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숨찐’(힘을 숨긴 찐따)이 넘쳐나는 요즘, 이를 비튼 ‘힘이 없는 찐따’의 복수극이 찾아온다. 4월 9일 개봉한 영화 <아마추어>는 CIA 데이터해독분석부에서 일하는 찰리(라미 말렉)가 아내를 잃은 후 그 용의자들의 뒤를 쫓는다는 내용이다. 1981년 발간한 로버트 리텔의 동명 소설을 현대에 맞춰 옮긴 이 영화는 대체로 특수요원이나 킬러 등 현장에서 굴렀던 인물들이 주가 되는 근래의 복수극과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 찰리가 현장 경험 하나 없는 ‘사무직’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신 빼어난 두뇌와 추론 능력 등으로 무장한 찰리가 어떻게 복수에 성공할 것인가. 개봉 전 시사회에서 <아마추어>를 미리 만난 소감을 전한다.

그동안 수많은 요원, 은퇴한 전설의 복수극들이 있었지만 <아마추어>는 비현장요원의 복수극이라는 점을 차별화한다. 그야말로 무력에 의존하고, 이미 죽음에 무뎌진 인물이 그려지는 근래의 복수극에서 역발상으로 착안한 듯하다. 그래서 영화는 찰리가 그런 일반적인 복수극을 주도하는 인물과 어떻게 다른지를 공들여 묘사한다. 이를테면 권총사격 실력조차 터무니없어서 표적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나 간신히 맞출 정도. 이 덕분에 ‘사격’ 혹은 ‘육탄전’을 핵심 전술로 구성하는 기존 복수극보다 좀 더 누아르스러운 분위기를 포착한다.
또 찰리가 지적으로 무척 뛰어나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선 일반인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도 영화의 매력이다. 찰리가 사건의 주도자 중 한 명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은 그가 이런 위기 상황과 얼마나 인연이 없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상대가 보지 못하는 지근거리에서 총을 겨눴음에도 쏘지 못하고, 심지어 상대가 자신을 눈치챈 것도 아닌데 숨을 헐떡이며 자신이 겨눠진 것마냥 땀을 흘린다. 제목처럼 ‘아마추어’스러운 찰리의 면모는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복수극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아내 세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복수극을 이어가는 동안 그 나름대로의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을 엿보는 재미도 더한다.

편의상 ‘복수극’이라고 거듭 설명했지만, <아마추어>는 단순한 복수극 이상의 구도를 가져간다. 찰리는 사건 전 한 가지 정보를 입수한다. 이 정보에 따르면 본인의 상사 무어 본부장이 허가 없이 블랙옵스(비밀작전)를 수행하고 이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 또한 은폐하려고 하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CIA가 미적지근하게 대처하자 이 정보를 언론에 넘기겠다며 무어 본부장과 거래를 시도한다. 결국 무어 본부장은 찰리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찰리가 가진 정보를 탈취하려 하고, 찰리 또한 무어 본부장을 의심하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복수에 뛰어들려고 한다. 이런 구도는 <아마추어>에 복수극뿐만 아니라 정치적 암투의 요소를 더해 입체적인 세계를 구성하게 한다. 물론 이 구도를 심도 있게 다루는 정치 스릴러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지만 보통 복수라는 일직선적인 구도를 다채롭게 하는 조미료 역할은 톡톡히 한다.

근래 블록버스터들이 스튜디오, 혹은 CG를 활용하는 풍토가 짙은 가운데, <아마추어>는 각종 로케이션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일반적인 첩보전과는 다르지만, 각국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범죄자들을 쫓는다는 전개를 통해 마치 고전 첩보영화적인 특징을 더한 셈이다. 파리, 이스탄불, 마드리드, 러시아 등을 오가는 찰리의 행적에서 이국적인 공간의 비주얼이 스크린을 채운다. 여기에 <아마추어>의 찰리가 아마추어라는 것이 장점이 된다. 날고 기는 피지컬을 뽐내는 주인공이 아니기에 여타 액션영화와 달리 공간을 비교적 즐길 수 있는 호흡으로 로케이션의 아름다움을 좀 더 음미할 수 있다. <아마추어>의 기획이 잘 맞아떨어진 부분.
아쉬운 점은 요즘 할리우드영화, 특히 복수극에서 자주 보이는 플래식백의 남용이다. 요즘 이런 장르에서의 ‘떠난 아내 회상’은 밈이 될 정도로 정형화됐는데, <아마추어>는 나름대로 차별화를 하긴 한다. 다만 이런 요소 자체가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초중반과 달리 찰리 특유의 능력이 확 돋보이지 않는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아쉽다. 영화가 가장 전면으로 내세운 차별점이 다소 흐릿해지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럼에도 <아마추어>는 구태의연해진 할리우드 복수극 장르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미국 정부가 영 탐탁지 않은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비밀작전을 하는 고위층과 이를 무마하려는 개인의 대립은 꽤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사실상 혼자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라미 말렉도 섬세한 연기로 찰리의 유약함과 강인함을 모두 표현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4월 9일 개봉한 <아마추어>가 조용하게 활약하는 찰리처럼 극장가를 휘어잡을 수 있을지 내심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