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생인 밀리 바비 브라운으로 90년대생 여배우 특집을 마무리하는 이유는 그가 90년대와 2000년대를 연결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10년 차 배우로서 젠지(GenZ: 1995~2010년생 세대)의 문법을 체화하고 (현재는 성인임에도) 여전히 성장기 소녀의 패기를 보여주며 알파 세대(2010년 이후 세대)의 본보기 노릇을 톡톡히 한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넷플릭스 그 자체이다. 엄청난 인기로 시즌 5까지 제작된 <기묘한 이야기>와 제작까지 참여하며 흥행 연타에 성공한 <에놀라 홈즈>, 단독 주연 배우로 확실히 존재감을 각인시킨 <댐즐>까지 이 정도면 ‘넷플릭스 공무원’이라 인정받을 만하다.

1998년 온라인 DVD 대여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해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했다. 꽤 성공적인 미국 기업이었던 넷플릭스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은 제작사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가 큰 화제를 모으며 빠르게 성장하더니 2016년 <기묘한 이야기>로 만루 홈런을 쳤다.
<기묘한 이야기>는 방대하고 탄탄한 세계관, 귀여운 아역 배우들의 활약, 눈을 사로잡는 비주얼 등으로 넷플릭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터미네이터>, <E.T>, <구니스> 등 추억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1980년대 미국 인디애나 주의 작은 마을 호킨스를 배경으로 한 <기묘한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윌 바이어스(노아 슈냅)을 찾기 위해 친구들이 직접 나서면서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 일레븐(밀리 바비 브라운)을 만나고 평범한 시골인 줄만 알았던 호킨스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알게 된다.

2016년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시즌이 공개되었을 때가 밀리 바비 브라운은 불과 12살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NCIS>, <모던 패밀리>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그는 2014년 드라마 <인투르더스>를 통해 작가 스티븐 킹의 눈에 띄면서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을 맡게 되었다(<기묘한 이야기>은 스티븐 킹의 스타일에 영향 받은 작품이라 킹의 호평에 제작진도 주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 통제된 환경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온 일레븐은 전형적인 성장형 캐릭터이다. 현실 감각이 낮아 순수하면서도 엄청난 힘과 용기를 내재하고 있는 일레븐을 밀리 바비 브라운은 대사 없이 표현해 내야 했다. 그리고 밀리 바비 브라운은 일레븐을 설명하지 않고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성공한다.
뛰어난 재능이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으로 눈과 얼굴, 온몸을 사용해 공간을 장악한다.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강력한 어린 시절 밀리 바비 브라운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동물적인 연기’가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다. 실제로 그는 시즌 1을 촬영하며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묘한 이야기>의 기획을 맡은 더퍼 형제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본능적인 감각은 저절로 넘쳐흐른다.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고 알아서 하게 둔다”고 전하기도 했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일레븐과 함께 성장했다. <기묘한 이야기>는 2016년 시즌 1을 시작으로 2017년 시즌 2와 2019년 시즌 3를 지나 2022년에는 전 시즌을 통틀어 가장 큰 호평을 받은 시즌 4까지 달려왔다.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사이 밀리 바비 브라운은 큰 굴곡을 견뎌내며 성숙해졌다. 악플 세례를 받는 등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혹독하게 치렀던 그는 <기묘한 이야기>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방해가 된다”며 “작별 인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거침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2020년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는 밀리 바비 브라운이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를 읽고 먼저 제작을 제안한 작품이다. 그렇게 밀리 바비 브라운은 <에놀라 홈즈>의 캐스팅과 대본 작업에 일부 참여하며 제작 데뷔를 했다.
<에놀라 홈즈>는 1884년 영국을 배경으로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가 미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에놀라 홈즈는 어머니 유도리아 홈즈(헬레나 본햄 카터)에게 주짓수, 과학 등 당대 여성들이 받지 않는 교육을 받으며 영리하고 주체적으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텅 비었던 저택으로 오빠 마이크로프트 홈즈(샘 클라플린)와 셜록 홈즈(헨리 카빌)가 돌아온다. 이어 엄마의 흔적을 발견한 에놀라 홈즈는 홀로 길을 떠나고 우연히 도망자 신세인 듀크스베리(루이 파트리지)를 만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밀리 바비 브라운이 에놀라 홈즈에 꽂힌 건 그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놀라 홈즈의 대담하고 직관적인 모습은 밀리 바비 브라운과 닮았다.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아무런 준비 없이 카메라 앞에 섰고 열여섯에 카메라를 벗어나 영화의 판을 짰다. 마치 에놀라 홈즈가 답답한 기숙 학교 대신 런던행 기차에 오르듯 밀리 바비 브라운은 자신의 길을 개척해갔다. 이것이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가족들과 함께 제작사 ‘PCMA 프로덕션스’를 설립해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 넷플릭스 영화 <댐즐>을 공개했고 이어 장편 영화 <Nineteen Steps>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Nineteen Steps>는 지난해 9월 밀리 바비 브라운이 출간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본인의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은 밀리 바비 브라운은 런던에 사는 18세 소녀 넬리 모리스가 미국 공군 병사 레이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소설로 펴내며 작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바 있다.
2018년 최연소 유니세프 친선대사, 2020년 타임지 선정 최연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인물 100인’… 각종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쥔 밀리 바비 브라운은 물러서는 법이 없다. 스무 살이 된 2024년, 존 본 조비의 아들 제이크와 결혼한 밀리 바비 브라운. 나이가 어리다는 주변의 우려 속에서도 “앞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며 굳건한 믿음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왜 젠지와 알파를 아우르는 아이콘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지 알 듯도 하다.
씨네플레이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