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날씨가 춥고 (아직은 한~참 멀었지만...) 겨울 느낌 조금씩 날 때쯤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영상으로 전하는 음유 시인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 <러브레터>가 그렇다. 1999년 11월 20일에 개봉한 이 작품은 올해로 개봉 25주년, 내년에는 탄생 30주년을 맞는 대표적인 멜로 영화다. (특이하게 일본에서는 3월 말, 봄에 개봉했음)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겨울 대표작으로 남은 <러브레터>. 포스터만 봐도 설레는 이 작품을 향한 에디터의 '러브레터'를 리뷰로 적어본다.
* 아래 내용은 <러브레터>의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러브레터>의 관전포인트

<러브레터>의 키워드는 크게 첫사랑과 겨울이다. 설원에서 숨을 참고 있는 히로코의 모습부터,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눈 덮인 산에서 외치는 안부 인사 장면까지, 이 작품은 겨울이 중요한 배경이며, 또 다른 캐릭터다. 작품의 주요 무대인 오타루의 겨울 배경을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내어, 차갑지만 묘하게 따뜻한 <러브레터>의 감성을 완벽하게 비춰낸다.
첫사랑 감성도 빼놓을 수 없다. 중학교 때 이름이 똑같은 동급생들의 티격태격 에피소드가 많은 이를 웃음 짓게 했고 그 시절을 그립게 만들었다. 영화 보는 내내 자신의 첫사랑을 자연스럽게 꺼내며 이제는 받을 수 없는 당신을 향한 러브레터를 다들 한 번 보냈을 것이다. 겨울에 만나는 첫사랑의 추억, <러브레터>의 핵심 키워드이자 감성이다.

<러브레터>는 1999년 11월 20일에 개봉했다. 당시 일본 문화 개봉이 막 이뤄진 시기. 극장에서 일본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그래서인가? <러브레터>를 처음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 이름에 헷갈려 했다. 얼굴은 같은데 이름이 이츠키? 히로코? 일본 사람들은 이름을 저렇게 지었나 생각했을 정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것이 영화의 중요한 트릭이자 미스터리 장치임을 깨닫게 한다. 이처럼 <러브레터>에는 미스터리, 추리 요소가 의외로 있다.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사람, 다른 이름의 같은 얼굴. 영화 중반부까지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소는 그것이 고도로 계산된 장치임을 깨달으면서 첫사랑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기에 반전처럼 밝혀지는 마지막 비밀은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안기며 미스터리 로맨스의 정점을 찍는다.
<러브레터> 이후 이와이 슌지에 입덕한 분이 꽤 계실 것이다. 이후 그의 작품도 좋은데, 뭔가 허전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러브레터>가 이와이 슌지의 연출력 외에 음악을 담당한 레미디오스(Remedios, 현재는 레이미Reimy로 더 많이 불린다)의 지분도 상당하기 대문이다. 작품의 OST는 단순히 좋은 음악 정도가 아니다. 영화의 또 다른 내레이션이고, 대사이며, 감정이다. 어느새 작품의 또 다른 타이틀이 된 ‘A Winter story’와 국내 모 CF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Eccentric Love Parade’,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인 테마 ‘Small Happiness’까지. <러브레터>에 레미디오스의 음악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만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했을까?
<러브레터>의 놓칠 수 없는 명장면-명대사는

<러브레터>는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거를 것이 없는 명장면-명대사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한두 장면을 꼽자면 역시 첫 번째는 'お元気ですか。私は元気です' (오겡끼데스카, 와따시와 겡끼데스-잘 지내나요? 전 잘 지냅니다)이다.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치면서도 이제는 추억 속에서 남겨두겠다는 히로코의 마음과 의지를 표현하고, 잊고 살았던 첫사랑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겪게 된 열병에 힘들었던 이츠키에게 치유의 의미를 건네 중요한 대목이다.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알 정도로 <러브레터>의 시그니처.

‘오겡끼데스카’도 분명 <러브레터>의 대표적인 장면이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 더 큰 설렘과 감동을 받았을 듯하다. 이츠키(여)의 중학교 도서부 후배들이 집에 찾아오면서 건네는 도서 카드의 비밀, 마지막에 밝혀지는 이츠키(남)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에디터는 1999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도서카드가 뒤집어질 때 관객석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이 카드는 이츠키(남)이 빌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들어있었다. 실제 책 내용과 해당 장면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었던 순간이자, 작품의 여운을 더욱 곱씹게 만든다.
참고로 이츠키(여)의 마지막 대사 번역에 대한 작은 논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래 대사는 'やっぱり てれくさくて この 手紙は 出せません' (역시나 부끄러워서 이 편지는 보낼 수 없습니다)인데, 99년 개봉판에서는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라고 나온다. 작품의 멜로 감성을 더 돋보이기 위한 번역가의 의역이 더해진 부분인데, 당시 한국 관객들의 눈물샘을 건드린 명대사다. 그럼에도 번역은 영화의 본 의미를 그대로 내놓아야 하는 의견도 꽤 있다. 그 결과 2013년 재개봉판에서는 원래 의미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의 그 감성을 좋아하는 분도 꽤 있는데, 어느 쪽이든 대사 하나 하나에도 섬세한 감정과 여운이 묻어 있는 <러브레터>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러브레터> 공개 당시 인기와 OTT 서비스 플랫폼은?

<러브레터>는 일본 문화 개방 초창기에 개봉한 작품이다. 당시 일본영화가 국내 개봉하려면 세계 유수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조건이 필요했는데, <러브레터>는 1995년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으로 다행히 개봉할 수 있었다.
사실 <러브레터>는 국내 개봉 전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일본 문화가 음지에서 유통되던 당시, 비디오테이프로 복사를 통해 전국 대학교 영화 동아리나 영화 애호가들한테는 익히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었다. 이런 루트로 본 사람들이 많아서 극장에서 성공할까 걱정도 많았지만 당시 서울 관객 65만, 전국 115만 명을 동원해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당시 박스오피스가 지금처럼 전산화가 되지 않았던 시기라 단순 수치만 보면 명성에 비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실정에 보면 전국 4-500만 관객 정도는 동원한 메가 히트작이었다. 심지어 국내 개봉 일본 실사 영화 중 1999년의 <러브레터> 관객 수를 뛰어넘은 작품이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워낙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이라 재개봉도 많았다. 2013년 2월 14일 첫(?) 재개봉을 시작으로, 16년, 17년, 19년 22년 등 겨울 시즌마다 극장에 단골손님처럼 돌아왔다. 재개봉 성적도 나쁘지 않아서 <러브레터>의 또개봉(?)은 근 시일 내에 다시 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 대만에서도 여러 번 재개봉을 해서 주연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대만 재개봉 때 몰래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워낙 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 리메이크 등 여러 소식도 많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뮤지컬이 나왔었고, 드라마화를 진행한다는 구체적인 발표도 있었다. 중국에서도 영화로 리메이크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다.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러브레터> 팬으로서 다른 형태로 이 작품을 다시 만나고 싶은 바람은 있다.

<러브레터>는 국내 OTT에서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현재까지는 오직 왓챠에서만 이 작품을 OTT 스트리밍으로 만날 수 있다. 일본영화와 드라마에 강점을 가진 왓챠에 어울리는 독점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이 밖에 이와이 슌지의 작품들도 많이 있으니 <러브레터>를 보면서 둘러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