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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국영의 22주기를 맞아,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굿모닝 홍콩〉

주성철편집장
〈굿모닝 홍콩〉 포스터
〈굿모닝 홍콩〉 포스터

 

22주기 기일을 바라보며 장국영이 돌아온다. 2024년 창작ing 공모작으로 선정되어 작품성과 높은 호응을 얻었던 연극 <굿모닝 홍콩>(연출 최원종, 극본 이시원)이 올해 첫 번째 국립정동극장 세실 기획 작품으로 선정되어 이미 관객과 만나고 있다. 2022년 첫 공모를 진행한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는 작품 및 창작자 발굴 프로그램으로, 유의미한 작품이 지속적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재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굿모닝 홍콩>은 2003년 세상을 떠난 홍콩 배우 장국영을 사랑하는 ‘장사모’ 회원들이 고인의 기일이자 만우절인 4월 1일, 홍콩으로 추모 여행을 떠나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영화 속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을 담아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정환(김동현), 현도(최영도), 원태(공재민), 승재(김수아), 이처럼 홍콩 여행에 들뜬 4명의 회원은 뜻하지 않게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의 우산혁명 시위대와 엮이게 된다.

 

 

연극 〈굿모닝 홍콩〉
연극 〈굿모닝 홍콩〉

 

<굿모닝 홍콩>에서 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른바 ‘장사모’ 회원들이 왜 굳이 홍콩에 가서 저런 고생을 하고 있나,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때는 1987년, 5월 23일 개봉한 <영웅본색>과 12월 25일 개봉한 <천녀유혼>으로 한국에서는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중고교 남학생들은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다녔고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코팅된 책받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그렇게 홍콩영화가 한국 극장가를 접수하기 시작했고, 그 두 편 모두 출연한 배우가 바로 장국영이다. 일단 그의 등장은 ‘비주얼 쇼크’에 가까웠다. 홍콩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 예광이 장국영의 미모를 일컬어 미목여화(眉目如畵), 즉 ‘눈과 눈썹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영웅본색〉(위)과 〈천녀유혼〉
〈영웅본색〉(위)과 〈천녀유혼〉

 

일단 장국영의 생애를 들여다보자. 1956년 9월 12일, 원숭이띠에 처녀자리로 태어난 장국영은 무려 10남매 중 막내였다. 10남매 안에서 ‘섬’처럼 지내 온 유년기는 그의 인생과 캐릭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셋째 형, 넷째 누나, 그리고 바로 위인 아홉째 형은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떴다. 그래서 실제로는 7남매라고 할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죽은 아홉째 형과 그의 생일이 같았기에 가족들은 언제나 그 형이 환생하여 장국영이 태어났다고 여겼다. 나이 차이도 커서 그는 형제들과 즐겁게 어울려 논 기억이 없다. 제일 큰 누나와는 무려 18살이나 차이가 났고 가장 가까운 8번째 형과는 8살 차이가 났다. 홍콩에서 로즈리힐 스쿨(Rosaryhill School)을 다녔는데, 이곳은 홍콩에서 그의 흔적이 남은 거의 유일한 학교다. <동사서독>(1994)에 함께 출연했던 양가휘가 바로 이 학교 후배다. 외모로만 보면 선후배가 뒤바뀐 느낌이지만, 어쨌건 ‘동사’ 황약사(양가휘)와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동창이었던 셈. 그리고 학교 설립자이자 그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프란시스 자비에르 신부는 장국영이 세상을 뜬 뒤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글에 따르면 장국영은 ‘레슬리’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 학교에서 ‘바비’라는 애칭으로 불린 인기 많은 학생이었다.

 

연극 〈굿모닝 홍콩〉
연극 〈굿모닝 홍콩〉

 

이후 장국영은 홍콩의 유명 재단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3살 때 영국 리즈대학교 섬유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13살 때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국 유학을 다녀온 것은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글램록과 데이빗 보위, 그리고 화려한 무대를 접하며 영국에서 비로소 음악에 눈떴기 때문이다. 이후 자신의 여러 콘서트에서 데이빗 보위의 영향을 읽을 수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리고 이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누구나 기억할 법한 클라크 게이블이 아니라, 스칼렛(비비안 리)이 좋아하던 젠틀한 남자 애슐리를 연기한 레슬리 하워드를 좋아하여 레슬리(Leslie)라는 영어이름도 가져왔다. ‘바비 청’이 ‘레슬리 청’이 되던 순간이었다. 더불어 장국영에게는 그만의 애칭인 ‘꼬고’가 있다. ‘오빠’를 뜻하는 한자 가가(哥哥)의 광동어 발음으로, ‘꺼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꼬고’가 더 귀엽게 들린다. <천녀유혼>을 촬영할 당시 왕조현이 그를 ‘꼬고’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굿모닝 홍콩>의 장사모 회원들처럼 이제 장국영을 보다 친근하게 레슬리나 꼬고로 불러보자. 우리의 레슬리, 나의 꼬고.

 

 

연극 〈굿모닝 홍콩〉
연극 〈굿모닝 홍콩〉

 

1977년 홍콩 ATV 아시안 뮤직 콘테스트에서 돈 맥클린의 노래 ‘American Pie’를 불러 2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 장국영은, 당시 홍콩 대부분의 연예계 스타들이 그러했듯 가수로 데뷔한 뒤 배우를 겸했다. 데뷔작 <홍루춘상춘>(1978)을 지나 조연으로 나온 <갈채>(1980)에서도 그런 가수로서의 인기에 힘입어 가수 지망생을 연기했는데, 잘생긴 반항적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요약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때부터 그는 ‘아비’였다. 배우로서 그의 첫 번째 메가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위니종정>(1985)에서도 우연히 만난 여려진(이려진)에게 반하여 무턱대고 같은 버스에 올라타 쫓아가는 남자였다. 이후의 히트작들인 <연분>(1984)과 <살지연>(1988)에서도 비슷했다.

 

〈아비정전〉
〈아비정전〉

 

돌이켜보면, <아비정전>(1990)의 첫 장면도 그렇다. 아비(장국영)는 수리첸(장만옥)에게 대뜸 다가가 자신의 시계를 1분만 같이 보자고 하고는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같이 있었어. 난 그 1분을 기억할 거야”라는 말을 건넨다. 시작만 보자면 이전 장국영 영화와 별 다를 바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아비정전>은 그 이상의 고독과 허무를 머금은 아비 캐릭터를 통해, 배우 장국영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게다가 <아비정전>은 홍콩 최초의 동시녹음 영화였기에 캐릭터에 대한 몰입과 배우로서의 호흡과 리듬도 중요했다. 당시 홍콩영화들은 스타 모셔가기 경쟁이 심했던 탓에, 스케줄이 바쁜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촬영을 시작하고 나중에 후시녹음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기에, <아비정전>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아비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예술가 장국영의 바람이 깊이 담겼다고나 할까. 그러한 도전은 <열혈남아>(1988) 이후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으로 2살 많은 형이자 대스타인 장국영과 함께 한 왕가위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열혈남아>를 경유해 왕가위 감독과 다시 만난 장만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영웅본색2〉
〈영웅본색2〉

 

이후 장국영의 화려한 전성기가 시작됐고, 한국에서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영웅본색> 개봉으로부터 불과 1년 뒤인 1988년 7월 22일 개봉한 <영웅본색2>는 개봉 첫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3편까지 만들어진 <영웅본색> 시리즈를 통틀어 여러 명장면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팬들은 <굿모닝 홍콩>의 오프닝 장면이기도 한, <영웅본색2>에서 장국영의 노래 ‘분향미래일자’(奔向未來日子)가 흐르는 가운데 장국영이 주윤발의 품에 안겨,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아내와 통화하며 죽어가는 장면을 꼽을 것이다. 이듬해 1989년 그는 ‘투유’ 초콜릿 CF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투유 초콜릿의 두꺼운 겉 종이를 펼치면 ‘투유로 사랑을 전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몇 줄 글을 적을 수 있는 메모란이 있었다. 여권이 뭔지도 몰랐던 어린 학생들이 ‘사연을 보내어 당첨되면 공짜 홍콩여행을 보내준다’는 광고 문구에 무던히 소설을 쓰기도 했다. <굿모닝 홍콩>에서 장사모 회원들이 가져온 ‘투유 그랜드’ 초컬릿이 바로 그것이다.

 

연극 〈굿모닝 홍콩〉 속 투유 그랜드 초컬릿
연극 〈굿모닝 홍콩〉 속 투유 그랜드 초컬릿

 

한편, <영웅본색2>의 공중전화박스 장면은 놀랍게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방송인 유재석의 데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아주 오래전 ‘고딩’ 유재석의 첫 방송 출연이 바로 1989년, 당시 KBS에서 일반 고등학생들이 출연해 예능감을 뽐내던 ‘비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바로 이 장면을 재연하며 이후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게다가 가수 임영웅의 이름의 유래가 바로 <영웅본색>이라는 것도 많은 팬들이 알 것이다. 그의 부친이 <영웅본색>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임영웅’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 그래서 장국영이 없었으면 유재석도 없었고 임영웅도 없었다, 라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렇게 우리는 진정 장국영의 시대를 살았다.

 

연극 〈굿모닝 홍콩〉
연극 〈굿모닝 홍콩〉

 

그처럼 데뷔 이후 배우이자 가수로서 거의 모든 시기가 전성기였기에 무의미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특히 <아비정전>을 시작으로 <동사서독>(1994)과 <해피 투게더>(1997) 등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함께 한 작품들은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이다. 더불어 각고의 노력으로 경극 배우로 변신해 그의 탁월한 예술가적 자존심을 보여준, 그리하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패왕별희>(1993), <동사서독>의 배우 임청하와 다시 만난 <백발마녀전>(1993), 음악 프로듀서로 출연한 현대 로맨틱 코미디물 <금지옥엽>(1994), ‘A Thousand Dreams Of You’라는 노래로 기억되는 <야반가성>(1995), 가난한 영화감독으로 출연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색정남녀>(1996) 등을 거치며 그는 불멸의 배우가 됐다.

 

연극 〈굿모닝 홍콩〉
연극 〈굿모닝 홍콩〉

 

장국영을 새로이 떠올리게 해준 영화는 바로 야쿠쇼 코지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퍼펙트 데이즈>(2023)다. 1956년생 동갑내기인 장국영과 야쿠쇼 코지는 마흔 살 나이의 1997년, <해피 투게더>와 <우나기>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동시에 초청되며 만난 적 있다. 전자는 감독상, 후자는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각자의 정점을 찍었던 것. 그처럼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가 희한하게 장국영 생각을 하게끔 했다. 어쩌면 어떻게든 매 순간 장국영을 떠올리기 위한 과몰입증후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연극 <굿모닝 홍콩>이 다시 시작된다. 필사적으로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굿모닝 홍콩>을 보러갈 것이다.

 

 

연극 〈굿모닝 홍콩〉
연극 〈굿모닝 홍콩〉

 

정동국립극장 세실 무대에 올려진 <굿모닝 홍콩>을 본 소감은 ‘역시, 극단 명작옥수수밭!’, 그리고 ‘역시 세실!’이다. 지난해 공연과 비교해 디테일이 살짝 달라졌는데, 그게 정말 좋았다. 비극의 장소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창문과, 원래 훔쳐보는 것처럼 연출된 <아비정전> 속 장국영의 그 유명한 맘보춤 장면을 하나로 엮어, 그 비극의 순간을 오히려 그의 가장 빛나는 순간처럼 연출한 장면에 울컥했다. <영웅본색2>에서 장국영을 위한 복수에 나서는 주윤발, 적룡, 석천이 악당 고영배의 대저택 담벼락을 넘는 장면을 현재의 홍콩 우산혁명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넘는 장면으로 치환한 장면 역시 다시 봐도 좋았다. 물론, 가장 압권은 역시 <천녀유혼>의 ‘반야바라밀’이라는 주문이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우산혁명 시위대의 구호와 연결되는 장면이다. 홍콩과 홍콩영화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가진 이들이라면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굿모닝 홍콩>은 장국영의 22주기 기일인 4월 1일을 지나 4월 6일까지 계속된다.

 

 

〈열화청춘 리마스터링〉(왼)과 〈대삼원 리마스터링〉 
〈열화청춘 리마스터링〉(왼)과 〈대삼원 리마스터링〉 

 

한편,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22주기가 되는 올해 4월 1일 즈음해 장국영의 두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그동안 전혀 선보이지 않았던 작품들이라 반갑다. 장국영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불러도 좋을 <열화청춘>(1982)과 홍콩을 대표하는 서극 감독이 연출을 맡아 장국영의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준 <대삼원>(1996)이 각각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3월 31일 메가박스에서 개봉한다. ‘왕가위의 멘토’로 유명한 담가명 감독의 <열화청춘>은 <아비정전> 이전에 장국영의 쓸쓸한 표정을 담아낸 영화로 유명하며, 이 작품을 통해 홍콩 금상장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대삼원>에서는 젊은 가톨릭 신부 역을 맡아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를 흥미롭게 표현해냈으며, 진가신 감독의 <금지옥엽>(1994)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원영의와 다시 만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