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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설립 40주년 기념작,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데일리뉴스팀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03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으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의 오스카 수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감독은 후일 인터뷰에서 "이라크를 폭격하는 나라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11년 후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시대를 살 수 있었다는 건 정말 운이 좋았다"며 "또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영화를 만든 지난 50년간 우리나라가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정치적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고 태평양 전쟁 당시 사용된 전투기 '제로센'을 작품에 등장시켜 때로는 극우 성향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면, 그는 전쟁과 파괴에 반대하는 확고한 평화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레오 파비에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인간과 자연, 생명에 대한 경애가 담긴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미야자키의 1979년 데뷔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부터 2023년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를 조명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과거 인터뷰와 에세이에 담긴 문구들은 그의 세계관과 영화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작품에 녹아들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야자키와 오랜 세월을 함께 일한 동료, 그의 작품을 연구한 학자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도 담겼다.

미야자키 감독은 1984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유독 물질로 덮인 세상을 살아가는 미래 인류의 모습을 그리며 일찍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다. 이후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인간의 소비주의가 만들어낸 '오물 신' 캐릭터를 창조했으며, 2008년 〈벼랑 위의 포뇨〉는 쓰나미가 덮친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그러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미야자키 감독의 시각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변화했다. 동화적 결말로 마무리되던 초기 작품들과 달리 1997년 〈모노노케 히메〉는 현실적이고 냉정한 시선을 담고 있는데, 이는 감독이 겪은 내적 갈등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감독이 1992년 〈붉은 돼지〉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내놓은 작품이다. 그의 결심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이었다. 〈붉은 돼지〉의 배경이 된 아드리아해 마을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습을 목격한 미야자키 감독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그에게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성찰을 안겨주었다.

이후에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또 한 번 은퇴 선언을 뒤집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연출했다. 이 작품에 담긴 감독의 의도는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단지 담배를 문 채 커피를 내리며 씁쓸한 독백을 이어가는 거장의 모습을 담아냈을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우린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게 감독의 일이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감독이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만든 작품일지 모른다. 영화가 전하는 질문은 제목만큼이나 직설적이다. 현 세대의 실패를 목격한 다음 세대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인지 묻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백발이 된 미야자키의 주름진 손은 수천, 수만 장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각 종이에는 그의 혼과 세월이 깊이 배어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터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정교하게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장 전체가 이들의 신념과 열정,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

최근 인공지능 챗GPT가 순식간에 생성해내는 '지브리풍' 이미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유행에 대해 일부 예술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지브리 작업실을 목격한다면, 이러한 비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