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혜교는 올타임 레전드 스타이다. 10대의 나이에 데뷔해 20,30대를 지나 현재까지 그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1998), KBS2 드라마 <가을동화>(2000), SBS 드라마 <올인>(2003), KBS2 드라마 <풀하우스(2004) 등 전부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히트작들을 만들어낸 배우 송혜교가 28년 동안 연예계의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무엇일까.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송혜교를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만났다.
<검은 수녀들>이 오는 24일 개봉해요. 이번 시사회 때 완성된 작품을 보셨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모든 배우분들이 다 그렇게 느끼실 텐데 본인 작품을 보고 ‘와 내가 연기를 정말 퍼펙트하게 잘했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 분도 안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거기에 속하고요.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기보다는 ‘내가 저 부분 저렇게 하는 게 맞았나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쉬웠던 부분들도 보이고… 제대로 못 보겠더라고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마치고 <검은 수녀들>의 대본을 받아보셨다고 들었어요. <더 글로리>에서도 그간의 멜로 장인 송혜교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셔서 많은 분들이 놀랐잖아요. 또다시 장르물인 <검은 수녀들>을 선택한 것이 <더 글로리>의 영향도 있었나요?
<더 글로리>를 찍으면서 많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다시 장르물 쪽에 자연스럽게 눈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만난 작품이 <검은 수녀들>이었어요. 이 작품이 오컬트 영화라고는 하지만 드라마가 강한 게 좋았어요. 신념이 다른 두 여성이 같은 신념을 가지게 되고 또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그런 연대의 모습이요. 게다가 구마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나의 모습이 어떨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있었어요.
<더 글로리>를 통해 장르물의 매력을 느끼셨다고 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멜로드라마를 많이 했잖아요. 다 다른 사랑 이야기이긴 하지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사랑과 이별, 아픔 이런 맥락은 다 같으니까. 그런 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저도 제 모습이 지겨운 거예요. ‘나도 이런데 시청자분들은 오죽할까’ 싶었어요. 계속 이렇게 연기를 하다가는 나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아예 사라지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만난 작품이 <더 글로리>였어요. 캐릭터도 너무 좋았고 대본도 너무 좋더라고요. 촬영하는 내내 다 새로웠어요.
그렇다고 제가 멜로드라마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늘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해왔어요. 다만 너무 비슷한 것을 연이어 하다 보니 제가 약간 재미가 없었던 것이죠. 이제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저는 못하죠. (웃음) 그건 후배들이 하셔야죠.

평소 오컬트 영화도 즐긴다고 하셨는데 어떤 작품을 재밌게 보셨어요?
최근 <파묘>도 재미있게 봤고요. <컨저링>, <겟 아웃>도 좋아해요.
<검은 수녀들> 예매 관객 수가 12만이 넘어갔더라고요. (21일 기준)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이 많이 안 좋은데도 이런 관심이 받는다는 것이 놀라워요. 오랜만의 영화 복귀작이라서 그런지 많은 관객분들이 기대해 주시는 거 같아요.
오랜만에 영화로 인사드려서 너무 좋아요. 이번에 <검은 수녀들> 홍보하면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죠.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욕심을 내자면 ‘손익만 넘기면 좋겠다’싶어요.
<검은 수녀들>이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이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라는 점이에요. <검은 사제들>이 2015년 개봉작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 작품의 팬들이 많아요.
<검은 사제들>은 개봉 때 한 번 보고 이번 작품 들어가기 전에도 한 번 봤어요. <검은 수녀들> 속 유니아 수녀의 스승이 김범신 베드로 신부(김윤석)예요. 김윤석 선배님의 연기를 다시 보고 싶어서 보기는 했지만 <검은 수녀들>을 찍으면서 <검은 사제들>을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현재 종교가 있으신가요? 수녀라는 직업이 익숙하지는 않잖아요. 실제 수녀님을 만나보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가 천주교인이세요. 전 예전에는 아무것도 안 믿었는데 지금은 천주교예요. (웃음) 수녀님들을 만나서 하루의 생활, 기도하는 법 등 소소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다행인 건 <검은 수녀들> 속 수녀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녀님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는 거예요. 극 중 두 수녀는 한 소년을 구하기 위해 규칙을 어기고 거침없이 나아가죠. 그런데 일반적인 수녀님들은 교리에 따라 움직이시고 원래 구마 의식을 하지 않아요. 제가 수녀님들에게 영화 속 기도문을 보여드렸을 때 되게 재밌어하셨어요.

<검은 사제들> 속 유니아 수녀는 끊임없이 기도해요. 특히 구마 의식을 하는 장면에서요. 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기도문을 발화하는 것도 쉬운 과정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제가 연기를 할 때 여러 차례 반복을 하면 감정이 잘 안 올라오는 스타일이에요. 초반에 놓치면 큰일이 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구마 장면을 할 때 긴장을 많이 했어요. 말이 잘 전달되어야 하고 감정도 있어야 하니까 어려웠죠. 대사를 외우는 데에 따로 방법이 있지는 않아요. 시간만 나면 달달달 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없는 날도 그냥 갑자기 외워보고, 계속 툭 치면 나올 수 있게끔 달고 살았어요
‘구마를 하는 수녀’도 독특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수녀’도 독특한 캐릭터예요. 유니아 수녀는 원래 대본부터 담배를 피우는 설정이었나요?
네, 원래 그런 캐릭터였어요. 미카엘라(전여빈)와 다른 느낌으로 가려고 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좀 당황을 했죠. 제가 비흡연자이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싶었어요. 그런데 흡연은 유니아 수녀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알리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흡연을 마음먹고 연습했죠.
*이하 <검은 수녀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니아 수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마자를 구하려고 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요. 유니아 수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라면 나와 전혀 상관없는 한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유니아 수녀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캐릭터의 대담함과 용기에 더 끌렸어요. 극 중에 유니아에 대한 전사가 나오진 않지만 저는 이 모습이 어릴 적부터 이어져왔다고 생각해요. 한순간에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니아는 어릴 때부터 쭉 그런 삶을 살았던 거죠.
유니아 수녀는 타고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악령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미카엘라가 자신과 같이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보죠. 이러한 설정에 대해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촬영 당시에는 유니아 수녀가 악령에 소리가 들리는 것에 훨씬 크게 반응해요. 되게 심하게 긁거든요. 영화에는 조금 짧게 나왔는데 피가 날 정도로 괴로워서 귀를 긁거든요. 하지만 유니아는 이걸 받아들이고 그냥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나를 부정하지 않은 거죠.
수녀의 길을 걷다가 무당이 된 효원(김국희)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유니아 수녀가 숙녀복을 입고 효원을 찾아가잖아요.
그런 설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사람 인생이란 모르는 거구나’ 싶었어요. 수녀였다 무속인이 된 그 상황이 그냥 인생 같달까.

그렇죠. 인생을 알 수 없는 거니까… 배우님 인생에서도 그런 포인트가 있었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연기만 해왔어요. 그래서 인생의 큰 포인트는 작품인 것 같아요. 작품이 잘 안되면 저만의 생각에 빠져요.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와 같은 생각이요. 반대로 작품이 잘되고 많은 사랑을 해주시면 그 나름대로 생각이 많아지죠. 저는 작품에 의해서 저의 삶도, 기분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안드레아 신부 역의 허준호 배우님과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어요. 거의 22년 만인가요?
네, SBS 드라마 <올인>(2003) 이후 처음이에요. 허준호 선배님이 저를 보고는 ‘그렇게 어린 아기였는데 이렇게 컸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 마흔 넘었어요’라고 했죠. (웃음) 워낙 묵직한 선배님이라 함께 촬영을 할 때 굉장히 안정감이 있었어요.
미카엘라 역의 전여빈 배우와의 호흡은 어떠셨어요?
여빈이가 워낙 진중하고 연기에 열정적이에요. 항상 궁금한 것이 많아서 ‘이건 왜 그랬을까요?’, ‘저건 왜 그랬을까요?’라고 물어요. 너무 순수한 친구더라고요. 같이 있으면 힐링 되는 느낌이에요.
또 표현을 굉장히 잘해요. 좋은 거, 감사한 거 등 이런 표현에 인색하지 않아서 좋아요. 저는 쑥스러워서 그런 표현을 못 할 때가 많거든요. 여빈이는 그런 거 없이 바로바로 표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여빈이가 이렇게 표현해 줄 때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나도 저렇게 여빈이처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력이 쌓인 만큼 현장에서 선배로서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으세요? 전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을 법도 한데…
<검은 수녀들> 같은 경우 여빈씨와 함께 끌고 갔다고 생각해요. 연기하는 데에 있어서 선후배가 없잖아요. 그냥 미카엘라와 유니아일 뿐이죠. 제가 아무래도 경력이 오래됐으니까 분명히 끌고 갈 때도 있겠지만 그건 연기보다도 현장에서 우리가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할 뿐이죠.
노희경 작가와 신작 <천천히 강렬하게> 촬영 중이시잖아요. <그들이 사는 세상>(2008)과 <그 겨울, 바람이분다>(2013)에 이어 세 번째 작업인데요. 진행 상황을 알려주신다면요.
디테일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지금 촬영 들어간 지 2주 정도 됐어요. 시대극이어서 굉장히 새로운 느낌을 줘요. 그래서 머리도 잘랐어요. (웃음) 아직 많이 낯설기도 한데 함께하는 분들이 다 너무 좋으셔서 즐거울 것 같아요.
씨네플레이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