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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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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만들었는데 멕시코 문화 맛집이라고 소문난 영화들

성찬얼기자

최근 한 영화가 극락과 나락을 오가고 있다. 칸영화제에서 공개 당시 곧바로 수상에 성공하며 단번에 2024년 기대작에 자리했으나, 이후 각 국가별 개봉 후 반응은 개봉 전 열광적인 것과 온도차가 있었다. 특히 해당 영화에서 배경으로 삼은 멕시코에선 자국의 스테레오 타입만을 가져다 쓴 영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멕시코는 상업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국가지만, 그렇기에 때때로 영화에서 제대로 된 묘사보다 선입견 가득한 이미지로만 소비되기도 한다. 반대로 제작진의 배경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에 따라 멕시코를 훌륭하게 묘사한 영화들도 있다. 그렇게 타국의 자본으로 멕시코를 담아내면서 자국의 호평까지 받은 영화들을 만나보자.


 

코코 & 마놀로와 마법의 책
 

〈코코〉
〈코코〉


멕시코 하면 빠지지 않는 문화가 '망자의 날'이다.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한 이 기념일은 10월 31일~11월 2일까지인데, 마지막 날은 국가 지정 공휴일이다. 11월 2일은 떠나간 사람들과 조상님들을 기억하는 날로, 우리나라로 치면 명절에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각자 집에 제단을 만들고 음식과 사진 등으로 꾸미는 것도 제사를 연상시킨다. 차이점이 있다면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하는 성묘·제사와 달리 망자의 날은 산자와 죽은자, 혹은 오래 만나지 못한 산자가 죽은 자를 기억한다는 것을 매개로 해후한다는 점을 강조해 보다 유쾌한 축제 같은 분위기가 특징이다.

 

〈코코〉 알레브리헤 페리타
〈코코〉 알레브리헤 페리타


이 죽음의 날 분위기를 묘사해 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이라면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다. 이 영화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소년 미겔이 망자의 날에 저승에 떨어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영화는 특히 멕시코 망자의 날의 화려한 색감을 영화에 녹여 호평받았다. 망자의 날 제단에 뿌려놓는 천수국으로 만들어진 길, 멕시코 민간 설화에 나오는 알레브리헤, 형광빛 쨍한 느낌의 멕시코가 사랑하는 색감 등 멕시코를 상징하는 문화적 유산이 영상미를 구성한다. 이에 힘입어 멕시코에서 개봉했을 때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코코〉의 이런 표현이 멕시코 문화의 저승과 차이가 있다는 의견.
〈코코〉의 이런 표현이 멕시코 문화의 저승과 차이가 있다는 의견.


다만 <코코>에서 묘사한 저승이 멕시코 문화 속 저승과 다르다는 반응도 있었다. 특히 세관을 통과하듯 심사를 받아 저승에 들어가는 과정은 '죽음'을 평등의 상징처럼 여기는 멕시코 문화가 아니라 현실의 국경 순찰대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코코> 대신 <마놀로와 마법의 책>를 더 좋게 보는 관객도 있다. 조지 R. 구티에레즈가 연출한 이 영화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아와 결혼을 앞두고 신들의 내기 때문에 사후세계에 떨어진 마놀로의 모험을 그린다. 멕시코의 목각인형을 차용한 작화, (멕시코보다 유럽 쪽이 원조지만) 라틴계 사람들이 즐기는 투우, 설화로 옮긴 듯이 펼쳐지는 극중 구성 등 멕시코 문화 본질엔 <코코>보다 <마놀로와 마법의 책>이 더 가깝다는 반응도 있다. 반면 <코코>에 비하면 스토리가 영 유치하다는 비판도 있어서, 멕시코 문화를 엿보고 싶다면 두 영화 속 망자의 날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이다.

 

〈마놀로와 마법의 책〉
〈마놀로와 마법의 책〉

〈마놀로와 마법의 책〉 멕시코 문화 속 신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마놀로와 마법의 책〉 멕시코 문화 속 신적 존재들이 등장한다.
〈마놀로와 마법의 책〉 투우 장면
〈마놀로와 마법의 책〉 투우 장면

 

토르티야 수프
 

원작 〈음식남녀〉(왼), 리메이크 〈토르티야 수프〉
원작 〈음식남녀〉(왼), 리메이크 〈토르티야 수프〉


2001년 영화 <토르티야 수프>는 굉장히 특이한 영화다. 대만영화 <음식남녀>(1994)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했는데, 멕시코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각색했기 때문이다. 멕시코계 이민자이자 셰프 아버지와 그의 딸들의 이야기는 스페인 영화감독 마리아 리폴의 손에서 멕시코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 됐다. 제목부터 음식 이름인 만큼 음식이 영화의 주요한 소재이기에 제작진은 셰프 수잔 페니거(Susan Feniger)와 마리 수 밀리켄(Mary Sue Milliken)을 초빙해 멕시코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시피를 영화에서 선보였다. 레스토랑의 근사한 음식과 고즈넉하면서도 풍성한 가정식을 모두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을 만족시켰다. 무엇보다 이민자를 내세운 영화에 이렇게 친근한 음식들이 나오다보니 이민자들 사이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로 유명하다.

 

〈토르티야 수프〉
〈토르티야 수프〉


 

로마

 

〈로마〉
〈로마〉

〈로마〉
〈로마〉


멕시코영화와 미국영화의 경계선에 서있다고 해야 할까. 내용물은 멕시코영화인데 포장지는 미국영화라고 해야 할까. 멕시코-미국 공동제작이지만, 넷플릭스가 배급을 맡으면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감당했다니 미국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넷플릭스산 영화 <로마>는 어떻게 보면 그 어떤 영화보다 멕시코의 현대 문화를 잘 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름 아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녹였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정의 가정부 클레오가 보내는 일상과 갑작스러운 변화를 담은 영화는 1970년대 멕시코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았다. 사회적 변화, 계층 간의 묘한 거리감, 그럼에도 하나의 문화 안에서 융합하는 가족의 모습까지. 문화를 소재로 하거나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한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라는 측면에선 그 어떤 영화보다 잔잔하게 관객의 마음에 내려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