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일은 또 돌아온다. 해마다 재개봉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가 바로, 2003년 4월 1일 세상을 떠난 홍콩의 가수 겸 배우 장국영이다. 그 미모를 일컬어 미목여화(眉目如畵), 즉 ‘눈과 눈썹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했을 정도로 그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전역을 사로잡았다. 특히 국내에서 1987년 5월에 개봉한 <영웅본색>과 12월에 개봉한 <천녀유혼>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그가 떠난 지 22주기가 되는 올해 4월 1일 전날인 3월 31일, 장국영의 배우로서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불러도 좋을 <열화청춘>(1982)이 ‘최초’ 개봉하고, <금지옥엽>(1994)과 <금옥만당>(1995)에 이어 장국영과 원영의가 다시 만난 <대삼원>(1996)도 재개봉할 예정이라 반갑다.
해마다 4월 1일, 장국영의 기일을 맞아 종종 재개봉했던 <아비정전>(1990)과 <패왕별희>(1993)가 장국영이라는 위대한 예술가 그 자체로 보면 되는 영화라면, 올해 만나게 될 <열화청춘>과 <대삼원>은 각각 1980년대와 1990년대 ‘홍콩영화’라는 지형도 안에서 봐야 이해가 빠른 영화들이다. 장국영의 영화를 오래도록 실시간으로 호흡해 온 올드팬들의 추억, 아니면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영화에 매료된 새로운 관객 모두 어쩌면 ‘왕가위의 장국영’으로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영화라는 개념으로 들여다보자면 <영웅본색> <종횡사해> 등 ‘오우삼의 장국영’도 있고 <야반가성> 등 ‘우인태의 장국영’도 있고 <색정남녀> 등 ‘이동승의 장국영’도 있고 <이도공간> 등 ‘나지량의 장국영’도 있다. 그 모두가 장국영이다. 의심할 바 없이 모두가 추앙하는 걸작만 있었던 게 아니라, 홍콩 영화산업 안에서 이른바 흥행배우로서의 장국영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에 찾아오는 두 영화 <열화청춘>과 <대삼원>은 각각 왕가위를 만나기 전의 장국영과 왕가위를 만난 이후의 장국영이자, 20대의 장국영과 40대의 장국영을 만나는 순간이다.


중화권에서 연초 춘절 극장가 성수기를 겨냥해 제작한 영화를 ‘하세편’(賀歲片)이라 부른다. 문자 그대로 ‘새해를 축하하는 영화’라 할 수 있으며, 여러 감독과 스타들이 의기투합하여 그리 복잡하지 않은 해피엔딩 스토리로 엮어내는 ‘명절용 기획영화’라 할 수 있다. 장국영이 출연한 <가유희사> <화전희사> <97가유희사> <구성보희>처럼 ‘희사’(囍事)나 ‘보희’(報喜)라는 단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기쁠 희(喜)’자가 겹쳐서 만들어진 ‘쌍 희(囍)’ 자는 회갑이나 결혼 등 2배 이상 경사스러운 날을 의미하고, ‘보희’는 ‘기쁜 일을 알린다’는 뜻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가족과 친구의 화해, 그리고 결혼식 장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국영과 원영의가 3년 연속 호흡을 맞춘 <금지옥엽> <금옥만당> <대삼원> 중에서, <금지옥엽> 외의 영화들이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질문할 수도 있는데, 1995년 7월에 개봉한 진가신의 <금지옥엽>과 달리 서극이 연출한 <금옥만당>과 <대삼원>이 바로 각각 1995년 1월과 1996년 2월에 개보한 하세편이다. 서극의 두 영화가 보여주는 정서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삼원>은 신부 홍중(장국영)이 우연히 고리대금업자에게 쫓기게 된 바이쉐화(원영의)를 만나, 그녀와 친구들의 빚을 갚고 새 출발을 도와주려다 함께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백마 탄 왕자’처럼 등장한 장국영이 위기를 해결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일단 <금옥만당>과 <대삼원> 모두 철저히 그 하세편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금옥만당’은 글자 그대로 황금(黃金)과 옥(玉)으로 집을 가득 채울 만큼 부유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궁궐에 현명한 신하나 부하가 많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영화 <금옥만당>에서는 화려한 중화요리로 가득한 음식점의 세계로 치환됐다. ‘대삼원’은 마작 용어로 白(백), 發(발), 中(중) 삼원패가 모두 ‘앙꼬’(똑같은 모양의 패가 같은 조를 이루는 것)를 이루었을 때(세 주인공의 극중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대삼원’이라 한다. 어지간한 행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쉬이 가질 수 없는 패로서 화투로는 ‘고도리’, 포커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쯤 된다고나 할까. 영화 <대삼원>에서는 신부를 연기하는 장국영과 원영의의 사랑에 빗대 쓰인다. 중화요리의 <금옥만당>, 마작의 <대삼원> 등 모두 중화권의 명절과 어울리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1956년생 장국영과 1971년생 원영의는 15살 차이이며, ‘유청발’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내내 장국영을 의심해 뒤쫓는 형사 역의 유청운은 1964년생이다. 당시 홍콩영화계를 대표하는 신구 배우들이 절묘한 호흡을 맞췄다고나 할까. 앞서 원영의와 <신불료정>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유청운은 이후 <화급>(1997), <암전>(1999) 등 두기봉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며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는 홍콩영화계의 대표 배우가 됐다. 두기봉과 위가휘가 1996년 설립한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가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배우였다고나 할까. 또한 <대삼원>은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원영의의 매력이 빛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1992년 <아비와 아기>로 홍콩금상장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원영의는 1994년 <신불료정>, 1995년 <금지옥엽>으로 홍콩금상장시상식에서 2년 연속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 왕성하게 활동한 원영의는 최근 주윤발과 함께 <원 모어 찬스>(2023)에 출연했다.

하세편인 만큼 기존 배우들을 색다르게 활용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특히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무수히 많은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 빌런 캐릭터로 유명한 배우 성규안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로빈 신부’로 출연한 것도 반갑다. <첩혈쌍웅>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주윤발과 이수현이 머무르던 성당을 불바다로 만든 악당이 바로 그다. 더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경찰서장으로 우정출연한 황백명이다. 홍콩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겸 제작자인 그는 하세편을 비롯해 줄곧 코미디 영화만 만들어온 베테랑 제작자다. 제작과 주연을 겸한 <가유희사>(1992)에서는 주성치, 장국영과 함께 삼형제 중 장남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홍콩 누아르의 반대편에서 <난형난제>(1982), <개심귀>(1984), <최가복성>(1984) 등을 제작했으며 장국영의 영화들 중에서는 또 다른 하세편인 <화전희사>(1993), <대부지가>(1994), <구성보희>(1998) 외에 장국영과 종초홍이 주연을 맡은 <살지연>(1988)을 비롯해 장국영이 음악감독이자 조감독으로도 참여한 <야반가성>(1995)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엽위신 감독, 견자단 주연 <엽문>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하세편 전문 제작자로서 <가유희사 2020>(2020)도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