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여빈은 무섭게 성장하는 배우이다. 2017년 <여배우는 오늘도>로 장편 데뷔를 한 이후 <죄 많은 소녀>(2018)로 영화계에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고 JTBC <멜로가 체질>, tvN <빈센조> 등의 TV드라마로 저변을 확장했다. 그런 전여빈이 지난 12월 24일 영화 <하얼빈>을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독립투사로 극장을 찾더니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구마를 하는 수녀로 돌아왔다.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전여빈은 기자들의 질문에 진중하고도 유쾌하게 답을 이어나갔다. '배우로 사는 지금이 감사하다'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그에게서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검은 수녀들>에 대해 배우 전여빈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한다.
<검은 수녀들>이 24일 개봉해요. 예매 관객 수가 12만 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어떠세요?
언제 새해가 이렇게 와버렸는지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하고요. 연말에는 영화 <하얼빈>을 개봉했었잖아요. (전여빈은 <하얼빈>의 공부인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근데 이 두 영화가 공교롭게 연달아 개봉하게 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검은 수녀들>과 <하얼빈>이 관통하는 메시지가 같아요.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나아가는 사람들, 더 나은 내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더라고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관객분들이 한 해를 시작할 때 ‘본인의 마음을 좀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시지 않을까’,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지 않을까’해요. 그런 선물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관객 여러분을 만날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오컬트 장르를 즐기시나요?
좋아는 하는데 혼자서는 못 봐요. 잘 놀래서…(웃음) 오컬트 영화를 볼 때는 친구들이랑 꼭 같이 가야 해요. 극장에서 보더라도 귀를 좀 막고 본다든지, 눈을 감는다든지 해요. (웃음) 그런데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 초보자도 마음 놓고 가족, 친구들이랑 보실 수 있는 작품이에요.
요즘 영화 시장이 많이 안 좋잖아요. 그런데도 <하얼빈>에 이어 <검은 수녀들>까지 연이어 좋은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계신데요. 배우로서 감흥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저는 학생 때 독립영화, 단편영화 할 때도 큰 각오와 자부심을 가지고 연기했어요.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크게 다르진 않아요. 하지만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로서 일하는 사람이라 지금 저에게 온 <검은 수녀들>이라는 기회가 엄청 귀하다는 것을 체감해요. 얼마 전 <검은 수녀들> 시사회에 어떤 선배님을 초대했는데요. 그분이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좋은 영화에 연달아 출연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선배님의 그 말씀을 들으니까 더 무게감이 느껴졌어요.
<검은 수녀들>은 아마 <검은 사제들>의 팬분들이 많이 찾으실 것 같아요. 두 작품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검은 사제들>과 <검은 수녀들>의 뿌리는 같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가지로 자라난 나무와 같아요. <검은 사제들>이 오컬트 영화로 장르적 색채감이 돋보인 영화라면 <검은 수녀들>은 훨씬 드라마가 강조되었어요.
미카엘라 수녀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라틴어로 기도문을 외는 장면이 있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기도문은 달달달 외우면 되기에 오히려 괜찮았어요. 그보다 리액션이 많은 미카엘라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죠. 결국 유니아 수녀(송혜교)와 희준(문우진)의 대결이잖아요. 그 옆에서 내가 어떤 리액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했죠. 두려움과 용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미카엘라를 표현하기 위해 힘을 들였습니다.

‘수녀’라는 흔치 않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어요?
이번에 미카엘라를 준비하면서 한 6개월 정도 성당에 다녔어요. 전 크리스천이긴 하지만 지금도 가끔 미사 드리러 나가고 있어요.
미카엘라는 처음에 부마 증상에 대해 믿지 않다가 유니아 수녀를 만나고 나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구마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요. <검은 수녀들> 자체가 미카엘라의 입장에서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 같은데 처음 대본을 받아보고 미카엘라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했나요?
미카엘라는 ‘저주받은 아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아이예요. 의도치 않게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을 봤을 거예요. 굿판도 다니고 수도원도 다니면서 자기 안에 트라우마가 쌓였을 거예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정상 범주의 인물로 그리기 위해서, 정산인으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일 거라고 봤어요. 타로를 친구 삼아서 혼자 중얼거리고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는 사람이죠. 그런데 유니아를 만나면서 변화하게 돼요. 영화 중반에 유니아가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괴물의 진짜 이름’. 그러고는 자신의 이름을 밝혀요. 미카엘라는 그 말을 ‘진짜 너 자신을 마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거예요.

이번 작품으로 송혜교 배우님과 처음 합을 맞추셨잖아요? 같이 연기를 하면서 어땠나요?
송혜교 선배님은 우직하게 계시는 모습이 큰 나무 같아요. 사람들이 기대서 쉴 수 있는 나무요.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쌓일수록 유니아 신부에게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짙어져서 케미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저희의 케미가 좋았다면 그건 그냥 선배님의 인품 덕인 거 같아요. 송혜교 선배님과는 아주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배우로서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검은 수녀들>이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길 바라나요? <검은 수녀들>의 개봉을 기다리는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해 주세요.
제가 맡은 미카엘라 수녀는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나아간 캐릭터예요. 그런 면에서 '미카엘라'라는 한 성장하는 인물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았어요. 새해를 맞이하는 관객분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이 영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씨네플레이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