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저녁은 유난히도 뜨거웠던 날로 기억될 듯하다. 아시안게임 축구 한일전과 야구 결승전, 그리고 한강 불꽃축제에 버금가는 이벤트가 부산에서 개최됐기 때문이다.

올해 부국제 사흘째인 10월 7일 토요일에는 단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의 최고 화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야외상영이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진행되었다. 부국제 개막 이후 줄곧 화창했던 날씨였지만 이날만큼은 너무나도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나마 잠재우려고 하는 듯, 상영이 예정된 시간에 맞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로지 <괴물>을 보기 위해 모인 4400여 명의 관객들은 주섬주섬 우비를 챙겨 입고 오로지 화제의 그 작품이 상영되길 숨죽여 기다렸다. 거장의 신작을 기다리는 많은 팬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부국제 측은 야외상영을 계획했지만, 일반예매를 오픈하자마자 4400석이 5분 만에 매진되었다.

<괴물> 스틸컷

<괴물>은 같은 반 아이들 사이 벌어지는 사건과 어른들의 오해가 겹치면서 겪게 되는 혼란을 그린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 상영에 앞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괴물>의 두 주연배우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특히, 올해로 28회를 맞는 부국제는 데뷔 28년을 맞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인생과 나이가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부국제를 무려 10회 방문한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영화제는 부국제가 유일하다. 그래서 애착이 남다르다”라며, “(<브로커>로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를 처음 만난 것도 부국제에서였다. 이곳에서의 인연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도 부국제가 30회, 40회를 맞을 때까지 나도 30년, 40년 하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괴물> 야외상영 전 진행된 기자회견을 바탕으로, 관람 전 미리 알아두면 더욱 재미있는 <괴물> 관람 포인트를 전한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고레에다 X 아이=필승? 극을 이끄는 두 배우, 쿠로카와 소야와 히라이기 히나타

야외상영 전 영화의 두 배우, 쿠로카와 소야와 히라이기 히나타는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또렷한 한국말로 건넸다. 그들은 무대에서 K-손가락 하트까지 선보이는 등, 한국 관객들을 만나 신난 영락없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그러나 그들은 영화에서만큼은 프로다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두 명의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로 “이 두 명의 배우가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마치 빛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캐스팅을 할 때 고민을 하거나 갈등하지 않았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아역 배우와 작업할 경우 아역 배우 평소의 말투를 살려서 대본을 수정했는데, 이번에는 두 배우를 성인 연기자처럼 대했다. 배우들에게 배역을 건네고 리허설을 꼼꼼히 했다”라고 전했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고레에다 감독은 아역들과 작업해온 오랜 경험을 통해, 그들의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꺼낼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미나토’ 역을 맡은 쿠로카와 소야는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감독님은 힌트를 주신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울 때 신체의 감각을 상상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무서움을 느끼는 감정은 ‘너무 무서워서 발끝이 움직이지 않는 것’, ‘손발이 차가워지는 듯한 것’으로 상상해 보라고 말씀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경험을 회상하기도 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카모토 유지, 故 사카모토 류이치 세 거장의 협업

<괴물>이 독특한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카모토 유지, 故 사카모토 류이치 세 거장의 협업이 성사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사카모토 유지와 故 사카모토 류이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이자 내가 존경하는 두 분”이라며, 이들과의 협업이 매우 영광이었음을 전했다.

<괴물> 스틸컷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의 데뷔작을 제외하고는 항상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다만, 이번에는 일본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콰르텟> 등의 TV 드라마와 영화를 작업해 온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맡았다. 고레에다는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읽고 “내가 각본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이 각본으로 영화를 찍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다고.

<괴물> 스틸컷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사카모토 유지의 협업이 성사된 이유는, 두 사람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예전에 만났을 때부터, 언젠간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사카모토 유지와 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사의 방향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카모토 유지는 주로 TV 시리즈를, 나는 영화를 하니 그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관심사는 비슷하다”라고 전했다.

故 사카모토 류이치와는 주로 편지로 소통했다고 한다. 둘은 편지와 음악을 주고받으며 영화를 완성해나갔다. 덕분에, <괴물>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르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먹먹함과 감동을 더한다.


세 가지 시점에서 퍼즐처럼 풀어나가는 영화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은 어머니의 시점, 중반은 선생님의 시점, 후반은 아이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괴물>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입할 대상을 바꿔가며 같은 상황을 각기 다른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볼 것을 유도한다.

<괴물> 스틸컷

그래서 <괴물>은 체험의 영화이자, 등장인물이 자신의 감정을 관객에게 친절히 공유하는 영화다. 그래서 관객은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의 주변인이 되어서, 그 상황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얽히고설킨 오해의 과정을 세 관점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듯한 전개는 진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괴물> 속 어른들의 오해는 관객들의 오해이기도 하며,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른이자 관객인 우리는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래부터는 영화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물> 속 고레에다 감독이 가장 공들인 장면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읽고, 고레에다 감독이 가장 가슴이 뛰었던 장면은 단연 후반부의 ‘호른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는 배우들이 직접 현장에서 분 악기 소리 이외에는 다른 대사도, 다른 음악은 삽입되지 않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고레에다 감독은 “사카모토 유지는 많은 대사를 쓰는 각본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야기 전달의 핵심적인 장면에서는 대사에만 의존하지 않는 각본을 쓴다. 그래서 가장 전하고 싶은 부분은 악기 소리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카모토 유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를 밝혔다. 또, 영화음악가는 음악을 쓰지 않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 고레에다 감독이 편집된 영상을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보냈을 때, 그는 “이 장면의 소리가 너무 좋다”라며, “내 음악이 이 소리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고 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