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묘하다. 4년 전,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을 세상에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례없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다행스럽게도 당해 <남산의 부장들>은 영화 관객 수 1위(475만 명)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무려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하얼빈>은 개봉을 3주 앞두고 계엄이 선포되며 혼란스러운 시국과 맞물려 개봉하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모티브로 한 영화 <하얼빈>이 24일 개봉한다. 그간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 등 맵고 뜨거운 작품들로 사랑받았던 우민호 감독이 완벽하게 다른 스타일로 돌아왔다. 뚝심과 용기로 관객을 백여 년 전 하얼빈에 데려다 놓을 우민호 감독을 만났다.
영화 <하얼빈>은 3년 전, 코로나 시기에 기획했다고 하셨어요. 그 당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우연치 않게 안중근 자서전을 읽게 되었어요. 그때 그분이 30세였더라고요. 그 사실을 몰랐거든요. 그리고 신아산 전투에서 안중근 장군이 일본군 포로를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줬다가 역습을 당하고 모든 비난을 짊어지잖아요. 우리가 아는 영웅이 아닌 패장의 모습인 거죠. ‘처음에 이분은 실패자였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얼빈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가 「하얼빈」이라는 대본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직 감독을 못 구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감독이 쉽게 안중근 영화를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대본을 받아서 읽어봤어요. 완전히 오락영화였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는 못하고 이 영화를 묵직하게 찍고 싶다’고 ‘이에 동의하면 내가 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그 대본과는 별개로 새로 써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대본을 완전히 갈아엎으면서까지 연출 톤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요?
물론 누군가는 이 이야기로 오락 영화처럼 찍을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제가 안중근 자서전을 읽었을 때 오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거든요.
대본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대본이 잘 안 풀렸어요. 그 시대의 공기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아내가 ‘좀 쉬면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어보라’고 했어요. 그 책이 <하얼빈>의 시대를 포함하고 있거든요. 그때 가닥을 좀 잡았어요. 「토지」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생명성은 얼마나 질긴지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영화를 통해서 ‘아무리 짓밟혀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영화 <하얼빈>은 한국 영화 최초로 IMAX 포맷으로 제작되었어요. 위아래로 확장된 비율을 채우는 1.90:1의 영상비를 제공하는데요. 이것 역시 도전적인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IMAX 제작을 고집하신 이유가 있나요?
광활한 대자연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안에서의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의 모습을 한번 보고 싶었어요. 이 넓은 땅 위에서 이들의 모습은 참 초라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거든요. 그럼에도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을 숭고하게 담고 싶었어요.
제가 스태프들과 헌팅 다니면서 대자연 앞에 서니까 정신이 확 맑아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간이 자연 안에서 참 초라해지는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당시 그분들이 생각났어요. ‘이 길을 걸어가시면서 한계를 초월해 정신이 단단해졌겠구나’ 싶었어요. 이게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잖아요. 물리적으로는. 그런데 정신은 살아있는 거죠.
몽골, 라트비아, 한국까지 총 3개국에서 촬영하셨어요. 크랭크인은 어디에서 시작하셨어요?
몽골이요. 그분들의 마음과 정신을 느끼면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사막에서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이 장관이던데… 촬영은 정말 힘들 것 같았어요.
거기까지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모래다 보니까 발이 계속 빠지고 엄청 추웠거든요. 배우들도 헉헉거리면서 얼굴이 시뻘개졌어요. 덕분에 되게 리얼하게 담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비주얼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이 많아요. IMAX로 볼 만한 작품이라는 호평도 있고요. 한편, 연출적으로는 밀고 당기는 감독님의 장기가 배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점은 감독님의 의도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냥 우직하게 가고 싶었어요. 안중근과 독립군들과 같은 톤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작에서 보여드린 빠른 편집이나 많은 쇼트 전환 등은 없어요. 굉장히 클래식하게 찍었죠. 대표적인 예로 배우들의 단독샷보다 그룹 샷이 많다는 거예요. 저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장군이 총을 쐈지만 그 일이 있기까지 수많은 동지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보거든요. 지금까지 늘 단독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동지들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으려고 했어요.
요즘 숏폼과 같이 빠른 속도의 콘텐츠에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독립군의 정신과 마음을 숭고하게 담는 <하얼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어요. 그래서 영화적으로, 클래식한 스타일로 찍고자 했죠. 지금 젊은 분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굉장히 궁금해요.
영화가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이런 장르에서 신파적으로 흘러가기 쉬운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신파가 나쁜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 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이 제작비도 많고 그만큼 손익분기점도 높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는 않으실 것 같아요. 감독님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방향이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영화 <하얼빈>은 약 300억 원의 대작으로 손익분기점은 약 650만 명이다.)
그건(‘용기 있는 선택’) 저만 한 건 아니고요. (웃음) 제작사 대표님과 투자배급한 CJ ENM, 우리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한 거죠. 그리고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른다고 다 흥행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영화 <하얼빈>의 또 다른 매력은 배우들이에요. 특히 안중근 역을 맡은 현빈 배우는 이전과는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안중근 역에 현빈 배우를 고집했다고요.
제가 그리고자 하는 안중근은 ‘영웅’ 안중근이 아니었어요. 하얼빈까지 가는 여정 속에서 고뇌와 번뇌, 두려움, 고독 등을 담고 싶었어요. 현빈 배우의 눈빛에서 그런 것을 봤어요. 어떨 때는 굉장히 따뜻하고 어떨 때는 강인한 그 눈빛에서 그 누구도 꺾지 못하는 어떤 힘이 있거든요. 그런데 계속 거절하더라고요. (웃음)
어떻게 설득하셨나요?(웃음)
계속해서 책(시나리오)을 줬습니다. 고쳐서… 고쳤다고.
어떻게 고치셨는데요?
별로 고치진 않았어요.(웃음) 준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안중근 장군께서 절대 포기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하라고 하셔서… (웃음)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캐스팅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독립군 이창섭 역의 이동욱 배우는 정말 의외의 캐스팅이었어요. 현빈과 이동욱, 두 배우가 한 화면에 담기는데 정말 그림 같더라고요.
그 역할에 이동욱 배우가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여담인데 라트비아에서 한 한 달 정도 있었거든요. 촬영하면서 두 배우와 같이 산책을 자주 했는데 늘 사람들이 쳐다보더라고요. (웃음) 심지어 남자들도 쳐다봐요. 그래서 제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라. 애국한다고 생각하고”라고 했어요. (웃음)
이토 히로부미 역의 일본의 대배우 릴리 프랭키 캐스팅도 놀라웠는데요. 한일 양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사랑받는 배우잖아요.
릴리 프랭키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라 꼭 같이 하고 싶은데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너무나도 선뜻하겠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하얼빈> 대본을 좋아해 주시고 특히 제 영화를 좋아하셨더라고요. <내부자>, <남산의 부장들>을 재밌게 보셨대요. 릴리 프랭키가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아서 작품의 무게감이 더 실렸다고 봐요.
아무래도 배우의 입장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라는 상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 부담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전혀 개의치 않으셨어요. 한국과 한국 콘텐츠를 굉장히 좋아하세요. 블랙핑크 지수를 너무 좋아하고 뉴진스의 문제를 굉장히 걱정하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