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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 평론가의 2025년 기대작 베스트 3 - 해외영화의 경우

씨네플레이
〈미키 17〉 포스터
〈미키 17〉 포스터

 

봉준호의 <미키 17>

<기생충>(2019) 뿐 아니라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 그리고 <마더>(2009)와 같이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영화들은 한국사회의 음울한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선을 넘어, 그 안에 깃든 구조적 문제를 시각적으로 끌어내 보이는 절경의 솜씨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이었다. 이 영화들이 펼쳐내는 사회상, 공간의 무드와 정세한 디테일은 영화 속 세계와 그리 멀지 않은 동시대, 동일한 지평의 세계를 살아가는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해외 관객에 비해 더욱 쉽게 공감하고 몰입감을 가질 수 있던 면이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을 재치 있게 ‘로컬’(local)이라 지칭했던 발언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한국 또한 일종의 ‘로컬’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시네아스트의 영화적 영토가 단지 한국 안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도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상상력의 자유를 제약받는 답답함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미키 17〉
〈미키 17〉


그런 점에서 애드워드 애슈턴의 SF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봉준호의 신작 <미키 17>(2025)은 두 편의 해외합작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의 계보에 넣어서 바라봄직하다.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았지만 앞선 두 편의 영화들은 익숙한 한국적 컨텍스트를 떠나 전혀 다른 영역과 장르를 향해 영화적 상상력의 세계를 확장하고, 당대의 사회적 이슈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보편통시적인 주제의식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시도였다. 한국인 감독이 연출한 1억 5천만 달러짜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SF영화. <미키 17>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놓고서도 성립할 수 있는 순수한 봉준호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입증할 국제무대에서의 또 다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미키 17〉
〈미키 17〉


지구 바깥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투입한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는 영락없이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우주식민지(Off-world) 건설에 레플리컨트들을 투입한다는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가 우주식민지의 존재를 간접적으로만 제시했을 뿐, 환경오염과 인구 과밀화로 슬럼화된 지구의 미래도시에 머물러있었다면, <미키 17>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다루지 않은 우주 탐험과 개척의 과정 자체를 복제인간인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며 보게 될 것이란 점에서 차별화된 이야기를 예고한다. 환생(reincarnation)이라는 종교적 테마의 SF 버전이라도 되는 듯, 미키 1으로부터 파생된 무수한 복제인간 미키들은 데이터화된 죽은 전임자의 기억을 이어받고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데, 인간을 소모품으로 다루는 시스템의 비인간성이라는 테마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투영한 <설국열차>를 연상시키는 일면이 있다. 보다 깊어진 시선의 봉준호식 SF를 기대해본다.

 

촬영현장의 디카프리오(왼)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촬영현장의 디카프리오(왼)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제)

 

일찍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말했듯 “지금의 영화계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도 아니고, 코엔 형제도 아니고, 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일 것이다. 심지어 크리스토퍼 놀란마저도 할리우드 시스템의 필요와 산업 내 자신의 위상에 부응하는 대작을 구상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면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이야말로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고집하며 창작할 수 있는, 그러면서 미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통찰하는 미국영화 작가주의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기 나이트>(1997)와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마스터>(2012)와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는 그러한 그의 반골적 성향을 잘 드러내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촬영현장 모습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촬영현장 모습


본인이 그토록 존경하고 경애해 마지않은 생전의 로버트 알트만이 그랬던 것처럼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주류의 문법과는 거리가 먼 길을 고수해왔던 여태까지의 경력을 떠올려보면, 올해 공개될 예정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차기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여러모로 예외적인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숀 펜(애초 예정해두었던 호아킨 피닉스와 비고 모텐슨은 하차)같은 거물이 합류하자 워너브라더스의 적극적인 투자로 예산은 1억 4천만 달러까지 불어났고(필모그래피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제작비가 2500만 달러에 수익은 7620만 달러였던 걸 상기해보자) 과거 히치콕의 <현기증>(1958)과 존 포드의 <수색자>(1956)에 쓰였던 35mm 비스타비전 포맷으로 촬영되어 작년 9월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모든 촬영 과정을 완료하고는 현재 8월 개봉을 목표로 후반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그의 경력 처음으로 IMAX 상영작이 될 예정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촬영현장 모습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촬영현장 모습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선 공식적으론 일절 밝혀진 바가 없지만, 간접적으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중 가장 주류영화에 가까운 색채를 지닌 영화가 될 것이며, 토마스 핀천이 1990년에 출간한 「바인랜드」(Vineland)의 각색, 또는 그로부터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이야기라고 한다(이미 <인히어런트 바이스>로 핀천의 문학을 영화화한 바 있으니 이번이 두 번째인 셈). 미국 포스트모던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소설이 1984년 레이건 대통령 재임기의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보수주의의 물결이 온 미국을 잠식해 1960년대 히피와 급진주의를 경험했던 세대가 쇠락해가는 과정을 가족 드라마의 형식으로 다룬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또한 다분히 폴 토마스 앤더슨 본연의 영화적 관심사에 충실한 작품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오늘날 가장 치밀한 미국 정신의 해부학자라 할 그가 과연 어떠한 화술로 시대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들춰내보일지가 궁금해진다.

 

〈아바타: 불과 재〉
〈아바타: 불과 재〉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불과 재>

 

<아바타: 물의 길>(2022)과 동시에 촬영되어 90% 이상의 분량까지 진척되어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과거 리차드 도너의 <슈퍼맨>(1978)이 <슈퍼맨 2>(1980)와 한 편으로 찍고 나눠서 개봉한 것과 같은 제작형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작업을 전면 중단시켰던 미국작가조합 파업의 여파, 그리고 갈수록 사실적인 디지털 특수효과에 대한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이 극을 더해가는 완벽주의자 제임스 카메론의 성격상 늘어져가는 후반작업으로 원래 2024년 12월 20일을 예정하고 있던 <아바타: 불과 재>(2025)는 2025년 12월 19일로 개봉이 지연되었다.(제이크 설리 역의 샘 워싱턴에 따르면 2024년 2월에 추가 촬영이 있었다고 한다) 일부 장면을 미리 찍어두고 개발 단계에 있는 시리즈의 다음 작품들 일정 또한 한참 뒤로 밀렸음은 물론이다. 유출된 정보에서는 ‘씨앗 운반자’(The Seed Bearer)로 알려졌던 부제는 D23 팬 이벤트에서의 공개를 통해 ‘불과 재’(Fire and Ash)로 교정되었다. 
 

〈아바타: 불과 재〉
〈아바타: 불과 재〉


<어비스>(1989)에서부터 물이라는 요소와 인연이 깊었던 카메론의 기술적 집념이 투영된 것이 <아바타: 물의 길>이었다면, <아바타: 불과 재>는 그와는 상극을 이루는 불이 중요한 시각적 모티브가 될 것임이 예고된다. 제임스 카메론과 프로듀서 존 랜도(2024년 7월 5일 세상을 떠나 이 영화가 커리어 마지막인 작품이 되었다)의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풀린 정보를 정리해보자면, <아바타: 불과 재>는 전작으로부터 3년 뒤를 그리는 영화가 될 것이며, 기존의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아닌 아들 로아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화산지대를 배경으로 한 ‘재의 부족’(Ash People)이라는 또 다른 나비족 분파가 나타나, 이제까지 제국주의적 침략에 침탈당하는 희생양이자 저항군의 위치로 자리매김해왔던 것과는 다른 원주민 부족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생전의 존 랜도가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재의 부족’의 리더 바랑 역에는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탈리사 마에기르 역으로 잘 알려진 우나 채플린(무성영화 코미디의 거장 찰리 채플린의 외손녀이기도 하다)이 맡았으며, <아바타: 불과 재> 다음에 이어질 또 다른 속편들은 동일한 세계관이지만 직접적으로 인물과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한참 먼 미래의 사건을 다룰 예정이고, 5편의 배경은 지구로 돌아온다고 한다.

 

〈아바타: 불과 재〉
〈아바타: 불과 재〉

 


소니 시네알타 베니스 카메라의 6K 초고해상도 촬영, 그리고 실사촬영분 해상력의 극적인 향상에 발맞춘 진일보한 VFX(<아바타: 물의 길>이 최종 4K DI였던 만큼 <아바타: 불과 재>도 동일한 기술스펙을 갖출 것이라 예상된다), 시청 시 피사체와 카메라 움직임이 빠른 구간에서의 입체감 저하와 불편을 호소하게 하던 기존 3D 영화의 결함을 보완한 48프레임의 HFR 기술 적용 등, 오랜 기다림에 부응하듯 <아바타>(2009)보다 발전한 첨단의 디지털 영상기술을 선보인 제임스 카메론이 이번에 또 얼마나 가공할 신세계를 펼쳐 내보일 것인가를 내심 기대하게 된다. <아바타: 물의 길>을 공개할 무렵 ‘토탈필름’ 인터뷰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성공한다면 4, 5편의 계획을 세울 것이며, 실패한다면 이번 작품이 결말로 보이는 전개로 촬영을 마쳤다”고 한 발언과 연관 지어보면 이번 영화는 3부작에 일단락을 짓는 사실상의 대단원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아바타: 불과 재>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연말을 기약하는 한편으로는, 이젠 독자적인 세계관을 펼친 자신만의 장대한 3부작을 갖게 된 만큼, 카메론이 더 이상 <아바타> 시리즈에 얽매이지 않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