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와 습지, 들판 그리고 토네이도의 한가운데까지.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인물들은 자연의 곳곳을 누볐다. 숱한 작품 속에서 그녀는 자연으로부터 삶을 터득하거나 위로를 받았다. 때로는 경외감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꼈고,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내왔다. 청순한 매력이 돋보이는 그녀의 깔끔한 외모는 자연의 이미지에 더없이 들어맞기도 하다.

10대 때 연기를 시작한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다져오다 영미권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노멀 피플>로 이름을 알린다. 이후 그녀는 노스캐롤라이나 습지의 풍경이 아름다운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인적이 드문 습지의 주인이 되었고, 재난영화 <트위스터스>에서 토네이도를 쫓았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냉혹한 자연관을 다룬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모든 생명의 어머니이자 운명의 비밀을 쥔 가이아가 되어 자연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트위스터스>에서는 기후 위기 시대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재자로 거듭난다. 자연과 함께한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인물들을 돌아보았다.

샐리 루니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노멀 피플>은 영국과 미국 등에서 큰 인기를 끌며 폴 메스칼과 데이지 에드가 존스를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이 드라마에서 겉으로는 도도하고 차갑지만, 가정 폭력과 정서적 학대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메리앤 역을 맡았다. <노멀 피플>은 아일랜드 서부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시작해 더블린의 대학교에서 이야기를 끝마친다.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이어가는 메리앤과 코넬(폴 메스칼)은 이 흐름 속에서 역전된 상황을 맞이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영국의 런던 출생인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아일랜드 억양이 있는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다. 그녀는 북아일랜드 출신인 어머니와 북아일랜드 억양이 아주 강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아일랜드의 억양을 구사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풍광이 아름다운 작품 <노멀 피플>의 메리앤도 데이지의 자연스러운 아일랜드 억양 연기를 볼 수 있는 캐릭터 중 하나다. 교내에서 인기 많은 럭비 선수인 코넬과 달리 메리앤은 줄곧 혼자 있는 외톨이다. 그녀는 코넬의 짓궂은 친구들로부터 폭력적인 말을 듣고 조롱을 당하지만 가벼운 응수와 무시로 대응한다. 얄팍한 소속감에 얽매이지 않는 그녀는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도리어 낮추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유명한 변호사 집안이라는 허울 안에서 벌어진 가정 폭력의 상처로 인해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그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으려 마음의 벽을 세운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감정선을 차분하게 유지해 메리앤의 이중적인 면모를 그려낸다.

작품에서 두 인물은 각기 다른 이유로 평범함에 얽매여 있다. 코넬은 친구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메리앤과의 연애 사실을 숨기고,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는 평범함의 바깥으로 추방 당하지 않기 위해 거짓된 관계에 집착한다. 반면 메리앤은 다수와 다른 자신을 부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노멀 피플>은 두 인물의 방황과 성장으로 평범함의 강압적인 이면을 들추어 낸다. 보편성과 떨어져 있는 <노멀 피플>의 메리앤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데이지 에드가 존스가 연기한 다른 인물인 카야로 이어진다. 아일랜드 풍광이 더없이 아름다운 교외 지역의 소녀였던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이후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소녀 카야가 되어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습지의 아름다운 생태계를 그려낸다. 이번 영화에서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문명과 떨어져 자연으로부터 생존의 법칙을 배우는 소녀 카야로 분한다. 가정 폭력의 어둠은 이번에도 그녀의 인물을 뒤따라온다. 카야의 가족들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서 하나 둘 집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폭력의 주체였던 아버지까지 떠나가자 드넓은 습지에는 그녀 혼자 남는다. 마을 사람들은 단지 마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습지에서 살아가는 카야를 습지 소녀라 부르며 멀리한다. 카야는 속세와 떨어져서 자연의 동식물들을 관찰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의지할 곳 없는 소녀의 연약함과 자연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여성의 강인한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생태영화이자 동시에 숲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남자 체이스(해리스 딕킨슨)의 죽음을 밝혀내는 미스터리물이기도 하다. 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법정 영화다. 카야는 마을에 떠도는 뜬소문에 의해 살인자로 내몰리고 법정에 선다. 평생 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에 시달려 온 카야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깊고 까만 눈동자는 카야의 심정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면을 부각하고, 영화에 미스터리를 더한다. 결국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카야는 이후 생태학자가 되어 평생을 습지와 함께하다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그녀가 남자를 죽인 범인이라는 비밀을 넌지시 밝힌다. 카야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포식자도 죽여야 하는 자연, 선과 악이 없는 자연의 법칙을 체화했고, 폭력을 휘두르는 체이스를 죽이고 자신을 지켜냈다. 선악의 너머에 있는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법보다 우위에 존재한다. 이번 영화에서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선과 악이 없는 자연 그 자체가 된다.

<트위스터스>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선보인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이중성을 간파하고 <트위스터스>의 주인공으로 그녀를 캐스팅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케이트는 연약하고 인간적인 영웅이다. 이 영화는 재난 서사이자 케이트의 정신적인 여정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깊이 있고 지적이며 강인하면서도 열린 사람, 관객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 데이지를 <트위스터스>에 꼭 필요한 배우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이어 <트위스터스>에서 또다시 자연과 교감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생태학자였던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날씨를 사랑하는 기상학자로 변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들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고, 바람의 방향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자연의 중재자처럼 보인다.

토네이도로 친구와 연인을 잃은 케이트는 죄책감을 가진 채 뉴욕의 기상학자로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참혹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옛 친구 하비(안소니 라모스)가 찾아와 다시 토네이도를 소멸시키자는 제안을 한다. 여전히 친구를 잃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케이트는 망설이지만, 결국 하비의 연구팀에 합류하기로 하고 역대급 규모의 토네이도가 발생한 오클라호마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칭 ‘토네이도 카우보이’라 말하는 백만 유튜버 타일러(글렌 파월)를 만난다. “느낌 오면 쫓는다!”. 타일러는 토네이도를 쫓는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해 오락 거리로 만들고, 그 인기에 힘입어 피해 지역에서 자기 얼굴이 박힌 티셔츠와 머그컵 등을 판다.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 케이트와 타일러의 첫 만남 이후, 아칸소 출신의 촌뜨기 유튜버들로 이루어진 타일러 팀과 케이트와 하비가 속한 스톰 파의 거침없는 토네이도 사냥이 시작된다.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의 외양으로 변장한 <트위스터스>는 사실 변형된 영웅서사 플롯을 취한 서부극이다. <트위스터스>는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3막 12단계로 이루어진 영웅 여정(「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을 생략과 변형을 거쳐 빌려 온다. <트위스터스>는 출발과 입문, 귀환의 3막 구성 안에서 인물 케이트가 토네이도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속에서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자연과 인간의 사이에서 그 둘 모두를 수호하는 여성 영웅으로 거듭난다. 영웅으로서의 그녀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친구를 잃은 과거와 멀리 떨어진 뉴욕에서 기상학자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케이트는(1단계 평범한 세계) 하비로부터 토네이도를 소멸시키자는 제안을 받는다(2단계 모험의 부름). 케이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하비는 그녀에게 “네겐 재능이 있다”고 말하며 영웅의 비범한 능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케이트는 하비의 제안을 거절한다(3단계 부름을 거부함). 망설임 끝에 결국 하비의 제안에 응한 케이트는 오클라호마에 당도해 스톰 파 팀원과 타일러를 만난다(5단계 첫 관문, 6단계 시험, 아군, 적군). 토네이도를 쫓던 케이트는 후지와라 효과를 내고 있는 두 개의 토네이도를 만난다(7단계 깊숙한 산속 동굴). 강력한 토네이도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인근 마을을 휩쓸고, 조력자인 줄 알았던 하비가 사람들의 비극을 이용해 돈을 버는 릭스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8단계 시련). 하비와의 다툼은 그녀를 외면해왔던 과거가 있는 고향의 집으로 향하게 한다(10단계 돌아가는 길). 케이트는 사실 토네이도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구호 활동을 하고 있었던 타일러와 오해를 풀고, 그와 함께 토네이도를 쫓는다. 다시 강력한 토네이도가 마을에 들이닥친다. 케이트는 혼자서 도로시를 태운 차를 이끌고 토네이도의 한가운데로 돌진한다. 도로시에 의해 토네이도는 소멸되고 케이트는 마을과 사람들을 구한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케이트는 연구 결과를 알리기 위해 뉴욕으로 가려 한다(11단계 부활, 12단계 묘약과 함께 집으로 돌아감). 다만 <트위스터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재난을 불러온다. 인간의 오만과 욕심은 기후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구의 분노는 계속된다.

철저히 영웅 서사에 입각한 <트위스터스>는 데이지 에드가 존스를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시련을 이겨낸 여성 영웅으로 만든다. 케이트는 늘 토네이도를 레이더로 기록해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순간에도 주저하지 않고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을 돕는 쪽을 택한다. 정이삭 감독은 영화의 곳곳에 미국의 성조기를 두고 미장센으로 활용한다. 그는 영화 속 토네이도가 들이닥친 오클라호마의 모습으로 혼란스러운 미국의 모습을 유비하고 있다. <트위스터스>의 영웅 서사는 영웅주의가 부각된 장르 서부극을 변형해 새롭게 써낸다.

타일러와 케이트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대조적이다. 시종일관 가벼운 태도로 토네이도를 쫓는 타일러의 모습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반면에 케이트는 자연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에 맞서지 못한다. 자신을 토네이도 카우보이라 부르는 타일러의 모습은 자연 위에 군림한 제왕과 같아 보인다. 타일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서부극을 연상시키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부터 중절모를 쓴 채로 등장한다. 또 토네이도를 쫓기 위한 스톰 파와 타일러 팀의 카 체이스는 서부의 광활한 황야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카우보이들의 모습과 같다. 타일러가 토네이도를 향해 쏘아 대는 로켓은 서부극의 대표적인 도상인 권총을 연상시킨다. 정이삭 감독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장르 서부극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려는 여성 영웅의 서사로 탈바꿈한다. 여성을 영웅으로 내세운 <트위스터스>는 남성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날씨를 사랑했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토네이도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던 케이트는 타일러를 통해 각성한다. 과거 로데오 선수였던 타일러는 사실 토네이도를 두려워하지만 로데오를 통해 두려움을 반복해서 마주하며 두려움을 즐기게 된다. 케이트는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다시 제대로 자연을 마주한다.

과학자로서의 순수한 열정과 지성, 인간과 자연의 케케묵은 주-객체의 관계에서 벗어나 정직하게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자연과 본능적으로 교감하는 비범한 능력은 케이트를 여성 영웅이 되게 만들었다.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냉혹한 자연관을 거쳐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수호자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다음 작품에서는 화산이나 밀림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