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송재림 배우의 유작 <폭락>(감독 현해리)이 1월 15일 개봉한다.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폭락>은 2022년 50조 원이라는 돈을 증발시키며 전 세계를 뒤흔든 가상화폐 루나 코인 대폭락 사태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재창조한 범죄드라마 영화다. 송재림 배우는 <폭락>에서 거의 모든 씬에 등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청년 사업가가 되기까지의 연대기를 실감 나게 표현했다.
<폭락>은 <계약직만 9번 한 여자>로 제6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영화제 ‘OTT 쇼케이스 부문’에 소개돼 호평받은 현해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실제 인물을 저격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현 감독은 원래 6부작 웹드라마를 기획했다. <사업만 6번 망한 남자> 초고를 써뒀는데, 이듬해 루나 코인 사태가 터지면서 ‘6번의 실패를 조각조각 이어붙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모두가 휘말리는 파국에 집중하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가상자산 전부를 사기로 보는 건 아니다. 영화는 특정 인물만의 문제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공백과 편법, 탐욕이 뒤얽힌 이 모든 상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진 자본 욕망의 단편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현해리 감독을 만났다.

개봉 앞두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 영화 개봉이라는 게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인 줄 몰랐어요.(웃음) 제가 연출이지만, 제작도 같이했습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도 알게 됐죠. 지금은 설렘 20%, 두려움 50% 그리고 나머지는 부담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떨리네요.(웃음) 전혀 즐겨지지 않고, 은근히 떨고 있고요. 선배들이 “작품이 개봉하면 작품에 알아서 발이 생겨서 돌아다니니까, 그냥 아무 생각 하지 마라”고 조언해주셨어요. <폭락>에 얼른 발이 나와서 자기가 알아서 돌아다니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제가 움켜쥐고 있는 거 같기도 해서요.
<폭락>은 어떻게 출발하게 된 영화인가요?
제가 원래 준비하던 건 ‘○○만 △번 한 □□’ 시리즈였어요. 데뷔작으로 <계약직만 9번 한 여자>를 찍었던 것처럼, 두 번째 작품은 <사업만 6번 망한 남자>(가제)였죠. 품바부터 휴대폰 판매, 스타트업, 요식업 등에서 계속해서 망하는 남자 이야기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22년 5월 루나 코인 사태가 터졌습니다. 무려 50조 원이 사라졌어요. 권도형 대표에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실제로 대치동 출신에 외고 졸업 후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더군요. 거물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투자 받았고, 결국 폭락하게 됩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가 정말 신기했어요. 1991년생이라 저랑 비슷한 나이대인데, 신데렐라 스토리기도 했고요. 경력과 이력은 완벽했지만, 사업에서 실제 보여준 역량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당차게 말도 잘하고, SNS를 활용하면서 그런 거물의 투자를 받은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우리도 시의성 측면에서 이 사람을 모델로 한 이야기를 그려보면 어떨까 해서 노선을 틀었습니다.

원래 아이디어는 2021년부터 다듬고 있었는데, 2022년 루나 코인 사태가 터지면서 방향이 바뀐 거군요. 처음에는 6부작 웹드라마 시리즈였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로 바뀌면서 어떤 부분에 집중하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맞아요. 2021년에 쓴 초고는 6부작 웹드라마였습니다. 이듬해 루나 코인 사태가 터지면서 장편으로 바꿨죠. 일단 웹드라마 때 시나리오에는 블랙코미디적이거나 아이러니한 ‘피식’ 터지는 웃음 포인트가 좀 많았어요. 주인공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외부적 요인을 보여주면서요. 그런데 영화로 장르를 바꾸면서 왜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발작에 가까운 광기를 보이는가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주인공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서브플롯도 거의 없어요. 그렇기에 피해자들이 욕을 한다거나, 절망감에 빠지는 장면들을 오히려 많이 빼게 됐습니다. 어차피 현실에서 일어난 상황을 영화에서까지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봤거든요. 영화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주인공에게만 집중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좀 더 무거워진 것 같아요.
웃으면 안 되지만, 감독님도 루나 코인 사태의 피해자셨다고요.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루나 사태 취재를 어디까지 하셨는지, 또 취재 가능한 영역과 확인 불가능한 영역이 얽혀있었을 텐데 어떻게 영화에 구현하려고 했는지, 어떤 원칙을 세웠는지도 궁금합니다.
루나 코인 사태는 코인 커뮤니티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요, 권도형 대표가 워낙 SNS를 활발하게 했던 인물이라 자료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락>은 루나 코인이 모티브이긴 하지만, 주인공 설정은 완전히 달라요. 실제 주인공은 엘리트인데, 양도현(송재림)은 일단 대치동부터 위장 잠입합니다. 자격지심이 있는 캐릭터죠. 그리고 가상 화폐나 핀테크는 실제 서비스를 만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건데, 양도현은 금융사에서 일한 경력도 없고, 자격증도 없어요. 실제 루나 코인의 권도형 대표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양도현에게는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흐릿하게 나오죠. 좀 더 개인사를 넣으면 신파가 될 것 같아서 뉘앙스만 줬습니다. 개인사보다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과정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하자는 게 원칙이었죠.

그렇군요. 루나 코인 사태를 조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잠시 고민) 루나 코인 폭락 사태가 터지고,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쓰는 ‘블라인드’라는 사이트에 ‘본인상’이 엄청 올라왔어요. 그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루나 코인 때문에 감당 안 되는 빚이 생긴 사람이 많다는 거니까요. 저는 그게 마음 아팠어요. 사실 피해자들이 집단 자살하는 장면도 찍었는데, 굳이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말자는 판단으로 덜어냈어요. 그런데 누군가는 ‘자기가 투자했으면서 왜 그러냐’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루나 코인 사태를 조사하면서 이건 ‘사기’라고 전제하고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 재판이 시작도 안 됐지만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사기 고의성을 가지고 마미 코인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어요. 양도현의 대사 중에도 “내가 사기꾼 같아요, 사업가 같아요?”라는 대사가 있는 것처럼요. 다만, 사기 의도에 대해서는 양도현이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이긴 하지만, 마미 코인이 50조 원을 모을 때까지 용인해주거나 편법적으로 봐준 이들, 제동을 걸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는 걸 환기하고 싶었어요. 제도적 공백과 편법, 탐욕이 뒤엉켜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거니까요.
영화 초반과 후반 양도현의 전사에 무당이 나옵니다. 무속과 연관 지어서 특별한 의미를 담은 걸까요?
숫자 6은 애초에 불길한 숫자에요. 영화에서 많이 걷어내긴 했지만, 그래도 있어요. 양도현이 위장전입하는 대치동 아파트 호수가 606호고요. 학원도 6층이고요. 남편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잡혀가면서 양도현 엄마가 무당을 찾아갔는데 “육갑에 병신”이라고 저주를 거는 겁니다. 왜 한국인이 좋은 일 있을 때나, 안 좋은 일 생길 때 사주를 보거나 타로점을 보거나 무당을 찾는 것처럼요. 엄마 옥자도 그 과정을 겪은 거고, 무당이 “남쪽으로 가”라고 하니, 그리 먼 남쪽도 아닌 강남 대치동을 가요. 불길하면서도 전형적으로 엄마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는 걸 그 영화 초반 무당 장면으로 보여준 거죠. 그 구조가 있었기에 영화 후반에서 양도현이 박수 치는 장면, 돈을 꺼내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연결돼 있다는 걸 넣은 거죠. 무당의 저주, 불길한 기운을 그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영화에서 엄마 옥자(소희정)는 아들 도현을 위해 뭐든 합니다. 한없이 다 퍼주는 엄마죠. 그런 엄마가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차갑게 변합니다. 부모 관계를 이렇게 설정함으로써, 아들 양도현이 어떤 결핍을 갖고 자란다는 설정을 한 건지,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일단 영화에서 코인 이름이 ‘마미(mommy)’잖아요. 엄마가 도현에게 사실 해주는 건 없고, 도현은 엄마를 계속해서 무시하는데도, 코인 이름을 ‘엄마’로 명명한 겁니다. 영화에서 양도현은 엄마를 단 한 번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요. 아주머니라고 하죠. 오히려 친구가 “너네 엄마 왔었어”라고 말하죠. 그런데 양도현은 자신의 엄마는 성형외과 의사라고 말해요. 누구보다 엄마는 무능하고, 해주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마미 코인을 설명할 때는 ‘엄마처럼 퍼주는 코인’이라고 표현하죠. 그런 양가적인 마음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면요. 도현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잃었기에 나중에 남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지죠. 학원에서는 선생님이겠고, 투자자로서는 케빈(민성욱)이 그렇겠죠. 그런데 엄마는 도현에게 “너한테는 아무 기대를 안 한다”라고 말하니, 벗어나고 싶은 탈출구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도현이 코인 이름을 ‘daddy(아빠)’로 안 한고 ‘엄마(mommy)’로 했는지 한번 생각해볼 문제예요. 케빈이 “코인 이름 네가 정해”라는 말에 양도현은 “마미라고 해요. 다 퍼주잖아요”라고 하는 장면을 사실 찍었는데, 뺐습니다. 코인 이름에서 그런 아이러니가 느껴졌으면 했어요.

엄마 옥자는 무당을 찾아가는 것부터 대치동 위장 잠입 등 아들 양도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죠. 그런데 양도현은 대학 창업동아리에 1억 원을 기부할 정도로, 또 마미 코인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는데도, 엄마를 찾지 않아요.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코인 이름도 엄마라고 지었는데 말이죠. 오히려 엄마는 상자에 담아둔 대치동 시절 100점 시험지를 볼 때만 미소를 띱니다. 왜 엄마는 계속 과거에 머물러 사나요? 도현은 왜 엄마를 찾아오지 못하는, 아니면 안 찾아오는 걸까요?
양도현은 스스로를 엄마와 분리된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에 자신을 키워주고 지지해준 부모에게 성공한 후 은혜를 갚고, 호강시켜드리는 게 의례적이잖아요. 그런데 양도현은 사진에서도 엄마 얼굴을 찢어내서 없었던 존재로 만들어버리죠. ‘엄마는 성형외가 의사다, 간호조무사가 아니다’라고 되뇌면서요. 자신에게 있는 부모는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말하는 아버지뿐’이 아닐까요? 그런 저에서 코인 이름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게 되는 거고요.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단순히 도구나 배경에 그치지 않도록 설정하셨죠. 엄마 옥자의 맹목적 지지의 위험성은 물론이고요, 도현을 공모전으로 유도한 창업동아리 여자 선배 경진(차정원)까지요. 사실 경진이 ‘경진대회’ 줄임말이라는 걸 알게 되니 더 놀랍더라고요.
사실 영화 본 분 중에 감독이 여자란 사실을 알게 되고 깜짝 놀랐다는 반응도 많이 받았어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겉으로 리드하는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고요, 후반부에는 여자 주인공 서사가 거의 안 나오기까지 하니까요. 진짜 여자 감독이 찍었다는 거 알고 놀랐대요.(웃음)
경진 선배를 통해 경진대회를 가고, 미약한 엄마라는 존재를 통해 결국 코인 이름을 마미로 결정하죠.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여자가 주인공이 돼서 극을 이끌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젠더상 여자 주인공이 뒤처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케빈을 여성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지만, 성별에 대한 기초 설정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전작에서 여성 서사를 한 번 그려봤으니, 두 번째 영화에서는 남성 서사를 고르게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도 도현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어른이 돼서도 도현은 아버지 꿈을 꾸죠. ‘보여지는 거,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시를 안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계속 되뇌이죠.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거 같기도 합니다.
결국 아버지가 어린 도현에게 남긴 말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여지고 싶은 대로 봐라’는 건데요. 결국 ‘기대에 부응하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이 말이 영화에 전반적으로 빙빙 돌면서 나오죠. 선생님도, 선배도, 케빈도 다 도현에게 “기대에 부응해야지?”라고 말하니까요. 기대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계속 아버지의 말이 트라우마처럼 솟아나는 거 같아요.
맞아요. 영화에서 ‘기대’라는 단어도 많이 나오고, “기대에 부응해야지”라는 대사도 반복되죠.
사실 기대된다, 기대하겠다는 말은 인사치레처럼 하는 말이잖아요. 칭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도현에게는 그 말이 굉장히 부담되거나 또는 동기부여가 되는 말인 거예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뭐든 해야 한다는, 그런 것들이 트라우마로, 아버지의 형태로 계속해서 남았던 거죠.

알겠습니다. 그래서, 감독님의 가상자산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요?(웃음) 무작정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닌 거 같아서요.
무조건 나쁘다고 하진 않지만,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는지 궁금해요. 실제 사건인 루나코인에서 권도형은 사기성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과연 혼자 잘못했는가?’라는 굉장한 질문이 나오는 거죠. 그의 범죄에 이견은 없지만, 혼자서 50조라는 가상자산을 만들 수는 없는 거잖아요. 거기까지 굉장히 많은 단계를 넘어야 할 테고, 동료도 있었을 테고요. 그게 궁금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비트코인이 엄청나게 올랐잖아요.
맞아요. 샀어야 했는데….(웃음)
방금 기자님 말씀처럼 다들 같은 반응이에요.(웃음) 유머지만, 누군가는 자책감을 가집니다. 다음에 폭락하면 들어가야지! 하는 이 사이클의 반복인데, 이게 정말 어떤 의미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도 가상 화폐를 많이 해요. 그래도 정확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다음 세대의 자산이 될 거라고는 하는데 아무도 잘 몰라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사려면 재무재표도 보고, 실적도 파악하면서 판단을 하는데, 도대체 가상화폐는 어떻게 판단을 해서 사는 건지, 제가 아직 납득할 만한 답변을 못 찾았기에, 우리가 가상화폐를 얼마나 이해하고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 같긴 합니다.

확실히 젊은 층에서 코인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한탕주의라고 비판하기는 그렇지만, ‘파이어족’이라는 목표를 세워두는 젊은 층들도 늘고 있고요. 감독님이 한 말씀하신다면요?
코인 커뮤니티에 우스갯소리처럼 나온 유명한 말이 있어요 ‘잘 되면 한강뷰, 안 되면 한강행’이라는. 아까 말씀드린 본인상도 그렇고요, 코인을 목숨 걸고 하는 거잖아요. 사실 섬찟한 일인데, 웃으면서 이야기할 건 아닌 거 같아요. 물론 잘 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만에 하나 잘 안됐을 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이 작금의 사태로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파이어족이라고 하는데, 사실 삶을 잘 사는 다른 방법도 많잖아요. 진입 장벽이 낮으니까 일확천금을 꿈꿀 수는 있겠지만, 꼭 그 수단이 코인일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 한방 때문에 누군가는 죽기도 하고, 불행하게 살기도 하죠. 한방에 돈을 번다는 건, 많은 이들이 잃은 돈으로 세워진 탑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코인이 새로운 재테크 수단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개 개인의 주도로 50조 원을 증발시킬 수 있는 자산이라면, 도박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알겠습니다. 음악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템포에 변주를 줘서 급박함도 느껴지고, 피아노 건반만으로도 굉장히 분위기를 잘 만들어낸 거 같더라고요.
‘음악이 심장을 울리는 것 같았다’, ‘음악만 듣고도 무서웠다’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폭락>은 흔히 영화 문법에서 말하는 큰 사건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부터 연대기를 쭉 보여주는, 오히려 다큐적이고 기록적인 느낌의 영화죠. 그 주인공의 심리를 어떤 사건이나, 외부적 상황이라는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어요.
이번에 함께 작업한 원일 음악감독님이 대종상 음악상만 4회 수상한 유명한 분이죠. <폭락>에서 2030 세대들이 겪고 있고, 직면한 문제에 공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영화가 ‘모노’하고 ‘다큐멘터리적’으로 흐르는 상황에 임팩트를 주면 좋겠다 하시며 피아노곡을 사용하게 된 거죠. 음악이 견인해주는 힘을 인트로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공포영화가 아닌데도 음악에서 공포 느낌이 났다는 분도 있었어요. 피아노 선율이 주는 스트레스를 잘 표현해주신 거 같고요. 후반부에서 도현이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바이올린이 마치 절규하는 것처럼 흘러나와요. 음악의 힘이 많이 발현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질문드리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드려야겠죠. 이번 영화가 유작이 된 고 송재림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다면요.
<폭락>은 상업영화가 아니라 독립영화입니다. 송재림 배우는 제작사를 차려서 만난 배우죠.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너무 눈에 선해요. 지금도 사실 죽음이 안 믿기는 측면이 있습니다. 워낙 영화를 오래 봐서요. 제 작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아직 살아있는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촬영감독이 저랑 동갑이고, 스태프들도 젊은, 그러니까 <폭락> 제작팀은 젊은 프로덕션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오빠, 형 하면서 너무 친하게 찍었어요. 촬영은 재작년에 했는데, 후반작업하는 동안 다른 배우들이 연극하면 다 같이 가서 의쌰의쌰 해줬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마음이 많이 아파요. 그런 멋진 배우가 이렇게 작은 독립영화에 공감해주고 출연해준 고마움이 지금도 너무 큽니다. 마지막으로 후시녹음 때 두 번 봤어요. 그때 송재림 배우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표출했던 게 기억나네요. 하늘에서도 보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차기작으로는 어떤 영화 준비 중이세요?
제가 시사교양 PD 출신이라 교양 프로그램,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어요. 영화판에 와서도 <계약직만 9번 한 여자>를 찍었으니 말 다 했죠. 그러니까 제 작품의 아이덴티티라고 하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거라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지만, 한국 사회의 미묘하게 뒤틀린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차기작은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던 80년대 말, 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오컬트 영화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PD는 누군가에게는 ‘꿈의 직장’인데, 힘든 영화판으로 왜, 언제 건너오신 건가요?(웃음)
스물여덟이었던 거 같네요. 물론 PD가 안락하죠.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요.(웃음) 독립영화 제작사를 차렸는데, 알 수 없는 미래와 마주하는 순간이 너무 많습니다. 부담도 크고요. 그런데 제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주인이 돼야겠더라고요. 그러려면 제작과 감독을 다 해야 하는 건데, 남들이 다 말리는 길을 선택한 거죠. 물론 현실은 춥고, 어렵습니다.(웃음) 지금도 굉장히 큰 힘내면서 한 발짝 내딛고 있고요. 아, 그래서 시사회에서 선배들이 “영화 잘 봤다”라는 말해주는 것보다 “영화 개봉이 쉬운 일이 아닌데, 용기가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는 게 더 좋더라고요. 저는 아직 배우고 있습니다. 해보니 잘하는 걸 조금씩 알게 되는 거 같고요.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폭락>이 시기도 그렇고, 주연 배우 사건 때문에 정말 많은 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제작진들이 독립영화라는 한계선은 긋지 말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시의성 있고, 누가 봐도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이 모였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만들었고요. 정말 많은 PD 선배들이 영화 말고 웹드라마로 만들라고 만류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많은 힘든 과정을 지나왔지만, 영화로 이 이야기를 만든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행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저는 영화라는 장르가 주는 힘을 믿거든요. 영화를 보고 한 번쯤 ‘이게 무슨 이야기였지?’, ‘왜 이렇게 된 거지?’하는 질문이 생겨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의문점이 생기면 많이 질문해주세요. 어떤 경로로든 질문해주시면 다 대답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젊은 제작자가 할 수 있는 베네핏이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