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영화는 서로 다른 매체지만, 그 본질에는 인간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미술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예술가의 삶과 세계를 스크린 위에 재현하며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책 속 인물을 현실에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개봉하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전기 영화로, 르네상스를 끝내고 바로크 시대의 문을 연 ‘어둠의 화가’의 인생을 조명한다. <카라바조의 그림자> 개봉을 기념해 오늘은 미술사의 중요한 순간을 담은 5편의 영화로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르네상스의 정교한 아름다움부터 현대 미술의 혁신까지, 미술사의 단편을 영화로 소개한다. 단, 모든 미술사조를 다루기엔 지면도, 작품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편의상 일부 사조만 다루었다. 만약 리스트엔 없지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르네상스 - 미켈란젤로 <아거니 앤 엑스터시>


서양 미술사를 소개한다고 했지만, 고대/중세 미술은 글의 분량과 편의상 생략하고, 미술사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르네상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4세기부터 16세기 말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이어진 예술과 문화의 황금기였다. 이 시기는 신 중심이던 중세를 벗어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상을 부활시키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창작을 강조했는데,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이다. 그중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 ‘피에타’ 등 불세출의 걸작을 만든 ‘조각가’였다. 아마 미켈란젤로하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는 평생 스스로를 ‘조각가’라 부르며 조각에 열정을 태웠다. 심지어는 회화를 조각보다 예술적 가치가 낮은 장르로 폄하하기까지 하며 회화를 꺼렸고 실제로 그의 회화는 천장화가 거의 전부일 정도로 회화에 관심이 없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역시 그가 자발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며, 그 당시 율리오 2세 교황에게 억지로 작업을 요청받아 그리게 된 것. 조각에 열정을 불태웠던 그에게 천장화는, 힘들고 위험하고 화나고 부조리한 작업이었을 테다.

<아거니 앤 엑스터시>는 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제작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다만, 작품 과정을 상세히 조명하기보다는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를 집중 조명하기에 초반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소개 이후 영화는 율리오 2세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는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작업에 착수하기까지의 내적, 외적 갈등을 그려내는데, 평생 자신을 조각가로 여겼던 그가 회화 작업을 거부하고, 다시 천장 앞에 서기까지 수없이 망설이는 모습을 붓을 놓았다 들었다 하는 모습으로 표현해낸다. 그는 회화 작업이 자신의 본질적 예술성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작업 이후 천장화로 세기의 작품을 남긴 이후에도 그는 자신에게 “이제는 만족하냐” 묻는 율리오 2세를 향해 “아직도 그림은 제 전문이 아닙니다”라고 답할 만큼 고지식한 면모를 보인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대리석 채석장으로 도망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천지창조의 영감을 받고, 무수히 많은 압박 속에서도 작품에 몰입한다. 그를 협박하고, 또 회유하며 회화를 완성하게 만든 율리오 2세는 자아를 잊고 오로지 작품과 자신만 존재하는 무아의 지경에 도달한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본 후 결국엔 그에게 존경을 표한다. 실제 역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으나 미켈란젤로의 천재성과 고뇌, 그리고 천재의 열정을 세심하게 다룬 작품.
바로크 -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그림자>


바로크는 17~18세기 유럽 전역에 전 예술 분야에 퍼진 예술 양식으로, 르네상스의 균형과 조화를 넘어 강렬한 감정 표현과 극적인 구도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깊이 탐구했다. 이 시기의 선두에 선 화가 중 한 명이 바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로인데, 안타깝게도 너무 유명한 거장이 이미 ‘미켈란젤로’로 불리고 있었기에 그는 ‘카라바조’로 불리고 있다. 그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즉 테네브리즘 기법으로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현실적이고 생생한 인물 묘사로 관객을 캔버스 속에 끌어들였다. 이는 단순히 미학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의 고통과 죄책감,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당대와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명암을 강하게 쓰는 화풍으로 ‘어둠의 화가’라고도 불렸던 그는 마치 그 이름을 따라가듯 인생도 격정적이었다. 그는 술과 폭력, 살인과 추방의 굴곡진 삶을 살았고 이러한 삶의 흔적은 그의 작품 세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카라바조의 마지막 10년을 담아냈다. 1600년대, 로마 미술계에 돌연 등단한 그는 어떤 후원자도, 배경도 없이 오로지 천재적인 작품성만으로 단숨에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무수히 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명성을 쌓은 그였으나 폭력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만큼 많은 구설수에도 오르던 그는 1606년 5월 29일, 말다툼을 하던 상대를 살해하고 만다. 사형 판정을 받은 그는 몰타로 도피하지만, 그곳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결국 정처 없이 유랑하는 삶을 이어갔다. 영화는 그가 살해 혐의로 도피 생활을 시작한 시점을 배경으로 ‘성모의 죽음’이 탄생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교황청에서 비밀리에 그를 조사하기 위해 투입한 ‘그림자’라는 가상의 인물까지 등장시켜 보다 극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카라마조는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에서도 성인과 죄인을 구분 짓지 않았으며, “내가 보지 못한 것은 그리지 못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뒷골목 창녀를 성녀로 그리는 등 어두운 현실에 기반해 그렸다. 이러한 행보 때문에 당대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성 모독’이라며 그의 작품을 비판했으나 그럼에도 캔버스를 찢고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하는 인물의 표정에, 이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빛과 어둠의 조합은 그가 행하는 모든 죄를 덮어주었다. ‘다윗과 골리앗’에서 그는 골리앗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으며 두려움과 비참함을, 어린 시절 그의 얼굴을 다윗의 얼굴로 그려 넣으며 골리앗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해 그의 내면에 담긴 죄책감과 구속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림자의 “네가 그린 그림은 신을 의심케 한다”라는 말에 그는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린다. 그들이 나의 신’이라고 답한다. 이렇듯 영화는 그림자라는 존재를 통해 그의 내면과 사상을 끌어내고 이를 현대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그의 인생사를 오히려 더 생생하게 그려낸다.
후기 인상주의 - 고흐 <러빙 빈센트>


이번엔 다소 시간을 뛰어넘고, 후기 인상주의로 가보자. 먼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생긴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으로, 순간의 빛과 색채를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대표적인 화가로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이 있다. 후기 인상주의는 비슷비슷한 모습의 인상주의에서 탈피하고자 생긴 예술 운동으로 ‘탈인상주의’라고도 불린다.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처럼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그중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짧고, 고통스럽고, 고독한 인생, 그리고 설핏 엿보이는 희망을 그림에 표현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한 인물이다. 생전엔 빛을 못 보고 가난에 허덕이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그이지만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등 주옥같은 그의 걸작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넘어 현대에도 사람들의 휴대폰 케이스, 아트월 등 일상에 녹아들며 여전히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러빙 빈센트>는 반 고흐의 사후, 아르망(더글러스 부스)이라는 청년이 그의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를 전달하려는 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괄목할 만한 점은 모든 장면이 손으로 그린 유화라는 점. 125명의 화가가 10년 동안 고흐 화풍으로 장면 하나하나를 그려 완성했기에 ‘반 고흐를 추모하는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아르망이 편지를 전달하는 여정에서 고흐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가설이 펼쳐진다. 큰 궤는 추리 영화의 형식을 띄고 있으나 그 안의 궤적에서 고흐가 남긴 예술적 유산이 재조명되기에, 추리보다는 고흐의 일생을 담은 작품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그의 대표작은 영화의 배경이 되어 관객들을 고흐의 시대로 초대한다. 장면마다 다른 붓터칭은 고흐의 영혼이 화면 속에서 춤추는 듯한 일렁임을 만든다. 비운의 천재로만 알고 있던 그를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고흐가 느꼈을 삶의 깊이, 고통 그리고 예술의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져 경계를 무너뜨린다.
근대 미술(표현주의) - 에곤 쉴레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근대 미술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예술의 격변기였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미술 기법을 탈피하고, 예술가의 주관적 감정을 강렬히 표현하는 실험적 양식들이 등장했다. 후기 인상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아 상징주의, 표현주의 같은 다양한 사조가 발달했으며 특히 인간의 내면과 욕망, 고독과 같은 심리적 주제를 탐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 바로 에곤 쉴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쉴레는 관습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을 강한 선과 왜곡된 형태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누드와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객에게 직설적으로 다가가는데, 이러한 대담한 표현은 당시 사회적 금기를 깨 논란이 일었다.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하 <에곤 쉴레>)는 에곤 쉴레와 그의 뮤즈들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그려나간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매독으로 인해 미쳐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철저히 무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여동생과 가족애 이상의 사랑을 나누며 동생을 뮤즈로 삼던 그는 빈 아카데미에 최연소 입학하지만 이내 보수적인 학풍에 갑갑함을 느껴 퇴학,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그때 그의 예술성을 알아봐 준 것이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 실제로 에곤 쉴레의 초기작은 클림트의 화풍과 거의 유사할 정도로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그의 가장 오랜, 그리고 유일한 연인이라 할 수 있는 ‘발리’도 클림트의 소개였다.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는 곧 에곤의 모델이 되어 오랜 기간 그에게 헌신했다. 그가 어떤 요구를 해도 모두 들어주며, 불안정했던 그를 현실에 지탱하는 존재로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오던 두 사람은 에곤이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고발을 당하며 위태로워진다. 에곤 쉴레는 미성년인 소녀들을 누드모델로 세워 1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이것이 발각되어 재판에 넘겨진 것. 발리는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무던히 노력하고, 그 덕분에 3일간 투옥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에곤의 배신으로 막을 내린다. 그는 사회적으로 보다 안정된 기반을 갖추기 위해 발리가 아닌 부유한 집안의 딸 에디트와 결혼한다. 그러면서도 ‘발리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발리에게 직접 말한다. 영화는 에곤 쉴레라는 천재 화가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불안정한 관계와 욕망, 그리고 사회적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던 그의 고뇌를 정직하게 담아낸다. 발리를 만났던 것도, 그를 버리고 에디트를 선택한 것도 모두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어가기 위해서였음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이름으로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덧붙이자면, 에곤 쉴레 역에는 노아 자베드라 배우가 캐스팅되었는데 에곤 쉴레의 여성 편력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수준으로 미남이다. ‘얼굴이 맥락’이라는 게 딱 맞는 캐스팅.
현대 미술 - 잭슨 폴록 <폴락>


현대 미술은 전통적인 미술 양식을 탈피하고,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과 개성이 극대화된 시기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추상 표현주의는 현대 미술의 전환점을 이끌었다. 이 운동 선두에 섰던 인물이 바로 잭슨 폴록이다. 이름은 낯설어도 붓에 물감을 묻혀 휙휙 뿌리는 화가,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테다. 액션 페인팅의 창시자로 불리는 폴록은 기존의 캔버스 작업 방식을 완전히 깨부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는데, 붓 대신 나무 막대나 손을 사용해 물감을 뿌리고 흘려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형태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의 내면과 즉흥적인 에너지를 화면에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관객과 소통하려 했다. 하지만 독창적인 표현 방식 때문에 ‘이건 나도 그리겠네. 현대 미술은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어쩌면 가장 많이 들은 화가가 아닐까. 실제로 명성과는 별개로, 그의 삶은 내적 갈등과 중독, 그리고 극단적 기복으로 점철되었다.

<폴락>은 잭슨 폴록의 삶을 심도 있게 조명한 전기 영화로, 에드 해리스가 감독과 주연을 겸했다. 영화는 폴록이 뉴욕의 예술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부터, 그의 예술적 절정과 추락의 낙차를 다룬다. 특히 그의 아내이자 예술가였던 리 크래스너(마샤 가이 하든)는 그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지켜보며 때로는 그의 예술적 성취를 돕는 조력자로, 때로는 갈등을 빚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그가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한편, 방황하는 그에게 “징징대지 말고 그림이나 그려!”라며 몰아세우는 모습에선 자신이 발굴한 천재에 대한 집착이 드러난다. 실제로 폴록 사후, 리에게 인생 최대의 업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폴록을 발굴한 것”이라 말할 정도로 후원자로서의 태도를 유지했다고. 영화는 폴록의 작업 방식을 화면에 재현해 액션 페인팅이란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주지만, 이와 동시에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개인의 한계 사이 균열도 명확히 드러낸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흩뿌리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던 폴록. 그토록 원했던 성공을 거두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술에 취해 살며 내면의 투쟁을 이어나갔다. <폴락>은 잭슨 폴록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을 조명하는 동시에, 예술이 인간의 본능적 충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그림이 아닌, 예술가의 고뇌와 열망, 그리고 삶 그 자체였다. ‘추상주의’, ‘우연성을 회화에 도입한…’ 등 이러저러한 평을 늘어놓는 이들에게 ‘그냥 그렸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천재화가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