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윤 감독과 이남규 작가, 두 창작자의 만남은 한국 드라마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둘은 드라마 <송곳>,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눈이 부시게>, <힙하게> 등에서 협업하며 좋은 케미를 보여왔다. 현재에도 80세의 모습으로 천국에 도착한 해숙과 젊어진 남편 낙준의 현생 초월 로맨스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으로 눅진한 휴머니즘을 선사하고 있다. 두 창작자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과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도,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눈이 부시게>와 <힙하게>는 모두 판타지적 요소를 기반으로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장르적 실험, 입체적인 캐릭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잡는 균형감이 이들의 협업이 가진 힘이다. 두 사람은 현실과 판타지, 코미디와 휴머니즘을 넘나들며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해 냈다.

<송곳> (2015)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송곳>은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이수인 과장은 회사의 부당한 해고 지시에 맞서 마트 판매 직원들을 지키려 한다. 그는 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을 찾아가 노조 활동을 시작한다. 사측의 집요한 회유와 노조 와해 시도, 파업에 따른 경제적·심리적 고통과 피로도 등 현실의 노동 현장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송곳>은 화려한 판타지도, 로맨스도 없는,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드라마다. 정의와 상식이 세상에 구현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며, 노동 현장의 부조리와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김석윤 감독의 연출은 노동 현장의 긴장감을 포착함과 동시에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고뇌와 결단을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낸다. 이남규 작가는 드라마의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도 촌철살인의 대사와 유머를 곳곳에 녹여냈다. 드라마는 마니악한 팬층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눈이 부시게>(2019)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소중함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25살의 아나운서 지망생 혜자(한지민/김혜자)는 평범한 청춘의 하루를 살아가던 중, 우연히 손에 넣은 신비로운 시계를 통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능력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혜자는 사랑하는 가족, 특히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반복해서 시간을 돌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젊음을 잃고 하루아침에 노인이 되어버린다. 혜자는 빼앗긴 시간 앞에서 억울함을 느끼지만, 곧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려는 용기를 보여준다. 반면, 이준하(남주혁)는 누구보다 젊고 찬란한 시간을 가졌음에도 삶에 지쳐있고, 오히려 빨리 늙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시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의 삶에 조용히 스며들며 깊은 위로를 선사한다.

<눈이 부시게>는 초반에는 타임슬립과 로맨스를 결합한 장르의 색채를 띠지만, 점차 가족과 노년,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로 무게를 옮긴다. 혜자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익숙한 일상의 소중함과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찬란한지 조용히 일깨운다. <눈이 부시게>는 김석윤 감독의 섬세한 연출, 이남규 작가의 인간미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져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남겼다. 또 김석윤 X 이남규 듀오의 페르소나 김혜자, 한지민의 열연도 작품에 따뜻하고 애잔한 휴머니즘을 불어넣는다. 특히 김혜자의 내레이션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적셨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먼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힙하게>(2023)

<힙하게>는 시골 마을 무진에서 벌어지는 코믹 수사극이다. 동물과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사물에 손을 대어 그 물건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는 일종의 초능력) 능력을 엉덩이를 만질 때만 발휘하는 수의사 봉예분(한지민)과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 문장열(이민기)이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며 공조 수사를 시작한다. 두 주인공의 생활밀착형 티키타카와 무진 마을 사람들의 병맛 유머가 큰 재미를 선사한다.

<힙하게>는 장르적으로는 코미디, 스릴러, 판타지를 절묘하게 섞어 ‘사이코메트리 스릴러’라는 신선한 색채를 보여줬다. 망가짐을 불사한 배우들의 코믹 연기와, 현실감 넘치는 대사, 예측불허의 전개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편, 엉덩이를 만져야만 초능력이 발휘된다는 설정은 논란도 있었으나 배우 한지민의 사랑스러운 연기와 코믹한 연출로 이질감을 상쇄했다는 평이 많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인간미와 유머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김석윤X이남규 듀오의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