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체불명의 초거대 미확인비행체(UFO)가 도쿄 상공에 출현했다. 서로에게 ‘절대적’인 10대 고교생 카도데(이쿠타 리라)와 오란(아노)은 지구 종말이 드리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파트1(지난 1월 8일 개봉)과 파트2(2월 5일 개봉)로 나누어 개봉한 영화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이하 <데데디디>)은 세계의 종말이라는 거대 서사와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서사를 모두 아우른다. 파트1에서는 개성 강하고 독특한 두 여고생 카도데와 오란의 요란스러운 고교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했다면, 파트2에서는 이제 갓 대학 신입생이 된 이들의 파란만장한 캠퍼스 라이프가 펼쳐진다.

<데데디디>는 「소라닌」과 「잘 자, 푼푼」 등 청년 세대의 정체성 혼란, 사회적 소외감, 인간관계의 균열을 주로 다뤄 온 일본의 천재 만화가 아사노 이니오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아사노 이니오 작가는 이번 영화화를 위해 콘셉트 회의부터 OST 작업에까지 참여했다. 특히 카도데 역에 일본의 아이돌 요아소비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이쿠타 리라를, 오란 역에 아이돌 그룹 출신의 솔로 아티스트 아노를 직접 캐스팅하면서 파격적인 성우 라인업으로 기대케 한다. <데데디디> 시리즈의 연출은 <머더 프린세스>(2007), <심령탐정 야쿠모>(2010) 등의 쿠로카와 토모유키 감독이 맡았다. <데데디디>는 재난 3부작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국내에서도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압도적인 열정과 집념, 재능에 두들겨 맞는 듯한 감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받았다”고 극찬했다.

3년 전 여름의 그날 도쿄, 갑작스러운 거대 우주 모함의 출현에 일본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미군이 우주 모함에 A폭탄을 투하하고,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8.31 그날 이후, 당장 멸망할 것처럼 촌각을 다투었던 도쿄는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일상은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우주 모함 아래에서 햇빛을 빼앗긴 채 지속된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암울한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럼에도 두 여고생 카도데와 오란은 나른한 여름방학 같은 날들을 이어간다.

8.31 그날의 폭발로 인해 매일 일기예보에는 날씨와 함께 A폭탄에서 방출된 오염 물질 A선의 농도 정보가 송출된다. 그날의 일로 카도데는 아버지를 잃고 A선 오염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오란은 초등학생 시절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카도데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다. “하냐냐후와~”라고 싱거운 말을 자주 하지만, 오란의 실없는 농담은 울적한 카도데를 금방 웃게 만든다. 둘은 서로에게 있어 친구 그 이상의 ‘절대적’인 관계로 존재한다.
거대 서사와 작은 이야기의 공존

<데데디디>는 갑작스러운 초거대 우주 모함과 외계 침략자의 출현이라는 SF의 기본 공식으로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인류의 종말을 고할 것 같았던 UFO는 하늘에 떠 있기만 할 뿐이다. 이따금 소형선을 내보내기는 하지만, 어떠한 일도 벌이지 않는다. <데데디디>는 <미지와의 조우>(1977)와 같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SF 영화, 1990년대 후반 일본의 방대한 세계관과 거대 서사를 앞세운 세카이계(남녀로 구성된 ‘나와 너’의 일상적인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 항 없이 ‘세계의 위기’, ‘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는 비일상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작품군) 애니메이션의 궤적을 약간 비켜 간다. 세계의 종말을 둘러싼 여러 정치 세력의 다툼을 보여주는 거대 서사가 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면, 다른 한 축에서는 카도데와 오란, 친구들이 함께 보내는 일상이 버티고 있다.

소녀의 시시껄렁한 대화로 점철된 일상 에피소드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데데디디>는 2000년대 들어 유행한 일상계((미)소녀 캐릭터들의 실없고 정신없는 대화나 소소하고 하찮은 일상생활을 묘사한 작품군)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공유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데데디디>는 세카이계와 일상계의 특징을 모두 지니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부정하는 듯하다. 서로 이질적인 것의 접합은 오히려 잘 어우러져 <데데디디>의 독특한 톤앤매너를 형성한다. 원작자 아사오 이니오는 세계의 종말을 앞둔 인류의 모습을 그리면서 거대서사와 작은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공존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 이하 기사 본문에는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트1의 중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카도데와 오란의 과거 서사는 세카이계의 특징을 내포한다. 초등학생의 카도데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오란은 카도데와 UFO의 출현을 함께 목격하며 가까워지지만, 학교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다. 둘은 우연히 외계의 본국에서 오만한 인간으로 가득한 지구의 침략 결정을 내리기 위해 보낸 외계인 조사원을 구해주면서 비밀을 공유한다. 외계인은 둘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펜형 가젯과 같은 신기한 도구들을 건넨다. 카도데와 오란은 외계인이 준 도구를 사용해 타인을 도와준다. 둘은 외계인에게 인간의 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지구 침략 계획을 중단시켜 세계를 구해낸다. 하지만 카도데는 그 도구들을 연약한 타인을 돕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 안의 정의를 따르기 위해 사용하면서 파멸을 불러온다. 스스로 약자를 위한 선의라고 믿지만,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심과 내면의 외로움이 뒤섞인 카도데의 정의는 그녀로 하여금 침략자의 도구를 사용해 부패한 정치인,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같은 악한 사람들을 처단하게 한다. 결국 사람을 죽인 자신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오란은 카도데를 다시 살리기 위해 시간 축이 다른 평행세계로 간다. 오란의 선택으로 인해 세계의 운명은 반대로 바뀌어 버린다. 한 소녀가 연애 감정과 우정이 뒤섞인 관계에 있는 다른 소녀를 살리기 위해 다른 시간대의 세계로 가는 설정은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2011)의 평행세계에서 빌려온 듯하다.

외계 침략자는 오란을 도와주기에 앞서 오란의 선택이 세계를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카도데가 죽은 세계의 외계인은 지구를 침략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시간 축이 다른 세계에서는 결정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란은 세계를 무너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서라도 카도데를 구하는 선택을 내린다. 외계인의 말대로 오란은 다른 평행세계에서 카도데를 구했지만, 외계의 거대한 우주 모함도 지구에 온다. <데데디디>의 인간관계가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설정은 세카이계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과 둘의 관계는 세계의 존속보다 더 중요시된다.

하지만 <데데디디>는 '너와 나'와 '세계의 종말'이라는 거대 담론 사이에 둘의 중간 항인 '사회'를 그려 넣는다.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듣는 여타의 세카이계 작품과 달리 치밀한 사회 묘사로 현실의 모습을 반영한다. 거짓말을 일삼는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제 막 부임한 신임 총리를 자신의 입맛대로 다루는 정치 세력, 로봇·AI와 같은 과학 기술을 병기로 활용하는 거대 기업, 상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군인들이 영화 속 암울한 사회상을 이룬다. 이에 더해 정부의 입장과 달리 ‘침략자’로 불리는 외계 생명체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시민들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외계 세력에 대한 혐오에서 탄생한 무정부주의자이자 과격파인 이들이 우주 모함과 침략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인터넷 음모론에 빠져들어 불신과 혐오감을 키워가던 코히루이마키(우치야마 코우키)는 여자 친구를 UFO 중형선 추락에 의해 잃고 침략자를 사냥하는 과격파 청년으로 변한다. 파트2의 중후반부에서 외계인의 도구를 손에 쥔 코히루이마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해하는 것에 도구를 사용한다. 그런 코히루이마키의 모습은 혐오에 기반한 현실의 정치 극단주의, 정치적 테러를 반영하고 있다. 세카이계가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암울한 사회를 배제하고 주인공의 망상과 같은 자의식의 세계로 숨어들었다면, <데데디디>는 세카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 문제에 다가선다. <데데디디>의 침략자는 세카이계의 소년들에게 말한다. “도망친다고 해도 소용없어. 여기는 어디까지나 지옥이야”.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방치하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스스로 악인을 처단하고 나선 카도데는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와 같은 ‘결단주의’적인 경향을 갖는 인물이다. 제로년대(2000-2009)에 등장한 만화 「데스노트」(2003)의 라이토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의 이카리 신지로 대변되는 ‘히키코모리’적 인물을 부정하고서 탄생했다. 세카이계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헤이세이 불황의 장기화로 인해 ‘열심히 해도 잘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자아실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젊은이들에 의해 부흥했다면, 「데스노트」는 경쟁이 더 치열해진 제로년대의 젊은이들이 세카이계의 이카리 신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서바이벌’의 감각에 마비되면서 공감을 얻었다. 일본의 평론가 우노 츠네히로는 세계의 위기를 타파하는 방향을 두고, 세카이계의 상상력을 ‘낡은 상상력’, 「데스노트」를 ‘현대의 상상력’, ‘제로년대의 상상력’에 기반한 작품이라 말했다. 다만 「데스노트」가 결단주의를 옹호하는 작품이 아니듯이 <데데디디> 역시 자신의 정의에 대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벌인 행위로 타자와 주변을 멸하는 카도데의 정의를 부정한다.
선의와 악의 절망과 희망을 딛고서

<데데디디>는 「도라에몽」(1970)에 관한 오마주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극 중에서 카도데가 빠져 있는 국민 만화 캐릭터 ‘이소베양’은 도라에몽을 연상케 한다. 특히 외계인이 준 도구로 악인을 처단하는 카도데의 서사는 도라에몽의 도구인 ‘독재자 스위치’를 다루는 편의 플롯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퉁퉁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노진구는 도라에몽이 준 독재자 스위치 도구로 퉁퉁이를 사라지게 한다. 진구는 자신을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하는 사람들을 도구를 사용해 모두 없애고 세상에 혼자 남는다. 그제야 외로움을 느낀 진구는 울면서 후회한다. 진구의 후회 어린 외침을 들은 도라에몽이 다시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도라에몽의 도구는 연약한 소년 진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해준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힘을 무한대로 증폭시켰듯이 도라에몽의 도구와 <데데디디>의 침략자의 도구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의 도구는 과학과 기술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만, 진구와 카도데는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활용한다. 다만 도라에몽에 의해 책임을 면하는 진구와 달리 카도데는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책임을 진다. 그녀는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서야 깨닫는다. 이소베양은 “도구가 아니라 친구”였고, 자신은 그저 친구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도쿄 상공에 출현한 거대 우주 모함과 침략자의 존재 역시 침략자의 도구처럼 과학 그 자체로 그려진다. <데데디디>의 UFO는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는다. 외계인들은 무한의 힘을 쓸 수 있는 과학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술을 어떤 목적을 갖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UFO와 외계인을 공격하는 것은 인간이다. 자신의 선의와 악의에서 비롯한 정의를 이루기 위해 그들의 도구를 이용하는 카도데와 코히루이마키의 모습은 인간이 과학을 도구화해 온 오랜 타성을 보여준다. <데데디디>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선의와 악의를 모두 부정한다. 선의와 악의 절망과 희망을 모두 딛고서 세계의 종말에 대한 독보적인 비전을 펼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