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이상한 세상이야.” 사랑과 혐오, 혹은 선과 악 사이에서 배회하는 욕망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설명하기 힘든, 혹은 설명을 거부하는 기괴한 성장영화이자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서 <블루 벨벳>(1986)은 현대 영화사에 있어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라진 관객들도 있었고,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역겨운 영화’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렬한 비주얼과 사운드트랙으로 마치 인간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이후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크리에이터로서 세계관을 확장함은 물론 칸영화제에서 <광란의 사랑>(1990)과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로 각각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거장 데이빗 린치 월드의 원형이라는 데는 달리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말 이상한 세상이야”라는 대사를 자기도 모르게 내뱉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악몽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것 같은 놀라운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1977)로 충격을 안겨준 데이빗 린치 감독은, 마찬가지로 사람들 저마다의 어두운 본성과 대화하는 것 같은 <엘리펀트 맨>(1980)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을 영화화한 대작 <사구>(1984, 「듄」의 첫 영화화)로 상업적 실패를 경험한 그는, <블루 벨벳>을 통해 데뷔작을 만들 때처럼 직접 각본을 쓴 소규모 인디 영화로 돌아왔다. 더불어 <블루 벨벳>은 그에게 굉장히 개인적인 영화다. 실제로 그는 “<이레이저 헤드>의 헨리(잭 낸스)와 <블루 벨벳>의 제프리(카일 맥라클란)에게는 내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향을 찾은 제프리(카일 맥라클란)는 산책을 하던 중 사람의 잘린 귀를 발견한다. 윌리엄스 형사(조지 디커슨)에게 신고하지만 도리어 더 이상 사건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얘기만 듣는다. 하지만 윌리엄스의 딸 샌디(로라 던)로부터 매력적인 밤무대 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이 사건에 연관된 것을 알게 된다. 제프리는 호기심으로 도로시의 아파트에 몰래 숨어들어가지만 곧 들키고 만다. 그러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남자 프랭크(데니스 호퍼)가 들이닥쳐 옷장에 숨게 되고, 이내 충격적인 장면을 엿보게 된다. 도로시 남편의 귀를 자르고 아들까지 납치한 그의 변태적인 행위를 받아들이며 매저키스트가 된 도로시를 보게 된 것이다.

<이레이저 헤드>와 <엘리펀트 맨>을 흑백으로 작업했던 데이빗 린치는, 오히려 이질감을 강화시키는 것 같은 느낌의 강렬한 컬러 영화 <블루 벨벳>을 만들었다. 하지만 잘린 귀를 발견한 순간부터 영화는 화사한 색감을 걷어내고 살인과 변태, 그리고 내내 성적인 긴장감이 감도는 이중성의 미로로 안내한다. 얼핏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추리소설 구조를 띠고 있지만 데이빗 린치의 관심사는 결국 존재의 이면이다. 겉으로는 아름답거나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환경 뒤의 충격적 비밀을 마주하는 주인공의 당혹감은, 그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 더 나아가 인간 잠재의식의 표피를 벗겨내는 여정이다. 벽장에 숨어 도로시와 프랭크를 엿보는 제프리는 바로 감독과 관객의 다른 모습이며, 클로즈업된 귀의 이미지는 바로 그 현대인의 잠재의식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프랭크가 제프리에게 “넌 나와 닮았어”라고 얘기할 때의 공포와 혐오스러움은 개봉한 지 거의 40년이 되어 가는 지금 봐도 의미심장하며, 제프리와 샌디가 각각 영화 속 사건의 시작과 끝에서 대구처럼 “이상한 세상이야”라고 얘기할 때의 염세적인 서늘함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프랭크가 따라 부르던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를 들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시 한번 “정말 이상한 세상이야”라고 읊조리게 된다. 프랭크 역의 데니스 호퍼는 <블루 벨벳> 캐스팅 당시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져있었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데이빗 린치 감독에게 직접 “프랭크는 내가 연기해야 한다. 내가 바로 프랭크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과 선한 믿음 모두 포용하며 시대를 초월한 데이빗 린치의 걸작 중의 걸작.


데이빗 린치의 긴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며 꼭 덧붙이고 싶은 작품은, 어딘가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지는 <스트레이트 스토리>(1999)다. 아마도 별다른 정보 없이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감상한 사람이라면 데이빗 린치의 영화라는 사실이 의아할 것이다. 데이빗 린치가 구역질 나는 중산층 가족의 이면, 혹은 주인공이 여행 도중 겪게 되는 기묘한 사건들을 그리지는 않을까 기대한다면, 112분의 러닝타임을 허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영화는 린치의 영화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하고 도덕적이다. 그리하여 그런 점들이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주요한 감상 포인트가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또 있다. 이처럼 잔잔한 가운데 드러나는 린치 특유의 색채다. 가령 고속도로에서 계속 사슴을 치는 여자와 만나는 에피소드, 엔진을 고치기보다 자기들끼리 실랑이하는데 더 시간을 끄는 쌍둥이 정비공의 모습은 마치 이전 린치 영화 속에서 나온 인물들 같아 보여 반갑다.

1944년 아이오와주의 로렌스, 일흔 살이 넘은 노년의 앨빈 스트레이트(리처드 판스워스)는 언어 장애가 있는 딸 로즈(씨씨 스페이식)와 단둘이 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빈집에 혼자 있던 앨빈은 갑자기 마루에 쓰러지고, 이웃들이 몰려와 병원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렇게 정신력으로 버티던 앨빈에게 형 라일리(해리 딘 스탠튼)가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전화가 온다. 그동안 형과의 오해로 인해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앨빈은 위독한 형을 만나기 위해 위스콘신주로 홀로 떠난다. 로즈도 만류하고 주변 친구들도 하나같이 걱정하지만 막무가내다. 더구나 운전면허도 없는 그는 결국 낡은 잔디깎이를 개조해 마치 캠핑카처럼 만든 트랙터를 타고 떠난다. 형이 죽기 전에 오해를 풀고자 하는 앨빈은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을 시작하고, 여정 중에 만난 사람들과 인생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단체관광 중인 노인들, 임신한 10대 가출 소녀, 자원봉사 소방관, 잔디깎이 트랙터가 고장 나 수리를 받는 동안 숙식을 제공해준 친절한 부부들까지 그는 사람들의 따스한 환대를 받으며 여행을 계속한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느린 트랙터 여행을 떠났던 그는 드디어 형을 만나게 된다. 바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찬찬히 옛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자신보다 더한 병으로 고통받는 형을 찾아 300마일의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감동적인 로드 무비다. 그가 여정 중에 만나게 되는 미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들이고, 그들로부터 그는 잊고 지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고집 센 황혼의 주인공이 기나긴 인생에서 얻는 깨달음이 그 6주간의 여행 속에 압축돼 있다. 60년 연기 생활 중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는 리처드 판스워스의 고단한 표정과 사람 좋은 웃음 속에 <스트레이트 스토리>의 모든 주제가 녹아 있다. 제목 그 자체가 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영화제는 물론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절찬을 얻어냈지만,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리처드 판스워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뷰티>(2000)의 케빈 스페이시가 남우주연상을 받아 큰 아쉬움을 남겼다.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 형을 연기한 배우 해리 딘 스탠튼에 대한 다큐멘터리 <해리 딘 스탠턴의 초상>(2012)에는 데이빗 린치가 묻고 해리 딘 스탠튼이 답하는 장면이 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1987)로 널리 알려진 그는 <스트레이트 스토리> 외에도 <광란의 사랑>과 <인랜드 엠파이어>(2006), 그리고 극장판 <트윈 픽스>(1992)와 2017년에 공개된 시리즈 <트윈 픽스> 시즌3에도 출연하며 데이빗 린치와도 깊은 우정을 나눈 배우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라는 데이빗 린치의 질문에 그는 “어떻게 기억되든지 상관없어요”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데이빗 린치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같은 대답을 들려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