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람 후에 이 포스터를 다시 보면 핵심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꿈

1492년 8월, 저 멀리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항해를 시작했다. 바다 반대편엔 육지로만 교역했던 인도가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그 해 10월, 그는 유럽 바다 건너에 있는 인도를 발견한다.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거긴 인도여야 했다. 그리고 기존에 그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도 사람(indian)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이 정확한 표현이지요??

이후 17세기, 메이플라워 호가 100여 명의 이민자를 수송하며 새로운 거주지로 변모한다. 유럽에서 종교적, 정치적 탄압을 피해 온 사람들이 중심을 이뤘기 때문에 이곳을 자유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오는 사람들에겐 기회의 땅이라 불렸다. 신분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모여들어 국가의 형태를 이뤘다. 이 모든 아메리칸 드림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이 만들어지고, (비교적) 직접 지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자랐다. 당시 역사상 본 적 없는 위대한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최초의 대통령은 지금도 세계 경제를 주무르시느라 바쁘다


누군가의 악몽

그러나 북미 대륙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곳의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인력을 위해 억지로 끌려들어 온 아프리카 계열의 흑인 노예들이 있었다. 대항해시대에 이미 유럽 열강의 귀족 집안의 노예였던 흑인들이, 주인의 이주로 딸려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19세기에 해방되기 전까지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흑인의 인권보다는 백인의 편의를 위해 전쟁까지 불사한 것을 보면 자유를 찾아온 자들이 그들만의 리그만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흑인 인권 문제는 지금도 터져나온다

인디언, 즉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신대륙 발견'이라는 용어 자체가 어이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대손손 살아왔는데 무슨 놈의 새로운 발견이냐는 것이다. 자기네 땅을 새로운 곳이라 부르며 점점 침범해 오는 유럽인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영토와 권리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드림인지 골드 러시인지 나발이고 자시고 관심도 없지만 그것은 곧 저주였다. 이들은 자주 국가로 인정받거나 혹은 완전하게 미국 국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2023)에서는 이주 시기에서 조금 지난 1920년대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겪었던 수난을 다룬다. 이들은 백인들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각박한 땅에 정착했다가 역설적이게도 거기서 석유가 터지는 바람에 부자가 된다. 원주민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자신들을 미개하다며 깔보던 백인들의 고용주가 된다. 백인들은 오세이지 족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죽이고 또 죽인다. 교묘한 수가 쓰였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중앙 정부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고, 그 지역 백인들의 추악함을 들추기 시작한다.

영화는 오세이지 족 여인과 결혼하여 계층 상승을 노리는 남자,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를 조종하는 삼촌 윌리엄(로버트 드 니로)을 내세우며 시선을 제시한다. 도덕적 결함을 지닌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면에서 이것은 일종의 피카레스크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그 악인의 태도와 결말을 보여주며 성찰을 권한다. 악인이 몰락하면 그 침몰의 원인을 묻고, 악인이 성공하게 되면 그 원흉은 사회의 어디에서 배태됐는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의 저열한 돈줄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는 <데어 윌 비 블러드>(2008)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스콜세지 감독은 희생자 원주민들을 영화적 유희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영화는 FBI가 출동하여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스릴러 장르에서 긴장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백인들은 미국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을 내세우지만, 그 제시가 얼마나 저급한 피를 밟고서야 생긴 것인지에 집중한다. 이는 스콜세지 감독의 지난 필모와 무관하지 않다. 뉴욕 출신이지만 이탈리아계 이주민의 후손인 그는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의 이면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평생 연구해 왔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도 연이은 질문을 던진다. 다른 것을 혐오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없애려는 폭거가, 영화의 시기부터 한 세기가 흐른 지금은 과연 사라졌느냐는 것이다.

위대한 감독은 필모에서 미국의 폭력성과 가장 거리가 먼 작품으로 비로소 오스카를 수상했다. 아카데미 위원들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진행형 악몽

<늑대와 춤을>(1990)의 모티브 부족이기도 한 수(sioux) 족은 오아히 호수를 유일한 식수원으로 이용한다. 그런데 호수를 가로지르는 송유관 사업이 승인됐고, 이 지역 북미 원주민들은 반대하며 시위에 임했다. 그러나 2016년 당시 정부가 선택한 해결 방법은 강제 진압이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다쳤다. 진압팀은 시위대를 봉쇄하여 물품 제공을 끊고, 공급자에겐 벌금을 물리는 비열한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당시의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트럼프는 송유관 사업을 이어나갈 의지를 보이며 '나와는 다른 존재에 대해서 혐오할 자유'를 강조했다.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과연 어떤 영광을 지칭하는 것이었을까?

송유관 사업은 중지됐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론 소킨의 미드 <뉴스룸>(2012)에서 뉴스 앵커 윌(제프 다니엘스)은 대학생으로부터 미국이 왜 위대한 국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는 거기에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라고 쏘아붙인다. 얼어붙은 청중에게 그가 뒤이어 던지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위대했던 적이 있었지.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섰고, 도덕을 위해 투쟁했지. 윤리적인 이유로 법을 만들기도 하고 폐지하기도 했어. 가난을 물리치려고 했지만 가난한 사람과 싸우지는 않았어. 희생을 하고 이웃을 걱정했지. 신념을 위해 돈을 모금했지만 그걸로 자랑하지 않았어. 인간답게 행동했고 지성을 열망했고 우습게 여기지 않았어. 그런다고 열등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거든. 지난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어, 쉽게 겁을 먹지도 않았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야. 위대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식 말이야.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즉,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라는 거 말이지.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