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에서 볼 수 있는 회화적 모티브

성찬얼기자
〈더 폴: 디렉터스 컷〉
〈더 폴: 디렉터스 컷〉


재개봉의 효과는 강력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이 개봉 12일 만에 4만 관객을 돌파했다. 2008년 12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란 제목으로 첫 개봉했던 당시 3만 관객의 문턱에서 멈췄던 아쉬움을 16년 만에 털어낼 수 있게 됐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은 기존 상영본에서 삭제된 일부 장면을 추가하고,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영화를 한층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복원됐다. 특히 이 영화에서 영상미는 빠질 수 없기에 이번 상영본이 더욱 반갑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은 CF감독을 거쳐 영화계에 입문한 타셈 싱의 작품으로, 그가 시각적으로 영감을 받았던 작품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영화가 끝난 이후 그 감흥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 속 미술작품의 향취를 꺼내본다. 


 

살바도르 달리의 ‘메이 웨스트의 얼굴’
 

〈더 폴〉 포스터(왼),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자의 아파트로 사용할 수 있는 메이 웨스트의 얼굴’
〈더 폴〉 포스터(왼),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자의 아파트로 사용할 수 있는 메이 웨스트의 얼굴’


초현실주의 회화의 대표주자 살바도르 달리. 오직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를 찾아내 찍은 <더 폴>. 이렇게만 비교하자면 두 작품이 결코 맞닿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정작 <더 폴>이 전면으로 내세운 회화가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다. <더 폴> 개봉 당시 오리지널 포스터는 마스크와 나비, 꽃을 배치해 실제로 없는 얼굴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이 배치, 이 구도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초현실주의자의 아파트로 사용할 수 있는 메이 웨스트의 얼굴’(Mae West's Face which May be Used as a Surrealist Apartment)를 거의 그대로 구현한 것. 영화는 비현실적인 시각효과를 배제했으나, 현실과 이야기가 혼재되는 과정에서의 환상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초현실주의 회화의 느낌으로 포스터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극중 사제의 얼굴에서 사막의 풍경으로 전환되는 장면 또한 구도와 사물 배치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 장면 전환을 위해 입체감을 더하는 설치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더 폴〉
〈더 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매달린 말’
 

〈더 폴〉 오프닝 장면(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노베첸토’
〈더 폴〉 오프닝 장면(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노베첸토’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이 흐르면서 물에서 사내가 튀어나오는 <더 폴>의 오프닝은 무척 고풍스러우면서 위태로운 분위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고속카메라로 촬영한 이 오프닝 시퀀스의 마지막은 말을 다리 위로 끌어오리는 장면에서 끝이 나는데, 감이 좋은 관객이라면 ‘오마주가 아닐까’ 눈치챘을 것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노베첸토’(Novecento, 1997)에서 따왔을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기존 관념을 파괴한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인데,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그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이 덕트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여 전시한 ‘코미디언’이다. 보통 ‘매달린 말’이라고도 불리는 노베첸토는 900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1900년대 즉 20세기를 일컫는다. 카텔란은 말을 매달아 놓고 20세기를 뜻하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과거 이탈리아로 복고하려는 문화운동의 무의미함, 20세기의 문제를 남겨둔 채 흘러간 시간, 지난 시대가 세운 질서의 죽음 등 관람자의 다양한 해석을 유발했다.  

 

〈더 셀〉 속 데미안 허스트 스타일의 장면
〈더 셀〉 속 데미안 허스트 스타일의 장면


하나 덧붙이자면 타셈 싱은 <더 폴>의 전작이자 연출 데뷔작 <더 셀>에서도 말을 이용해 현대미술 작품을 오마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그가 작품에 녹여낸 건 데미안 허스트의 박제 전시품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박제한 것을 ‘미술’로 발표해 상당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더 셀>에서 말 위로 거대한 유리 틀이 떨어져 말을 분리하는 장면은 타셈 싱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도 가장 도발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힌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무한의 공간’

 

〈더 폴〉절망의 미로 시퀀스
〈더 폴〉절망의 미로 시퀀스

 

〈더 폴〉절망의 미로 시퀀스
〈더 폴〉절망의 미로 시퀀스


어떤 작품을 모티브로 한 건 아니지만, 딱 보면 특정 화가가 떠오르는 시퀀스가 있다. 인도인 전사(지투 버마)의 아내가 오디어스의 계략에 빠져 절망의 미로에 갇힌 시퀀스다. 이 장면에서 인도인 전사의 아내는 글자 그대로 발에 피가 나게 뛰어다니며 출구를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이 절망의 미로 또한 실제로 있는 장소에서 촬영했는데, 이런 공간이 아니지만 카메라 앵글로 공간감을 왜곡해 출구가 없는 미로로 승화시켰다. 이 장면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계단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여러 작품을 연상시킨다. 미술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진 에셔는 반복되는 패턴에서 새로운 형상을 끄집어내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형태를 형상화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개 '무한의 공간'이라고 평가받는데, ‘올라가기와 내려가기’(Ascending and Descending, 1960)이나 ‘상대성’(Ralativity, 1953)이 대표적이다. 절망의 미로 시퀀스에서 계단을 특히 적극적으로 사용한 부분이 에셔의 작품 특징에서 이 같은 공간적 감각을 담아낼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에셔의 ‘상대성’(왼),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에셔의 ‘상대성’(왼),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비슈마의 죽음’
 

비슈마의 죽음을 담은 회화
비슈마의 죽음을 담은 회화


앞선 에셔와 마찬가지로, 특정 작품은 아니지만 그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영화 말미 오타벵가(마커스 웨슬리)의 죽음이다. 오타벵가는 꼬마 밴디트를 구하기 위해 날아오는 화살을 모조리 몸으로 막는다. 수많은 화살을 등으로 막아낸 오타벵가는 꼬마 밴디트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주고 그 화살에 몸을 맡긴 채 드러누우며 숨진다. 이 죽음은 인도 문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마하바라타」 속 비슈마의 죽음을 그대로 본땄다. 극중 비슈마는 긴긴 전투 끝에 화살을 맞아 죽음에 가까워진다. 전설적인 비슈마의 쓰러짐에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존중을 표하기 위해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화살에 그가 편히 누울 수 없게 되자 비슈마와 맞섰던 아르주나가 땅에 화살을 쏘아 그가 누울 수 있게 해준다. 「마하바라타」가 인도 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데다 이 장면의 임팩트가 강해서 다양한 회화가 있으니 ‘Death of Bhishma’라고 검색해서 살펴보길 바란다.  

 

〈더 폴〉속 오디어스의 죽음
〈더 폴〉속 오디어스의 죽음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화자인 로이(리 페이스)가 절망에 빠져 이야기가 점점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로이가 블랙 밴디트가 패배하는 결말을 맺으려 하자,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는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임을 상기시키며 희망을 안겨준다. 덕분에 로이 또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밴디트의 여정을 마무리 짓고자 마음먹는다. 밴디트가 마지막 힘을 내 오디어스를 밀쳐내고, 오디어스는 자신의 칼에 찔려 사망한다. 오디어스가 숨지며 물 위에 떠다니는 이 장면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연상시킨다. 희곡 「햄릿」에서 물에 빠져 사망하는 오필리아의 모습을 담은 이 ‘오필리아’는 물, 죽음 이 두 가지 요소가 겹치는 장면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강렬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전령이 된 군인을 그린 <1917>에서도 주인공 스코필드(조지 맥케이)가 강물에 빠진 채 몸을 맡기는 장면도 해당 회화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재밌게도 조지 맥케이는 오필리아를 그린 영화 <오필리아>에서 햄릿으로 출연한 바 있다.

 

〈1917〉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