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96년생 여성배우 트로이카 젠데이아-안야 테일러 조이-플로렌스 퓨가 있다면, 한국의 90년대 후반 출생 여성 배우들 라인업도 그에 못지않다. Z세대의 시작점에 선 한국 여성 배우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과 실력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임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일반인이라면 사회에서 이제 막 자리를 잡고 고군분투할 20대 후반을 갓 지난 나이, 90년대 후반 출생 여성 배우들이 10년, 20년 후에는 어떤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나갈지 궁금해서라도 꾸준히 이들의 작품을 챙겨보고 싶다. 아래에 언급할 배우들 이외에도 수많은 95~99년생 여성 배우들이 자신만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지만, 지면의 한계로 인해 그중 10명만 생일순으로 소개해 본다.
고민시 (1995.02.15)

최근 대한민국에서 여러모로 ‘핫’한 배우를 꼽자면, 단연 고민시가 아닐까. <좋아하면 울리는> <스위트홈> 등에 출연하며 ‘넷플릭스의 딸’로 점차 얼굴을 알린 고민시는 스스로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으려는 듯, KBS2 드라마 <오월의 청춘>(2021, KBS2)으로 한국 현대사의 아픈 얼굴을 대변하는 한편, 영화 <밀수>로 살아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능청스러움까지 표현해냈다.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고민시의 사이코패스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책임진 드라마이기도 한데, 이 여성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아직도 무궁무진하기에 그의 10년, 20년 후가 더욱 기대된다.
김다미 (1995.04.09)

박훈정 감독이 <마녀>로 발탁한 인재는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0대 배우로 성장했다. 신인을 기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박훈정 감독이 고르고 골라 발굴한 원석은 보석이 되어가는 중이다. 김다미는 <마녀> 이후에 더욱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남기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놀라운 것은 김다미가 출연한 드라마가 <이태원 클라쓰>(2020, JTBC), 그리고 <그 해 우리는>(2021~2022, SBS) 단 두 편이라는 사실인데, 그 두 편의 드라마가 너무나도 큰 화제성을 거둔 나머지 김다미는 드라마 단 두 편으로 국내외의 인지도를 꽉 잡았다. 김다미는 내년 윤종빈 감독의 디즈니+ 시리즈 <나인 퍼즐>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김혜준 (1995.05.08)

올해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은 마치 배우 김혜준의 성장기와도 겹쳐 보인다. <킬러들의 쇼핑몰>은 삼촌(이동욱)의 부재를 딛고 일어선 정지안(김혜준)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킹덤>(2019~2020)의 ‘빌런’ 중전, <구경이>(2021, JTBC)의 양면성을 지닌 사이코패스 살인마 등 20대 여성 배우로서는 유난히도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한 김혜준은 마치 <킬러들의 쇼핑몰>의 정지안처럼, ‘성장이 눈에 보이는 배우’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김민하 (1995.09.01)

궁금해지는 눈빛, 이야기를 품은 얼굴. 애플tv+ <파친코>라는 할리우드 대형 프로젝트의 간판이 된 인물은 바로 생소하고 낯선 얼굴 김민하였다. <파친코>로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욱 유명해진 배우 김민하는 할리우드의 스포트라이트에도 불구하고,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국내 활동의 내실을 다지는 모양새다. 김민하는 이번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폭로: 눈을 감은 아이>, 내년 공개될 티빙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그리고 김종관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가제) 등에 출연하며 규모를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남지현 (1995.09.17)

<굿파트너>의 한유리 변호사처럼 지적이면서도 선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남지현은 오랜 아역 활동으로 29세의 나이에 벌써 숱한 히트작을 보유한 배우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드라마 <선덕여왕>(MBC, 2009)인데, 당시 배우 이요원의 아역으로 등장했던 그가 성인이 되어 로맨스 사극 <백일의 낭군님>(tvN, 2018)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참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남지현이 선택하는 작품들은 마치 배우 본인처럼 내실 있고 탄탄한데, 그는 많은 팬덤을 보유한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SBS, 2016), <작은 아씨들>(tvN, 2022) 등에 출연하며 ‘믿고 보는 남지현’이라는 문구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김보라 (1995.09.28)

드라마와 독립영화, 단편영화를 아우르는 필모그래피를 보유한 김보라는 올해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으로 그의 매력과 연기력을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김보라는 Z세대들 사이에서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김보라의 인스타그램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즐겨 찍고, 유행하는 옷 대신 그만의 독특한 취향이 담긴 옷을 입는 등 그야말로 ‘힙스터’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적인 작품 대신 독립영화, 단편영화, 독특하고 실험적인 소재의 영화 등을 선택하는 그의 행보 역시 ‘힙’하다.
고윤정 (1996.04.22)

탄탄대로가 예정된 또 한 명의 20대 여성 배우. 작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관록의 베테랑 배우들과 신선한 얼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충족시킨 작품이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단연 영화 <헌트>,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2022~2023, tvN) 등으로 존재를 알린 고윤정이 있었다. 고윤정은 00년대, 10년대에 청춘을 연기했던 뭇 여성 배우들이 떠오르는 고전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한데, 당시 청춘을 연기했던 여성 배우들이 성장해 현재는 굵직한 중년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고윤정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김혜윤 (1996.11.10)

2024년 한 해, ‘선업튀’를 빼놓고 논할 수 있을까. ‘류선재’ 변우석 신드롬을 일으킨 <선재 업고 튀어>는 사실, 김혜윤이 아니었다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선재 업고 튀어>의 이시은 작가는 쓸 때부터 김혜윤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고, 김혜윤은 이보다 더 임솔 역을 잘 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 연기’를 펼치며 이에 화답했다. <SKY 캐슬>(2018, JTBC) <어쩌다 발견한 하루>(2019,MBC) 등을 ‘불도저에 탄 소녀’처럼 질주해 온 김혜윤의 질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신예은 (1998.01.18)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웹드라마 <에이틴>(플레이리스트, 2018)에서 공부, 외모, 성격 모두 다 되는 도하나 역으로 Z세대의 워너비에 등극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신예은. 당시 20대 초반이던 그가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며 보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단지 신예은을 ‘예쁘고 참한’ 여성 배우라고 칭하기에는 큰 실례라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2022~2023)의 고등학생 박연진은 ‘보고 싶어 죽는 줄’이라는 명장면을 남겼는데, ‘고등학생들의 워너비’였던 신예은의 <에이틴> 시절을 상기해 보면 자못 놀랍기까지 하다. 특히나 올해 방영된 tvN 드라마 <정년이>는 신예은의 폭발적인 성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김시은 (1999.01.19)

‘소희’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더 익숙할 배우 김시은은 ‘소희’(영화 <다음 소희>), ‘하은’(영화 <너와 나>)으로 그와 비슷한 나이대 여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대변해왔다. 백상예술대상, 디렉터스컷 어워즈 등에서 신인상으로 9관왕을 달성한 김시은은 올해 초 ‘포브스’에서 발표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겨냥할 차례, 김시은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2에 ‘95번’으로 등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