의 배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몽타주처럼 처리된 방콕은 고영과 규호에게 있어서 행복의 정점에 있는 공간이었어요. 서울이라는 공간들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리면서 글로 표현된 원작의 방콕의 의미도 최대한 내가 그려보자 했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보실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허진호 대부분 그렇듯이, 남자끼리 키스하는 건 저 역시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촬영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그 장면이 정말 예쁘네 하는 생각이었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퀴어멜로라고 규정한다면, 우리가 이들의 사랑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다르지 않다. 다들 저렇게 연애하고 저렇게 헤어지고 저렇게 그리워하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홍지영 서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랑의 색깔을 볼 때, 고영과 규호의 사랑도 ‘다르지 않다’가 아니라 똑같구나. 늦으면 화내고 지루해지면 짜증내고, 그러다가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하는 말로 가슴을 훔치는 요소들이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작가로 성장해 나간다. 이런 것들이 다 똑같구나. 정말 순수하게 이들의 모습이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전 모든 회차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각각 다른 색깔로 연출이 되어 골라서 보실 수도 있고, 고영을 중심으로 쭉 다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