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전 세계를 휩쓸며 K-콘텐츠의 위상을 드높였다. 공개 직후 92개국 시청 순위 1위를 석권하며 글로벌 TOP10 비영어권 시리즈 2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흥행의 중심에는 배우 이병헌이 있다. 전편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프론트맨 역을 맡은 그는 시즌2에서 게임 참가자 ‘오영일’로 변신, 복합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8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이병헌 배우는 <오징어 게임> 시즌2의 뜨거운 인기에 대한 소감과 함께, 여전히 미스터리한 캐릭터 프론트맨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단 축하 말씀드려요. <오징어 게임> 시즌2가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2주째 1위를 달리고 있어요. 전편이 워낙 큰 성공을 하기도 해서 시즌 2의 흥행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컸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네요.
지금 이 현상이 저도 놀라워요. 시즌1의 인기는 피부로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저 미국에 갔을 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고 누군가 말하면 “내가 사실 오징어 게임의 프론트맨이야.”라고 말하고 놀라는 반응에 웃는 정도였죠. (웃음) 그런데 이번에 행사를 가서 팬들이 모여있는 것을 것을 직접 보면서 놀랐어요. 이미 많은 한국 콘텐츠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이렇게 빛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해요. 그저 이런 상황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처음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가 기억나시나요? 황동혁 감독님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어요?
그때 감독님 머릿속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할 때인데 감독님이 와서 같이 밥 먹으면서 “시즌2는 황인호가 오징어 게임 처음 들어갔을 때 그 상황이 나오겠네요?”라고 말했어요. 누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황동혁 감독님이) “저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아직 구상도 안 해서 아무 생각이 없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에 약 6개월 정도 글을 쓰셨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즌2를 애초에 만들 생각조차 없던 상태에서 그 짧은 시간에 (시즌2와 시즌3를 합쳐서) 13개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짜임새 있고 재미있게 쓰다니… 진짜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하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서는 프론트맨이 오징어 게임의 관전자로 존재하다 이번에는 ‘오영일’이라는 가명으로 게임에 참여해요. 황인호, 프론트 맨, 오영일 이렇게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인물인데 접근하기 꽤 어려웠을 듯해요.
대본을 처음 읽고 게임에 참여를 한다고 하길래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읽을수록 ‘이거 진짜 어렵겠다’ 생각했어요. 아무리 게임에 잠입해서 오영일을 연기한다고 하지만 황인호에게 저런 웃음이, 환호가 나올까 싶은 거예요. 황인호의 삶을 생각해 보면, 아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고 결국 아내와 아이를 살리지 못하고 삶에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잖아요. 그렇게 오징어 게임에 들어와서 참혹한 인간의 밑바닥을 보고 인간과 세상에 한 치의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비관론의 끝을 달리게 되죠. 이 선을 맞추는 것에 대해 감독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는 이 인물이 얼굴에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고 이걸 깨는 데 되게 힘들었어요.
캐릭터를 이해하고 구현하는 데에 황동혁 감독님과의 약간의 이견이 있었나 봐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배우니까 캐릭터에 입각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오영일의 감정은 이러한 (황인호와 프론트맨의) 과거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쉽게 나올 수 없는 상태는 아니라고 절제하자고 했어요. 감독님은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그런데 결과물로 봤을 때 드러내는 것이 드라마의 성격과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 자신과의 싸움이 남은 거죠. 게임을 겪기 전에 형사로 일했던 황인호와 게임에 참가한 후 모든 상황을 겪고 난 프론트맨, 기훈과 참가자들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오영일. ‘이 세 가지 캐릭터의 비중을 얼마큼 두고서 연기해야 하는 것인가’하는 고민의 반복이었어요. 장면마다 “여기서는 영일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줄까요?” 혹은 “인호의 모습이 살짝 비치게끔 할까요?” 아니면 “비록 츄리닝을 입고 있지만 프론트맨의 표정으로 있을게요” 같은 이야기를 감독님과 많이 나누었어요. 특히 ‘둥글게 둥글게’ 게임 중 방에 들어가서 다른 참가자를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이 세 캐릭터의 모습이 번갈아가면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사실상 프론트맨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시청자는 전편을 통해 성기훈(이정재)와 함께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을 파악했고 심지어 오영일이 프론트맨이라는, 기훈이 모르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시즌 2에 대해서 시청자는 기훈보다는 많이 알고 오영일보다는 적게 알고 있는 거죠. 오영일은 작품 내외 적으로 모든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 있어요.
지난 시즌 오일남(오영수)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에 큰 반전의 재미를 줬다면 오영일은 극 초반에 반전을 주고 시청자와 나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계획들을 조금씩 이루어나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시청자들은 프론트맨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라 봐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왜 영일은 굳이 게임에 직접 참가해 기훈을 지켜보는가’예요. 시즌 1처럼 프론트맨으로서 기훈을 관찰할 수도 있고, 언제든 손쉽게 죽일 수도 있는데 연기를 하면서까지 옆에 있잖아요. 오영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프론트맨의 목적은 성기훈을 죽이는 것이 아니에요. 성기훈이 적이 아닌 거죠. 다만 “너도 나와 같이 깨달아야 해”라는 마음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기훈이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에 대한 열등감도 있을 거예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한 가지가 아니니까요. 프론트맨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지 않을까 싶어요.
프론트맨과 성기훈은 비슷한 면이 매우 많아요. 흙수저 출신에 큰 빚을 지고 오징어 게임에 들어와서 우승을 한 과거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돼요. 두 사람이 이렇게 갈린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프론트맨과 성기훈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각자의 세계가 있기에 이를 다르게 받아들여요. 프론트맨은 비관주의의 끝을 걷는 사람이고, 성기훈은 여전히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이죠.

오영일이 던지는 농담 있잖아요. 성기훈에게 “성이 성이네요?”라고 하는 대사요. 이거는 대본에 있던 건가요? 애드리브인가요?
대본에 다 있는 거예요. 저 같으면 그런 수준 낮은 개그는 안 해요. (웃음) 그래서 “감독님, 이게 정말 웃길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물었더니 “이게 안 웃긴 게 포인트예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되게 썰렁한데…” 하니 썰렁해야 한대요.
현장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반영된 것이 있나요?
이번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했어요.
극 중에서 다섯 명의 참가자가 발목을 묶고 트랙을 따라 뛰면서 다섯 개의 게임을 완수하는 ‘5인 6각’ 게임이 참 재미있었어요.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사치기 등 다양한 게임 중에 팽이를 맡으셨잖아요. 왼손 잡이인 프론트맨이 일부러 오른손으로 팽이를 돌리면서 잘 못하는 모습이 연출되어야 하는데 너무 잘해서 문제였다고요. (웃음)
원래 가장 자신 있는 건 제기차기예요. 촬영 들어가기 몇 개월 전에 팽이를 받았어요. 팽이만 몇 시간씩 연습한 건 아니고요. 보이면 해보고, 다음에 보이면 또 해보고 해서 이렇게 실력이 쌓였어요.
5인 6각 게임 장면에서도 캐릭터를 어느 정도 보여주느냐에 대한 부분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좀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연기를 하고 모니터를 했는데 “감독님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라고 묻게 되더라고요. (웃음) 그랬더니 감독님이 “황인호도 어느 순간 즐기고 있지 않을까요?” 하셨어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오징어 게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세트장이에요. 특히 이번 시즌은 엄청난 규모의 세트장이었다고 들었어요.
깜짝 놀랐어요. 누군가는 저에게 ‘그런 공간 들어가면 폐소공포 같은 거 안 느끼냐’고 묻는데 폐소공포 같은 느낌을 가질 만한 규모가 아니에요.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이에요. 특히 ‘둥글게 둥글게’ 게임을 하는 공간은 진짜 놀라워요. 그 많은 사람들이 원판에 올라가 있는데 그 판이 돌아가더라고요. 그걸 부감으로 딱 찍는데 사람이 눈알처럼 작게 보이잖아요. 그 장면을 보면서 ‘이거 대박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오징어 게임> 시즌2의 후반부, 기훈과 영일 등이 핑크맨(진행요원)의 총을 뺏어서 총격전을 벌여요. 이때 다른 배우들의 총기 자세를 많이 잡아주셨다고요.
예전에 영화 <지.아이.조>(2009) 촬영을 할 때였어요. 거기(할리우드)는 배우들이 총기를 잡아야 하면 무조건 총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아요. 버스를 타고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산속에 들어가서 배우들이 다 같이 며칠 동안 훈련을 받았죠. 그런데 사실 제가 맡은 스톰 쉐도우는 딱히 총기 훈련이 필요 없었는데.. (웃음) 예를 들면 ‘몇 명이 진입할 때는 어떤 순서로 들어간다’거나 ‘총구를 바닥으로 향해 두다가 목표물을 봤을 때만 총을 든다’라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때 많이 배웠어요.

‘이병헌’하면 할리우드 진출 1세대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지.아이.조> 뿐 아니라 <레드: 더 레전드>(2013),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등에 출연하면서 굉장한 성과를 내셨죠. 당시에는 할리우드 작품에 한국 배우가 진출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K-콘텐츠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기에 배우로서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정말 달라요. 16년 전 그때 할리우드 작품을, 그것도 아주 돈이 많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인 <지.아이.조>를 촬영하고 ‘세상 모두가 날 알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봤어요. (웃음) 그 이후에 여러 할리우드 작품을 찍은 후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미그레이션에서 “어디서 본 것 같 같은데…” 하는 정도? 그런데 이번에는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도 하기 전에 수천 명의 팬들이 미국에 와서 환호를 보내주시는데 ‘할리우드 작품 다 합쳐도 이만큼 많은 팬들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되게 묘했어요. 내가 영어 연기를 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작품을 해도 보지 못했던 광경을 한국 감독과 한국의 동료들과 함께 만든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었어요.
2012년에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미국 로스엔젤리스 할리우드 거리에 손도장을 남기셨어요. 이후에 다시 가보시기도 했나요?
그럼요. 가족들이랑 몇 번 갔었죠.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어요. 우리가 막 도착을 했는데 제 손도장 앞에서 어떤 가족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찍어드릴게요”했더니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남편분은 몰래카메라인 줄 알고 주변을 돌아보시더라고요.

성기훈 역의 이정재 씨와 호흡을 맞추신 건 드라마 <백야 3.98>(SBS, 1998) 이후 처음이에요.
시상식이나 뒤풀이 등에서 늘 봐왔던 친구이기에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만났을 때 어색한 것이 없었어요. 눈빛만 보면 바로바로 연기에 들어갈 수 있었죠.
이번 작품에 유독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잖아요. 특히 젊은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현장에서 눈에 띄는 배우가 있었나요?
김준희 역의 조유리 배우요. 저는 사실 누군지 몰랐어요. ‘저 친구는 이번 작품이 처음인가 보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함께 연기를 하면서 보니까 눈빛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저 친구 눈빛이 너무 좋다’고 ‘이 작품을 통해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죠. 배우들끼리 서로 칭찬을 하는 것은 연기를 열심히 하게 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좋은 면을 봤을 때 그냥 넘기지 않고 꼭 얘기를 해줘요.
지금 <오징어 게임> 시즌2에 함께 출연한 배우 강애심, 양동근, 박성훈 등이 계속해서 ‘이병헌과 같이 연기를 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을 해요. 이러한 동료 배우들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럼 저는 항상 이병헌과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웃음) 제 얘기를 좋게 해주면 감사하죠. 그런데 그런 평가들을 자꾸 들을수록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도 있어요.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칫 이것이 나를 굳게 만들까 걱정도 돼요. 그래서 어깨가 무거워질 때면 이런 이야기에 대해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지금은 박찬욱 감독님의 12번째 장편 영화 <어쩔수가없다> 촬영 중이에요. 2004년 영화 <쓰리 몬스터> 이후 20년 만인데요.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지금 90% 정도 끝났고요. 이 작품은 촬영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가 있어요. 대본보다 훨씬 재미있게 촬영을 했고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요. 박찬욱 감독님과는 20년 만에 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그 세월이 생각이 안 날 만큼 쿵짝이 잘 맞아요.
영화 <어쩔수없다>는 손예진 씨가 출산 이후 복귀하는 작품이기도 해요. 손예진 씨도 데뷔 25년 차이신데 함께 작업하시는 건 처음이에요.
맞아요. 손예진 씨는 순발력이 참 대단한 배우예요. 감정 표현을 하는 데에 있어서 정말 뛰어난 배우이고요. 왜 '손예진, 손예진 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